🍒 水滸傳 제22편
임충은 그날 밤 눈밭에 쓰러져 일어나지 못했다. 일꾼들이 임충을 묶어 어떤 장원으로 끌고 갔다. 장원에서 한 하인이 나와서 말했다.
“대관인께서 아직 일어나지 않으셨으니, 저놈을 문루에 매달아 놓아라!”
날이 밝아오자, 임충은 술이 깼다. 눈을 뜨고 바라보니, 큰 장원이었다. 임충이 소리쳤다.
“어떤 놈들이 감히 나를 매달았냐!”
일꾼들이 소리를 듣고 몽둥이를 들고 나왔다.
“네놈이 아직 입은 살아 있구나!”
수염을 태워 먹은 늙은 일꾼이 나서서 말했다.
“물어볼 것 없다! 우선 쳐라! 대관인께서 일어나시면, 그때 심문하면 된다.”
일꾼들이 일제히 달려들어 임충을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임충은 꼼짝없이 두들겨 맞으면서 소리쳤다.
“때리지 마라! 나도 할 말이 있다!”
그때 한 일꾼이 외쳤다.
“대관인께서 오신다!”
한 관인이 뒷짐을 지고 다가와서 물었다.
“너희들은 대체 누구를 그렇게 때리고 있느냐?”
일꾼들이 대답했다.
“어젯밤에 붙잡은 쌀 도둑입니다.”
관인이 앞으로 나와서 자세히 보더니, 임충을 알아보고 황급히 일꾼들을 물리치고 직접 밧줄을 풀어 주었다.
“임교두! 어쩌다 이리 되셨습니까?”
일꾼들은 그걸 보고 모두 달아나 버렸다.
임충이 눈을 뜨고 보니, 다른 사람 아닌 바로 소선풍 시진이었다.
“대관인! 저를 구해 주십시오!”
“교두께서는 어찌하여 이곳에서 촌놈들에게 모욕을 당하고 있습니까?”
“한 마디로 말하기 어렵습니다.”
두 사람은 안으로 들어가 마주 앉았다. 임충은 초료장에 불이 난 일을 자세히 얘기했다. 시진이 듣고 나서 말했다.
“형님은 운명도 기구하십니다! 오늘은 하늘이 도우신 것이니, 일단 마음 놓으십시오. 이곳은 저의 동쪽 장원입니다. 며칠 쉬시면서 다시 상의하십시다.”
시진은 하인을 불러 새 옷을 가져오게 하여 갈아입게 하였다. 그리고 따뜻한 방으로 가서 쉬게 하고, 음식과 술을 대접하였다. 이로부터 임충은 시진의 동쪽 장원에서 며칠 동안 쉬게 되었다.
한편, 창주 뇌성의 관영이 상부에 보고하였다.
“임충이 옥리, 육겸, 부안 세 사람을 죽이고 초료장을 불태웠습니다.”
창주 부윤은 크게 놀라, 즉시 공문을 발송하여 포교들에게 임충을 체포하라고 명하였다. 그리고 모든 마을과 객점들에 방문을 붙이고 3천관의 상금을 내걸었다.
한편, 임충은 시대관인의 동쪽 장원에 머물면서 긴급한 소식을 들었다. 시진이 돌아오자, 임충이 말했다.
“대관인께서는 저를 여기에 머물라고 하시지만, 관아의 추적이 심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집집마다 수색하다가 이 장원까지 수색하게 되면, 대관인까지 연루될까 염려됩니다. 기왕 은혜를 베풀어 주셨으니, 약간의 노자만 빌려 주시면 다른 곳으로 가서 몸을 피하고자 합니다. 다른 날 죽지 않으면 마땅히 은혜를 갚겠습니다.”
시진이 말했다.
“형님께서 떠나시겠다면, 제가 아는 곳이 하나 있으니 서신을 써서 보내드리겠습니다.”
“대관인께서 이처럼 저를 구해 주셨으니, 가라는 데로 가겠습니다. 그런데 그곳이 어디입니까?”
“그곳은 산동 제주 관할에 있는 물의 고장으로, 지명을 양산박(梁山泊)이라고 합니다. 둘레가 8백여 리이고, 가운데 성이 하나 있습니다. 지금 세 사람의 호걸이 그곳에 산채를 꾸리고 있습니다. 첫째 두령은 왕륜(王倫)인데 ‘벼슬 없는 선비’라는 뜻으로 ‘백의수사(白衣秀士)’라 불리고, 둘째 두령은 두천(杜遷)인데 키가 하늘에 닿을 정도로 크다고 해서 모착천(摸著天)이라 불리며, 셋째 두령은 송만(宋萬)인데 ‘구름 속의 금강역사’라는 뜻으로 운리금강(雲裏金剛)이라 불립니다. 이 세 사람이 7,8백 명의 부하들을 모아 도적질을 하고 있는데, 큰 죄를 지은 사람들이 그곳으로 피해 가면 모두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들은 저와도 교분이 두터워 서신 왕래도 하고 있습니다. 제가 서신을 써서 드릴 테니, 그리로 가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좋지요!”
“지금 창주성 입구에 방문을 붙여 놓고 두 군관이 수색하고 있습니다. 형님께서는 반드시 거기를 통과해야만 합니다.”
시진은 고개를 숙이고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제게 계책이 있습니다. 형님을 반드시 통과시켜 드리겠습니다.”
“무사히 빠져나가면, 죽어도 은혜를 잊지 않겠습니다.”
시진은 먼저 일꾼들을 불러 짐을 지고 성문을 나가 기다리고 있게 하였다. 시진은 말 2,30필을 준비시키고, 활과 창, 깃발 등을 들게 하였다. 송골매를 어깨에 얹고 사냥개들을 끌고, 한 떼의 인마가 요란하게 행차하였다. 임충은 그 가운데 섞여 있었다.
성문을 지키는 군관이 시대관인을 알아보았다. 원래 그는 군관이 되기 전에 시진의 장원에 머문 적이 있었기 때문에 서로 익히 알고 있었다. 군관이 일어나며 말했다.
“대관인께서는 어딜 그리 즐겁게 가십니까?”
시진이 말에서 내려 말했다.
“두 분 군관께서는 무슨 일로 여기 계십니까?”
“창주 부윤께서 공문을 내려 보내 범인 임충을 체포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저희들이 여기를 파수하고 있으면서, 지나가는 사람을 일일이 점검하여 내보내고 있습니다.”
시진이 웃으며 말했다.
“우리 일행 가운데 임충이 숨어 있는데, 어찌 못 알아보시오?”
군관들도 웃으며 말했다.
“대관인께서는 법을 아시는 분인데, 어찌 범인을 데리고 가시겠습니까? 어서 말에 오르십시오.”
시진이 또 웃으며 말했다.
“저를 믿어주시니, 사냥한 것을 보내 드리겠습니다.”
군관들을 작별하고, 일제히 말을 타고 성을 나갔다. 14,5리를 가니, 먼저 간 일꾼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시진은 임충을 말에서 내리게 하고, 사냥꾼 복장을 벗고 일꾼들이 가지고 온 자기 옷으로 갈아입게 하였다. 허리에 요도를 차고, 머리에는 삿갓을 쓰고, 등에는 짐을 지고, 손에는 박도를 들었다. 임충은 시진을 작별하고 길을 떠났다.
임충은 열흘 동안 걸었다. 때는 한겨울이라 붉은 구름이 짙게 깔리고 삭풍이 세차게 불었다. 거기다 눈발이 분분히 내리더니 온천지가 눈에 덮여 버렸다. 20리를 채 못 갔는데, 세상이 온통 은빛이 되었다. 날이 점점 어두워지는데 날씨는 더욱 추워졌다. 멀리 호숫가에 자리 잡은 주점이 폭설에 덮여 납작해 보였다.
임충은 주점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고 앉았다. 점원이 물었다.
“손님! 술을 얼마나 드릴까요?”
임충이 말했다.
“우선 두 병만 가져오게.”
점원이 술을 가져와 탁자 위에 놓자, 임충이 물었다.
“안주는 뭐가 있나?”
“소고기, 거위고기, 닭고기가 있습니다.”
“우선 소고기 2근 썰어 주게.”
잠시 후 점원이 쟁반에 소고기와 야채를 가지고 왔다. 임충은 서너 잔을 마시고 주점 안을 둘러보았다. 한 사람이 뒷짐을 지고 문 앞에서 눈을 구경하고 있었다. 그가 점원에게 물었다.
“지금 술 마시고 있는 사람이 누구냐?”
임충이 그를 보니, 덩치가 크고 우람한데 두 주먹이 울퉁불퉁하였다. 누런 수염을 세 가닥으로 기르고 눈을 구경하고 있었다. 임충이 점원을 불러 말했다.
“자네도 한 잔 하게.”
점원이 한 잔 마시자, 임충이 물었다.
“여기서 양산박까지는 거리가 얼마나 되는가?”
점원이 대답했다.
“여기서 양산박까지 거리는 몇 리 안 되지만, 수로만 있고 육로는 없습니다. 만약 가시려면 배를 타야만 건너갈 수 있습니다.”
“자네가 배를 좀 알아봐 주겠나?”
“날이 이미 저물고 폭설도 내렸는데, 어디서 배를 찾을 수 있겠습니까?”
“내가 돈을 줄 테니, 배를 찾아서 나를 좀 건네주게.”
“배를 구할 데가 없습니다.”
임충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어떻게 해야 하나?”
다시 몇 잔을 더 마셨는데, 마음이 울적해지면서 문득 옛 생각이 떠올랐다.
“내가 동경에서 교두로 있을 때에는 매일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술을 마시며 즐겼는데, 오늘 이처럼 고구 같은 도적놈의 함정에 빠져 얼굴에 문신까지 하고 이런 곳으로 오게 되리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집이 있어도 돌아갈 수 없고, 나라가 있어도 의지할 수 없으니, 이렇게 쓸쓸할 수가!”
슬픈 감상이 북받쳐 올라, 점원에게 붓과 벼루를 빌려 주흥에 취해 하얀 벽에 시를 한 수 썼다.
의로운 임충은 순박하고 충실하여
강호에서 명예를 날리고 동경에서 영웅이었네.
신세가 처량한 떠돌이 되어 공명은 흩어졌네.
훗날 뜻을 얻게 되면 위엄이 태산 동쪽을 진압하리라.
임충은 붓을 내던지고, 다시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그때 문 앞에서 눈 구경하던 사내가 다가오더니 임충의 허리를 잡으며 말했다.
“너 아주 대담하구나! 너는 창주에서 큰 죄를 짓고는 이리로 왔구나! 지금 관아에서 상금 3천관을 걸고 너를 체포하려고 하는데, 여기서 뭐하고 있냐?”
임충이 말했다.
“내가 누군지 아시오?”
“너는 표자두 임충이 아니냐?”
“나는 성이 장씨요!”
사내는 웃으며 말했다.
“무슨 헛소리를 하느냐! 지금 벽에다 이름을 써 놓았고 얼굴에 문신도 있는데, 어찌 빠져나가려고 하느냐?”
“정말 날 잡으려는 거냐?”
사내가 웃으며 말했다.
“내가 당신을 잡아서 뭐 하겠소? 날 따라오시오. 조용한 데 가서 얘기합시다.”
사내는 임충을 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 임충은 그를 따라 뒤편에 있는 물가의 정자로 갔다. 사내는 점원을 불러 등불을 켜게 하고 임충과 인사를 나누고서 마주보고 앉았다. 사내가 말했다.
“지금 형씨께서 양산박 가는 길을 묻고 배를 찾는데, 거기는 강도들의 산채입니다. 왜 가려고 합니까?”
“솔직히 말하겠소. 지금 관아에서 나를 긴급히 체포하려고 하는데, 몸을 피할 곳이 없어 산채로 가서 가담하려는 것이오.”
“그렇다면 형씨를 천거한 사람이 있겠군요?”
“창주 횡해군의 친구가 천거해 주었소.”
“그는 소선풍 시진 아니오?”
“족하가 어떻게 아시오?”
“시대관인과 산채의 왕두령은 교분이 두터워 항상 서신을 주고받고 있습니다.”
원래 왕륜은 예전에 과거에 급제하지 못하고 두천과 함께 시진에게 의탁했었고, 시진의 장원에 한동안 머물다가 떠나갈 때에도 많은 노자를 받은, 그런 은혜를 입었었다. 임충은 얘기를 듣고 절하며 말했다.
“눈이 있으면서도 태산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큰 이름을 듣고자 합니다.”
사내는 황망히 답례하고서 말했다.
“저는 왕두령의 눈과 귀 역할을 하는 주귀(朱貴)라고 합니다. 원래 기주 기수현 사람입니다. 강호에서는 저를 ‘마른 땅의 악어’ 한지홀률(旱地忽律)이라고 부릅니다. 산채에서 저에게 이곳에서 주점을 하면서 오고가는 객상들을 정탐하게 하였습니다. 재물이 있는 자는 산채에 알리고, 재물 없이 홀로 온 나그네는 그냥 보내 줍니다. 재물 있는 자가 오면 수면제를 먹여 쓰러뜨리고, 뚱뚱한 자는 살코기는 포를 떠서 말리고 비계는 등잔불에 사용합니다. 지금 형씨는 양산박 가는 길을 물었기 때문에 손을 쓰지 않았던 겁니다. 그리고 벽에 이름을 쓴 걸 보았는데, 동경에 다녀온 적이 있는 사람에게서 형씨가 호걸이라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 오늘 만나게 됐습니다. 시대관인께서 서신으로 천거해 주셨고, 형씨의 이름이 천하를 진동하였으니, 왕두령도 필시 중용하실 겁니다.”
주귀는 술과 안주를 내와 임충을 대접하였다. 두 사람은 정자에서 밤늦게까지 술을 마셨다. 임충이 말했다.
“어디 배가 있어서 건널 수 있단 말입니까?”
주귀가 말했다.
“여기에 배가 있으니, 형씨는 안심하십시오. 오늘 하룻밤은 쉬고 내일 아침에 함께 갑시다.”
두 사람은 각자 방으로 들어가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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