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절 모든 법의 참된 모양
1 사리불은 수보리에게 물었다.
"그러면 보살이라 하고 반야바라밀이라고 하는 것은 어떤 것이며, 또 어떻게 사물을 생각하는 것이 바른 것인가?"
"깨달음에 이르기 위해서 무상의 지혜를 구한 것이라 해도 큰 결심을 발한 사람만이 보살이다. 그러므로 이 보살은 모든 물건에 대해서 충분히 그 진상을 파악해서 이것은 미의 원인, 이것은 오의 경계, 이것은 인연이 화합해서 된 것이기 때문에, 오직 일시적 존재라고 분간하여, 이에 대해서 집착이 없다. 이와 같이 물건의 진상을 파악해서 집착하지 않고, 오히려 집착하려는 마음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가는 것이다. 그것이 곧 반야바라밀이다. 따라서 이 반야바라밀이라고 하는 지혜의 눈으로 물건을 관찰하면, 모든 것은 항상 있는 것이 아니라 항상됨이 없고, 즐거움이라 괴로움이라 단정할 수도 없으며 '나'도 아니요 '나'가 없는 것도 아니며, 공이라고도 공이 아니라고도 단정할 수도 없어서, 이것이라고 확정할 수도 없는 것으로 안다. 이것이 실로 물건을 바르게 보는 견해이다."
2 그때 삼천 대천세계의 사천왕과 제석천을 비롯하여 여러 천자들이 이 설법을 들으려고 왔으나, 호화스러운 저들의 몸에서 내뿜는 광명도 부처님의 광명에 비할 때, 그것은 마치 횃불을 염부단금의 광명에 비교하는 것같이 미미한 것이었다. 제석천은 수보리에게 물었다.
"수보리시여, 우리들 모든 하늘은 마음으로 존자의 설법을 바라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서 반야바라밀 가운데에 마음을 두어야 하겠나이까? 그것을 가르쳐 주소서."
수보리는 말했다.
" 교시가여, 내 이제 부처님의 뜻을 받들고 부처님의 힘을 입어 설하리라. 만일 이 가운데 아직 부처님의 가르침에 마음을 붙이지 않은 천자가 있거든 마땅히 이 자리에서 발심하는 것이 좋다.
교시가여, 물건에 물건으로서 포착될 본체가 없고, 마음에 마음으로서 고정된 본성이 없는 것과 같이, 모든 것은 모두 이름만 있고 실체는 없는 공이다. 보살도 또한 이름만 있고 실체가 없는 공이다. 따라서 물건과 마음을 떠나서 보살이 없고, 보살과 물건은 둘도 아니요 또 다른 것도 아니라고 알지 않으면 아니 된다. 이것이 보살이 반야바라밀에 마음을 두는 길이다. 또 교시가여, 보살은 물건이나 마음에 마음을 머물러 두어서는 아니 된다. 혹은 아라한이라는 높은 깨달음의 경계나 부처님께 공양하고, 사람에게 베풀어 준다는 뛰어난 마음에도 마음을 붙여서는 아니 된다. 모든 부처님의 깨달음이란 것은 어떤 물건에 집착해서 마음을 그 물건에 집착하게 하는 것이 그릇된 일임을 깨달아 아는 것이기 때문이다."
3 그때에 여러 천자는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세계에 가장 부사의 하다고 하는 야차의 문자와언어는 알아도, 아마 지금 존자의 설법을 이해할 수 없으리라. 이러한 설법을 누가 이해할 수 있을까?' 라고. 수보리는 얼른 이들의 의심을 알아차리고 말했다.
"천자들이여, 나는 허환 가운데 있는 사람을 상대로 하는 것처럼 설법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람에게는 듣는다는 것도 없고 안다는 것도 없는 것이다. 그와 같이 진상을 규명해 가면 모든 것은 이름만 있고 실상은 없다. 말하자면 환과 같으므로 듣고 알고 보고 깬다는 실상은 없다. 만일 있다면 그것은 미에 붙잡혀 있는 까닭으로서, 그 미한 것을 떠난 반야 지혜의 눈으로 보면, 모든 것은 환과 같고 꿈과 같다고 알게 될 것이다. 거기에는 '들었다' 하고 '보았다' 할 무엇이 조금도 없다. 그러므로 결국 말하면 반야바라밀 가운데에는 말한다거나 보인다거나 하는 법도 없고, 이것을 듣는다는 사람도 없는 것이다."
4 제석을 비롯해서 모든 하늘은 한없이 기뻐하며
"존자는 우리들에게 법의 비를 내려 주셨다. 우리는 답례로 꽃비를 뿌리리다."
하고, 부처님과 제자들에게 일제히 꽃을 뿌렸다. 수보리는 이것을 보고, '이것은 참으로 하늘과 사람 세계에서는 볼 수 없는 훌륭한 꽃이다. 아마 나무에 핀 꽃이 아니요 마음에 핀 꽃일 것이다' 라고 생각했다.
재석은 말했다.
" 존자여, 이것은 나무에 핀 꽃도 아니요 또 마음에 핀 꽃도 아닙니다."
" 교시가여, 네 말도 옳다. 그러나 피지 않는 것에 꽃이라는 이름이 어찌 붙겠는가?"
재석은 수보리의 인연이 화합해서 된 물건에, 임시로 붙인 그 명칭, 그 거짓 이름을 사용하면서, 그러나 또 교묘하게 진리를 설명하는 지혜에 놀라 부처님께 물었다.
" 부처님이시여, 수보리 존자는 어떻게 거짓 이름을 쓰면서도, 모든 법의 진상을 설할 수 있는 것입니까?"
" 교시가여, 물건은 다 거짓 이름으로서, 그 진상에 이르러서는 완전히 공이요 실체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물건은 다 이것을 칭찬해도 더 할 것이 없고 비방해도 줄어들 것이 없다. 그러므로 수보리는 세간의 어두운 지혜로써 붙인 거짓 이름을 쓰면서도, 그 이름은 거짓이요, 체는 실이 아니라고 가르치는 깨달음의 경계를 설하는 것이다."
부처님은 다시 말씀하셨다.
"교시가여, 부처란 것은 그 상호를 갖춘 육신을 이름한 것이 아니다. 일체의 지혜를 얻어서만이 부처라고 이름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일체의 지혜는 전혀 반야바라밀 가운데서 배워 얻는 것이므로 반야바라밀은 정말로 부처를 만드는 어머니다. 그러므로 일체지가 간직되어 있는 육체의 사리를 공경해도 공덕은 많지마는, 그것보다도 그 일체의 지혜를 낳는 반야바라밀을 생각하고 공양하는 것이 몇 배나 더 수승하다는 것을 알지 않으면 아니 된다. 대체로 이 반야바라밀만 이 세상에 있다면 모든 착한 것이나 모든 지혜도 다 이 세상에 실현할 수 있고, 따라서 누구나 다 불도를 성취하여 법을 설해서, 일체 중생을 제도하고 이 세상을 깨끗이 할 수가 있다. 그러므로 불도를 구함에는 반야바라밀을 생각하고 공양하는 것이 제일 되는 복이니라."
5 그때 미륵보살은 수보리에게 말했다.
" 만일 보살이 여러 사람이 닦는 보덕을 즐겁게 도와주고, 또 자기도 복덕을 쌓아,그것을 자기만이 아니라 다른 여러 사람에게까지 성불하도록 회향한다면, 그것은 실로 이 위없는 복덕이라고 하지 않으면 아니 된다. 왜 그러냐 하면, 일반 사람들의 복덕은 전혀 자기를 완전히 하고 자기를 깨끗이 해서, 자기를 구제하기 위한 것에 불과하지마는, 보살의 그것은 어떤 이든지 모두 모든 사람들을 완전히 하고 깨끗이 하고 구제하기 위해서 닦는 것이기 때문이다."
수보리는 이렇게 말했다.
" 말씀하신 것과 같이, 공덕의 본원인 부처를 생각하고 처음으로 불도에 마음을 내어 수행하는 때로부터 깨달음을 얻을 때까지, 잠시도 잊지 않고 모든 사람의 복덕을 수희해서 이것을 닦아, 그것을 다 보리 도에 회향한다면, 이것은 참으로 둘도 없는 복덕이라고 하지 않으면 아니 된다. 그러나 만일 그 마음에 ' 나는 보리를 위해서 회향했다' 는 생각이 있다면 그 사람은 정말 따라 기뻐한 내 마음을 자랑스럽게 생각하여, 기뻐한 대상에 마음이 사로잡혀지고, 또 회향한 사실에 집착했다는 것은 틀림이 없다. 이와 같이, 물건과 마음에 집착이 있는 동안은 과연 그 희망대로 도를 성취할 수가 없는 것이다."
"과연 그렇다. 그래서는 불도를 성취할 수가 없다."
이 말을 들은 재석은
" 그 말은 너무 어려워서 처음으로 도에 마음을 낸 사람으로서는 무서워하고 놀랄 것입니다. 존자여, 쉬운 도리가 없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수보리는 이에
"만일 처음으로 발심한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한다면, 본래가 집착하려 해도 그 대상이 없고, 생각하려 해도 대상이 아니 되는 반야바라밀이므로, '집착이 일어난다면' 하는 염려는 필요없는 것이다. 그래서 처음 배우는 보살로서는 오직 부처님의 가르침을 깊이 믿어서 항상 선지식에게 법을 묻는 것이 좋다. 선지식은 그 사람을 위해서 육바라밀의 뜻을 잘 말해 보이고 반야바라밀을 떠나지 않게 해주실 것이다. 따라서 이 보살은 모든 법에 집착하는 일이 없으므로 비록 악마의 가르침을 듣더라도 그것 때문에 미집을 일으켜, 깨달은 경계의 진리를 더 보태거나 줄게 하거나 할 염려는 없다. 그래서 이 보살은 모든 인천의 복덕을 기뻐해서 이것을 남김 없이 닦고 익혀 필경에 그것을 보리 도에 회향하게 되는 것이다."
6 그때 사리불은 반야바라밀의 복덕을 찬탄하고 부처님께 여쭈었다.
" 부처님이시여, 반야바라밀은 어떤 물건에도 더렵혀지는 일이 없이 필경에 깨끗한 거울이며, 일체 법의 진리를 잘 비추어내는 것입니다. 모든 번뇌를 없게 하므로 헤매는 세계에 사로잡히지 않습니다. 일체 불도 수행 가운데 최상의 것입니다. 법의 실상을 투철하게 잘보고 있으므로, 모든 무서움과 고뇌를 끊는 안온한 법이며, 헤매는 어둠의 길을 비추는 광명입니다. 또 치우친 고행과 향락을 취하지 않으므로 그릇된 생각을 가진 사람을 바른길로 인도하고, 또 일체의 번뇌를 제거하고 있으므로, 부처의 모든 지혜 그대로입니다. 불법을 내는 근원이므로 여러 보살의 어머니입니다. 그 자신이 공하기 때문에 어두운 눈으로 보는 모든 법과 같이 결코 되었다가 안 되었다가 하지 않습니다. 항상 있는 법도 아니요, 아주 없어지는 법도 아니므로 헤매는 세계에서 떠나 있고, 일체의 공덕ㆍ 선근의 어머니이므로 능히 구제해 줄이 없는 자를 위한 수호가 되는 것입니다. 헤매는 법과 같이 파괴되지 않으므로, 절대의 힘을 구족하고, 일체지의 본이 되어 능히 불법을 설하고 능히 모든 법의 진상을 보여 줍니다. 부처님이시여, 이와 같이 넓고 큰 반야바라밀을 어떻게 공양해야 되겠습니까?"
" 사리불이여, 너의 말과 같이 반야바라밀은 모든 불법의 근본으므로 부처와 다를 것이 없다. 그러므로 반야바라밀을 공양하기를 꼭 여래와 같이 공양하고 부처를 예배하는 것처럼 예배하는 것이 좋다. 만일 첫째로 악마에게 이끌리어 반야바라밀을 비방하고, 둘째로 깊은 법을 믿을 수 없기 때문에, 마음이 깨끗하지 못해서 반야바라밀을 비방하고, 셋째로 착하지 못한 벗과 사귀고 마음이 게을러 바른 마음을 잃고 한갓 육체에만 집착해서 싫어할 줄을 몰라 반야바라밀을 비방하고, 넷째로 짜증과 화를 내어 한갓 자기를 높이고 다른 사람을 얕보아 반야바라밀을 비방하면, 법을 깨뜨리는 죄를 범해 지옥에 떨어져 고생하지 않으면 아니 된다. 그러므로 이 네 가지 인연은 깊이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수보리는 여쭈었다.
" 부처님이시여, 이 반야바라밀은 부지런하지 않고, 선근을 심지 않고 또 나쁜 벗과 사귀어 게으른 사람에게는, 참으로 믿기 어렵고 알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 그렇다. 대개 모든 사람에게 깨끗하고 깨끗지 못한 차별을 붙이나, 그러나 물건의 본성은 깨끗한 것도 깨끗하지 못한 것도 없다. 오직 집착하기 쉬운 마음이므로 잠깐 깨끗하지 못한 것을 싫어하고, 깨끗한 것을 즐기라고 부탁하는 것이다. 이것은 참으로 방편이다.
지금 이 집착하는 마음을 떠나서 보면, 일체 모든 법은 다 깨끗한 것이다. 또 그것으로부터 나타나는 결과도 다 필경에 깨끗한 것이다. 탐욕과 진에와 우치도 다 깨끗한 것이며, 따라서 이 육체를 만드는 오온도 또 그것을 연으로 해서 갈아 내는 모든 불도도, 일체의 지혜도 다 깨끗한 것이다. 모든 법이 깨끗하므로 반야바라밀도 물론 깨끗하다. 필경 모든 법이 깨끗하다는 것과 반야바라밀이 깨끗하다는 것과는 구별이 없는 것이라고 알지 않으면 아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