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설은 한반도 위기를 모티브로 한 가상의 추리 소설이며, 등장 인명·지명·기관·사건 등은 사실과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데칼코마니 신들의 화폐 -제 8화 검은 카운트다운]에서 계속
[데칼코마니 신들의 화폐 -
제 9화 총성 없는 살육]
화려한 도시의 불빛이 유리창을 스쳤다.
방 안은 어두웠고, 대형 TV 화면만이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CNN, BBC, NHK가 동시에 같은 주제를 놓고 긴급 토론을 생중계하고 있었다.
붉은 자막이 깜박였고, 패널들은 서로의 말을 끊으며 치열한 공방을 벌였다. 한 패널이 먼저 말했다.
“그는 시장을 조종하고 있습니다.”
곧바로 다른 패널이 받아쳤다.
“그건 정책이 아니라, 사실상 착취의 올가미를 거는 전쟁을 선포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미국 우선주의요? 그건 선동입니다. 실체는 프롬펠 자신과 자산가들의 이익 우선주의였죠.”
“그가 장악한 미국은 이미 화학 반응처럼 서로를 증오하는 분단국가가 되었습니다. 그는 세계마저 ‘미국 대 반(反) 미국’으로 갈라놓았죠. 결국 미국은 내부적으로는 분열된 국가, 외부적으로는 고립된 문명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이제 그에겐 위선이나 가식조차 없습니다. 오직 원초적 야만, 거친 탐욕만 뿜어져 나오죠.”
“그는 전쟁을 마치 취미처럼 즐깁니다. 이건 인류 문명 전체의 위기입니다.”
동혁은 조용히 화면을 바라보았다.
그들의 비판은 날카로웠지만, 충분하지 않았다.
그의 눈동자에 화면의 불빛이 번졌다.
‘정의가 사라진 세상에서는 흰색조차 검게 보인다. 진실마저 그저 선택지가 될 뿐이야.’
그의 시선은 곧 프롬펠의 영상으로 향했다.
미국 대통령의 말 한마디는 더 이상 단순한 실언이 아니었다. 그의 오만과 독선은 이미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연단에 오를 때마다 쏟아낸 막말과 조롱은 예리한 칼날이 되어 약소국 국민과 외교관들의 가슴을 후벼 팠다.
그의 언행이 이어질 때마다 회견장의 공기는 얼어붙었다. 굴욕을 삼킨 이들의 눈빛 속에는 분노와 절망이 교차했다.
그때마다 누군가는 정의를 외쳤고, 또 누군가는 그 정의를 이용했다.
프롬펠이 있는 미국은 이미 미국이 아니었다.
그는 정의와 불의, 법과 윤리, 친구와 적을 구분하지 않았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오직 하나였다.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되겠다는 자신의 셈법.
그는 아무 데나 미국의 이익을 들먹이며 자신의 탐욕을 들이댔다.
그리고 조롱 섞인 막말로 국민을 선동했다. 그의 조롱이 울려 퍼질 때마다, 동맹국의 국민들은 굴욕을 삼키며 분노했다.
동혁은 그 말을 곱씹었다.
‘이 사람은 가학적 본능을 가진 사이코패스인가. 아니면 히틀러의 환생인가.’
프롬펠의 언행에는 양심도, 염치도, 인정도 없었다. 반미국적이라는 말조차 부족했다. 그는 미국을 위한다고 말했지만, 실제로는 미국마저 자신의 욕망을 위한 도구로 삼고 있었다. 탐욕을 채우기 위해 언제나 교묘하게 접근했다.
그는 데이터를 직감으로 읽어 냈고, 알고리즘보다 더 빠르게 대중의 감정을 조작했다. SNS와 인공지능 네트워크를 이용해 사람들의 의식을 자동으로 설계하듯 흔들었다. 그렇게 사람들을 선동했고, 환호하는 군중은 그의 말을 신앙처럼 받아들였다.
그 장면을 보며 동혁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들은 진실을 원하지 않는다. 그저 자신이 믿고 싶은 말을 원할 뿐이다.’
그의 눈빛이 깊어졌다.
‘진실은 여전히 불완전했고, 거짓은 여전히 이용당했다.’
그 사이 약소국의 경제는 서서히 붕괴하고 있었다.
어느 나라의 화폐는 종잇조각으로 변해 갔고, 어느 나라의 아이들은 하루아침에 가난을 상속받았다.
지구촌의 숨결은 메말라 갔다.
동혁의 눈에는 그들의 절규가 그대로 새겨졌다.
정의가 사라진 세상에는 질서마저 사라졌다. 그 틈을 파고든 프롬펠은 거대 자본과 손을 잡고 더 큰 혼돈을 조장했다.
진실은 끝없이 침묵했고, 거짓은 날마다 소리쳤다.
동혁은 조용히 턱을 괴고 생각에 잠겼다.
‘공포는 그의 상품이고, 혼란은 그의 시장인가?’
그때였다.
“글로벌 증시 폭등!”
CNBC의 속보 자막이 번쩍이며 터져 나왔다. 세계 시장은 광기에 휩싸였다. 모니터마다 붉고 푸른 그래프의 불빛이 타올랐다.
치솟는 그래프보다 인간의 탐욕은 더 가팔랐다.
인간은 신을 믿는다고 말했지만, 지금 그들의 신은 모니터 속 차트와 숫자였다.
하늘의 신은 구원을 약속했지만, 모니터의 신은 현실을 구원하는 듯 보였다.
그러나 아무리 돈이 금고를 뛰쳐나와 흘러넘쳐도, 주식과 금값이 불타오르듯 솟구쳐도, 그것은 그들만의 잔치였다. 부자는 더 부유해졌고, 가난한 자는 더 깊은 시름 속으로 밀려났다.
서민들을 찾아온 것은 오직 치솟는 물가였다.
마트 계산대 앞에서 얄팍한 지갑을 움켜쥔 손들이 바들바들 떨렸다.
가격표 앞에서 잠시 멈춘 눈빛은, 결국 고개를 돌리고 돌아서야 했다. 끝내 그들의 장바구니에는 물건보다 한숨이 더 많이 담겼다.
그러나 진실은 언제나 숫자와 차트의 미소 뒤에 숨어 있었다.
시장은 환호하다가도, 공포지수가 발작하는 순간 순식간에 비명으로 돌변했다.
“글로벌 증시 폭락!”
또 다른 속보가 터졌다.
오늘도 세계 금융 시장은 탐욕과 공포 사이에서 가쁜 숨을 헐떡이며 하루를 버티고 있었다.
프롬펠이 상방 포지션을 취할 때면 세상은 호재로 들떴고, 하방 포지션으로 돌아설 때면 악재가 폭풍처럼 쏟아졌다. 그의 입에서 터져 나온 혼돈과 공포는 개미들의 지갑을 번개처럼 빠르게 털어 갔다.
정의가 실종된 세계. 그 속에서 프롬펠의 욕망은 여전히 신의 자리를 탐하고 있었다.
그러나 하늘은 스스로 신이 되려 한 자들을 한 번도 용서한 적이 없었다.
동혁은 눈을 감고 생각을 정리했다.
‘그는 때로는 재앙을 팔고, 때로는 평화를 팔았다.’
그가 숨을 들이키자 한숨이 흘러나왔다.
‘개미들은 시장이 오르든 내리든 손실을 본다. 그가 얻은 건 이익이었고, 잃은 건 한 세대의 희망이었다.’
잠시 후, 앵커의 목소리가 다시 스튜디오를 울렸다.
“오늘 월가에서는 또다시 급등락이 이어졌습니다.”
금융 시장, 그곳은 이미 침묵 속에서 벌어지는 총성 없는 살육의 전쟁터였다.
프롬펠이 금융, 정치, 외교를 한 손에 거머쥐고 벌이는 거대한 욕망의 전쟁이었다.
그 파괴력은 총탄보다 잔혹했다. 총알은 몸을 뚫지만, 금융 전쟁은 세대를 꿰뚫는다. 빚과 파산은 자식에게까지 대물림되었다. 말라붙은 개미들의 계좌는 더 이상 잔고가 아니었다. 한 가족의 밥상이었고, 한 아이의 학비였으며, 누군가의 마지막 희망이었다.
그 여파로 세상은 한층 더 얼어붙었다.
서로 다른 탐욕만이 뒤엉켜 아우성을 쳤다.
사진출처:픽사베이.com
동혁은 천천히 창밖을 바라보았다.
도시는 여전히 반짝이고 있었다. 그러나 그 불빛은 더 이상 축복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에게는 마치 불타는 도시의 환영처럼 느껴졌다.
‘총성은 사라졌으나, 침묵 속의 살육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그는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
‘과연 그의 미친 무한 욕망도 마침내 실현될 것인가.’
그의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심장이 격하게 뛰었다.
‘그가 입을 열 때마다 탐욕의 바이러스가 세계를 감염시켰다. 끝내 그 바이러스는 분노와 증오의 바이러스로 전이되어, 다시 인류를 덮쳤다.’
동혁은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분노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활화산이야.’
그는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사람은 영혼이 부서지고 조각나는 분노 속에서도, 눈에서 불꽃이 튀고 피가 거꾸로 솟아올라도, 이를 악물고 버틸 수는 있어.’
한숨을 내쉬는 그의 입술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하지만 그 분노가 증오와 저주로 변하는 순간, 세상은 결국 큰 전쟁으로 불타오르게 되는 거지.”
약육강식. 승자독식.
이 정글의 법칙은 이제 인류 문명에 완벽히 복제되어 있었다.
역사의 기록을 아무리 뒤져도 그 잔혹한 장면은 늘 같았다. 그리고 결론은 언제나 하나였다.
패자에게는 단 한 치의 자비도 없다는 것.
법은 언제나 강자를 보호했고, 벌은 늘 약자를 향했다.
동혁의 손바닥에는 차가운 땀이 배어 있었다.
‘돈이 신이 된 시대. 그러나 그 신은 언제나 제물을 요구했어.’
화면 속에서는 또 다른 전문가가 떠들고 있었다.
시장의 안정성, 유동성, 정책 기대감, 투자 심리. 그럴듯한 단어들이 줄줄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동혁에게는 모두 다른 말로 들렸다.
덫, 올가미, 공포, 약탈. 침묵. 희생. 절망…
그의 입술이 움직였다.
“그래, 욕망과 행복은 끝내 만날 수 없는 평행선이야. 욕망을 좇는 자, 결코 행복할 수 없어.”
그의 목소리는 조용했지만 단단했다.
그는 리모컨을 들어 TV를 껐다.
화면은 꺼졌다. 그러나 아직 세상은 꺼지지 않았다.
검은 화면 위로 그의 얼굴이 비쳤다. 어둠 속의 그는 오래도록 움직이지 않았다.
그때, 책상 위에 놓인 휴대전화가 짧게 진동했다.
그의 시선이 그쪽으로 움직였다.
화면에 짧은 메시지 하나가 떠올라 있었다.
‘한국 시장, 장 마감 직전 정체불명의 대량 매수세 유입.’
그의 눈빛이 굳어졌다. 이번에는 단순한 폭등이 아니었다.
누군가, 아주 거대한 손이 한국을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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