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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마경훈목사의 설교 카페 원문보기 글쓴이: 마경훈목사
예수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 마태복음 16:13-19
(설교자: 마경훈 목사 비전교회)
어떤 탐험가가 아프리카 현지인과 함께 정글을 탐험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정글은 얼마나 숲으로 우거졌는지 정글 속으로 들어가자마자 길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탐험가의 마음이 불안해졌습니다. 정글 속에서 길을 찾지 못하면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음이 답답하고 등에는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함께 온 현지인은 전혀 불안한 기색이 없었습니다. 탐험가가 현지인에게 “우리가 가야 할 길을 압니까?”라고 물었습니다. 현지인이 대답했습니다. “내가 길이예요” 현지인은 큰 칼로 길을 만들며,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그리고 몇 시간 지나서 그들은 정글을 나와 목적하는 곳에 도착하였습니다.
우리는 인생의 정글을 통과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길을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습니다. 우리가 그분을 바라보고 그분을 따라가면 그분은 우리를 가장 합당한 길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길이시기 때문입니다.
본문은 예수님께서 빌립보 가이사랴에서 제자들에게 질문을 하시므로 시작 됩니다.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제자 중에 한 사람이 대답했습니다.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예수님께서 다시 질문하셨습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이때 시몬 베드로가 위대한 고백을 했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이 고백을 들으신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네가 복이 있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교회에 관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오늘 설교는 이 내용을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와 관련된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1. 예수님은 그리스도입니다(16절).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주님은 이 고백을 칭찬하셨습니다. 그리스도는 히브리어 메시야입니다. 뜻은 ‘기름부음 받은 자’입니다.
예수님이 기름부음을 받은 분이라는 고백은 다음과 같은 의미가 있습니다.
1) 예수님은 나의 왕이십니다.
구약 시대에 보면 하나님께서 몇 가지 직분자들을 세우실 때 기름을 부었습니다. 그 중에 한 직분이 왕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베드로가 고백한 그리스도라는 고백은 “주님, 당신은 나의 왕이십니다”라는 고백입니다.
신앙생활은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는 생활입니다. 신하는 왕의 명령에 살고 왕의 명령에 죽습니다. 예수님이 나의 왕이라는 고백은 ‘나는 예수님의 명령에 살고 예수님의 명령에 죽습니다.’라는 고백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왕이신 예수님의 뜻을 살펴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합니다. 그렇게 사는 것이 진짜 신앙생활입니다.
우리는 왕 되신 그분이 영광을 받으시는 것으로 만족하며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내가 드러나고 내가 높아지는 것이 아니라 모든 영광은 왕 되신 그분이 받으셔야 합니다.
성탄절을 맞아 어느 교회 주일학교에서 연극을 하기로 했습니다. 어떤 아이는 예수님, 어떤 아이는 요셉, 어떤 아이는 천사, 마리아 등의 역할을 맡게 되었습니다. 그중에 한 학생은 별 역할을 맡았습니다. 그 학생은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다른 친구들은 다 좋은 배역을 맡은 것 같은데 자기만 말도 한마디 없는 별의 역할을 맡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학생은 연습할 때도 기운이 없었지만 정작 발표회하는 날에는 교회에도 가지 않았고 연극은 엉망이 되었습니다.
그 연극을 지도했던 선생님이 그 학생을 불러 말했습니다. “예수님께서 태어나시던 날, 별 하나가 동방박사 세 사람을 예수님께로 안내했었지. 만일 그 별이 없었다면 동방박사들은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을거야. 하지만 그 별은 자신의 이름 하나 남기지 않고 사라져 버렸지.” 고개를 푹 숙인 그 학생에게 선생님은 한마디를 덧 붙였습니다. “하지만 그 별의 이야기는 성경 속에서 영원히 살아 있단다.” 신앙생활은 내가 영광을 취하는 것이 아닙니다. 왕 되신 주님이 높임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왕이십니다.
2) 예수님은 나의 제사장이십니다.
구약 시대에는 제사장을 세울 때 기름을 부어서 거룩하게 구별해서 제사장의 직분을 감당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기름 부음을 받은 그리스도라는 고백은 “주님, 당신은 나의 제사장이십니다”라는 고백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중간에 중재자가 있었습니다. 제자사장입니다. 제사장은 백성을 대표해서 하나님 앞에 나아갔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하나님 앞에 서게 하시는 유일한 제사장이요 중보자이십니다. 우리를 하나님 앞에 나아가게 만드는 중보자는 예수 그리스도 한 분 밖에 없습니다.
딤전 2:5입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중보자가 몇 분입니까? 한 분입니다. 중보자가 누구이십니까? 하나님이시지만 성육신 하셔서 사람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원을 얻습니다. 예수님은 나의 제사장이십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하나님이 보내신 중보자이십니다. 우리의 유일한 구원자이십니다.
3) 예수님은 나의 선지자이십니다.
구약 시대에는 선지자를 세울 때 기름을 부어서 거룩하게 구별해서 선지자의 직분을 감당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기름 부음을 받은 그리스도라는 고백은 “주님, 당신은 나의 선지자이십니다”라는 고백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하실 때 선지자를 통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말씀을 듣고 살았습니다. 우리도 우리의 선지자이신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삽니다. 요 5:25입니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신앙생활은 내 생각을 내려놓고 주의 음성을 듣는 생활입니다. 그렇게 사는 것이 영적인 생활입니다. 왜 그럴까요? 예수님이 우리의 선지자이시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은 내 생각을 내려놓고 주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이지만 실제로 한국교회는 인간적인 생각을 앞세울 때가 많습니다.
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고신일 목사님께서 위험지역 선교에 대해서 2007년 분당 샘물교회에서 아프가니스탄에 단기선교팀을 파송했다가 피랍되었던 사건을 가지고 말씀하셨는데 저는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언론에서 ‘안전을 생각하지 않은 무모한 선교’라며 비난의 기사를 쏟아냈습니다. 이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교회의 해외 선교를 비난했습니다. 그 분위기에 휩쓸려 당시 교회의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언론에 이름과 얼굴이 자주 등장하는 교회지도자들까지 세상 사람들의 비난에 동조하며 ‘무모한 선교를 자제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선교는 세상 사람들의 기준으로 보기에는 무모한 것입니다. 한국에 선교사들이 처음 들어와서 우리나라에 말씀을 전하고 교회를 세우고 병원을 세우고 대학을 세웠는데 그 때 한국이 안전해서 선교사들이 들어왔습니까? 수많은 선교사들이 한국에 와서 죽었습니다.
한국교회가 아프리카에 교회를 세우고 선교사를 보냈습니다. 거기가 안전해서 보냈습니까? 그곳이 안전해서 가는 줄 아십니까? 해외여행을 즐기려한다면 좋은 관광지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데 지금도 도둑질 하다 현장에서 붙들리면 몽둥이로 때려죽이고 타이어를 목에 씌워서 불태워 죽이는 그런 나라에 안전해서 가는 줄 아십니까?
기독교 지도자들이 ‘무모한 선교는 자제해야 한다’고 세상 사람들의 말에 동조하여 똑같은 말을 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교회들이 단기선교를 보내지 않았고 보내려는 계획을 취소했습니다.
신앙생활은 사람의 생각이 앞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선지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음성이 앞서야 하는 것입니다. 그분이 하라고 하시면 하는 것입니다. 그분이 멈추라고 하시면 멈추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신앙생활은 예수님을 기름부음 받은 그리스도로 믿는 생활입니다. 예수님은 기름부음을 받은 분으로 우리의 왕이요 우리의 제사장이요 우리의 선지자이십니다.
2.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17절).
예수님은 베드로의 고백을 들으시고 말씀하셨습니다.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신앙고백을 하는 사람이 복이 많습니다. 무슨 복이 있을까요? 헤아릴 수 없는 복이 있지만 하나로 정리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복입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으면 그는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이것이 믿는 사람들의 힘입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사람이 받는 복을 몇 가지로 펼쳐서 말씀드리면 다음과 같은 복입니다.
1) 죄사함의 복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분의 피로 죄사함을 받았습니다. 엡 1:7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은혜입니다. 죄사함을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과 교제가 가능한 것입니다. 죄사함을 받았기 때문에 기도 응답이 가능한 것입니다. 죄사함을 받았기 때문에 성령의 전이 되는 것입니다. 죄사함을 받았기 때문에 천국에 가는 것입니다. 죄사함의 복은 너무나 귀한 복입니다.
2) 이 땅에서 하나님의 도움을 받는 복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목자이십니다. 목자이신 하나님의 도움을 받으며 살면 부족함이 없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시 23:1에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양이 목자의 도움을 받아서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로 가는 것처럼 우리는 우리의 아버지이시며 우리의 목자이신 하나님의 도움 받으며 사는 것입니다.
제가 존경하는 최낙중 목사의 간증 하나 드리겠습니다. 목사님은 1975년 9월을 잊을 수 없답니다. 우울증이 있는 성도와 금식기도원에 다녀오는 버스 안에서 오스트리아 빈에서 휴가차 귀국한 간호사를 만났습니다. 그분은 1주일간의 금식을 마치고 대방동에서 양장점을 운영하는 사촌언니를 전도하러 가는 길이었습니다. 그녀는 목사님에게 길 안내를 부탁했습니다. 그때 목사님은 성경에 5리를 가자하면 10리를 동행하라는 성경말씀이 생각나서 대방동까지 안내해주었습니다. 그러나 가게는 이사한 지 오래여서 간호사는 사촌 언니를 만날 수 없었습니다. 그녀는 미안해하며 목사님의 목회현장을 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당시 최목사님이 섬기던 교회는 봉천동 무허가 판자촌의 10평 남짓한 술집 사이에 있었습니다. 성도 7명은 밤마다 모여 예배처소를 위해 기도 중이었습니다.
이런 기도가 우리에게도 필요합니다. 지금 교회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모릅니다. 교회를 사랑한다면 아침 저녁으로 교회에 오셔서 기도해주셔야 합니다. 어린이들도, 학생들도, 청년들도, 젊은 집사님들도, 나이든 분들도 교회로 와서 기도해야 합니다.
그 간호사는 그날 기도회에 참석했다가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결혼 비용으로 저축한 돈 150만원을 선뜻 내놓았습니다. 그 당시 집 한 채 값이었습니다. 기도하던 교회가 우연히 만난 자매의 도움으로 멋진 예배당을 마련했습니다. 하나님의 응답입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입니다. 그는 주님이 보낸 천사였습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은 돕는 천사를 보내주십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에서 우리를 도우시는 분입니다.
3)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는 복입니다.
천국은 뒤에서 다루겠습니다.
3.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사람들의 모임이 교회입니다(18절).
건물에 00교회라는 간판을 걸면 교회입니까? 아닙니다. 거기에 모인 사람들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고 고백해야 교회입니다.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구약 성경에서 약속하신 그리스도로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왕이시고 제사장이시고 선지자라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의 모임이 교회입니다.
우리는 교회 생활을 하면서 항상 명심해야 할 것이 이것입니다. 교회는 믿음의 공동체입니다. 믿음을 잃어버리면 교회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믿음으로 모여야 합니다. 믿음으로 교제해야 합니다. 믿음으로 사역해야 합니다. 교회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공동체입니다.
교회는 주님의 몸입니다. 성도들은 몸 된 교회의 지체입니다. 지체는 몸에 붙어 있어야 하는 것처럼 성도는 교회에 소속 되어야 합니다. 몸의 모든 지체에게는 자기의 자리가 있는 것처럼 성도도 자기의 자리가 있습니다.
세상에 많은 교회가 있지만 내 교회가 있는 것입니다. 요즘 예수님을 믿지만 내 교회가 없이 떠도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런 신자를 가나안 신자라고 합니다. 가나안을 거꾸로 하면 안나가입니다. 예수님을 믿지만 교회는 안 나가는 신자들이 어느 통계에 보니 100만이나 된다고 하고 어느 통계에는 200만이라고 합니다. 정상적이지 못합니다. 내 교회가 있어야 합니다.
눈이 오늘은 이마에 붙었다가 다음 주에는 뒷통수에 붙었다가 그 다음 주에는 등에 붙는다면 되겠습니까? 자기의 자리가 있는 것입니다. 거길 벗어나면 문제입니다.
세상에 비슷한 집이 많지만 내 집이 있는 것입니다. 비슷하다고 남의 집에 들어가서 자면 되겠습니까?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에 교회가 많습니다. 한국에만도 5만개가 넘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내 교회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심어놓으신 교회에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심어놓으신 교회에서 예배하고, 거기서 교제하고, 거기서 사역해야 합니다. 그래야 건강한 신앙생활이 가능합니다.
4.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사람에게 천국 열쇠를 주셨습니다(19절).
주님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한 베드로에게 천국 열쇠를 주셨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면 천국 열쇠를 받는 것입니다.
천국 열쇠를 받았다는 말은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1) 예수님을 믿음으로 고백하는 사람은 천국에 들어갑니다.
열쇠를 주는 것은 그 곳에 들어가라고 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사람에게 천국 열쇠를 주시는 것은 천국에 들어갈 자격을 주시는 것입니다.
천국은 두 종류가 있습니다.
➀현세천국입니다.
이 세상에서 누리는 천국입니다. 성령님께 통제를 받는 사람은 현세천국을 누리게 됩니다. 현세 천국은 장소적인 개념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면 내면에 천국이 생기는 것입니다. 눅 17:21입니다.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우리 안에 있습니다. 내면에 있습니다. 현세천국입니다.
➁내세천국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받는 진짜 좋은 복은 이 세상에서 축복 받는 것이 아닙니다. 죽어서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진짜 좋은 복입니다.
예수님은 천국에서 우리가 거할 거처를 예비하고 계십니다. 슬픔도 눈물도 아픔도 없는 곳이 천국입니다. 기쁨과 행복, 감사와 찬양이 넘치는 곳이 천국입니다. 우리의 소망은 예수님입니다. 우리의 소망은 천국입니다.
내세천국은 하나님의 통치가 있는 곳이면서 동시에 장소적인 개념이 있습니다. 얼마 전에 어느 목사님이 질문을 하셨습니다. 천국이 장소적인 개념이 있느냐라는 질문이었습니다. 당연히 있지요. 계 21:1-2입니다.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2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새 하늘과 새 땅이 있습니다. 하늘로부터 새 예루살렘이 하늘에서 내려옵니다. 장소적입니다. 공간적입니다. 천국은 장소적으로 존재합니다.
우리의 소망은 천국입니다. 이번에 일본에 가면서 배를 탔습니다. 파도가 심해서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제가 보니까 배에 타고 있던 사람들 중에 절반 정도는 토한 것 같습니다. 우리는 그럴 때 자기 신앙을 점검해보는 것 같습니다. 우리의 소망은 천국입니다. 저는 풍랑이는 배 속에서도 평안했습니다. 두려움이 없었습니다.
어느 가정의 시어머니께서 100세 가까이 아주 장수하셨습니다. 그런데 자녀들이 시어머니가 너무 오래 사신다고 생각을 했고 어머니는 눈치 채셨습니다. 그 시어머니가 마지막 임종을 기다리는데 정신은 아직도 말짱하셨습니다. 며느리가 옆에서 시어머니에게 몇 마디 했습니다. “어머니! 천국 가시면 아버님도 거기 계시고 친구 분들도 거기 계시고 거기는 눈물도 고통도 아픔도 없는 언제나 좋은 시간만 보낼 수 있으시니까 어머니, 얼마나 좋으세요?” 이렇게 성경에 있는 대로 설교를 했는데 시어머니는 그 말이 좋게 안 들리고 ‘빨리 죽어라’는 말로 들렸습니다. 빈정 상한 시어머니가 눈을 감고 나직한 목소리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게 좋은 데를 나 혼자 가니 미안하다. 같이 가자.” 그러니 며느리가 당황스러워서 말했습니다. “어머니, 저는 어머니 손자들 돌봐야 되잖아요? 그 아이들은 제가 없으면 큰일 나잖아요?” 그랬더니 “그 놈들도 다 데리고 가자.” 그래서 마지막 임종이 썰렁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의 소망은 천국입니다. 우리는 천국 갈 날을 기다려야 합니다. 믿는 우리는 천국 열쇠를 가지고 있습니다.
2) 예수님을 믿음으로 고백하는 사람은 기도 응답을 받습니다.
천국 열쇠를 받은 사람이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는 것입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하면 기도 응답의 특권을 가지고 있다는 말입니다.
19절과 동일한 말씀이 마 18:18에 나옵니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마 16:19과 같은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이 말씀을 하신 후에 마 18:19에서 천국 열쇠를 사용하는 방법이 기도라는 것을 가르쳐주셨습니다.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합심기도의 능력이 어떤 것인지 가르쳐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합심해서 기도하면 천국 열쇠를 사용하는 것입니다. 무엇이든지 합심해서 구하면 하나님께서 응답해주십니다.
제가 교회를 개척하고 아내가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두었습니다. 주의 일에만 전념하려고 직장을 그만두었지만 막상 직장을 그만두고 나니 경제적인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교인들은 조금 있었지만 교회에서 제 생활비를 줄 형편은 아니었습니다. 제가 교회를 개척 한 후 3-4년 동안 교회에서 받은 돈이 5만원 이었습니다. 제가 40일 금식하고 난 후에 보호식을 하기 위해서 받은 돈이었습니다. 제 아내가 직장생활하면서 그동안 저축하거나 적금을 들었던 돈은 다 찾아서 교회로 들어갔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까마귀들이 도와주었지만 그래도 참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겨울에 구두 밑창 뚫어진 것을 한 달을 신고 다닌 적도 있었습니다. 하루는 제 아내가 지나가는 말로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회사에 다시 복직했으면 좋겠어요” 하나님은 우리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는 분입니다. 그 날 바로 회사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다시 회사로 돌아와서 일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회사가 외국계 대기업이었는데 그 회사 역사상 처음으로 퇴사자에게 복직 요청을 한 것입니다. 아내는 속으로는 회사의 복직 요청이 기쁘면서도 자존심 때문에 “교회를 개척해서 바빠서 갈 수가 없어요”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회사 윗사람들이 계속 돌아가면서 전화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아내는 회사에 복직이 되었습니다. 회사에서는 아내의 형편을 고려해서 하루에 몇 시간 파트타임으로 일하게 해주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20년 전입니다. 회사에서는 파격적인 대우해주었습니다. 급료도 시간당 5,200원으로 그 당시에는 엄청난 액수였습니다. 다른 사람들 보너스와 퇴직금을 합한 것 보다 더 많이 준 것입니다. 하나님은 제 아내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셨습니다. 그 하나님은 여러분의 아버지이십니다. 여러분이 기도하면 하나님은 여러분의 기도에도 풍성하게 응답해 주시는 분입니다.
우리는 기도의 능력을 믿읍시다. 특히 합심기도의 능력을 믿읍시다. 두 사람이 합심해서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나님께서 응답해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여야 합니다. 그리고 같은 마음, 같은 믿음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오늘은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통해서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살펴봤습니다.
1. 예수님은 그리스도입니다.
2.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3.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사람들의 모임이 교회입니다.
4.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사람에게 천국 열쇠를 주셨습니다.
첫댓글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