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징용 문제 등을 둘러싸고 불거진 한. 일간의 불화를 풀기 위한 그 해법 찾기가 쉽지 않다. 실타래처럼 얽힌 사안 자체도 그렇지만, 여기에 민족적인 감정까지 보태진 아주 어려운 난제이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이런 저런 견해들이 어지럽게 난무하고 있으나 다들 제각각이다. 사태의 본질에 접근하는 방식이 일견 주관적이고 다소 감정적이기 때문이다. 이럴 때 일수록 사안의 본질을 정확히 파악해 대책과 해법을 제시하는 혜안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이런 점에서 주일본대사와 외무장관을 역임한 원로 외교관 출신의 공로명(87) 선생이 던지는 견해는 지금껏 나온, 일본 측으로 책임을 전가하는 듯한 여러 의견들과는 사뭇 다르다는 점에서 관심을 끈다. 공 선생은 이번 한. 일사태와 관련해 우리 정부 측의 태도를 나무라고 있는 것이다.
공 전 장관이 중앙일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던진 화두는 '자업자득'이다. 말하자면 한국 정부 스스로 이번 사태를 이 지경까지 이르게 했다는 것이다. 1965년 한. 일청구권협정도 그렇지만, 지난 해 강제징용 문제와 관련한 우리 대법원 판결이 불씨의 도화선을 당긴 것이라면 지금까지 오는 과정에서 사태를 미연에 충분히 방지할 수 있었는데도 이를 우리 정부가 방치한 게 오늘의 결과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공 전 장관은 한. 일 양국의 인적 역량이 총동원되다시피 해 아베 총리와 박근혜 대통령을 설득, 2015년 12월 이뤄낸 위안부 합의조차를 문재인 정부에서 "하루아침에 뭉개버린 것"고 요인의 하나로 지적하고 있다.
공 전 장관의 인터뷰에서 눈에 띄는 대목은 지난 해 대법원 판결 이후 지금의 이런 상황을 예견하고 이낙연 총리가 공 전 장관을 포함해 20-30 명의 원로전문가들의 의견을 취합해 청와대에 건의했는데, 이게 거부됐다는 것이다. 이낙연 총리가 청와대에 건의한 안에는 우리 정부가 강제징용에 대한 금전적인 보상을 해줘야 한다는 것과, 한국 정부와 한. 일국교 정상화로 혜택을 본 한국기업, 그리고 일본기업도 권유해 3자가 보상해주도록 하자는 견해가 포함되어 있었다고 하는데, 이 안을 청와대에서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공 전 장관은 이 대목에서 "우리 헌법에서 외국과의 관계는 대통령에게 권한이 있는 것 아닙니까. 외교권을 활용해 충돌을 막지 못하고 지금 상황에 온 건 자업자득이라고 봐요"라고 말했다.
공 전 장관은 우리 정부가 한. 일청구권 협정에 적시되고 있는 중재안을 활용 못한 것을 특히 안타깝게 여겼다. "중재를 왜 못 해요? 타협할 수 있는 것이 중재위원회예요. 무엇이 무서워서 못 하는지 모르겠어요... 중재를 받고, 중재하는 동안 제재도 동결하는 상황을 만들어야 해요. 그동안 누가 일본에 가서 이면 공작을 했습니까?"
우리 정부 측의 이런 태도에 대한 공 선생의 비난은 신랄하다. 이런 말까지 했다.
"결과가 명확관화한데 아무런 조치도 없이 이런 사태를 만드느냐 말입니다. 어떻게 보면 의도된 것 아니냐 하는 생각마저 하게 돼요. 어떤 사람은 내년 선거를 위해 그랬다는 얘기도 하는데, 난 그렇게까지 비틀어진 시각으로 보기 싫지만, 너무나 이해하기 어려운 자해행위이고 자작극 같은 느낌이 있습니다."
공 선생의 우리 정부에 대한 나무람은 문재인 대통령을 에둘러서 비판하고있는 듯이 들린다. 그러나 한 대목에서는 문 대통령을 바로 지목하고 있다. "그동안에 여러가지 안이 올라갔는데도 통하지 않은 것은 대통령께서 생각이 다른 데 있으신 거라는 얘기가 있습니다. 이 사건(강제징용)이 소송의 출발이 부산에서부터 있었고, 그때 담당 변호사가 문 대통령이었는데, (하지만) 지금은 대통령입니다. 변호사 입장하고 다르잖아요..."
이렇듯 공 선생은 현재 한. 일간의 극에 이른 불화의 단초를 인터뷰 여기저기서 문 대통령의 책임임을 은연 중에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이 기사에서 느껴지는 것은, 인터뷰를 진행한 중앙일보 기자는 그걸 문맥 속에서 톤 다운하느라 애쓰는 모습이랄까, 그게 글 곳곳에서 묻어나고 있는 것이다. 공 선생은 한. 일사태의 본질과 문제를 비교적 간결하게 잘 지적해주고 있다는 느낌인데, 이게 국민독자들에게 올바르게 전달하는 건 언론의 영역이라는 점에서 그게 참 답답했다. 이런 점에서도 그렇다. 우리나라 언론, 정말 참 문제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