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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말씀은 청주 상당교회 담임 목사로 섬기고 계시는 안광복 목사님께서 들려주시겠습니다.
귀한 말씀 전해주러 나오실 때 우리 큰 박수로 목사님 모시겠습니다.
할렐루야 할렐루야 우리 하나님께 다시 한 번 감사와 영광의 박수 올려드리겠습니다.
귀한 예배의 자리에 오신 여러분 한 분 한 분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우리 옆에 계신 분들에게 한번 인사했으면 좋겠습니다.
당신 때문에 행복합니다.
별로 마음에 안 드시는 것 같은데 다시 한 번 인사하겠습니다. 당신 때문에 힘이 납니다. 발음을 잘하십시오. 힘이 듭니다 하면 아주 서로 곤란해집니다.
네 저는 청주 상당교회를 섬기는 안광복 목사입니다. 상당 교회는 상당히 좋은 교회입니다. 청주 지역에서 대표적인 우리 통합 체육 교회이고요. 우리 성원용 목사님 사역하시고 섬기시는 이 귀한 교회에 와서 말씀을 전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주신 것에 대해서 너무나도 기쁘게 생각을 합니다.
오늘 말씀을 전하기에 앞서서 성경 말씀을 한 구절 같이 좀 읽었으면 좋겠는데요. 시편 119편 165절입니다. 네 같이 한번 읽어볼까요? 시작.
주의 법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큰 평안이 있으니 그들에게 장애물이 없으리다.
아멘 시편 119편 165절입니다. 이 말씀을 잘 기억하셨으면 좋겠어요. 계속 한번 좀 띄워주시죠. 주의 법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큰 평안이 있대요. 큰 평안이란 가장 완전한 평안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삶 속에 다른 어떤 것보다도 중요한 것이 평안이죠. 평안이 없이 온갖 부귀 영화가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큰 평안, 가장 완전한 평안 누구에게요? 하나님의 법을 주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자들에게 그런 큰 평안을 약속하세요. 그리고 그들에게 장애물이 없을 것이다.
여러분 장애물이 사라지는 인생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내 인생 가운데 길이 자꾸만 막히거나 뭐가 문제가 자꾸만 생기면 얼마나 속이 상하고 짜증이 나겠어요. 근데 정말 가는 길이 시온의 대로처럼 활짝 활짝 열린다면 여러분 그것처럼 기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특별히 유학생으로 또 이민자로 생활하면서 한 치 앞을 알지 못하는 이 시대 속에서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우리 앞에 놓여져 있을지도 모르는 장애물을 거두어 주신다면 여러분 그것처럼 큰 은혜가 어디 있겠어요?
마음에 평안이 있는 사람은 정답을 아는 인생이에요. 여러분 크리스천이란 누구입니까? 답을 아는 사람입니다. 정답을 아는 인생이에요. 시험을 보러 갔는데 수험생이 문제를 보자마자 빙긋이 웃는다면 이유가 뭘까요?
답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답을 알면 마음의 평안이 임하고 기쁨이 임합니다. 좋은 삶의 열매들이 있겠죠 여러분들이 파리에서 생활을 하면서 삶 속에 여러 가지 근심, 걱정, 염려, 두려움들이 수시로 왔다 갔다 하면서 우리의 삶을 힘들게 할 수도 있지만 하나님께서 궁극의 평안, 가장 완전한 하늘의 평강으로 함께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이 말씀을 잘 기억하시면서 이곳에서 귀한 선교적인 삶을 또 하나님의 꿈들을 이루어 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 읽어주신 사도행전 1장 8절의 말씀에는요. 예수님의 꿈이 담겨져 있어요. 우리에게도 각자의 인생 가운데 꿈이 있고 소망이 있지 않습니까? 예수님에게도 마찬가지예요. 예수님의 꿈은 무엇이었을까요?
예수님의 꿈은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를 짊어지시는 것 두 번째는 교회를 이 땅 가운데 세우시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의 꿈들을 이루시기 위해서 주님께서는 공생의 사역을 다 마치셨고, 십자가 죽음 이후에 부활 승천을 하시죠. 그 꿈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는 말씀이 바로 이 사도행전 1장 8절의 말씀이에요.
여러분이 잘 아시는 것처럼 이것은 예수님이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남기셨던 말씀입니다. 마지막으로 남기셨던 말씀, 그 구절 가운데 가장 핵심적인 세 가지의 단어가 있어요.
성령과 권능과 증인입니다.
승천하실 때 예수님의 만약에 심장을 열어봤다면 이 세 가지 단어가 쓰여져 있지 않았을까 싶어요. 예수님께서 가장 소중하게 여기시는 말씀이에요. 저와 여러분 모두 하나님 사랑하고 주님 사랑하시는 줄 믿습니다.
그렇다면 주님께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그 비전, 주님께서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시는 그 단어에도 우리도 마찬가지로 관심을 갖고 열정을 기울여야겠죠. 여러분 이 1장 8절의 말씀은 제자들의 질문을 통해서 시작이 되죠. 제자들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부활 사건을 경험했던 사람들이에요. 이미 성숙해진 제자들이죠.
그런데 마지막 예수님과 작별을 앞둔 상황에서 결정적으로 한 가지 질문을 던질 수도 있겠다 싶은 그 순간에 던졌던 질문 예수님 이스라엘의 나라의 회복이 이때입니까?
그들의 질문은요. 어떻게 보면 가장 결정적으로 물어볼 수 있는 마지막 질문이지만 지극히 자기 민족적인 그런 관심에 불과했습니다.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이 언제입니까?
이때입니까?
정치적인 해방이 언제입니까?
이 땅의 확장은 이 땅에서의 자유의 삶은 도대체 언제입니까?
우리들은 언제나 돼야 잘 먹고 잘 살겠습니까?
예수님에게 3년간 훈련을 받고 십자가 사건을 경험을 했을지라도 그들의 관심은 굉장히 지엽적이었고요. 자기 민족 중심적이었어요. 거기에 반해서 주님의 대답은 유대인들만의 어떤 관심사가 아니라 이 땅에서 물리적인 아니면 군사적인 그런 노력이나 그런 능력을 가지고 확장될 수 있는 지역적인 개념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온전한 꿈을 이야기를 하시죠.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을 것인데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될 것이야.
그들의 질문과는 차원이 다른 보다 더 범우주적인 그리고 가장 궁극적인 대답을 말씀해 주셔요. 여기에 담겨져 있는 세 가지 단어를 중심으로 오늘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 번째는 성령의 사람이 되라는 거예요. 한번 따라 해볼까요?
성령의 사람이 되십시오.
여러분 예수님의 꿈 이 비전이 실천이 되기 위해서는 성령 하나님의 역사로부터 출발을 합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사도행전에서 교회 탄생의 시작점이 되는 말씀 교회 탄생의 주체가 되고 그 동력이 되시는 분이 바로 성령 하나님이시라는 거예요.
여러분 성령님이 임하시면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이 되더라고요. 성령님이 임하시면 하나님의 교회가 출발을 하더라고요. 여러분 우리 인생 가운데 성령님이 역사하시면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들이 나타나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교회의 출발점이에요. 교회란 무엇입니까?
여러분 너무나도 멋있는 공간에서 예배를 드리죠. 중간에 제가 잠깐 시간이 남아서 이쪽으로 쭉 걸어가다 보니까 큰 성당이 하나 나오더라고요.
무슨 성당이죠? 마들렌 성당 맞죠? 안 가보셨습니까?
거기 갔더니 파이프 오르간 연주를 하고 있었어요. 정말 넋을 잃고 한참 앉아서 그 소리를 그 웅장한 장엄한 소리를 봤습니다. 그리고 구글 제미나이 통해가지고 이 성당에 대한 여러 가지 좀 스토리들을 한번 찾아봤더니 쇼팽이 죽었을 때 거기에서 마지막 장례 미사를 드렸다고 그러고 아무튼 뭐 여러 가지 굉장한 스토리가 담겨져 있는 어마어마한 그런 규모의 그런 체플이었어요.
하지만 거기 관광객들만 왔다 갔다 하던 이제 그런 곳인데 여러분 이 땅의 수많은 성전 아름다운 그런 장소에 교회와 건물들이 있지만 그것이 교회의 본질이라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교회는 건물이 아닙니다. 교회는 어떤 조직이나 제도가 아니에요. 교회란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세주로 고백하는 사람들의 모임이 바로 교회더라라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교회의 주인은 하나님이시죠 교회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신적인 기관입니다. 절대로 사람의 계획이나 의도나 디자인에 의해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그래서 교회란 가장 중요한 건 성령 공동체여야 합니다. 교회의 주인이 성령 하나님이시죠 성령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공동체여야 되는 거예요.
그렇다면 그 성령님은 누구신가? 요한복음 14장 16절 말씀을 같이 한번 읽겠습니다. 시작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성령 하나님 성령님을 또 다른 보혜사 보혜사 지킬 보혜사. 은혜의 해의 스승 사자 지키고 보호해 주는 스승이다. niv 영어 성경에 카운셀러라고도 얘기하고요. 킹 제임스 버전에서는 컴포턴 위로자라고도 말합니다. 헬라어에서는 파라 클레토스 혹시 들어보셨을지 모르겠어요. 파라 클레토스 곁에서 도우시는 분이시다. 성령님은 우리 곁에서 우리를 도우시고 우리를 책임지시고 우리를 인도해 주시는 분이시다. 더 쉽게 말하면 성령님은 좋은 분이시라는 거예요.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도와주시는 그런 분 여러분 그렇다면 그 성령님은 어떤 일을 하실까요?
성령님이 하시는 수많은 일들이 있지만 가장 중요한 역할은 우리가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로 고백하는 순간 우리 안에 거하시고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거예요. 내가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라고 고백하고 있다면 이미 내 안에 성령님께서 내주하고 계시더라. 사도 바울의 고린도전서 12장 3절에 의하면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내가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라고 고백하고 있다면 이미 내 안에 성령님이 임하고 계시는 줄로 믿습니다.
내가 예수님을 나의 주님,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 나의 아빠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우연히 되는 일이 아니에요. 내가 의지적으로 노력한다고 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내 생각이나 내 감정에 의해서 되는 것이 아니에요. 내 안에 이미 성령님께서 임하셨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에요. 성령님은 그 외에도 수많은 역할들을 하시죠. 우리 곁에 계시면서 우리를 위로하세요. 우리를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세요.
여러분 유학 생활 그리고 이민 생활하면서 얼마나 중요하고 결정적인 선택과 그런 중요한 결정의 순간들이 많습니까?
그 순간에 피할 길들을 옳은 길들을 성령 하나님께서는 지혜를 주셔서 우리에게 인도해 주시죠. 결단력을 주시죠. 감당할 수 있는 힘과 능력도 허락해 주시는 거예요.
여러분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꿈, 성령, 하나님의 그 역사에 사로잡혀 살아가는 우리 모든 교우님들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우리의 만남도 주관하시고 우리의 시간도 주장하시고 우리 재정도 주장하시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 늘 사모하십시오. 주님 오늘 하루도 성령 충만하기를 원합니다.
주님 오늘 하루도 하루를 시작하면서 성령님과 동행하기를 원합니다.
그럴 때 여러분이 하시는 모든 일들, 여러분의 비즈니스와 모든 학업과 앞으로의 진로의 모든 여정, 이 교회 안에 여러분 가정 안에 성령 충만함의 역사가 임하실 수 있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두 번째는 권능의 사람입니다. 따라 해 보십시오. 권능의 사람이 되십시오. 오직 성령이 너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는다. 내가 성령 충만하면 권능이 임한다는 거예요. 권능은 헬라어로 디나미스죠 다이너마이트 같은 능력을 말합니다. 성령이 임하시며 이런 특별한 능력을 우리에게 주신다는 거예요. 특별한 능력이요.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복음서의 제자들과 사도행전에 있어서의 제자들 그 간극은 불과 얼마 되지 않습니다. 수개월밖에 되지 않아요. 그런데 성경의 내용을 가만히 보면 완전히 다른 사람 다른 인생이 되어버렸죠. 복음서에서의 제자들 예수님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서로 누가 크냐라고 자랑하고 시기 질투했던 그들 예수님 돌아가시는, 아니 십자가에 잡혀가시는, 붙잡혀 가시는 순간에도 모른다고 부인하고 저주하고 달아나고 무책임하게 그렇게 살아갔던 그 제자들 아닙니까?
그런데 사도행전에서의 제자들은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버렸어요. 사도행전 2장에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 성령 체험을 하고 나서 그들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너희들 술 취한 것 아니냐 그 말에 사도 베드로가 요엘서 2장 말씀을 인용하면서 너무나도 논리정연하게 설득력 있게 그들에게 말씀을 선포하죠. 그 결과 3천 명이 회심을 하게 됩니다. 붙잡혀 가도 굴하지 않습니다. 매를 맞아도 성령 충만합니다. 자신의 물건을 아까워하지 않고 서로 통용하면서 함께 아름다운 공동체를 이루어 갑니다. 사도행전에 있어서의 그 제자들의 모습은 너무나도 믿음직스러운 거예요.
아니 어떻게 그렇게 차이가 날 수가 있을까요?
바로 성령님의 역할 성령님의 역사입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그들이 정말 특별한 힘을 특별한 능력을 받고 특별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활동을 하더라고요. 아프리카 북서쪽의 모리타니아에는요. 세계에서 가장 긴 사막 기차가 있습니다. 사막 열차예요. 여러분 이 기차의 길이가 무려 3km에 육박을 합니다.
상상을 한번 해보십시오. 이 기차가 수백 칸에 화물칸을 갖고 사라 사막을 횡단을 하는 거예요. 수백 대의 화물칸에 무엇을 싣느냐? 내륙 지방의 철광석을 가득가득 싣고 대서양의 누아디브 항구까지 20시간에서 무려 24시간 동안 밤새워서 하루 종일 운반을 합니다.
여러분 이 철광석을 가득 실은 수백 칸의 화물칸의 이 무게는 과연 어느 정도나 될까요?
상상할 수 없는 그런 무게겠죠. 2.5kg에서 3kg에 육박하는 이 어마어마한 기차가 움직이는 거예요. 서 있었던 기차가 처음에 어떤 힘을 가지고 움직였을까요? 어떤 힘이 있었겠죠?
처음에 그 발동을 시켰던 그 에너지, 그 힘이라는 것은 실로 가공할 힘입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을 하세요.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될 것이다.
여러분 그들은요. 정말 무력한 자들입니다. 어떻게 보면 정말 지식이 없던 자들이에요. 그런 자들을 제자들을 땅 끝까지 보낼 수 있는 그 힘이 어디에서 나와요?
바로 성령의 힘이죠. 예루살렘 유대 그들에게는 굉장히 익숙했던 곳입니다. 잘 알고 있는 익숙한 그러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게으를 수도 있는 사마리아는 어떤 곳입니까?
불편한 장소예요. 가기 싫은 장소, 상종하기 싫어했던 사마리아 땅, 땅 끝은 어디예요?
생각하지도 못했던 미지의 세상입니다. 그런데요. 성령님께서 임하시니까 그들을 보내시는 거예요. 예루살렘, 유대, 사마리아 지역을 넘어서 땅 끝까지 나아가게 되더라고요. 여러분 이것이 성령님이 주시는 능력 우리가 성령 충만하면 우리가 생각하지도 못했던 이런 특별한 능력과 은혜를 공급받게 되더라. 이것이 교회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특별한 선물이고 우리 모든 성도들에게 기대하시는 하나님의 약속이더라는 거예요.
일찍이 마태복음 16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가이사라 빌립보 지방에 가신 이야기가 나와요. 그곳은 온갖 이방신들의 신전이 가득한 곳, 세상의 권세와 우상 숭배, 크 웅장한 모습이 가득했던 그런 장소입니다. 그 위용 앞에 움츠려들 수밖에 없는 그런 곳에서 주님께서 중요한 질문을 던지시죠.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16절 마태복음 16장 16절 말씀 같이 한번 읽습니다.시작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그리스도이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다.
아멘 이 고백 위에 주님은 당신의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선언을 하시죠. 18절 말씀도 같이 한번 읽습니다. 시작
또 내가 내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아멘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것이야. 카톨릭 교회는 이 반석을 베드로라는 특정한 인물로 해석을 하죠. 그러나 우리 개신교는 예수는 그리스도이시여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반석과 같은 이 믿음의 고백 위에 그 터전 위에 주님께서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약속을 하신 거예요.
여러분 이것이 교회의 가장 올바른 정체성입니다. 교회의 기초는 어떠한 건물도 아니에요. 어떤 프로그램도 아닙니다. 어떤 특정한 사람의 인기도 아닙니다. 바로 저와 여러분이 한 사람 한 사람이 고백하는 신앙 고백 위에 세워진 그 토대 위에 세워진 것이 바로 주님의 몸된 교회죠. 그 고백 위에 내 교회를 세우겠다. 마이 처치 내 교회를 세우겠다. 여러분 교회의 주인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인 줄로 믿습니다.
이 땅의 모든 교회의 주인은 바로 예수님이세요. 그 어떤 사람도 주인 행세를 하면 안 됩니다. 주인 의식을 가지고 봉사하고 섬기는 것은 가능하지만 내가 주인이 되어서는 안 되는 거죠. 제자들을 보십시오. 누가 크냐고 다투었어요. 단순한 서열 정리가 아닙니다. 이거는 그 마음 내면에 보상 심리가 담겨져 있어요. 아니 내가 청취를 바쳤는데 내가 배와 그물을 던졌고 부리고 헌신했는데 그래도 나한테 뭔가 따라오는 게 있겠지 여러분 우리들의 삶의 영역에서 이런 보상에 대한 기대감이 있어요. 내가 뭔가 나름대로 기대하는 게 있겠지 내가 나름대로 뭔가 보상이 있겠지 아닙니다.
여러분 결코 주인의 자리를 넘봐서는 안 되고요. 교회 주의는 철저하게 예수 그리스도여야만 해요. 주님께서 이렇게 계속해서 약속을 하시죠. 음보의 권세가 이기지 못할 것이다. 교회를 향한 가장 강력한 약속이에요. 음보의 권세란 죽음의 권세를 말합니다. 사탄의 세력을 말합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상의 모든 어두운 힘을 상징합니다.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한다. 두 가지로 해석이 가능해요. 사탄이 아무리 교회를 공격하려고 해도, 무너뜨리려고 해도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야. 소비적인 측면에서의 의미, 교회는 굳건한 요새와도 같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두 번째 이 권세의 원어적 의미에는 게이트 문이라는 단어가 담겨져 있어요. 음부의 권세 음부의 사탄이 지키는 그런 견고한 죽음과 어둠의 문이 있다는 거예요. 게이트가 있다는 거예요. 그것이 버티지를 못한다. 오히려 그 문을 교회가 공격하고 부수어버릴 수 있는 그런 힘을 주셨다는 거예요.
사탄의 어떠한 견고한 방어막도 결코 교회를 이길 수 없다. 마치 벙커버스터가 수십 미터 지하의 시설까지도 뚫고 들어가서 초토화시키듯이 사탄의 어떤 권세도 성령의 그 능력을 막아설 재간이 없다는 거예요.
교회는 단지 방어하는 존재가 아니라 어둠의 심장부를 깨고 들어가서 생명의 빛, 진리의 빛을 비추는 하나님의 강력한 군대인 줄로 믿습니다.
이미 사망 권세를 깨뜨리시고 부활하시고 승리하신 주님께서 저와 여러분의 하나님이시고 주인이신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바로 교회에 주시는 능력 오직 성령이 너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는다. 이게 바로 성령의 능력이에요.
여러분 우리 교회 안에 이런 능력이 있습니까? 여러분 가정 안에 여러분 인생 가운데 이런 성령의 능력이 있냐고요.
이 능력을 여러분 사모하십시오. 하나님 우리가 날마다 날마다 주와 동행하며 살아가되 능력 있는 자, 세상의 능력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에 사로잡혀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성령님을 더욱더 사모하며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파리 선한 장로교회를 통해 이 지역의 모든 어둠의 세력이 무력화되고 사탄의 모든 궤계가 파괴가 되며 하나님의 나라가 힘 있게 선포되는 역사가 있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마지막 세 번째는 복음의 증인 따라 해 보시죠. 복음의 증인이 되십시오. 성령의 사람, 권능의 사람 복음의 증인 사도행전의 제자들이 바로 그랬어요. 그들은 성령 충만했고요. 성령의 권능에 사로잡혔고요. 그리고 나서 한 일이 뭡니까?
복음의 증인이 되었죠. 오직 성령님의 뜻에 맞춰 살아갔습니다. 주님만을 드러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만을 드러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시간과 자신의 물질과 자신의 여가 활동과 많이 많이 좋은 곳에서 만나서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하지만 예수님에 대해서 이야기를 합니까? 하나님에 대해서 이야기를 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아요. 복음의 증인 되어 살아가는 것 여러분 철저하게 그 말씀대로 순종할 때 가능한 거예요. 이런 말씀의 사람은 곧 순종의 사람입니다. 성령의 사람은 곧 순종의 사람이에요. 가라고 하면 가고 멈추라고 할 때는 멈추는 거죠. 빌립 집사가 사마리아 지역에서 큰 부흥의 역사를 이룹니다.
스데반 집사가 순교를 당하죠. 8장 1절에 보면 핍박이 일어나서 여기저기로 흩어지죠. 빌립 집사가 사마리아 땅으로 갑니다. 생각하지도 못했던 어쩌면 가기 싫었던 그곳에 가서 그런데 말씀을 전하니까 그 말씀을 그들이 받아들이는 거예요. 그리고 귀신이 떠나가고 병든 자들이 치유되고 말씀이 선포될 때 그 성에 큰 기쁨이 임했더라는 거예요. 놀라운 부흥의 놀라운 역사들이 임했어요. 한참 잘 되고 있는데 성령님께서 의에 명하십니다. 빨리 이곳 사역을 중단하고 광야로 내려가라.
여러분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죠 아니 주님 지금 한참 사역이 잘 되고 있는데요. 한참 새신자들이 몰려오고 있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빌립 집사는 그 말에 순종합니다. 멀리 60km, 70km 떨어져 있는 광야길을 내려가다가 누구를 만납니까?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 쿠쿠마튼 네시를 만납니다. 그 사람이 예루살렘에 와서 예배를 드리려고 했지만 이방인이에요. 더군다나 고자입니다. 신체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 성전 안으로 들어가지를 못했어요. 마음의 갈급함이 있었습니다. 이사야서 말씀을 읽고 있는데 거기서 말하는 이 고난 받은 종이 도대체 누구인지 알 수가 없어요.
마침 그 타이밍에 마차로 다가가라는 성령님의 뜻에 순종해서 빌립 집사가 그 이디오피아 네시에게 말씀을 전합니다. 여기에 담겨져 있는 이 의인이 누구인지, 이 선지자가 누구인지를 말씀을 전하자 그는 기쁨으로 내려서 세례를 받죠. 결국에는 그를 통해서 이디오피아 지역의 큰 부흥 한 나라가 바뀌는 그런 놀라운 역사가 임하게 되죠.
사도 바울은요. 드루와에서 마케도니아인의 환상을 봅니다. 본래 그는 에베소 지역이나 소아시아 북부 소아시아 지역으로 가고 싶어 했어요. 그런데 희한하게 성령님이 계속해서 길을 막으시는 거예요. 가고 싶었지만 가지 못하게 하시는 거예요. 그렇게 저렇게 순종하고 갔던 드로아에서 마케도이냐의 환상을 보고 결국에는 유럽으로 건너가서 복음을 전하지 않습니까?
여러분 이것이 성령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이에요. 복음의 증인이 된다는 것은 열심히 산다. 주를 위해 열심히 산다. 예 중요하죠. 하지만 열심을 갖되 철저하게 순종하셔야 돼요. 그 열심이 나를 위한 열심일 수도 있습니다. 나의 의를 드러내기 위한 열정일 수도 있어요. 내 고집, 내 생각, 내 의지를 다 내려놓고 성령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
사도행전은 수많은 그런 복음의 증인들의 역사가 기록이 되죠.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믿음의 삶을 순종의 삶을 살았어요. 바라기는 우리 선한 장로교회 성도들이 그런 믿음의 사람들로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성령의 사람, 권능의 사람, 순종의 사람이요. 말씀 앞에 엎드리고 주님의 증인 되어 살아가는 그런 사람들이요. 여러분 우리가 이 자리에 모인 것도 함께 이곳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도 그런 이름 모를 수많은 증인들을 통해서 여기까지 온 것 아니겠어요?
여러분 어떻게 여기까지 오셨나요? 어떻게 예수님을 알게 되셨나요?
한국에 있을 때 여러분 부모님들, 할머니 할아버지의 믿음을 통해서 오신 분도 계실 거예요. 학창시절 누군가의 전도를 통해서 예수님을 알게 되신 분도 계시고, 힘든 이민 생활, 유학 생활을 통해서 예수님을 소개하는 누군가를 통해 이 자리에 오신 분도 계실 겁니다.
여러분 주일날 일요일 3시에 이곳에 모여서 함께 예배를 드린다는 것 그 자체가 기적이죠.
이 자리에 인도하신 분이 성령 하나님의 그 은혜예요. 여러분 주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역사는 그런 복음의 증인들을 통해서 그렇게 누룩과 같이 그렇게 퍼져 나가는 거예요. 예수님의 증인들을 통해서 계속해서 번져가는 거예요.
저와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그런 복음의 증인으로 누군가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때로는 말이 아니라 삶으로 행동으로 그렇게 예수 그리스도의 선한 영향력을 나타내는 그런 인생, 그런 귀한 삶을 살았던 한 분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우리가 좋아하는 찬송가 301장. 지금까지 지내온 것. 주의 크신 은혜라. 여러분 이 찬양은 너무나도 한국 분들이 특별히 좋아하는 찬양이에요. 근데 이 찬양의 작사를 했던 분은 놀랍게도 일본인 목사님 사사오 데스 사브르라는 목사님입니다.
이분은 중학생 때 폐렴에 걸려 죽을 고비를 넘겼어요. 완치가 되었지만 해군에 입대하려고 했었을 때 그 병력 탓에 탈락을 합니다. 사사호는 진로를 바꿔서 경영학을 전공하기 위해 일찍 미국 유학길에 올라요. 유학 시절 샌프란시스코에서 한 목회자 가정에 하숙을 하게 되었고 거기에서 놀랍게 예수님을 영접하게 됩니다. 주님을 뜨겁게 만났어요. 큰 은혜를 경험합니다. 그리고는 자신처럼 유학 왔던 일본 유학생들에게 복음을 열정적으로 전하는 삶을 살아요. 그러다가 아예 공부를 하려고 했던 경영학을 바꿔서 신학을 전공합니다.
그리고 미국에서 아예 목사가 되어 버려요. 1894년 귀국합니다. 일본으로 돌아온 그는 어느 날 로마서 8장 28절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이 말씀을 깊이 묵상하다가 가사를 써내려갑니다. 지금까지 지내온 것 주의 크신 은혜라 한이 없는 주의 사랑 어찌 이루 말하랴 자나깨나 주의 손이 항상 살펴주시고 모든 일을 주 안에서 형통하게 하시네.
기도하면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니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였더라는 거예요. 어린 시절 폐렴에 걸려서 군인이 되지 못했던 것. 그 당시에는 크나 큰 낙심이었지만 그것도 은혜였고, 미국 유학길에 올라 마침 목사님의 집에 하숙을 친 것도 은혜였고, 공부하려고 했던 경영학에서 신학으로 진로를 바꾼 것도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였더라.
이후 그는 1901년 동경 성서학원 교수가 되지만 1913년 교수직을 사임합니다. 그리고 일본 전역을 돌아다니며 순회 전도에 나서는 거예요. 내 사모하는 주님 이 귀한 예수 그리스도를 왜 우리 민족은 알지를 못할까 800만의 우상을 섬기고 12만 개의 크고 작은 신사를 섬기는 조국 일본에 자신의 동포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고자 애를 씁니다.
십자가 복음을 전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 기울여요. 하지만 수많은 사람들에게 멸시와 조롱과 천대와 모욕을 듣습니다. 그게 2절 가사예요. 몸도, 마음도 연약하나 세임 받아 살았네. 물 붓듯이 부으시는 주의 은혜의 조카다. 사랑 없는 거리에나 험한 산길 헤맬 때 주의 손을 굳게 잡고 찬송하며 가리라.
사랑 없는 거리, 험한 산길 헤매는 동안 동적 일본 사람들에게 예수를 전한다는 이유로 온갖 고초와 모욕을 당하지만 불꽃과 같은 복음 증인의 삶을 살아갑니다. 그러다 결국 과로와 스트레스로 인해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죠. 공부하고 목사가 되고 신학교 교수로 좀 더 편안하게 살 수도 있었어요. 일본의 교회와 신학을 위해 훌륭한 일을 할 수 있었어요. 그럼에도 일본 전역을 다니며 피를 토하듯 복음을 전하다 46살에 이른 나이로 하나님 품에 안깁니다.
여러분 상식적으로 일반적으로 생각하면 얼마나 허망하고 안타까운 죽음입니까?
얼마나 아까운 죽음입니까?
그런데 생각해 보십시오. 그가 남긴 이 찬양의 가사가 특별히 오늘날 대한민국의 모든 성도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찬송가 곡 중에 한 곡이 되어서 아마 모든 교회 송구영신 예배 때마다 이 곡이 울려퍼질걸요 추수 감사 때마다 이 곡이 울려퍼질걸요?
성도들의 장례식 때마다 그리고 할 수 있는 예배 때마다 이 곡이 울려퍼질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3절 가사입니다. 같이 한번 불러볼까요?
주님 다시 날로 날로 다가와 무거운 짐 주께 맡겨 벗을 날도 멀지네. 나를 위해 예비하신 고향 집에 돌아가 아버지의 품 안에서 영원토록 살리라.
아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를 여기까지 인도하시고 큰 은혜를 베풀어 주신 줄로 믿습니다. 화려한 복판에서 이렇게 좋은 교회를 만나게 하시고 좋은 목사님, 좋은 성도님들과 함께 행복한 믿음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큰 은혜를 베풀어 주셨어요. 하나님께서 파리 선한 장로교회를 진심으로 사랑하시는 줄로 믿습니다. 이 교회를 통해 크고 위대한 일을 감당케 하실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힘들고 때론 외로운 이민 생활이에요. 한 치 앞을 알지 못합니다. 서두에 말씀드린 것처럼 주의 법을,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더 사모하십시오. 여러분 내면의 큰 평안을 하나님이 허락해 주시고 모든 장애물을 다 거두어 주실 줄 믿습니다.
어떤 모습,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야 될까요? 성령의 사람, 권능의 사람, 복음의 증인 되어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리하여서 파리 선한 장로교회가 초대 교회와 같은 모습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힘있게 써 내려가시고 선교적인 교회로 주님의 기쁨과 칭찬받으시는 귀한 교회로 우뚝 세워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And when the angel stretched out his hand toward Jerusalem to destroy it, the LORD relented from the calamity and said to the angel who was working destruction among the people, ”It is enough; now stay your hand.“ And the angel of the LORD was by the threshing floor of Araunah the Jebusite.
And David built there an altar to the LORD and offered burnt offerings and peace offerings. So the LORD responded to the plea for the land, and the plague was averted from Israel.” (2 Samuel 24:16,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