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편지 103신]‘배동바지’를 아시겠지요?
『나는 학생이다』는 멋진 수필집을 선물한 효림曉林 형님께.
늘 여여하시겠지요?
서울은 35도가 넘어가는 불볕더위에다가 팬더믹 4차유행이 시작된 듯하니 걱정이 됩니다.
청정지역인지는 모르겠으나, 제가 사는 임실의 농촌지역은
큰 스트레스는 받지 않으며 마스크도 쓰지 않는 일상의 연속입니다. 덥다는 것과 농번기라는 것 빼고는요.
불쑥 형님이 생각난 것은 ‘배동’ ‘배동바지’가 무슨 뜻인지 아느냐고 여쭙고 싶어서입니다.
어제 반나절을 들판의 네 다랭이논에 이삭거름을 주고,
논두렁 제초제 농약을 치면서 이 단어들이 생각났으며,
혹시라도 모르셨다면, 두 단어는 알아두시면 합니다.
‘배동’은 이삭이 패려고 벼의 대가 볼록해지는 것을 말하고, ‘배동바지’는 벼가 배동이 설 무렵을 말하는 순우리말이랍니다.
이곳 농부들은 ‘배동이 서다’라고 말하더군요.
그동안 제 편지를 통해 아시겠지만, 처음으로 벼농사를 지으며 갖은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못자리가 아니고 핏자리가 된 논을 일주일여 뒤지고 다니며 피를 뽑는 게 아니고 아예 김을 매는 고생을 했구요.
논두렁 예초질을 두 번이나 했는데, 풀이 어찌나 빨리 자라는지 도저히 묵과할 수 없어,
어제는 풀뿌리까지 죽인다는 글리산 제초제 5병을 충전식 분무기로 쏟아부었습니다.
모를 심은 지 45일쯤 후를 배동바지라고 하는데 ‘이삭거름(비료)’을 주어야 한다더군요.
하지만 벼들이 이미 검실검실한 논들은 이삭거름을 주면 웃자라 나중에 쓰러지기(도복倒伏)가 쉽다는군요.
노리끼리한 벼논에는 반드시 거름을 주어야 한다합니다.
등에 메고 비료를 뿌리는 기계는 이장님에게 빌려, 처음으로 해보는 일이지만 정성껏 하였지요.
과연 추석이 지나 풍년을 기약할 수 있을지 그 누가 장담하겠습니까?
아무튼, 이 작업을 끝으로, 벼농사는 80% 지었다고 할 수 있답니다.
이제 남은 건 간헐적인 물꼬 관리입니다. 흐흐.
배동바지를 왜 여쭈었냐면, 직장생활을 하면서 씁쓸한 기억이 있기 때문입니다.
성균관대 홍보전문위원으로 일할 때, 총장님이 자주 가시는 한정식집 이름이
‘배동바지’(감사원 아래 삼청공원 입구의 건너편, 지금은 다른 곳으로 옮겼는지 최근 보이지 않더군요)였는데,
총장님이 무슨 뜻인 줄 아느냐 물어보시는데, 당시 그 뜻을 몰라 당황한 적이 있었습니다.
명색이 프로농사꾼 자식이 그 말을 처음 듣으니 얼마나 창피한 일입니까.
지난해초인가 어떤 인연으로 형님을 알게 돼 이메일이 몇 번 오갔는데,
형님이 수필집을 한 권 보내주셨지요.
반갑고 고마운 마음에 6월인가 상경했을 때 금천교시장 ‘체부동잔치’집에서 기어이 초대면을 했었지요.
벌써 1년도 전의 일이군요.
‘글은 곧 그 사람이다’(서여기인書如其人)는 말처럼,
형님은 결이 참 고운 분이더군요. 새벽 효, 수풀 림, 형님의 호도 멋졌지요.
새벽숲은 청량한 맛에 기분은 좋으나 자칫 보이지 않는 거미들의 거미줄 습격을 당하기 쉬워 즐기지 않지만요. 흐흐.
알고 보니, 제 둘째 가형家兄과도 같은 금융기관, 같은 지점에서 동고동락한 적도 있더군요.
세상은 참 좁습디다.
형님의 수필집 『나는 학생이다-내 남루한 발자국의 이름』을 통독하면서 떠오르는 게,
공교롭게도 2004년 11월 감명깊게 읽은 중국인 작가 왕멍王蒙의 『나는 학생이다』라는 책이었습니다.
새삼스러워 서평이랄 것도 없는 저의 졸문을 찾아 읽으며 ‘우연의 일치’와 ‘생각의 일치’를 엿보는 재미를 느꼈었지요.
아래의 글이 그 글입니다. 메일로 보내드린 적도 있지만, 새로 함 보시는 것도 좋겠지요.
형님을 초대면하고 쓴 짧은 기록(https://cafe.daum.net/jrsix/h8dk/720)도 이 편지를 계기로 찾아 읽었습니다. 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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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일기 11/20041104]‘나는 학생이다’를 읽고
모처럼 양서(養書)를 읽는다. 누구라도 인생을 살면서 ‘백수’라는 이런 곡절과 어려운 고비가 없을란 법은 없을 터. ‘재수없다’ ‘괴롭다’ ‘힘들다’고만 생각하지 말고 ‘건강 챙기며 좀 쉬자’ ‘언제 또 이런 휴가가 있을 것인가’라고 생각하자. 자, 책을 읽자. 방마다 빼곡이 쌓인 책, 2천권은 훌쩍 넘는다. 언제 한번 제대로 읽었던가. 겨우 머리말과 차례만 보고 쳐박아둔 책들의 먼지를 털자.
왕멍(王蒙)이라는 중국의 대문호가 있다. 1934년생. 우리 나이로 71살. 노벨문학상 후보로 여러 차례 오른 중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작가이다. 20세기 전반기의 작가로 루쉰(魯迅)을 꼽는다면 후반기엔 주저없이 ‘왕멍’을 꼽는다고 한다. 이 작가의 신간 번역본이 나왔다. 『나는 학생이다』(들녘 발간. 423쪽. 9800원) 원제는 『王蒙自述-我的人生哲學』산문집이다.
이 사람의 인생역정이 놀랍다. 1956년 소설 한 편으로 우파로 낙인찍혀 하방(下方: 귀양살이)을 당했다. 펜도 주어지지 않은 16년간의 유배생활, 위구르족의 신장자치구. 그는 거기서 위구르어를 배운다. 문장 전체를 암기하는등 외국어학습의 필요성을 절감한다. 그러기에 46살에 영어를 배우기 시작했으리라. 하루에 단어 30개씩을 외웠다고 한다. 그리고는 젊은이들에게 체험에서 우러난 목소리로 절규한다.
“사람은 죽을 때까지 배워야 한다”고. 그렇다. 배움에 무슨 나이가 있으랴. 공자도 말했다. “불치하문”(不恥下問 : 아랫사람에게 모르는 것을 물어보는 것을 창피하게 생각지 말라).
중국어 관용귀에 ‘老到學’(라오따오쉬에 : 죽을 때까지 배운다)이란 말이 있다.
고난의 진정한 의미를 알고 그 시련을 이겨낸 사람은 그 인생이, 학문이 얼마나 깊이가 있던가. 다산 정약용의 귀양 ‘강진 18년’을 생각해 보라. 어쩌면 그런 시련이 없었다면 ‘목민심서’나 ‘경제유표’같은 불멸의 고전이 나왔을까? 추사 김정희의 제주도 귀양이 없었다면 ‘세한도’(歲寒圖)같은 불후의 명작이 나올 수 있었을까? 김대중 대통령은 옥중에서 나이 48에 영어를 배워 외국인들과 말할 정도가 됐다고 하니, 함석헌선생이 말한대로 “감옥은 인생대학”인 모양이다.
아무튼 왕멍은 말한다. 배움은 인생의 비밀을 끊임없이 탐색하게 한다고, 학습은 자기의 뼈와 살이라고. 언어를 배우는 것보다 더 중요한 배움은 없다고. 놀랍다.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며 젊은이들과 끊임없이 대화하고 토론하는 정열이, 그 열린 순수한 마음이. 79년 복권이 되어 활발한 작품활동을 했다. 94년에 총 500만자에 해당하는 문집을 10권으로 간행하다. 86년 문화부장관도 지냈다.
문득 떠오르는 서양인이 있다. 현대경영학을 창시했다는 피터 드러커. 우리나라에 번역된 책만도 20여권이 된다. ‘단절의 시대’ ‘21세기 지식경영’ ‘경영의 지배’.... 아흔다섯 나이에도 불구하고 글을 쓰며 컨설팅관련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그는 말한다. “평생학습은 사람들을 젋게 한다”고. 命題치고 정말 대단하지 않는가? 그는 말 그대로 ‘만년 청년’이다. 왕멍이 그러하듯이.
그들의 직업은 ‘학생’이다. 나도 당연히 학생이어야 한다. 죽는 순간까지 노력하자. 나의 장인은 돌아가는 순간까지 “통일이 돼야 할텐데. 그쪽 공부를 하고 노력하는 사람이 어디 있나?”며 걱정했다.
왕멍은 결론적으로 말한다. “인생은 명랑한 항해”라고. 인생이 한 척의 배라면 세계는 바다가 되고, 우리 자신은 그 배의 선장이 될 것이다. ‘명랑’(明朗)이라니? 한때 명랑이란 단어를 많이 쓴 적이 있다. 조흔파선생이었던가. ‘명랑소녀 상경기’ ‘명랑소설’ 등. 살기가 그만큼 팍팍하고 암담하기 때문인가, 명랑이란 말을 본 적이 오래 됐다.
이 작가는 인생=명랑이라고 말한다. 명랑은 초월과 비약으로 도달하는 인생의 경지. 우환과 고통을 이겨낸 후의 명랑함이며 역경과 위험에 봉착했을 때의 차분함이며, 모든 인생의 고난을 능히 반추하고 소화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말한다.
돛단배를 몰고 한바탕 즐거운 항해를 떠나라고 충고한다. 각자의 항해를 더욱 맑고 즐겁게 하라고 조언한다. 지혜와 광명, 명랑한 지혜와 지혜의 명랑함이 각자의 삶에 영원토록 함께 하게 하라고 말한다.
우리 ‘명랑’이라는 이름의 돛단배를 타고 일망무제, 호호탕탕 저 넓은 바다를 향해 거침없이 나가보자!
감히 一讀, 精讀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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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퇴직 후 작성하셨다는 12개의 ‘버킷 리스트’는 모두 실행하셨나요? 여전히 진행중인지요?
저는 10분의 1도 하지 못하고 있지만, 굳이 연연하거나 애달아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그래도 판소리와 서예를 배우지 못하고 있는 것은 못내 안타깝습니다.
언제나 해볼 수 있을지, 아니면 영영 못하고 말 것인지 모를 일입니다.
시절이 좋아져, 목포 고향 가시는 길에라도 불쑥 들르셔
하룻밤 회포를 풀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늘 여여하시기를 빌면서 줄입니다.
7월 24일
임실 우거에서 아우 절합니다
첫댓글 논두렁-배동바지-결이 고운 선배!
오늘 편지의 키워드를 저자는 왜 생각했을까?
프로농부가 되기 위한 혹독한 수련, 좋은 결과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