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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섭(總攝)과 도마복음 제17장》
음..
어제는 스리랑카 사원에서 부처님 오신 날을 기념하는 행사가 있어서 도반들과 함께 다녀왔는데요.
그런데 지난번 행사 때와는 달리 한국 불자들이 주관을 하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조금은 실망했는데요.
왜냐하면 스리랑카 불자들은 한국 불자들과는 달리 참선을 하는 모습들을 자주 볼 수가 있기 때문인데요.
그래서 좀 아쉬웠답니다.
불교는 첫째도 둘째도 수행이거든요.
그런데 한국 불자들은 수행 이야기만 하면 등을 돌린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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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그새 도반 분들이 많이 늘었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아무쪼록 되든 안 되든 우리 다 같이 끝까지 가 보자고요.🤗👍🏻
(1)
부처님 방법은 일상생활을 하거나 시간이 나면 앉아서 조용히 내 몸(오온)과 마음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들을 살펴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의식을 구분할 줄 아시는 분들은 의식이 깨어서 해보세요.
그리고
예수님 방법은 일상생활을 하거나 시간이 나면 앉아서 조용히 내 주(主/자신) 안으로 의식을 두고 기도하고 묵상하는 마음으로 생활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의식을 구분할 줄 아시는 분들은 의식이 늘 깨어서 생활해 보십시오.
그러면 느끼는 바가 있으실 겁니다.
지금은 이것만 집중해 보십시오.
(2) 번째 방법은 다음 주에 이어서 해보겠습니다.
그리고 의식을 아직 구분하지 못하시는 분들은 알아차림을 많이 해보십시오.
그러면 알 수 있답니다.
수행은 의식을 모르면 제대로 할 수가 없답니다.
왜냐하면 허공에 화살을 쏘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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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허집(鏡虛集) (67) ]
20260601
육십일곱 번째 이야기
수행을 처음 접하시거나 초보자분들을 위해서 한 말씀 올리자면 경허선사라는 분은 1849년에 태어나서 1912년에 돌아가신 분인데요.
쉽게 말하면 경허선사라는 분은 참선수행을 해서 깨달음으로 이르는 길을 다시 여신 분이라고 보시면 된답니다.
그동안 우리 불교가 조선이 들어서면서 무학대사를 이어 잠깐 서산대사와 사명대사를 기점으로 이후로는 거의 선지식인들의 법맥이 끊겨있다가 경허선사라는 분이 나와서 다시 그 선맥을 이으신 분이라고 보시면 되는데요.
불자들은 경허선사를 모르시는 분들이 거의 없지만 카톡으로 이 글을 받아보시는 분들 대부분은 저의 지인들인 경우가 많고 불자들이 아닌 분들이 많아서 모르시는 분들도 계실 줄 아는데요.
쉽게 말하면 경허선사라는 분은 가요계에 이미자라고 보시면 된답니다.
저의 이 글은 대부분이 초보자분들을 위주로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가급적이면 요즘 표현으로 설명하려고 노력 중인데요.
그러다 보니 때로는 설명이 길어질 때가 많답니다.^^
아무쪼록 제 바람은 많은 일반 사람들이 이 법을 깨닫고 이어나갔으면 하는 바람인데요.
경허선사 이후로 잠깐 그의 제자들이 선풍을 일으키긴 했지만 지금은 거의 그 맥이 다시 끊기고 있는 실정이랍니다.
이럴 바에는 차라리 이 선맥이 일반 사람들에게 널리 전파되어 좀 더 고급스럽고 새롭게 태어났으면 하는 바람이 저의 바람인데요.
아무쪼록 이것은 여러분들이 상상하는 그 이상의 가치가 있으니 꼭 열심히 따라 해 보셔서 모두가 이 맛을 보시기 바랍니다.
저 같은 노는 것만 좋아하는 사람도 하고 있는 이것을 여러분들이 못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답니다.
다른 것은 다 필요 없고요 이렇게 해보십시오.
[현재 이 순간 의식이 깨어서 생활해 보십시오.]
[또는 현재 이 순간 나를 알아차려 보세요.]
[그리고 내 마음과 몸에서 일어나는 것들을 자주자주 비교해 보세요.]
[그리고 내 마음의 것들을 알아차리고 내려놓고 버리려고 노력해 보세요.]
[기독교 쪽 분들은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는다면 내 마음에 모든 것들을 하나님을 믿고 맡겨버리십시오. 하나님께 던져 버리십시오.]
※ 불교 쪽이든 기독교 쪽이든 내 마음에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절대로 들고 있어서는 안 된답니다. 들고 있으면 내가 죽는답니다. ※
왜냐하면 모든 고통과 괴로움과 번뇌는 그 들고 있는 것들 때문에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그 뿌리가 되는 근원(깃대/찰간)을 없애지 않으면 절대로 구원(火宅)을 받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 수행(수도)이란 내 [몸(오온)과 마음]을 보는 것부터가 시작이랍니다.
그러면 처음에는 모르고 하게 되지만 나중에는 아주 신기한 일들이 벌어진답니다. (진실)
===♡===♡===♡===
(참고 : 이 글은 경허선사의 제자 만공스님의 부탁으로 만해 한용운 스님이 경허선사의 글들을 옮겨 적으신 건데요. 옛 분들의 표현들이라 가급적이면 띄어쓰기나 받침 등이 지금과 다른 글자가 간혹 있는데요. 그러나 수정하지 않고 그대로 글을 옮겼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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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허집 본문 내용》
(경허선사가 남기신 한문 원본)
이번 한문 글도 너무 길어서 만해 한용운 스님이 번역한 한글로 대체하겠습니다.^^
ㅡ♡
(만해 한용운 스님께서 번역하신 글)
제목 : 범어사 총섭(總攝) 방함록 서
내가 성글고 게을러서 세상에서 쓸모가 없고 또한 병약해서 호서에 칩거하던중 제방에 유랑하던 이가 있어 말하기를 "유람하려면 반드시 금강산·두류산·가야산·오대산의 제일 승지를 유람하여 감상하여야 한다." 하기에 내가 웃으면서 말하기를 "소위 유람한다면서 어찌 산과 물이 어떠한가를 말하느냐."고 하니 말 한 이가 망연히 아무말 못하였다.
내가 속진의 인연에 묻혀 도업에 나아가지 못함을 싫어하고 근심하여 광무 3년 늦은 봄, 외로운 지팡이에 짧은 적삼차림으로 이리저리 걸려있는 것을 떨쳐버리고 풍류를 쉽게 사서 지내고 싶은 곳에 스스로 지내며 겨울과 여름을 불명산과 가야산에서 지내고 그 이듬해 여름에 휘적휘적거리며 범어사에 도착하여 그때에 회현장로가 청풍당에 살았는데 조행이 맑고 고상하였으며 문장이 박식하고 단아하여 몇 달을 함께 즐겁게 지내며 심사를 의논도하며 지내다가 하루는 내가 말하기를 "사중에 중임이 있습니까?"하니 "총섭인데 이것은 나라에의 칙명으로 정합니다." 하였다.
익종대왕과 신정왕후 양위의 선감을 본사에 봉안하고 탄신과 제사를 총섭으로 하여금 일을 만대에 준행하게 하니 만약 금정의 맑고 신령한 땅과 범어사의 이름난 가람이 아니면 이와같은 특별 한 일이 있으리오.
칙명으로 정하였기에 자헌대부 부종수교 십육종주 승풍규정 대각등계 도총섭을 하교하는데 기한은 2년으로 임기가 끝나면 바뀐다.
나라에서 내린 총섭의 직책은 정중할 뿐 아니라 보통 절의 호칭으로도 가이 알지니 하물며 예전의 승통이란 명위도 낮은 절에 서는 어쩌지 못해서 대중이 자의로 품수하면 장로의 지휘에 맡겨서 하나 또한 사람을 가리지 못하거늘 지금 총섭 직책은 먼저번의 일과 달라서 모두 주선들은 하나 그르치어 실례를 하면 손해가 적지 않고 또한 절이 큰 고을에 있어서 승속의 내왕이 번다하여 거마가 서로 절문까지 줄지어 있으니 적임자가 아니면 그 소임을 맡길 수가 없다.
그래서 대중의 의논을 모아 사리도 알고 문학도 능하여 당당하고 정중한 자를 택하여 그 소임을 맡기는데 그 일과 예규를 서술하자니 책의 글처럼 벌려졌다.
그 소임자의 이름을 먼저 전하고자 하는데 내가 서문을 쓰며 말하기를 그러나 또한 내가 유람하는 바를 말하자면 대저 한숲과 한 산봉우리와 나무 하나 돌 하나에라도 스스로 저 하늘을 논 할 수 있거니 하필이면 가야산 오대산·금강산 두류산의 승묘 한 곳을 들먹이겠는가.
작은 산봉우리 얕은 산기슭에도 또한 승묘함이 있거늘 금강. 두류·가야. 오대에도 작은 산봉우리 얕은 산기슭이 있지 않은가.
작은 산봉우리 얕은 산기슭이 없는 곳이 없으니 가야·오 대·금강·두류가 또한 없는 곳이 없는데 하필이면 양식 없애고 발이 부르터가며 피곤하게 백리 천리 밖으로 쫓아다니겠는가.
그래서 예전에 유람하는 이는 그렇기 때문에 나의 유람하는 방식이 아니며 유람하는 이가 이른 바 승묘한 곳을 찾는다면 나의 이른 바 승묘함이 아니니 나의 이른 바 승묘한 곳과 유람을 어떤 사람이 할 수 있겠는가.
그런 사람이 있다면 현명한 사람이며 또한 능히 지금 사람을 가려서 대체하여 소임을 맡겨 제사를 지내며 선묘(仙廟)를 수호 하며 상주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래서 옛사람이 이르기를 "일을 도모함은 그 사람에게 있다." 하며 또 이르기를 "도는 사람으로 말미암아 널리 퍼진다." 했으니 진실한 말이 아니겠는가.
회현장로가 이르기를 "내가 일찌기 사마씨(司馬氏)의 간원기 (諫院記)를 읽었는데 거기에 이르기를 간원의 이름을 써서 돌에다 새기면 뒷날 사람들이 그 이름을 가리키며 의논하기를 누구는 충실하였으며 누구는 거짓스러웠으며 누구는 곧았으며 누구는 편벽 되었다고 하리니 이제 소임자의 이름을 글로 써서 놓으면 그것이 먼 뒷날까지 전하여져서 사람들이 또한 그 이름을 가리키며 평하기를 누구는 총섭을 지낼 때 신묘에 제사 지내며 절을 보호하며 어질게 예절을 지녔었으며 누구는 총섭을 지낼 때 예절을 잃고 상주물에 손해를 끼쳤다는 등 향기와 좋지 못한 냄새를 함께 멀리 전하니 그 소임자는 어찌 삼가지 않을 수 있으며 그 소임자를 가리는 것도 또한 어찌 소홀히 하겠는가.
그 서문을 써서 규칙으로 하면 어찌 가람을 수호하는데 관계되는 일이 아니겠는가."
내가 그 말을 듣고 생각하다가 길게 생각하지도 않아서 마음에 딱 들어 맞기에 말하기를 "잘 적지 않더라도 그 말이 바로 규계 (規戒)가 됨이라 이에 서술하노라.” 하다.
대한 광무 4년 경자 4월 상순
호서로 돌아가는 사문 성우 경허는 삼가 씀
(註)
이 서(序)는 이번에 새로 발굴하여 이 책에 실은 것이다.
♡-♡
《도마복음 제17장》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너희에게 여태 눈이 보지 못한 것, 귀가 듣지 못한 것, 손이 만지지 못한 것, 사람의 마음에 떠오르지 아니 한 것을 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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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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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뭣고]의 곁가지 김태현입니다.😄
한 주일 잘 보내셨지요.. 😄
아무쪼록 모두들 건강관리 잘 하시고 가정에 늘 평안이 깃들기를 기원드립니다.🤗🪷🙏🏻
♡
※ 이 글은 주로 수행(수도)을 처음 하시는 분들을 위주로 쓰이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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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내용은 지난 5월 19일에는 [해인사 수선사 방함록 서]에 이어 이번에는 [범어사 총섭 방함록 서]라는 내용으로 여러분들을 찾아뵙습니다.^^
참고로 뒤에 나오는 [(註) 이 서(序)는 이번에 새로 발굴하여 이 책에 실은 것이다.]라는 글자가 있는 것으로 보아?
오늘 내용은 앞에 내용과는 달리 뒤늦게 수집한 내용 같습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경허집은 경허가 파계를 한 후 여러 지방을 유랑하면서 밥 얻어먹고 술 얻어먹고 때로는 아이들에게는 글이나 어른들에게는 법문 등을 들려주면서 답례로 여기저기에 지난날들에 있었던 글들을 써서 답례를 했다는 전설이 있는데요.
쉽게 말해 오늘 내용은 뒤늦게 찾아낸 경허의 글을 경허집에 올렸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방함록(芳啣錄)이란 앞전에도 말씀드렸듯이 사찰이나 선원 등의 하·동안거 시에 수행자들의 職名(직명/직업이나 직무·직위. 또는 벼슬 따위의 이름.), 속성, 연령, 본사, 등을 기록하여 이를 책으로 묶은 것인데요.
쉽게 말해 선방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의 신상 기록이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그리고 제목에 나와있는 총섭(總攝) 이란 임진왜란 때 승군을 지휘·통솔하는 승직(僧職)이라는 뜻으로 쉽게 말해 스님들을 관리하는 총사령관으로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러면 본 내용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다른 내용들은 별로 중요한 내용은 없고요.
오늘 내용에서 중요한 대목은 절 살림을 총괄하는 장로 역할을 하는 총섭(總攝)에 관한 내용이랍니다.
쉽게 말해 총섭(總攝)이란 왕이 나이가 어리면 대신해서 섭정(攝政)을 하잖아요?
여기서는 절 살림을 스님들이 아니라 능력이 되는 사람들이 대신에서 맡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루는 경허가 스님 시절에 범어사에 갔었는데 그곳에서 총섭 방함록을 만들어달라고 했나 봅니다.^^
★
[범어사에 도착하여 그때에 회현장로가 청풍당에 살았는데 조행이 맑고 고상하였으며 문장이 박식하고 단아하여 몇 달을 함께 즐겁게 지내며 심사를 의논도하며 지내다가 하루는 내가 말하기를 "사중에 중임이 있습니까?"하니 "총섭인데 이것은 나라에의 칙명으로 정합니다." 하였다.]
여기서 말하는
"사중에 중임이 있습니까?"
라는 말은 쉽게 말해 범어사에 중요한 직책이 있습니까?라고 물었더니,
"총섭인데 이것은 나라에의 칙명으로 정합니다."
라고 했다는 것인데요?
이 말은 조선 정부가 총섭(總攝)이라는 직책을 칙명(황제가 발급하는 공식 명령서)으로 내렸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조선 정부가 억불정책을 쓰기는 했지만 정부 차원에서 사찰을 관리했었다는 뜻이기도 하답니다.
많은 분들은 불교가 조선의 억불 정책으로 인해 완전히 외면만 당했다고 보고 있잖아요?
그러나 꼭 그렇지마는 않았답니다.
불교가 힘들 때마다 왕가의 왕비나 귀족 마님들이 불교를 떠받들고 있었기 때문인데요.
왜냐하면 유교가 조선을 지배하면서 남자들은 공자왈 맹자왈 할 때에 궁궐의 왕비나 귀족들 안방마님들은 기존에 기복 신앙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에 불교가 탄압을 받긴 했어도 이런 여인들 때문에 그 명맥을 유지할 수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어디든 여인들의 치맛바람이 부는 곳에는 늘 풍년이 있기 마련이잖아요?
불교도 그랬다는 것입니다.
아마 모르긴 해도 이 땅에 불교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여인들의 치맛바람이 없었으면 그 맥이 벌써 끊어졌을 공산이 컷을 것인데요.
특히 드라마 여인천하에서 나오는 문정왕후가 특별히 불교를 사랑했었다고 합니다.
<참고 동영상 자료>
(아래의 링크를 복사 또는 누르세요..)
https://youtu.be/zCRwJ6754Ks?si=oq1YZ8k4CEafYJ3X
문정왕후뿐만이 아니라 조선이 억불정책을 했어도 조선의 여인들은 꾸준히 불교를 부흥시키려고 노력을 한 흔적들이 여기저기에는 있는데요.
문제는 스님들이 이것을 잘 활용해서 조선 불교가 부흥을 할 수 있도록 노력을 했어야 했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스님들은 자기들 밥그릇 싸움에 여념이 없었는가 봅니다.
왜냐하면 동영상에도 나와 있듯이 왕비나 귀족 마나님들의 기복 신앙 등을 통해 보시되는 재물 등을 잘 활용해서 불교 부흥에 힘을 썼어야 했는데 그렇지를 못하고 스님들끼리 밥그릇 싸움을 하거나,
폭력 등을 일삼으면서 유교 학자들에게 더욱 꼬투리가 잡히면서 더 탄압을 받았다는 것인데요.
그렇지 않았겠어요?
왜 유생들을 폭력으로 잡아팹니까?
이런 행동 자체가 벌써 잘 못 된 것이지요?
지금도 알게 모르게 절 안에서는 스님들끼리 폭언이나 폭력 등이 심심찮게 일어나고 있잖아요?
이런 것들이 모두 오늘 내용인 총섭(總攝) 이 잘못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더 기가 막힌 것은 유교 문화의 하나인 제사(祭祀) 문화를 그때나 지금이나 스님들은 자신들을 탄압하고 짓밟은 유교에서 들여온 제사문화로 절 살림을 늘리려고 혈안이 되어 있다는 것인데요?
이러한 것들이 모두 총섭(總攝) 이 잘못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고려 때까지만 해도 유교가 들어오기 전까지만 해도 이 땅에는 제사 문화는 아예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세종대왕이 유교를 크게 부흥시키면서 불교는 완전히 쓰레기통으로 던져져서 사대문 밖으로 쫓겨나면서 다들 아시다 싶이 백정이나 노비처럼 천민 중에서도 최하 천민으로 스님들이 전락하게 된 것인데요.
그런데 웃기는 것은 그런 유교에서 들여온 중국 제사 문화를 좋다고 지금 스님들은 쫓아다니고 있으니 이것이 얼마나 기가 찰 노릇이냐 이겁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스님인 자신들을 짓밟고 내 쫓고 때로는 죽이는..?
가정으로 비유하면 아버지를 죽이고 자기 어머니나 누이들을 강간하고 집을 불사르고 스님들을 길거리로 내 쫓은 도적들이 남긴 제사 문화를..?
지금 스님들은 뭐가 좋다고 저렇게들 떠받들고 있으니..?
참으로 배알도 없고 무엇이 부끄러운 것인지를 전혀 모르고 있는 것이 스님들의 현실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참으로 불쌍하고 가련한 사람들이 스님들이 아니겠습니까?
문정왕후 때만 해도 문정왕후가 불교를 부흥시키기 위해 힘을 보태줬으면..?
그 기회를 잘 살려서 불교를 일으켜 세우려고 노력이라도 했어야 하잖아요?
스님들이 유생들을 왜 잡아팹니까? 잡아 패기를..?
스님들이 무슨 폭려 조직도 아니고요?
지혜롭지 못하게 유생들을 스님들이 감정에 못 이겨서 잡아 팬 결과는 더욱더 불교를 탄압하게 된 계기가 된 것이고요.
<참고 동영상>
https://youtu.be/43c0h_sBaQI?si=Mclo4gtKUUTWbG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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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것들이 모두 총섭(總攝) 이 잘못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저는 지금 스님들을 욕하는 것이 아니랍니다.
스님들을 모욕주기 위함은 더더욱 아니고요.
지금이라도 어른들부터 제발들 좀 정신들을 차리시고 불교 본연의 자리로 돌아가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무튼 경허선사 때에도 명맥(命脈)이나마 조선 정부가 사찰들의 대소사를 관리했었다는 것인데요.
그리고 다른 내용들은 그냥 읽어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 대신 한국 불교가 현재 경허 스님에게 배워야 할 대목은 바로 이 부분이랍니다.
[나라에서 내린 총섭의 직책은 정중할 뿐 아니라 ~~~~ 장로의 지휘에 맡겨서 하나 또한 사람을 가리지 못하거늘 지금 총섭 직책은 먼저번의 일과 달라서 모두 주선들은 하나 그르치어 실례를 하면 손해가 적지 않고 또한 절이 큰 고을에 있어서 승속의 내왕이 번다하여 거마가 서로 절문까지 줄지어 있으니 적임자가 아니면 그 소임을 맡길 수가 없다.]
바로 이 부분이 중용한 내용이랍니다.
왜냐하면 절 살림을 제대로 꾸리려면 돈에 대해서도 잘 알고 경영과 관리에 대해서도 잘 아는 장로를 뽑아서 총섭(總攝/총 관리)으로 임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인지 지금 한국 불교는 스님들이 다 한다는 것입니다?
스님들이 경영도 다 하고 돈 관리도 다하고 뭐든지 큰 스님들이나 그 줄기들이 다 한다는 것입니다?
공양간 같은 힘든 일만 보시라는 명목으로 일반 재가자들에게 시키고요.
아닙니까?
장로(長老)라는 것이 뭡니까?
가장 경험 많고 노련한 지혜가 있는 연장자(年長者)란 뜻 아닙니까?
경영이나 관리 또는 돈에 대해서 가장 잘 알고 추진하고 이끌 수 있는 사람이 장로가 되어 총섭(總攝)으로 앉혀야 한다는 것이 지금 경허 스님의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적임자가 아니면 그 소임을 맡길 수가 없다.]
는 것입니다.
장로 제도는 본래 불교 제도랍니다.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인지 이 장로 제도가 불교가 아닌 기독교 쪽에서 꽃을 피웠다는 것입니다?
기독교 쪽을 한번 보십시오?
얼마나 부유하고 풍성한지요?
물론 다 좋은 것은 아니지만 불교 쪽보다는 기독교 쪽이 훨씬 더 장로 제도를 잘 활용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아직 몰라서 그렇지 한국의 기독교는 특히 개신교는 장로 제도가 없었다면 지금처럼 이렇게 클 수가 없었답니다.
왜냐하면 종교 활동을 하자면 모든 것이 돈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 돈 관리를 불교 쪽은 돈에 대해 거의 경험도 없는 스님들이 장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고요.
그렇지 않겠어요?
스님들이 경제 능력도 없는데 무슨 경험이 있어서 장로 역할까지 도맡아서 하려고 욕심들을 내시느냐 이겁니다?
이러한 것들이 모두 총섭(總攝) 이 잘못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교회도 모든 살림들을 목사님이 아닌 장로나 집사들이 모든 교회 살림들을 도맡아서 했었기 때문에 지금의 교회들도 부강해졌다는 것입니다.
목사들은 선지자 역할을 주로 했었고요.
그런 면에서는 지금 한국 기독교인 특히 개신교에 해당하는 교회 장로 제도가 매우 모범적이라고 할 수가 있답니다.
이러한 것들이 모두 총섭(總攝)에 해당하는 것들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지금 교회들도 서서히 불교처럼 타락해 가고는 있지만 저희가 어렸을 때까지만 해도 교회의 장로 제도는 막강했었답니다.
목사님도 불교 식으로 말하면 재가자들이 뽑아서 월급을 주면서 체용을 하는 형식이고요.
그러나 불교 쪽 스님들은 재가자들 머리 위에서 군림하고 있답니다.
솔직히 재가자들 덕분에 먹고 사시는 분들 아닙니까?
그런 분들이 수행도 안 하면서 재가자들 머리 위에서 군림하려 들다니요?
교회와는 정 반대랍니다.
교회 목사님들은 평 신도들 앞에서 머리 위에 군림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이지요.
그리고 장로의 직분은 대부분 기업가 들이나 돈이 많은 부자들이 했었기 때문에 이런 분들에게 교회 살림을 맡기면 교회에 돈을 벌어다 주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불교 쪽 분들은 이해가 가시나요?
일반 사람들은 교회가 헌금이나 11조로 돈을 번다고 생각을 하지만 그것은 극소수랍니다.
물론 교회 어린이가 나중에 커서 사회에 나가서 기업가가 되거나 하다못해 영업 사원으로 취직을 하게 되면 교회 신도들이 자기 교회 출신들에게 물건을 사주거나 투자를 하거나 몰빵을 해주다 보니까 거기서 수입을 내는 당사자로서는 당연히 11조가 아깝지 않은 거랍니다.
그렇지 않겠어요?
예를 들면 교회 신도들이 나에게 영업이익을 한 달에 1억 원 이상을 내주고 있다면 거기서 1천만 원을 11조로 내는 것이 뭐가 아깝겠습니까?
불교 쪽 분들은 이해가 가시나요?
교회 신도들이 나의 손님이 되어 돈을 벌어다 주는데 11조가 무슨 큰 문제겠느냐 이겁니다?
단합도 기독교 쪽이 훨씬 더 잘 되고 있고요.
저도 평생을 교회를 다녔지만 단 한 번도 목사님들끼리 혹은 어른들끼리 친구들끼리 다투거나 싸워본 적이 없답니다.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인지 불교 쪽 사람들은 툭하면 서로 시기하고 다툽니다?
이러한 것들이 모두 총섭(總攝) 이 잘못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절 사림만 해도 그렇습니다.
이것은 통일교가 아주 잘 하는 방법인데요.
예를 들면 교회 살림이 한 달에 고정지출이 천만 원 정도가 지출된다고 합시다?
그런데 만약에 외부에서 고정 수입이 한 달에 삼천만 원 이상이 들어온다고 한다면?
이런 교회가 망할 수 있을까요?
이해가 가시나요?
그런데 한국 불교는 지금 이런 배경들이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어쩌다가 천도재가 있을 때에만 목돈을 만지다 보니까 그 돈으로 한 달 또는 일 년 예산을 세우기도 어렵고요?
예산을 세우기가 어려운데 어떻게 절을 체계적으로 운영을 하고 포교를 하고 활동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렇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지금처럼 주먹구구식으로 그때그때 닥치면 일을 하게 되는 것이고요.
그래서 불교는 매일 이 모양 이 꼴인 것이랍니다.
그렇지 않겠어요?
고정 수입이 있어야 예산도 세우고 예산을 세워야 그 돈으로 포교도 하고 포교를 해야 신도들도 모이는 것이고요.
이렇게 신도들이 모여야 정법이든 제도든 할 것이 아닙니까?
절들을 한번 가 보십시오?
전부가 천도재를 앞둔 노인네들뿐이잖아요?
젊은 사람들이 거의 없답니다.
왜냐하면 절 안에 모든 시스템들이 노인들에게만 맞춰져있기 때문입니다.
이러면서 무슨 대승을 논하고 정법을 논하고 제도를 논하십니까?
젊은 사람들이 없는데요?
이러한 것들이 모두 총섭(總攝) 이 잘못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모든 단체는 입이 즐거워야 귀도 즐거운 법이고 귀가 즐거워야 눈도 즐거워서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법이랍니다.
불교는 매일 같이 비빔밥 아니면 한여름에도 뜨거운 중국차뿐이랍니다?
교회처럼 절에 가는 맛이 있어야 젊은 사람들이 모일 것 아니겠어요?
이런 것들이 모두 돈 들어가는 일인데요?
불교 쪽은 지금 어쩌다가 천도재 등을 통해서 목돈을 만지다 보니까 이 돈으로는 예산을 세울 수가 없는 거랍니다?
모든 경제는 수입과 지출이 안정이 되어야 하는데
천도재로 들어온 목돈이 떨어지면 절 살림을 해야 하는데 어떻게 예산을 세울 수가 있겠습니까?
목돈이 또 언제 들어올지도 모르는데요?
북쪽에 어느 늙은 들여우처럼 천도재가 매일 있는 것도 아니고요?
그렇지 않겠어요?
이러한 것들이 모두 총섭(總攝) 이 잘못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큰 스님들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독재자들처럼 모든 것들을 꽉 틀어쥐고 있는데 어떻게 교회처럼 신도들 중에서 능력 있는 장로를 뽑아서 모든 절 살림을 맡길 수가 있겠느냐 이겁니다?
큰 스님들 입장에서는 욕심들 때문에 자기들 주머니에 돈이 없으면 허전할 것인데 어떻게 남들에게 돈을 맡기겠느냐 이겁니다?
그렇잖아요?
스님들이 돈에 대해서 알면 얼마나 알고, 경영에 대해서 알면 얼마나 알고, 관리에 대해서 알면 얼마나 알겠습니까?
험악한 사회에서 일을 해봤어야 경험도 쌓이고 경험이 쌓여야 지혜도 나오는 것이고 지혜가 있어야 운영도 잘하게 되는 것인데요?
그러니 절들이 지금처럼 매일 쪼들리는 거랍니다.
그래서 지금도 보면 돈이 넘쳐흐르는 절만 넘쳐흐르고 그렇지 못만 절들은 내일은 뭘 먹을까 걱정을 해야 할 판이고요.
이러한 것들이 모두 총섭(總攝) 이 잘못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참고로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저의 작은 숙부가 읍내에서 가장 큰 교회 장로셨는데요.
그리고 읍내에서 가장 큰 장사를 하셨고 가장 큰 부자셨답니다.
교회는 대부분 이런 분들이 장로를 맡고 있고 돈 관리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90년도 초쯤에 하루는 제가 사채업을 하고 있을 때에 숙부님이 저보고 하는 말이?
교회 돈이 2억 5천 정도가 있는데 이 돈을 저에게 맡길 테니 네가 돈 좀 굴려보라는 거예요?
90년대에 2억 5천이면 꽤 큰돈이었거든요.
숙부님은 장사꾼이었기 때문에 계산이 빨랐던 것입니다.
저도 그랬었고요.
한 달에 3부 이자면 고정 수입만 해도 750만 원인데 교회에서 이 돈이면 무슨 활동인들 못하겠어요?
불교 쪽 분들은 이해가 가시나요?
절에도 돈이 있어야 신도들에게 입도 즐겁게 해줄 수가 있고 아이들에게 학용품도 선물해 줄 수가 있고 신도들에게 손 안 벌리고 여러 가지 행사들도 할 수가 있지 않겠냐 이겁니다?
언제까지 한국 불교는 재가자들에게 보시 타령이나 하고 스님들이 부끄럽게 천도재 같은 곳에 매달려서 목숨 줄을 이어나려고 하십니까?
그렇지 않겠어요?
웬만한 교회에 가보세요?
최고급 뷔페가 따로 없답니다?
한여름에는 시원한 아이스 원두커피에 피자에 햄버거에 어디 그뿐입니까?
어른들 입맛에 맞춰서 싱싱한 나물과 생선과 고기가 푸짐하게 마음대로 먹을 수 있도록 준비가 되어 있으니 당연히 젊은 사람들이나 생활력이 있는 기성세대들이 많이 모여들 수 박에요?
그렇지 않겠어요?
사람들은 무엇보다 입이 즐거워야 귀도 즐거운 법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절에 한번 가 보십시오?
어쩌면 어느 절이나 메뉴가 다 똑같습니다?
맨날 비빔밥과 떡과 뜨거운 중국차..?
그렇잖아요?
한여름에도 뜨거운 중국차로 손님들을 대접하니 젊은 사람들은 물론 어른들도 누가 절에 가겠어요?
그렇지 않겠어요?
누가 요새 젊은 사람들이 비빔밥이나 떡을 먹습니까?
교회에 가면 시원한 아이스 원두커피에 푸짐한 뷔페식 최고급 음식에 교인들은 어느 누구나 다정하게 다가오는데 누가 교회에 가지 절에 가겠느냐 이겁니다?
불교는 방편 법이라면서요?
그런데 한국 불교는 지금 모든 것이 조선시대에 묶여있답니다.
이러한 것들이 모두 총섭(總攝) 이 잘못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거기다가 목사님이나 신부님들은 예배가 끝나면 밖에까지 나와서 신도들 손을 일일이 잡아주시면서 인사들을 하니 누가 성당이나 교회에 가지 절에 오겠어요?
절에 가면 스님들이 얼마나 뻣뻣하고 인사성도 없는데요?
그러니 아이들일수록 더욱 절에 안 가려고 하지 않는 거랍니다.
교회에 가면 얼마나 정겹게 대해주는데요?
이러한 것들이 모두 총섭(總攝) 이 잘못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절을 한번 보세요?
법문이 끝나면 주장자나 치면서 공양을 할 때에도 스님들끼리만 모여서 공양들을 하고 거기다가 신도들과 정다운 대화는커녕 ..?
그러나 교회는 목사님들도 전도사님들도 신도들과 다 같이 앉아서 정답게 대화를 나누면서 음식을 나눕니다.
이러니 누가 절에 가겠습니까?
에고😮💨.. 그만하지요?
지금은 기독교 쪽 분들도 이 글을 많이 보고 계시는데 더 이상은 낯 뜨거워서 말을 못 하겠네요?
물론 지금은 기독교도 쇠퇴해 가고 있는 중이랍니다.
왜냐하면 종교란 본래 그런 습성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그래도 불교 쪽보다는 아직은 여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참고 동영상>
https://youtu.be/YEzh8Z0p7bA?si=jO5UHv1ttSLEkc3C
아무튼 제가 자꾸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기독교 쪽 분들은 성령을 영접하는 방법을 몰라서 그렇다 하겠지만
불교 쪽 스님들은 불성을 증득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수행을 안 하고 있고 엉뚱한 짓들이나 하고 있어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인데요.
저는 그동안 그렇게 많은 절들을 가 보았어도 한두 군데만 빼고는 다들 수행 이야기만 꺼내면 스님들이 얼굴을 돌렸답니다.
한국 불교 큰 스님들은 지금 저의 이런 말에 역정만 내실 것이 아니라 다들 정신들을 바짝 차리셔야 한답니다.
안 그러면 다시 조선시대 때보다도 훨씬 더 크게 스스로 천민 신세로 떨어질 것이니까요.
그렇지 않겠습니까?
수행할 스님네 들이 천도재나 제사 같은 곳에 의식을 더 크게 두고 있으니 이보다 더 천박하고 천민스러운 일이 또 어디 있겠느냐 이겁니다?
아닙니까?
이러한 것들이 모두 총섭(總攝) 이 잘못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아무튼 지금 경허스님은 우리들에게 총섭(總攝) 즉 절 안에 살림을 담당할 능력 있는 장로를 잘 선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른 내용들은 모두가 총섭(總攝) 내용에 관한 보충 설명인 것이고요.^^
불교 이야기는 이쯤 하고 기독교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기독교 쪽 총섭(總攝)은 지금 비교적 잘 하고 있는데요.
불교식으로 말하면 포교(전도)도 열심히 잘 하고 있고 대중들과 소통을 하려는 노력도 잘 하고 있고 대중들에게 베풀거나 나눔 즉 불교식으로 말하면 보시도 아주 열심히 잘 하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의식이 밖으로만 향해 있는 것이 큰 문제랍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늘 주(主/자신) 안으로 기도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라고 하셨는데 모두들 다 내 주 안으로 가 아니라 밖으로만 의식이 가 있다는 것입니다.
기독교(基督敎)란 뜻도 사람에게 있어서 기본적인 터(基)가 되는 마음을 살피고 감독(督) 하는 종교(敎)란 뜻인데요?
그런데 내 주 안으로 의식이 가 있는 것이 아니라 아들 걱정, 남편 걱정, 심지어는 가난하고 헐벗은 사람들에게 밖으로만 의식이 가 있다는 것입니다.
문법상으로 보아도 [基督敎]라는 글자는 아주 정확한 표현이랍니다.
왜냐하면 한문은 어순이 (주어+동사+목적어)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쉽게 말해 마음의 터를 뜻하는 기(基)는 주어가 되는 것이고
그 마음의 터를 살피고 감독하라는 동사가 독(督)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것들을 가르치는 목적을 가지고 있는 글자가 교(敎)라는 것이고요.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지금의 목사님들이나 신부님들은 신도들에게 기독(基督)을 하라고 가르치지를 않는답니다?
모두가 바리새인들처럼 밖으로만 거룩하게 옷을 입고 거룩한 자세로 성경 책을 펼쳐들고 기복(祈福)을 하면서 입으로만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예수님께서는 (도마복음 제17장)을 통해 형제들에게 이렇게 말씀을 하고 계시는 거랍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너희에게 여태 눈이 보지 못한 것, 귀가 듣지 못한 것, 손이 만지지 못한 것, 사람의 마음에 떠오르지 아니 한 것을 주리라."]
라고 하셨던 거랍니다.
이 내용은 불교 쪽 수행자들이라면 누구나 알아들었을 그런 내용인데요.
이 말이 무슨 말씀이냐 하면?
기독교 쪽 분들도 성령을 깨닫고 영접해 보시면 누구나 아시겠지만 서령 자리는?
무색무취에다가 모양도 형상도 소리도 없는 그런 자리이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도 지금
[나는 너희에게 여태 눈이 보지 못한 것, 귀가 듣지 못한 것, 손이 만지지 못한 것, 사람의 마음에 떠오르지 아니 한 것을 주리라."]
라고 하셨던 것이랍니다.
이것이 곧 성령(불성)인 것이고요.
주는 것을 받으려면 영접을 해야 하는데 예수님께서는 그 영접하는 방법까지도 아주 자세히 가르쳐 주셨는데 지금 기독교인들은 전혀 이러한 사실들을 모른 체?
예배당 안에서 마치 바리새인들이나 무속인들처럼 기타 치고 북을 치면서 하나님만 찬양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우리들은 하나님의 자식이라고 하셨는데 이 말은 곧 우리들도 하나님이라는 뜻인데?
어찌 된 일이지 지금 기독교인들은 자신이 하나님이라는 사실도 모른 체 자기가 자기 자신을 숭배하면서 자기가 자기 자신을 향해 찬양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우매하고 어리석은 일이겠습니까?
기독교인들은 지금부터라도 모두가 성령을 영접하는 일에 떨쳐 일어나야 한답니다.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우리들을 인도하시겠다고 하셨답니다.
우리 기독교 형제들은 이 말씀을 믿고 따라야 한답니다.
제 말은
주 찬양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선행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기복(祈福)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제 말은 먼저 성령을 영접하는 일에 총력을 기울이시라는 것입니다.
내가 먼저 영생으로 거듭나고 그러고 나서 다른 형제들을 구원을 하든 찬양을 하든 선행을 하든 하라는 것입니다.
불교 식으로 말하면?
내가 먼저 도피안(到彼岸)을 이루고 나서 남들에게 보시를 하든 제도를 하든 선행을 하든 하라는 것입니다.
제가 이 자리에서 여러분들에게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여러분들이 성령을 깨닫고 영접을 하게 되면 찬양을 하지 말라고 해도 진심으로 요한처럼 주(主/자신) 찬양을 하게 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성령(불성) 자리가 그런 자리이기 때문에 그렇답니다.
왜냐하면 그 자리는 기독교 식으로 표현하면 한없이 온유하고 화평한 자리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진실)
따라서 기독교나 불교는 힌두교나 이슬람교 그리고 유대교처럼 기복(祈福)이나 하는 그런 허접하고 싸구려 종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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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모든 분들이 불성을 증하든 성령을 영접하든 하셨으면 진심으로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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