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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소림사, 오늘은 낙양(洛阳).
귀국하기까지는 아직도 5일정도 남았다.
남은 5일동안 북경으로 가서 만리장성, 용경협을 갈것인지 아니면 요근방 운대산을 갈건지 고민중.
우야튼 낙양으로 나가자.
소림사 에서 낙양까지는 버스로 2시간 이상 소요된다.
윗 google 지도상에서 보듯이 하남성 요근방에는 낙양, 숭산, 정주, 운대산, 태항산, 개봉(작두를 대령하라!!!! 라고 하는 포청천으로 유명한곳. 요즘 대한민국 정치인들 작두맛 볼사람들 한둘이 아니네),
요즘처럼 요런사태가 발생할줄 알았다면 낙양으로 가지 않고 바로 개봉으로 갈것인데..
작두를 위하여!!!!!!
요러크롬 정치가 개판이 될줄 알았다면 "개봉"으로 가서 포청천 아저씨를 만날것인데...
포청천 아저씨한테 부탁해서 성능좋은 작두하나 가지고 귀국할걸.............
그 작두를 가지고 몇몀 정치인들 모가지를 날려버리고 싶다.....
한국인이라는것이 자랑스러웠는데 요즘 같으면 쪽팔려서 원!!!!!!!
저기 먼 아프리카 부족국가도 아니고 대명천지 대한민국에서 요런일이...
짜증이 나서 텔레비젼 못보겠네요.... 어떻게좀 해봐요!!!!!!
"작두를 대령하라!!!!!!!"
한국인 관광객들이 많이들오신다.
사진도 "참좋은 여행" 에서 오신 한국분들의 관광버스. 반갑기는 매 한가지...
중국은 한국인들이 관광으로 먹여살리고 한국은 중국사람들이 쇼핑으로 먹여살리고....
정치적으로 잘만 풀면 서로 홍야!!!!! 홍야!!!!! 하면서 상부상조 하면서 잘살수 있을것 같은데...
어려운가요?????? 쉽지가 않나요????
시골 버스를 타고 낙양으로 가는중....
얼마전 태항산에 가족 여행을 갔던 집사람은 시골버스를 탔는데 냄새가 나서 죽는줄 알았대나 뭐래나???
잘난척말고 적응을 하세요.....나는 아무렇지 않더만..
외국까지 꼭 한국 음식을 싸들고 가는 사람은 이해불가,,,,
그사람들은 나같은 사람을 이해불가.
중국 길거리 음식중에 "초두부"라는것이 있는데 중국에 10년 살면서 역겨워서 한번도 먹어본 경험이 없다,,,,
얼마전 운대산 갔을때는 길가에서 중국사람들 먹는것을 구경하고 있었는데 전혀 냄새가 나지 않는다...
희안한 일이네....다음에 한번 먹어보는걸 시도 해야 겠다..
또 초두부 보다 강도가 좀 낮은 중국 "쌍차이" 라고 잇는데 한국사람들 95% 가 그것을 먹지 못한다.
생긴것이 미나리 처럼 생겼는데 아주 고약한 X냄새가 나서 먹지를 못한다.
그것도 어느 순간에 냄새가 나지 않더니만 초두부도 그렇다.
또 두리안이라는 과일이 있는데 그것도 냄새가 고약하다.
신의 과일이라고 하는데 겉에 가시가 있고 냄새는 고약한데 속살은 맛이 있다.
신들이 자기네들만 먹고 인간들한테는 먹지 못하게 할려고 X 냄새가 나고 겉에 가시를 만들었대나 뭐래나?????
한편 중국 사람들은 맛있는 들깨잎을 먹지를 못한다고 하니 "피장파장" 이다
어쩜 저런 바보들이 있나???
들깨 잎에 아나고회 한숫가락 듬뿍, 마늘, 청양 고추 넣어서.....
침이 꼴깍 하고 넘어가네요..
낙양 고속철역.
원래 낙양(洛陽)이라는 이름은 도시가 낙수(洛水)의 북쪽에 위치한 데에서 유래되었다.
강은 서쪽에서 동쪽으로 흐르고 해는 강의 남쪽 부분에서 뜨기 때문에 햇빛은 항상 강의 북쪽 부분이 받게 된다.(이것은 중국의 오래된 작명 방식이다)
낙양은 몇 세기 동안 낙읍(洛邑), 낙주(洛州)와 같은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다.
또한 당나라 때는 동쪽의 수도라는 의미로 동도(東都)라 불렸고 송나라 때는 서쪽의 수도라는 의미로 서경(西京) 혹은 경락(京洛)으로 불리었다.
주나라 시절에는 낙수와 마찬가지로 雒陽, 洛陽 등의 표기가 공존했고,
진나라는 수덕(물의 덕)을 표방했으므로 洛陽을 공식화했다.
한나라는 화덕(불의 덕)을 숭상했으므로 洛(낙)의 삼수변을 꺼려 雒陽을 사용했으나,
위나라는 토덕(흙의 덕)을 내세웠으므로 다시 洛陽으로 돌아갔다.
위경(魏京)'은 지금도 다른 낙양의 비공식적 이름으로 사용된다.
이는 낙양이 삼국시대의 위나라의 수도였기 때문이다.
또, 낙양의 북쪽에 있는 북망산(北邙山)은 하남성[河南省] 낙양[洛陽] 북쪽에 있는 산으로, 옛날의 왕후나 공경[公卿]들이 대부분 이곳에 묻혔다.
북망산(北邙山)의 본래 이름은 망산(邙山)이다.망산이 낙양의 북쪽에 위치하기에 북망산이라 불리는 것이다.
본래 북망산은 풍광이 수려한 명산이었다.그러나 그 수려한 풍광이 명당자리를 찾는 고관대작들이 하나둘씩 북망산에 묏자리를 만들었고 북망산을 공동묘지로 만들었다.
낙양 역 부근 뒷골목 풍경
사진상 간판에 보이는 "의약 초대소" 라고 보이는데 초대 한다는 뜻이 아니고 우리로 말하면 허름한 "여인숙"이다. 한국사람 기준으로는 하룻밤 신세지기가 쉽지 않은 곳, 외국인은 투숙이 안됩니다.
한(漢) 고조 유방(劉邦)이 세운 한나라 시기에 대도시로 발전하고, 황하강을 통해 물자가 많이 들어와 경제적으로 발달한 도시로 거듭난다. 후한말 십상시의 난 끝에 정권을 잡은 동탁이 전횡을 휘두르자 반동탁 연합군이 궐기하였다.
동탁은 이를 피해 장안(서안)으로 천도하고 낙양에 불을 질러 깡그리 폐허로 만들었다.
호텔에 체크인하고 마침 먹고 싶었던" 신장 위그르" 족의 양꼬치 집에서 한잔 한고 있다,
양꼬치 한개에 3원. 맥주 한병 5원. 10개를 시켜놓고 맥주 3병을 마시니 취기도 거나하게 올라오고 허기도 채웠다.
합이 45위엔입니다.
이 사건 이후로 옛날이나 지금이나 뤄양 시민들은 동탁에 대해서 깊은 반감을 가지고 있으며, 동(董)씨 성을 가진 사람들을 혐오한다. 동탁은 멋대로 권력을 휘두르다가 왕윤과 여포에게 죽었지만 중앙 정부가 마비되면서 각지에서 군벌들이 난립하였다.
그 중 강력했던 군벌인 조조가 황제에게 건의하여 낙양을 재건하는 한편 수도를 임시로 하남성 에 있는 허(許)로 옮겼다.
위나라가 세워지고 조조의 아들 문제 조비가 낙양을 다시 정비하여 새로이 황궁이 들어서고 많은 주민들이 이 곳으로 이사를 와 가장 화려하고 번창한 도시로 부활하였다. 위를 이은 서진 역시 수도를 낙양에 두었다.
그러나 화려한 번영을 누리던 도중, 4세기에 들어 북방의 유목민족이 화북에 침입해오기 시작했다.
수 양제 양광(楊廣)은 백성들의 의견은 듣지도 않고 무리를 하면서까지 아버지인 수 문제 양견(楊堅)이 수도를 장안(長安)에 두었던 것을 낙양으로 옮기려 하였는데, 이는 수나라가 망하는 한 원인이 되기도 했다. 양광은 황위에 오르고 백성들로 하여금 강제로 토목 공사를 시켜 낙양에 큰 대수궁을 짓고 큰 운하를 만들었다.
당나라가 중국을 통일하면서 낙양은 장안 다음으로 큰 도시가 된다. 이제 비록 낙양은 정치적인 도시로써의 기능은 쇠퇴했으나, 황하 강을 통한 경제적인 도시로써의 기능은 변함이 없었다. 경제적으로 아주 발전한 도시였기에, 장강(長江)에 있는 대도시 남경(南京)과 더불어 당나라 이후의 시기부터 현대 시기까지 낙양은 중국 왕조 시절 중에도 갑부들이 가장 많이 거주하는 도시로 거듭났다.
총 인구는 654만명이고, 시내의 각 구 인구는 140만명이다.
뤄양 시는 32개의 민족들이 거주하며 그 중 한족이 602만명으로 뤄양 시 인구의 98.8%를 차지한다.
그 다음 소수민족은 8만명으로 뤄양 시 인구의 1.2%를 차지한다.
신장 위그르 지역은 중국 서부 우루무치 지역이다. 카자흐스탄, 우즈베크스탄 등등 하고 인접해 있어서 이지역 중국 사람들 생긴것도 서양애들 외모다.
밖에는 비가 부슬부슬 오고 있다. 배낭여행자에게는 많은 상념들이 머리를 스쳐지나가고 마음도 뒤숭숭 하다
맞은편으로 보이는 호텔(신은성 빈관)이 내가 묵고 있는곳이다.
버스는 낙양역에 나를 던져 놓는다. 어느 공항이나 어느 역이나 혼자 내리면 반겨줄이 없는 곳에는 황량하고 외롭기 그지 없다.
기차역을 조금만 벗어나면 가격도 싸고 괜찮은 호텔들이 있다.
사람사는곳은 어디나 다 똑같애서 여기 낙양역 앞에도 호객하는 아주머니들이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는다.
아마도 우리 옛날 용산역, 혹은 서울역, 혹은 청량리 역처럼 하꼬방(?)에서 몸을 팔아 하루하루 부나비처럼 고단한 생계를 유지 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다,
나는 수염을 길러서 인지.... 아니면 노인네라고 그러는지 붙잡지는 않는다.
좀 섭섭하네....
붙잡으면 못이기는체 하고 따라갈지도 모르는데(농담입니다).....
여기서 따라가시면 안됩니다.
잘못하면 크게 다칠수 있어요. 중국에서는 모르는 남녀가 같은 방안에 있으면 처벌 받습니다.
한참 몇년전 중국 공안 함정 단속에 한국인들이 "대련"에서 많이 단속이 되어서 개망신을 당했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한참을 걸어가다보니 괜찮아 보이는 호텔이 보인다.
호텔 로비로 들어가서 카운터에 "여기 외국인도 투숙 가능해요???" 하니 된다고 한다.
얼마요? 하니 80위엔 이란다, 믿겨지지 않아서
다시한번더 물어본다, 얼마라구요????
80위엔...크크크크!!!!
그래요? 그러면 방 구경할수 있나요? 하니 하오!!!!하오!!! 한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서 보니 가격대비 아주 훌륭하다.
이런정도이면 대충 200위엔에서 300위엔 정도 하는데....
이게 왠 횡재야????
그래서 이 놈의 호텔비 때문에 북경 가는것을 포기하고 낙양에서 4일동안 죽치고 마지막날 북경으로 가서 연태로서 해서 빠져 나오면 된다. 비행기 티켓이 그리 되었으니까....
낙양!!!!!!!
맘에 들어요...매력있는 도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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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주신글과 이런저런 사진들 감사히 봅니다.
바람이 한층 차가워지는 가을의끝
발아래 낙엽 부스러지는 소리에
짥은 가을이 아쉽네요.
가을의 끝자락 여유롭게 잘 마무리 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