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0일(연중 제29주일, 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한 미사(전교 주일)) 그리스도인들은 착하고 좋은 사람들 어느 날 교우들과 성당 차를 타고 가는 중이었다. 운전하는 교우가 약간 과속 운전을 하자 한 형제가 그에게 이 차에 성당 이름이 새겨져 있다고 말하자 속도를 줄였다. 차 안에 있던 우리는 한바탕 웃었다. 성당 다니는 사람들은 착하고 좋은 사람들이고 모범이 되어야 한다.
몰랐겠지만 모든 그리스도인은 선교사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이렇게 분부하셨다.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마태 28,19-20).” 그런데 선교나 전교보다는 복음화라는 말이 훨씬 반갑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복음대로 산다면 전쟁은 말할 것도 없고 끔찍한 범죄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사야 예언자가 내다본 세상이다. “그분께서 민족들 사이에 재판관이 되시고 수많은 백성들 사이에 심판관이 되시리라. 그러면 그들은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리라. 한 민족이 다른 민족을 거슬러 칼을 쳐들지도 않고 다시는 전쟁을 배워 익히지도 않으리라(이사 2.4-5).” 그렇게 되면 아마 종교도 없어질 거다. 서로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지 않은 건 잘못이라고 여기는 사회에 다툼이 있을 리 없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을 믿고 서로 사랑하고 더 나아가 원수까지 사랑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그것이 주님의 명령이어서라기보다는 구원과 완성의 유일한 길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좋은 지도자를 가진 공동체는 복 받은 거다. 좋은 본당 신부, 좋은 정치 지도자가 있는 공동체는 평화롭다. 그런데 그 지도자들이 단지 정의와 공정만을 추구하기 때문은 아닐 거다. 그럴 거면 굳이 지도자가 필요 없다. 모든 법규와 판례를 입력해 놓은 AI 인공 지능이 지시하는 대로 따르면 될 거다. 좋은 지도자는 정의와 공정 외에도 갖추어야 할 덕목이 많다. 특히 지배자나 관리자보다는 봉사와 희생의 마음 그리고 초인적인 인내와 이해심을 가진 사람이어야 한다. 양들을 위해 목숨을 내놓는 착한 목자(요한 10,11)이어야 한다. 우리 주님이신 예수님이 바로 그런 분이셨고, 우리는 그분이 좋은 지도자를 넘어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셨다고 믿는다. 그래서 사랑하지 않은 것, 인내와 이해의 부족을 잘못이고 죄라고까지 여기며 그분 말씀을 따르려고 애쓰는 거다. 프란치스코 교종은 이번 전교 주일 담화에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명은 반드시 예수님의 방식을 본받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기쁨과 인내와 호의(갈라 5,22 참조)로 이 일을 해야 하고, 압박이나 강요나 개종의 방식을 통해서가 아니라, 친밀감과 연민과 온유로써 해야 하는데, 이것이 바로 하느님의 고유한 존재 방식과 행동 방식이라고 말한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선교사다. 또한 그들은 착하고 좋은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인데, 세례성사의 은총 안에 그렇게 되게 하는 힘이 담겨 있다. 착하고 좋은 사람을 반기지 않는 이들은 없다. 선교란 복음화된 자기 삶으로 세상을 복음화하는 걸 거다. 세례자 숫자 늘리는 생각은 이제 그만하자. 서로 사랑하지 않고, 가장 작은 이들 안에 계신 주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섬기지 못했기 때문에 교회가 비난받고 신앙의 고귀한 언어들이 웃음거리가 된 거다. 삶이 우리가 외친 믿음을 따르지 못한 결과이다. 영웅적인 희생이 아니라 양보와 배려, 작은 목소리지만 불의한 것에는 ‘아니오.’라고 말하는 용기, 형편이 좋지 않아도 나보다 가난한 이들을 위한 지속적인 자선 등 이런 것이 착하고 좋은 사람들, 그리스도인들이 빼앗기지 말아야 하는 것들이다. 그리고 이렇게 사는 이유는 단 하나,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느님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그러셨던 거처럼 말이다. 우리 혼자서는 못하지만 주님이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시니 할 수 있다(마태 28,20).
예수님, 주님은 저희 삶의 최고 모범입니다. 주님에게서 사는 법을 배우고 왜 그리고 어떻게 그렇게 사는지 배웁니다. 더디 가고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 끝까지 주님을 따르겠습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제 발길을 주님의 길로 인도해 주시고 끝까지 따르게 도와주소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