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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이야기 9부
'야!'
-우린 서로의 이름도 모르고 있었고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게 더 편했었는지도 모른다.-
'우리집 이사간데~~~~'
'어 정말? 언제 이사가는데? 정말 가는거야?'
'겨울방학 시작하면 이사하신데
이제 우리 얼마 안 있으면 못 보겠다. 아쉽지?'
'아쉽긴 모가 아쉽냐? 이제 나무님이랑 나랑 둘이서
맘편하게 신나게 놀 수 있는데 몰'
'진짜 안 아쉬워? 난 조금은 아쉬운데....'
'한개도 안 아쉬워 빨리 가버려라.'
말은 그렇게 했지만 또다시 혼자 남겨진다는 생각에
덜컥 겁이나고 눈물이 흐를것 같았다.
‘울면 안돼 울면 안돼... 나 또 버림받을꺼야....’
이 친구도 날 버리고 떠나는거라고 생각이 들었었는지도 모른다.
너무 겁이 났기에.
그 뒤로 난 한동안 그 나무를 찾아가지 않았다.
다시 메마른 학교 생활에 혼자 집에서 숙제하고 밥먹고 잠들고
마치 회사원같은 생활을 이어갔다....
억지로.... 누군가와의 이별이 겁이 났기에.....
큰아버지는 이런 날 이상하게 생각하셨는지
저녁 식사시간에 입을 여셨다.
"진우 요즘은 밖에도 나가지 않고 집에만 있니?
니 나이때는 한창 뛰어 놀아야되는데?"
아버지와 나이터울이 컸었던 큰아버지시기에 말씀하시는건
꼭 할아버지 같으셨다.
"춥잖아요...."
"이럴 때 일 수록 밖에서 뛰어 놀아야 돼.
한동안 친구들이랑 잘 놀고 그러는 것 같더니?
친구랑 싸움이라도 한게야?
그럼 못써 싸우고 나서 먼저 화해하자고 손내미는 사람이
진짜 멋있는 남자인거야 싸우고 꿍하고 있으면
그거 사내자식이 할 짓이 아닌거야.
진우가 잘못한게 있으면 니가 먼저 용서를 빌고
친구가 잘못한게 있더라도 '내가 미안해'
라면서 먼저 손내밀어야 진짜 남자다."
"진짜 남자요?"
"그래 진짜 남자"
"하지만. 날 버리고 떠난댔어요... 엄마처럼."
큰아버지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엄마의 일을 기억조차 제대로 하지 못할꺼라 생각했던
내 입에서 단 한 번도 엄마이야기라면 입 밖에 내지 않았던
내 입에서.
그 소녀와의 일 때문에 처음으로 입 밖에 꺼낸 꼴이 되었으니.....
한동안 아무 말씀이 없으셨던 큰아버지가 다시 조용히 입을 여셨다.
"그래서 그 친구가 너 밉다고 하더니?"
"그건 아닌데 어쨌든 못 볼꺼라고 이사간다고...."
갑자기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리고는 혼자 훌쩍거리다가 끝내 울음을 터뜨려버렸다.
큰아버지는 적잖이 당황하신 기색이 역력했다.
어머니가 떠나신날 이 후 그 4년 동안 단 한 번도 난 울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엄마도 니가 미워서 떠난 건 아니었을꺼야.
엄마도 사정이 있으셨던거란다.
그리고 친구는 이사 가는거잖아.
좋은 집으로 이사가는 거일텐데
그럼 니가 가서 축하해줘야 할 일이지
왜 울고만 있어.... 불쌍한 내 새끼 그만 울어.. 눈물 뚝!
남자답게 울지 말아야지.
그리고 내일은 그 친구 이사가는거 축하해 줘야지."
"이사 갔으면 어떻게 하죠? 방학할 때 쯤 이사간다고 했는데....
내일 방학식이란 말이에요"
"진우야 이사라는건 겨울엔 잘 안하는건데? 내일 꼭 가봐
친구집에. 알았지? 이렇게 헤어지면 친구가 오히려
자기가 싫어져서 얼굴안보는거라고 생각할 텐데?
그래도 괜찮겠어? 엄마가 널 미워해서 떠난게 아니었지만
넌 엄마가 너 미워서 떠난거라고 생각하잖아.
친구도 아마 너랑 같은생각하지 않을까?"
"어? 그런거 아닌데.. 정말 그런거 아닌데...."
울보 꼬맹이가 아니었던 나는 그날 또 울어버렸다.
혹시라도 내가 받은 상처처럼 그 소녀도
그런 상처를 받게 될까봐...... 그게 겁이 났었는지도 모른다.
그날 나는 일찍잠이 들면 아침이 일찍 찾아올꺼라고 생각하는
전형적인 어린아이의 생각으로 초저녁부터 잠을 청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학교로 내달리듯 달려갔다.
사실 우리 둘은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이름도 학교도 반도 심지어는 얼굴조차도
그날 언덕에서 보았던 작은 이미지 하나일 뿐 아무것도 없었다......
"여러분 겨울방학동안 몸 건강히 잘 지내야 해요
군것질 많이 하지 말고 알았죠?"
선생님의 말과 함께 아이들은 만세를 외치며 친구들과
왁자지껄 떠들면서 학교정문을 나올 무렵
난 무작정 그곳으로 달려갔다.
숨이 터질듯할 정도로 나무를 향해 달려갔다.
멀리서 나무가 보였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제발.... 가지 않았어야 하는데..
가지 말았어야 하는데....'
언덕에 도착했을 무렵.....
내 눈앞에 보인것은...
나무에 붙어있는 수십장의 메모들....
'야 바보 똥개야 너 오늘은 대답도 없냐?'
'어라 오늘도 안왔네 어디 아픈거아니니?'
'어떻게 된거야....?'
'삐진거야?'
'나 미워하니? 나 미워하지마 내가 몰 잘못했는지 이야길 하면
내가 고치면 되잖아'
'나보다 먼저 이사간건가? 에이 나쁜놈 가면 간다고
이야길 하지.....'
'잘있어. 나 방학하면 바로 가게 돼서
더 이상 못볼지도 모르겠네... 잘있어...'
마지막 메모였다. 그걸 보는 순간 후회가 밀려오기 시작했다.
"난 너 미워한거 아닌데... 미워한거 아닌데....."
또다시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소리내어 울기 시작했다.
"그런거 아닌데.... 으아아아아앙"
얼마를 그렇게 울었을까.....
그 추운 겨울날의 날씨에 울기까지 하자 코끝이 시려왔다.
겨울바람이 꽤나 매섭게 내 눈과 코를 얼게하고 있을 무렵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그해 겨울의 첫눈이었다.
"야! 남자가 울고 있냐?"
그 소녀였다. 왜 우는지 궁금한 듯 쳐다보던 그 소녀는
내 손에 들려있는 자기의 쪽지를 발견하고는
잠시 가만히 생각을 하더니
그 작은 고사리 같은 두 손으로 내 얼굴을 감싸주었다.
남자로써 자존심이 상할만도 할 일이었는데 왠지 모르게
그 손길이 엄마의 손길 같아서 였는지....
'참아야 되는데 참아야 되는데 우는 모습 보여주면 안되는데....'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다가 또 울었다....
소녀가 마치 누나인양 내 눈물을 닦아주면서 내게 말을 했다.
"나 아직 안갔어. 너 기다렸단말이야.
그런데 얼굴 이렇게 마주 보는건 처음이다 그치?"
훌쩍거리던 눈물을 훔쳐내면서...
고개를 푹 숙인채 조용히 입을 열었다.
"나 너 안 미워해. 너 못 보게 되는거 겁이 났었어....
버림받는거 같아서..... 우리 엄마도 나 버리고 갔단말이야....
너도 나 버리는것 같아서...."
"그랬구나.... 그래서 안왔던거구나. 그래도 다행이다...
가기전에 볼 수 있어서...."
소녀의 얼굴에 안도감과 함께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기 시작했다.
그 미소는 지금까지도 단 한번도 본적이 없는 그런 예쁜 미소였다.
"언제 가는데?"
"내일 이사가."
"큰아버지 거짓말쟁이."
"왜?"
"겨울엔 이사 안한다고 그랬단 말이야"
"아... 더 추워지기 전에 가야된다고 하셔서
이번 겨울은 따뜻하게 보내자면서 아빠가 결정하셨어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모."
"진짜 내일 가?"
"응 내일 가 그런데 우리 이렇게 얼굴 보니까 신기하고 막 그렇다? 넌 안 그래?"
"그래.... 콜록 콜록"
그 바람차고 추운 겨울날 꽤 긴거리를 달려왔고 오자마자
몸이 차갑게 식다시피 한 나는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어라 너 감기 걸리겠다.... 빨리 집에가야겠다.
따뜻한 거라도 먹어야지."
분명 같은 나이인건 분명한데 그 소녀는 내게 누나같이 느껴졌다.
'지금 가면 못 볼 지도 모르는데....'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무렵
"내일 우리 집 이사 가기 전에 여기서 또 꼭 보자~~~
알았지? 괜히 감기 걸리지 말고 빨리 집에 들어가...
어? 너 머리에서 열도 나고 막 그래... 빨리 집에 들어가 알았지?"
"알았어... 몇시에 봐?"
"12시까지~~~~ 늦으면 바보~~~ 똥개~~~~~"
어느새 울음도 그치고 난 해맑게 대답했다.
"응 알았어~~~ ."
첫눈이 내리던 그날 소녀는 그렇게 나무 밑을 떠나갔고
나도 집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그 날 저녁...
난 새벽녘에 응급실로 실려가게 되었다.
병명은 독감.... 정신도 제대로 차리지 못한채 병원에 실려갔고
내가 병원에서 퇴원했을때는
이미.... 약속한 그날로부터 3일이나 지나고 난 뒤였다.
퇴원 후 멀쩡하지도 않은 몸을 이끌고 나는 마지막 희망을 갖고
언덕을 올라갔다.
그리고 그 나무에는 마지막메모가 남겨져있었다....
'forget mi not'
무슨 말인지 전혀 알아볼 수 가 없어서....
큰아버지께 여쭈어 보았다....
큰아버지는 그 메모를 보시더니 잠시 웃으셨다.
"허허 이거 누가 적은거니?"
"친구가요.... 이사 간다는 그 친구가요."
"영어를 적긴 적은 건데 잘못 적은 것 같다. forget mi not이 아니고
forget me not 이라고 쓰는거란다."
재밌다는 듯이 잠시 지켜보시던 큰아버지가 웃으시면서
내게 말씀하셨다.
"이 말은 나를 잊지 말아주세요~~~~ 라는 뜻인데.
진우야. 너 여자친구였던게지?"
"예? 아니 그게 아니고.... 그런거 아니구요... 큰아버지..."
다 아신다는듯한 그 눈빛으로 말씀하신
큰아버지는 이게 무슨 뜻인지
이게 어디에 나온말인지도 알려주셨다.....
그날 저녁 사실 그 소녀를 다시 볼 수 없다는 슬픔보다는....
왠지모를 두근 거림에 밤새 잠을 이룰 수 없었고
그 다음날엔 큰아버지가 나를 깜짝 놀라게 해주셨다.
자는동안에 내가 품고 있던 그 메모를 아침 일찍 어디에서 해오셨는지.
그 메모지를 코팅해서 내 생애 첫 지갑과 함께 선물해주셨다...
'진우야 첫 사랑한 기념이다~~~'
라는 메모와 함께.....
그 소녀를 떠나 보내고 두 번 다시 보지 못했지만.
그 소녀로 인해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열고 다가가는 방법을 배웠고
겉으로만이 아닌 진짜로 웃는 법을 익혀나갔다.
하지만 그리움과 버림받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은
언제나 나와 함께 했다...
그래서 힘들때면 그녀를 생각하면서
그 메모와 함께 나는 한 번 더 웃을 수 있었다...
물론 그 소녀와의 만남으로 내 마음의 상처가 완전히 치유되거나 한것은 아니었다.
그 후로도 언제나 웃는것을 먼저 했던것은 똑같았다.
달라진게 있다면.... 웃기 싫어도 웃는게 아니라
웃을때는 그 소녀를 생각하면서 웃었다.
"여기가 어디죠?"
"정신이 드십니까? 훈련 때문에 사고가 나서
여기에 실려왔습니다. 여긴 국군 수도 통합 병원이구요."
내가 군인이란 신분조차 망각했었는지
내 입에선 군대에서 금기외더진 단어 요! 가나와버렸다.
"긴 꿈을 꾼 것 같습니다."
"석달이나 지났습니다. 당시 머리를 심하게 부딪혀서 상태가 많이 안좋았었습니다."
"그렇게나 오래 잠이 들었었는지 몰랐습니다."
"어머 첫 눈이 내리네요."
창밖엔 눈이 내리고 있었다.....
그 소녀와 마지막으로 헤어졌던 그 날처럼...
생각에 잠겨 있을 무렵 간호장교가 심각한 표정으로 내게 말을꺼냈다.
"박진우 상병.... 그런데 박진우 상병다리가......"
-나무이야기 9부 끝-
야나기군입니다.
긴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먼저 써두었던 분량은 이제 거의 다 끝나가고 있는지라.
뒤부터는 올라오는게 조금 늦겠네요 ^^
첫댓글 다리가.. 왜요? 흑.흑..저 슬프게 하지마세요!! 역시 동생이었군요.. 언니가 눈이 안보이면서부터 둘의 성격이 바뀌어갔으니까.. 언니가..예전에 웃어주던 그 친구를 떠올리게 만든거네요.... 끝이 어떻게 될지...흠..흠..기대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