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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란 슬픈 길을 알고 왔어도 ...그늘에서 곱게 피다 지리라’
‘사랑’, ‘야생마’. ‘금산 아가씨’, ‘소라의 노래’, ‘기도하는 도미니카’, ‘살짜기 옵서예’의 가수 김하정씨는 1968년 이광수 원작소설을 영화화한 ‘사랑’의 주제가를 부르며 데뷔했다.
MBC 드라마 주제가 ‘야생마’ 그리고 예그린악단의 뮤지컬 ‘살짜기 옵서예’ 등에 출연하며 다재다능한 실력을 발휘했던 실력파 가수.
양반의 위선을 풍자한 고전소설 '배비장전'을 현대적으로 각색한 창작 뮤지컬 ‘살짜기 옵서예’에서 김하정은 기생 ‘애랑’ 역을 맡았다. 춤과 노래 그리고 연기가 바탕이 되어야만 할 수 있는 역할이었다. 이후 뮤지컬 ‘땅콩 껍질 속의 연가’, ’캬바레‘, ’바다여 말하라‘, 그리고 TV 뮤지컬 ‘황진이’와 ‘대춘향전’ 등의 주인공 역을 맡아 전성기를 구가하던 가수 김하정.
노래면 노래, 연기면 연기, 그야말로 만능 엔터테이너였지만 이후 누구보다도 드라마틱한 삶을 살아야 했던 가수 김하정. 그의 삶과 사랑 그리고 노래 이야기, 그 첫 번 째.
글 박성서(음악평론가, 저널리스트)
▲ ‘거룩한 사랑의 노래, 뭉클한 사랑의 테마’라는 캐치 플레이즈를 내건 영화 ‘사랑’ 광고지와 음반 재킷
이광수 원작소설, 영화주제가 ‘사랑’으로 데뷔
1. 사랑이란 슬픈 길을 알고 왔어도/젊음의 꽃밭에는 찬비만 내려/운명이라 달래보는 백의의 천사/행여나 오실까 아~ 못다한 사랑/그늘에서 곱게 피다 지리라.
2. 그리움을 꿈에 실은 밤이 지나면/또다시 맞아야 할 서러운 아침/얼어붙은 북녘 하늘 눈 덮인 옛날/언제나 만날까 아~ 영원한 사랑/기다리는 여인 울지 않으리.
춘원 이광수의 원작소설을 영화화한 ‘사랑’의 주제가다. 유한철 작사, 황문평 작곡의 김하정 데뷔곡이다.
‘거룩한 사랑의 노래, 뭉클한 사랑의 테마’라는 캐치 플레이즈가 그렇듯 진실한 사랑 이야기를 그린 이 영화는 강대진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신영균, 김지미, 문희가 주연을 맡았다. 1968년 2월 11일 국도극장에서 개봉되었으니 이날이 가수 김하정의 데뷔일이기도 한 셈이다.
영화가 연일 매진사례를 이어가며 주제가를 부른 신인가수 김하정 또한 점차 주목받기 시작한다. 맑고 호감이 가는 이 새 목소리에 신곡 제의가 잇달았고 점차 스케줄이 늘어나면서 급기야 스케줄만을 따로 관리하는 매니저까지 둘 정도였다.
진도 출신의 ‘촌닭’에서 ‘가요계 신데렐라’로 부상하다
영화주제가 ‘사랑’으로 일약 신데렐라로 떠오른 김하정은 사시사철 동백꽃이 피어난다는 섬, 진도의 고군면 신리에서 부친 김대봉, 모친 박정납 사이에 3남 2녀 중 셋째로 태어났다. 본명 김지숙.
“진도에서 교장선생님으로 계시던 아버지께서 초등학교 5학년 때 갑자기 돌아가셨어요. 그때부터 활달하던 성격이 내성적으로 바뀌면서 혼자 노래 부르며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지요.”
부친이 타계한 뒤 생활이 어려워지자 모친은 작게나마 농사일을 시작했고 그때 고등학교를 막 졸업한 큰 언니 은순씨가 광주로 나가 직장생활을 하며 동생들을 뒷바라지했다. 하정 역시 언니의 권유로 광주 수피아여고에 들어간 뒤 졸업 후 언니가 차린 ‘화니미용실’에 미용사로 들어갔다. 언니의 권유로 방학 때 미용학원을 다니면서 미용사 자격증을 딴 것.
“낮에는 미장원에서 일하고 밤에는 음악학원에 다니며 기타를 배웠어요. 손님이 없을 땐 혼자 기타 치며 노래하기도 했고 나중에 손님이 많을 때도 손님들 요청으로 노래를 불러 박수를 받곤 했지요. 단골 중에서는 내 노래를 듣기 위해 미용실에 오는 사람들도 제법 많았었죠.”
점차 노래를 잘 한다는 소문이 나기 시작하면서 주위의 권유로 광주문화방송이 주최한 ‘호남가요콩쿠르’에 출전한다. 이때 패티김의 노래 ‘내 사랑아’를 불러 1등 상을 차지하며 광주 MBC 전속가수로 활동을 시작한다. 1967년도의 일이다.
‘내 사랑아’는 당시 기존가요들과 다르게 상당한 성량과 가창력이 요구되는 노래다. 이 노래는 작곡가 길옥윤의 곡으로 그가 일본에서 요시아준이란 이름으로 활동할 당시 잠시 귀국해 가진 공연에서 만난 트럼피터 이봉조·가수 현미 커플에게 선물로 건네준 노래다. 1962년, 길옥윤 첫 데뷔작이자 현미의 데뷔곡이기도 하다. 이후 패티김이 불러 크게 히트했다.
당시 방송국 전속 가수들은 인근 지역이나 농촌 등을 순회하며 공개방송 프로그램 위주로 활동했는데 전속가수 담당 장일영 PD가 노래하는 모습을 지켜본 뒤 시골에서 썩기 아깝다며 서울로 올라가 활동하라고 추천장을 써주었다. 작곡가 박춘석씨와 오아시스 손진석 사장 앞으로 각각 보내는 추천서였다.
▲ 1960대 후반과 1970년대 초반에 발표한 김하정 음반들
광주MBC PD 추천서 들고 오아시스를 찾아가다
김하정은 1968년 1월, 추천서를 들고 서울 충무로에 있는 오아시스레코드사를 찾아간다. 오아시스 손진석 사장은 대뜸 먼저 노래를 불러보라고 했다. 이때 부른 노래 역시 패티김의 ‘내 사랑아’. 노래를 듣고 난 후 사장의 반응은 “노래는 썩 잘하는데 판은 안 팔릴 것 같다”였다. 그러면서 곧장 작곡가 황문평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조금 전 시골서 막 올라온 촌닭이 하나 있는데 노래를 패티김처럼 잘해요. 아, 내일요? 그러지요.” 손사장은 전화를 끊더니 됐다며 내일 다시 한번 오라고 했다.
다음날 김하정은 황문평 선생 앞에서 심성락 선생의 피아노 반주에 맞춰 ‘내 사랑아’를 다시 불렀다. 노래를 다 듣고 난 뒤 황선생은 좋다며 연습을 해보자고 했다.
“그때 황문평 선생님은 곧 개봉할 영화 ‘사랑’의 주제가를 부를 가수를 찾고 있었어요. 본래는 패티김이 부를 예정이었는데 해외공연 관계로 녹음이 늦어져 급하게 대체할 가수를 찾고 있었던 거죠.”
그로부터 사흘간 연습 끝에 드디어 남산에 있는 한양녹음실에서 영화주제가 ‘사랑’을 녹음했다.
이를 계기로 김하정은 오아시스에 출근하기 시작한다. 이곳에서 처음 한 일은 물심부름과 선배 가수들의 노래 신청엽서를 써 방송국에 보내는 일이었다.
드디어 영화 ‘사랑’ 개봉 첫날, 시사회가 있는 날이었다. 황문평 선생과 국도극장에 함께 갔다. 영화가 시작되는 동시에 주제가가 극장 안에 가득 울려 퍼졌다.
“대형스크린에서 내 목소리의 노래가 나오는 순간, 몸이 얼어붙었어요. 그러면서 동시에 너무나 황홀했지요. 이게 정말 내가 부른 노래란 말인가... 마치 꿈꾸는 것 같았지요.”
당시에는 신인가수가 영화주제가로 데뷔한다는 것은 대단한 행운이었던 시절이었다. 김하정씨는 말 그대로 화려하게 데뷔를 한 행운아였다.
영화주제가가 좋은 반응을 얻자 오아시스 측에서 서둘러 전속 가수 계약을 맺고 정식 음반 취입에 들어갔다.
“녹음하는 중에 황문평 선생님이 갑자기 야단을 치시는 거예요. ‘너는 이 나이가 되도록 연애도 한 번 못 해봤느냐. 이 노래는 아이스크림 맛이 나게 불러야 하는데 어째 싱거운 빙수 맛이 나느냐”며... 잔뜩 긴장했으니 더욱 그러했겠지요.”
▲ 데뷔 시절 CBS ‘시민위안대잔치’ 공개방송에서의 김하정. 아래 사진은 동료 가수들과 함께. 좌로부터 정은숙, 조미미, 김용만, 홍경아, 김하정, 이영숙
드라마 주제가와 영화주제가 취입, 한꺼번에 몰려
오아시스에 전속되자마자 신곡 취입 제의가 시작되었다, 가수가 되었다는 실감을 채 느낄 겨를도 없이 연습과 취입이 쉴 새 없이 이어졌다.
김학송 작곡의 ‘첫사랑 별이 웁니다’, ‘낳은 정 기른 정’, 남국인 작곡의 ‘헤어져야 할 사람’, 김예출 작곡의 ‘빗속의 연정’ 등등, 이 노래들은 모두 당시 옴니버스 음반(여러 가수들의 노래가 함께 수록된 음반)의 타이틀 곡들이었다.
특히 드라마 주제가와 영화주제가가 많았다. 이중 가수 김하정을 알린 또 하나의 노래가 KBS 라디오 연속극주제가 ‘기도하는 도미니카’다.
1. 성난 파도 밀려간 수녀원 폐허 위에/먹구름 핏빛 하늘 걷히게 하소서/우러러 하늘 보며 기도하는 도미니카/아--- 사랑도 죽음도 오직 한 길 믿음으로/아베 마리아 아베 마리아 아베 마리아.
2. 군화가 짓밟고 간 산기슭 호숫가에/어둠의 붉은 장막 거두어 주소서/우러러 하늘 보며 기도하는 도미니카/아--- 증오도 수난도 오직 한 길 믿음으로/아베 마리아 아베 마리아 아베 마리아.
-‘기도하는 도미니카(김항명 작사, 황문평 작곡, 김하정 노래)’
이 노래는 1969년 문공부가 주최한 드라마·희곡 공모에 당선된 작품으로 라디오 드라마로 제작된 ‘기도하는 도미니카’의 주제가다. 희곡작가 김항명의 처녀작이기도 한 이 ‘기도하는 도미니카’는 수녀원을 배경으로 오로지 종교적 신념으로 총칼에 맞선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 이 노래는 1972년 가수 정미조에 의해 리메이크되기도 했다.
데뷔와 함께 펼쳐진 김하정의 영화주제가와 드라마주제가 시대
특히 데뷔와 동시에 김하정의 영화주제가와 드라마 주제가 시대가 펼쳐진다.
TBC-TV의 드라마 주제가로 이후 영화로도 제작된 임희재 극본의 ‘첫날 밤 갑자기’와 ‘무정한 님’을 비롯해 ‘해는 지지 않는다’, ‘조용히 살고 싶어’, ‘소라 부인’, ‘눈물의 여인’, ‘내 목숨 다하도록’, ‘사랑은 갔어도’, ‘다방골 알부자’, ‘불꽃놀이’ 까지... 이 노래들은 모두 69년 1월부터 3개월 동안 한꺼번에 취입한 노래들이다.
‘첫날 밤 갑자기’는 TBC-TV를 통해 방송된 드라마로 김효천 감독에 의해 영화화되면서 신성일. 윤정희. 이순재. 문정숙 등이 출연했다. 영화 ‘눈물의 여인’은 최경옥 감독의 연출로 남진, 김지수, 조영일 등이 출연했고 ‘소라 부인(최경옥 감독)’ 또한 신성일, 문희, 윤소라 주연으로 이후 1970년에 개봉되었다.
신성일, 윤정희, 장동휘 주연의 액션물 ‘조용히 살고 싶어(전우열 갑독)’, 그리고 ‘사랑은 갔어도’는 두 미혼모의 사랑과 아픔을 그린 고은아, 남궁원 주연의 ‘독신녀(이유섭 감독)’의 주제가로 사용된 노래다. 그밖에도 독립군의 활약상을 그린 장동휘, 박노식 주연의 ‘지지하루의 흑태양(장석준 감독, 1971년)’. 황정순, 신성일, 최무룡, 윤정희, 문희가 주연한 최창권 작곡의 ‘두 아들(조문진 감독, 1971년) 등도 김하정씨가 불렀다.
드라마 주제가 취입 또한 활발했다. 조남사 극본의 ‘해는 지지 않는다’, ‘다방골 알부자’, ‘불꽃놀이’ 등이 그것. ‘다방골 알부자’는 TBC-TV의 드라마 주제가로 69년 6월부터 매주 월요일과 화요일에 두 차례 방송되었다. 극작가 이서구가 집필한 사극으로 지금의 서울 중구 다동인 다방골, 이조시대에는 중산층들이 많이 살던 곳이다, 이곳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서민 사극으로 주선태, 선우용녀, 강남길 등이 출연했다. 정진건 극본의 ‘불꽃놀이’는 TBC 라디오주제가였다.
▲ 김하정이 부른 드라마와 영화주제가 음반과 포스터
고두현의 아침 시편, MBC 드라마 주제가 ‘야생마’
김하정의 대표곡 중 하나인 ‘야생마(김기팔 작사. 김종하 작곡)’는 1969년에 방송된 MBC 문화방송의 드라마 주제가다. 김기팔 극본으로 작곡은 당시 DBS(동아방송)의 김종하 PD가 맡았다.
이 노래 ‘야생마’를 통해 김하정은 새로운 가창력을 선보인다. 영화주제가 ‘사랑’이 간호사, 즉 ‘백의의 천사’ 이미지였다면 ‘야생마’ 부터는 다소 야성적인 섹시한 이미지로 변한 것. 독특한 그녀의 창법에는 달콤함과 새콤함이 함께 들어있다, 무엇보다 먼저 그의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건 여성스러운 섹시함이다. 실제로 그의 목소리 자체에 여러 가지 감정이 복합적으로 들어가 있으니 작곡가들 입장에서는 어느 곡이든 자유자재로 쓸 수 있었을 것이리라. 당시 모 주간지에 이런 기사가 실리기도 했다. ‘패티김을 닮은 목소리와 창법이라는 펑가를 받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더 달콤하고 참신한 개성을 지녔다.’...
내 통곡의 의미를 알면은/다시는 비가 안 내려야지/빗줄기 타고서 이 가슴 때리는/그 젊음의 몸부림/통곡을 했었다 메아리도 없었다/그러나 조용히 가버린/내 젊은 내 젊은 야생마/비가 내리는 밤이면/비가 내리는 밤이면.
-‘야생마(김기팔 작사. 김종하 작곡, 김하정 노래)’
데뷔곡 ‘사랑’과는 전혀 다른 김하정의 또 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는 노래다, ‘가수는 노래 따라 간다’고 했던가. 지금 와서 돌이켜보자면 유독 드라마틱한 삶을 살았던 그이기에 야생마의 노랫말은 한편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필자가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음에도 아직 음반으로 확인하지 못한 당시 드라마 주제가가 ‘선생님’이다.
언제나 혼자서 흰 구름 타고 간다/오고 가는 계절 속에 내 인생 돌아본다/아--- 아--- 해변을 걸어도 들리는 저 소리/선생님~~/ 맑은 웃음 속에 웃고 울며 살련다...
대략 이런 노랫말로 된 라디오 연속극 주제가였다. 물론 2절도 있었는데 드라마가 일찍 끝날 때 어쩌다 나왔기 때문에 2절 가사는 어렴풋하다. 70년대 초 방송된 라디오 드라마였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이후로 듣지 못했다. 다시 듣고 싶어 오랫동안 찾고 있는 노래 중 하나로 이후에 가수 임희숙 음반에서 이 멜로디에 가사와 제목이 바뀐 ‘지난날’이라는 노래가 수록된 것만을 확인했을 뿐이다. 작곡자는 김중순. 이 노래가 음반으로 나와 있을지, 오랫동안 궁금해했다. 혹 소장하고 있는 분이 계시다면 반가운 연락을 기대해본다.
▲ ‘남녀가수 히트 앨범’ 표지를 장식한 가수 남일해와 김하정. 그리고 뮤지컬 ‘살짜기 옵서예’ 공연 전단지. 1971년 1월
창작 뮤지컬 ‘살짜기 옵서예’에서 ‘애랑’ 역을 맡다
1970년대 들어 김하정의 장르는 더욱 다양해진다. 기존 대중가요는 물론 민요, 외국 팝 번안곡까지 다양하게 발표하는데, ‘진도아리랑’을 비롯해 ‘태평가’, ‘총각 타령’, ‘김매기 타령’, ‘동백꽃 타령’, 그런가 하면 ‘도나도나(Dana Dana)’라든지 ‘수퍼 스타(Superstar)’ 같은 다채로운 번안곡을 통해 다양한 창법을 보여준다.
그가 뮤지컬 배우로 발탁된 것은 이 무렵이다. 배비장과 기생 '애랑'의 사랑을 그린 고전소설 '배비장전'을 뮤지컬화 한 ‘살짜기 옵서예’가 바로 그것. 양반의 위선을 풍자, ‘골계문학의 진수’로 꼽히는 '배비장전', 이 ‘배비장타령’을 바탕에 깔고 전통적인 해학 요소와 뮤지컬을 접목한 것이 ‘살짜기 옵서예’로 우리나라 최초의 창작 뮤지컬이기도 하다.
‘살짜기 옵서예’에서 김하정은 기생 애랑 역을 맡았다. 주인공인 ‘애랑’역은 당시 최고 스타의 몫, 춤과 노래 그리고 연기가 되는 인물만이 맡을 수 있는 역할이었다.
예그린의 대표작인 이 뮤지컬은 1966년 10월 26일에 초연되었는데 초대 애랑역은 가수 패티김이, 2대는 김상희, 그리고 3대가 바로 김하정씨였다. 이 ‘살짜기 옵서예’가 초연된 10월 26일을 기념해 우리나라 뮤지컬의 날로 지정할 정도로 의미 있는 공연이다. 김하정의 회고를 들어보자.
“정말 큰 무대에서의 공연이었는데 도중에 계속 NG가 났어요. 애랑이 말을 타고 무대에 나갈 때 몸종이 ‘아씨~’ 하면 곧바로 대사를 받아야 하는데 갑자기 웃음이 터져 나오는 거예요. 남자 두 사람이 말로 분장했는데 앉은 자리가 하필 앞 남자의 머리인 거야. 너무 웃겨서 자꾸 웃음이 나오려 하니까 곧바로 대답을 못하고... 또 상대역인 배비장 역엔 최희준 선생님이었는데 배가 너무 나왔잖아. 콧소리로 교태를 부리면서 ‘나으리~’하며 찰싹 안기는 신이었는데 배가 먼저 닿아요. 그때마다 얼마나 웃음이 나던지... 나중에 분장실에 갔더니 단장님, 연출가님, 무대 감독님들이 모두 오셔서 공연 망칠 일 있냐고 야단치는데 ‘너무 웃겨 배가 끊어질 것 같았다.’고 했더니 ‘하기야 말똥 굴러가는 것만 봐도 우스울 때다.’ 해서 그 말에 또 웃고...”
뮤지컬 ‘살짜기 옵서예’에서 호평을 받은 김하정씨는 계속해서 뮤지컬 ‘땅콩 껍질 속의 연가’, ’캬바레‘, ’바다여 말하라‘, TV 뮤지컬 ‘대춘향전(TBC)’과 ‘황진이(MBC)’에서도 주인공 역을 맡아 잇달아 무대에 오른다. 노래면 노래, 연기면 연기, 그야말로 만능 엔터테이너로 재능을 과시하며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계속)
첫댓글 그때는 아직어려서 김하정씨를
잘 몰랐지만 야생마는 많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