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어느 방송의 ‘그 때 그 사건’이라는 프로에서 悲運의 복서 김득구의 생애를 다룬 적이 있다. 나는 그 프로를 보며 14년 전에 일어났던 그의 비극과 함께 그 프로에서는 다루지 않았던 몇 가지 사실들을 다시 되돌아 보게 되었다.<br><p>
1982년 11월 14일 미국 라스베가스 시저스 팰리스 호텔 특설링에서는 챔피언인 미국의 레이 “붐붐” 맨시니와 도전자인 한국의 김득구 사이에 WBA 세계 라이트급 타이틀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경기 전 전문가들의 예상은 김득구의 초반 KO패. 맨시니는 24승(19KO) 1패라는 화려한 전적과 “붐붐”이라는 별명이 말해주듯 맹렬한 인파이팅으로 세계를 제패한 미국의 떠오르는 희망이었고, 김득구는 별다른 주무기가 없는 무명의 동양 챔피언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막상 경기가 시작되자 오히려 김득구가 맨시니를 맹렬하게 밀어 붙이기 시작했다. 의외로 강하게 치고 나오는 김득구의 투혼에 맨시니가 당황하는 사이에 김득구는 맨시니와 한치도 물러서지 않는 전면전을 펼쳐 10회가 지날 때까지는 경기 내용 면에서 김득구의 우세가 뚜렷했다.<br><p>
그러나 11회부터 맨시니 역시 김득구에 못지 않는 근성으로 맞받아치기 시작했다. 김득구의 눈에서도 맨시니의 눈에서도 파란 불꽃이 튀었다. 그리고 그것으로 김득구의 한계가 왔다. 현격한 실력의 차이를 투지만으로 극복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14회가 시작되어 김득구와 맨시니가 링 중앙에서 맞붙었을 때 맨시니의 결정적인 카운터 블로우가 터졌다. 맨시니의 강력한 레프트 훅에 김득구가 비틀거리는 순간 맨시니의 라이트 스트레이트 강타가 다시 김득구의 턱에 작렬, 김득구는 링 위에 장렬하게 쓰러졌다. 통렬한 다운이었다. 김득구는 사력을 다해 로프를 붙잡고 일어서려 했지만 레퍼리가 카운트 10을 다 헤아릴 무렵에야 겨우 휘청거리는 몸을 일으켜 세울 수 있었다. 그러나 때는 이미 늦어 있었다. 레퍼리는 양 팔을 크게 흔들어 카운트 아웃을 선언했고, 김득구는 맥이 풀린 듯 다시 링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br><p>
그는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다. 뇌사상태에 빠진 것이다. 비극의 시작이었다. 김득구는 각종 첨단 의료장비에 의지하여 겨우겨우 생명을 이어갔지만 의학적으로는 이미 사망한 상태였다. 결혼을 세 번이나 해야 했을만큼 험난하고 기구한 인생을 살아왔던 그의 어머니는 이번에는 ‘아들을 죽이러’ 미국으로 날아가야 했다. 김득구의 생명연장장치를 제거하려면 친부모의 동의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링 위에서 다시 쓰러진 채 잠들어 있는 듯한 상태로 99시간 동안 생명을 이어가던 김득구는 이렇게 그의 어머니가 보는 앞에서 이 세상을 떠나갔다. 가난을 이겨내려고 몸부림치던 한 젊은이의 불꽃같은 삶이 안타깝게 스러지는 순간이었다.<br><p>
비극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이번엔 아들의 죽음이 가난을 물려준 자기 때문이라고 비관한 그의 어머니가 스스로 목을 매어 삶을 마감한 것이다. 아직 임신 중이던 그의 약혼녀 또한 늠름하게 떠나갔던 그가 관 속에 누워 돌아온 사실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지만 뱃속에 있는 그의 아기를 생각하며 가슴 저며오는 슬픔을 이겨내야 했다. (이젠 그의 유복자도 발랄한 10대로 성장해 있을 것이다.)<br><p>
이러한 비극의 와중에서도 인간 이하의 사악한 음모를 꾸미는 사람들도 있는 것일까? 졸지에 양아들과 아내를 잃고 슬픔으로 세월을 보내고 있던 김득구의 아버지에게 서울의 ‘어느 고마운 분’에게서 연락이 왔다. 맨시니가 미안하다며 승용차를 보내 왔는데 승용차를 찾으려면 세금을 내야 하니 30만원을 들고 오라는 것이었다. 김득구의 아버지는 그나마 고마운 일이라고 생각하고 어렵게 30만원을 마련하여 서울행 고속버스에 올랐다. 서울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그를 반갑게 맞이한 ‘고마운 신사’는 돈을 받아들고는 승용차를 가지러 어디론가 사라진 후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그때부터 인간은 누구나 다 존엄하다는 진리를 의심하게 되었다.<br><p>
한편 김득구의 맹렬한 투혼에 밀려 패배 일보 직전까지 갔다가 극적인 역전 KO승으로 타이틀을 방어하여 기쁨에 차 있던 레이 맨시니에게도 김득구의 죽음과 그의 어머니의 자살은 청천벽력과 같은 이야기였다. 링 위에서 아무리 처절한 사투를 벌인 뒤라도 경기가 끝나면 서로 얼싸안고 격려하는 것이 권투 선수들이다. 그런데 자신의 펀치를 맞고 상대방이 숨졌다면 충격을 받지 않을 선수가 몇이나 되겠는가. 게다가 그의 어머니까지 그 일 때문에 자살을 했으니 맨시니가 받은 정신적 충격은 이루 헤아릴 수 없는 것이었다. 그 뒤로 그는 권투에서 멀어져 방황하다가 한참 후에야 겨우 링에 복귀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의 강펀치가 사람의 목숨을 빼앗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그를 사로잡고 있었기 때문일까? 그에게선 더 이상 그 이전의 태풍처럼 몰아치던 인파이팅은 찾아 볼 수 없게 되었다. 결국 맨시니는 리빙스턴 브램블에게 14회 KO로 져서 타이틀을 빼앗기고, 재도전에도 실패한 이후 젊은 나이로 링을 떠나고 말았다. 세계적인 슈퍼스타로 떠오르던 레이 맨시니가 김득구의 죽음으로 인해 그의 무한한 잠재력을 한껏 꽃피우지 못하고 링을 떠난 것도 또 하나의 비극이었다.<br><p>
그로부터 14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도 나는 알 수가 없다. 맨시니의 통렬한 강타를 맞고 죽음 일보 전이었던 김득구가 어떻게 해서 그의 몸을 일으켜 세울 수 있었는지를. 이리저리 휘청거리는 몸을 로프를 붙잡고 겨우 일으켜 세운 그가 심판이 카운트 아웃을 선언하자마자 허망하게 무너져 내리던 장면은 지금도 내 가슴에 남아 과연 삶과 죽음의 경계란 무엇인가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br><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