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에 ‘국내 망 이용료’ 받을 길 열려
법원 “대가 지급의무” SK 손들어줘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업체 넷플릭스가 “인터넷망 사용료를 낼 수 없다”며 SK브로드밴드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 1심에서 패소했다. 이번 판결로 넷플릭스뿐만 아니라 구글 등 빅테크와 국내 진출 예정인 해외 OTT 업체들에 대해 망 이용료를 요구할 근거가 마련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25일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0부(부장판사 김형석)는 넷플릭스 한국 법인 넷플릭스서비시스코리아가 SK브로드밴드를 상대로 낸 ‘채무 부존재 확인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넷플릭스는 인터넷 연결 및 연결 상태에 대한 유상의 역무를 제공받는 것에 대한 대가를 지급할 의무를 부담한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설명했다. SK브로드밴드 인터넷망을 이용했다면 대가를 지급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망 사용료를 제공할 의무가 없다는 점을 확인해 달라는 넷플릭스의 청구는 기각했다. 다만 재판부는 “계약을 체결할지, 어떤 대가를 지급할지는 당사자 계약에 의한 것이므로 법원이 나서서 관여할 문제는 아니다”라고 판단했다.
아울러 넷플릭스가 망 이용료에 대해 협상할 의무가 없음을 확인해 달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각하했다. 각하는 소송 요건을 갖추지 못해 본안 판단 없이 재판을 끝내는 것이다.
구글 등 해외업체에 ‘망 사용료’ 요구 근거 생겨, 넷플릭스 ‘이용료’ 지불땐 年 1000억원 웃돌듯
넷플릭스 ‘망 이용료’ 패소
넷플릭스와 SK브로드밴드의 소송전은 해외 콘텐츠제공업자(CP)와 이들에게 통신망을 공급하는 인터넷 서비스 제공업체(ISP) 사이의 대리전이자 향후 망 이용료 협상의 기준점으로 관심을 모았다.
2019년 SK브로드밴드는 넷플릭스의 고화질 드라마 등이 유발하는 대규모 트래픽 탓에 인터넷 품질이 저하되는 등 피해가 발생했다며 방송통신위원회에 망 이용료 협상을 중재해 달라는 재정 신청을 했다. 이에 지난해 4월 넷플릭스는 “인터넷 망 품질 유지는 넷플릭스와 같은 콘텐츠제공업자의 의무가 아니고, 이용료를 낼 필요도 없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25일 1심 재판부는 사실상 SK브로드밴드의 손을 들어줬다. 인터넷 망을 이용했다면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고 봤기 때문이다. SK브로드밴드가 넷플릭스에 인터넷 망에 접속 또는 적어도 연결 상태를 유지하도록 해줬다는 점도 인정받았다. 다만 대가의 지급 방식이나 범위 등에 대한 재판부의 명확한 판단은 빠져 있어 향후 논란의 불씨는 남은 상태다.
SK브로드밴드는 “법원의 합리적 판단을 환영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SK브로드밴드 측 강신섭 법무법인 세종 대표변호사는 “넷플릭스 측이 망 이용료를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간접적으로 판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넷플릭스는 “법원의 판결문을 현재 면밀히 검토하고 있다”며 “SK브로드밴드와의 협력을 이어가고 CP와 ISP, 소비자 모두가 윈윈할 수 있는 오픈 커넥트에 대한 투자를 지속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재판 결과는 넷플릭스는 물론 구글 등 해외 빅테크, 국내 진출을 추진 중인 디즈니플러스, 아마존프라임 등 해외 OTT 사업자들에 망 이용료를 요구할 근거로 활용될 것으로 보인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따르면 지난해 10∼12월 기준 하루 평균 트래픽 발생 비중은 구글(25.9%), 넷플릭스(4.8%) 순으로 높았지만 해외 기업들은 한 푼도 내지 않아 역차별이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반면 네이버는 연간 약 700억 원, 카카오는 연간 약 300억 원을 통신사에 망 이용료로 지불하고 있다. 네이버와 카카오의 트래픽 발생 비중이 3.4%임을 고려하면 넷플릭스가 망 이용료를 낼 경우 연 1000억 원을 웃돌 것으로 추산된다.
하지만 넷플릭스가 국내 시장에서 추가 비용을 부담할 경우 구독료 인상 카드를 통해 소비자에게 부담을 전가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건혁 기자, 박상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