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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4 하계 박현 선생님 이야기마당
‘마음의 길 몸의 길' 3회
내 몸을 조절하는 손 지문의 기능과 감각훈련
(2024년 7월20일 /서해진)
인사 올리겠습니다. 여기 계신 선생님 한 분이 이렇게 글자를 크게 해서 코팅까지 해오셨습니다. 하나하나 뜻을 같이 나눠봤으면 해서 가져오신 건데요. 먼저 보겠습니다.
의지(意志)!
의와 지는 보통 같이 붙여 쓰는 글자죠.의지(意志) 밑에 모두 심장을 뜻하는 마음 심(心)을 넣은 건 같죠. 위에는 각각 소리 음(音)이 있고 선비 사(士)가 있어서 모습은 다르지만 이 둘을 붙여 쓰죠.
의(意)는 우리가 확인할 수가 없어요. 의(意)는 인간이 지적, 정신적 작용을 하는 최소 단위의 알갱이를 말해요. 의(意)는 정신이 있다면 정신 작용의 점을 이야기해요. 지(志)는 선분을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일정 기간 정신 작용이 쌓여서 이해 가능한 정보로 된 것이 지(志)예요. 이해 가능한 정보로 되기 전에 구성 요소에 해당되는, 알갱이에 해당되는 정신 작용의 최소 단위가 의(意)예요. 근데 이게 현실적으로 구분이 안 되잖아요. 그래서 그냥 의지라고 붙여서 이야기를 해요.
엄밀하게 하면은 의(意)는 의식 작용의 최소 단위, 마치 물질에서 원소처럼 의식 작용에서의 원소 또는 분자에 해당되겠죠. 지(志)는 그런 분자나 원소가 모여서 이루어진 물체, 물체 중에서 일정한 길이를 가지고 있으니까 선분이라고 볼 수 있고요. 끊임없이 이어지는 게 아니라 일정 정보의 단위인 거죠.
상대방에게 전달할 때 지(志)를 전달하면 지적 소통이 되죠. 그때는 물론 이 지(志)가 아니라 알 지(知)지만요. 이 의(意)는 소통할 수 없죠. 이것을 소통하게 된다면, 의(意)를 전달해서 지(志)를 전달할 수 있다면, 의(意)의 전달을 통해서 지(志)의 내용을 전달할 수 있다면 그게 텔레파시죠.
텔레파시라고 하는 작용의 의미도 이 지(志)에 해당하는 글을 쓰거나 말을 해서 전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런 의(意)가 있으니까 여기에 해당되는 의(意)를 전달하면 이 지(志)가 전달된다 라는 이론에 기초하고 있는 거죠.
무협지에 나오는 축지법이 어떻게 이론적으로 구성돼 있을까요? 실제 축지법이 있든 없든 간에 무협지에는 있죠. 사람이 원래 네 발 도치였잖아요. 네 발 도치는 네 발 도치만의 땅과 부딪히면서 내는 마찰력, 어떤 힘에서 나갈 수 있는 각자의 종적인 평균 속도가 있죠. 물론 개별적으로 그 속도 안에서도 다양한 차이가 있지만요.
그러다 보니까 인간도 발이 땅과의 마찰을 통해서 낼 수 있는 그 다양한 개수들을 계산해서 이렇게 속도가 날 수 있는 거죠. 발로 내는 그 속도에는 변함이 없는 거예요. 그런데 사람의 손은 공중에 떠 있어요. 공기 저항은 있어도 땅과의 마찰은 이미 없어요. 발은 땅과의 마찰을 전제로 생활하다 보니까, 누워서 자전거를 공중에 타듯이 해도 빨리 하는 데 한도가 있죠. 이미 습성은 땅과의 마찰을 전제로 생활해 왔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손은 이미 땅과의 마찰을 전제로 생활하지 않아요. 그러니까 공중에서 하면은 엄청 빨리 할 수 있어요.
뛸 때 상황을 보면, 한 번 뛸 때 손 한 번 움직이죠. 갑자기 한 번 뛸 때 두 번 움직이는 사람은 없죠. 한 번 뛸 때 절반만 움직이는 사람도 없죠. 그러니까 한 번 다리가 움직일 때 손이 한 번 움직인다는 거죠. 여기서 다리는 한정이 있단 말이죠. 손은 다리에 따라 자동으로 가는데, 이 흐름을 보니까 손과 다리가 연결돼 있다는 걸 안 거예요. 손과 다리는 연결돼 있는데, 손은 다리보다 훨씬 빨리 움직일 수 있는 거죠.
여기서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이, 훈련을 통해서 손을 더 빨리 움직이면 거기에 따라 다리가 움직이게 할 수 없을까? 하는 거죠. 손이 움직이는 만큼 거기에 따라 다리를 움직인다면 훨씬 빨리 움직일 수 있다는 이론이 나오죠. 물론 이론이라는 건 꼭 되는 건 아니죠. 그게 축지법이에요. 다리가 움직일 때 손을 더 빨리 움직일 수 있으니까 손 움직이는 것만큼 다리를 움직이면 페라리 정도는 추월하고 남죠.또 다른 이론도 있어요. 이론적으로는 그렇습니다.
다음에 볼 단어가 사념(思念)입니다.
우리가 사념(思念)이라 그러죠. 이것도 붙여서 많이 쓰죠. 밑에는 다 심장을 상형한 마음 심(心)이 있는데요. 중국 사람들이 심장을 마음으로 많이 이해했다는 것은 이것이 의지와 감정 등의 작용과 상당한 관계가 있다고 생각을 했겠죠.
사(思)는 리플렉션이에요. 외부에 있는 무언가에 의해서 생각이 일어난 거죠. 자기가 인지를 하든 인지를 못하든 생각이 일어나지는 거예요. 자기가 생각하는 것 같지만 생각이 되어지는 거죠. ‘내가 생각한다’기보다는 비교적 피동형의 형태로 생각되고 있는 것을 사(思)라 그래요.
염(念)은 주체적이에요. 자기가 외부에서 영향을 받았든 말든 간에 뭔가 하고 싶은 의지가 들어간 거예요. 자신이 주도하는 능동형의 사고예요. 그래서 의지는 피동형의 사고와 능동형의 사고가 함께 하는 것인데 구분이 잘 안 되죠. 그래서 붙여서 써요.
파도가 일어요. 가만히 봤더니 파도가 어딘가에 의해서 일렁거림을 당하고 있는 거예요. 그러면 이것을 생각으로 치면 사(思)죠. 근데 누군가가 물결을 일으키는 것이라면 여기에 가까운 것이 념(念)이죠. 그런데 사실은 사람이 자신을 주체로 해서 그렇지, 어디 일으키는 것이 따로 있고 일으킴을 받는 것이 따로 있겠어요. 그렇지 않죠. 어쨌든 이 의지도 그렇게 다르게 쓰입니다.
다음 ‘육체(肉體)’라는 말입니다.
이 육(肉)이라는 것은 체(體)를 구성하고 있는 한 요소이죠. 넓은 의미에서 뼈를 제외한 모든 것을 육(肉)이라고 그러죠. 그리고 골육(骨肉)이라고 그러죠. 체(體)를 구성하고 있는, 머물러 있는 구조를 만들고 있는 요소들을 육(肉)이라고 합니다. 어떤 경우에는 뼈도 육이라고 하죠. 육은 체를 구성하고 있는 것으로 자체로서는 독자적이지 않는 그냥 요소들이죠.
흙이 땅을 구성하고 있다면 흙과 같은 거죠.이 체(體)가 땅 같은 거죠. 흙이 육(肉)이라면 땅이 체(體)가 되겠죠. 이렇게 비교해 볼 수 있죠. 문제는 이것을 구분 안 하고 쓰기도 해요. 육(肉)을 그냥 체로 쓰는 경우도 후기에 생기죠. 그래서 체를 움직이고 있는, 체의 운동체를 신(身)이라고도 하여 신체(神體)하고 하지만, 이렇게 육신(肉身)이라고도 얘기하죠.
그래서 이 신(身)은 움직이는 운동체고, 이 체(體)는 운동체의 얼개가 되죠. 운동체를 물질적으로 구성하고 있는 요소로서 육(肉)이 있는 거고요. 이런 운동체를 움직일 때의 에너지가 기(氣)가 되죠. 원래 氣라는 말의 아래에 있는 이 미(米)는 나중에 붙여진 거죠. 위에 있는 연기 같이 이렇게 기울인 세 개, 이것을 구름이 흘러가는 것처럼 상형한 것이 원래의 기(氣)였죠. 나중에 이렇게 쌀 미(米)가 들어간 거고요. 보통 먹으면서 에너지를 낸다고 생각해서 쌀미(米)를 넣어서 글자를 잡았지만, 원래는 쌀 米가 없이 그 자체만으로도 기라는 글자입니다.
그 다음에 기(己)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기(氣)라는 에너지가 들어가서 내는 이 기(己)는 무얼까? 이 에너지체(體)로서 몸 기(己)는 엄밀하게 말하면 내 몸 내부의 장기를 상형한 것입니다. 입구멍에서 항문구멍까지 등이 되겠죠.
심(心)은 원래 심장 모양을 상형한 것이었는데, 이것이 나중에 이렇게 心이 된 거거든요. 이 心은 심장 모양이에요. 심장이 이렇다는 걸 알았던 거죠. 사람을 해부해 봤을까요? 다른 동물을 잡아먹다 보니까 알게 된 거겠죠.
오늘의 이야기: 우리 몸에 있는 25군데 큰 통로
지난 시간에도 마음과 몸 이야기를 했고, 지난 겨울에 말씀드렸는데요. 사람 몸의 속은 입으로부터 시작해서 항문으로 끝나는 거대한 한 마리의 지렁이와 같다고요. 그런데 이 지렁이들이 단순하진 않아요.무언가를 먹고 어느 순간에 밖으로 계속 표현해내는 구조를 갖고 있죠.그리고 밖으로 흘러나온 것들끼리 하나의 덩어리를 이루고 있죠.
우리 몸은 어떻게 보면 음식이 하나의 지렁이로 들어가서 다시 지렁이를 통해서 밖으로 나와서 어딘 가에 가두어 버리는 모양새를 갖추고 있죠. 지렁이가 먹고 중간중간에 토해놓고, 마지막으로 자기에게는 그다지 쓸모없는 것을 항문으로 배출을 하죠. 그 과정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단계 단계마다 배출해내죠. 그 배출해 놓은 것을 가두어 놓을 수 있는 구조, 가두어 놓은 게 바로 몸인 거죠. 몸이라는 것은 어떻게 보면 지렁이 용트림이의 요소들이 갇혀 있는 거죠.
그래서 엄청나게 많은 단계에서 무언가를 빼내고 있죠. 들어가면 처음에 수분을 어디로 빼내고, 음식을 이렇게 조리해서 또 어디론가 빼내고, 또 어디서 무언가를 빼내고, 이렇게 다양하게 빼내고 빼내 지면서 각각의 에너지가 되죠. 때로는 거칠게 물질적 순환 생산을 하는 요소가 돼서 피를 만들기도 하죠. 그러면서 갇혀 있는 거죠. 밖으로 못 나가는 건 아닌데 함부로 나가지 못하죠. 밖에서 들어오는 것도 입을 통하지 않고 다른 곳으로 함부로 또 들어오지 못하는 가둠의 형체로 있는 거죠. 그 가둠의 형체가 우리 몸인 거죠.
그렇게 가둬져 있는 형체이지만 그래도 외부와 열려 있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비록 입을 통해서 항문까지 거치면서, 중요한 물질이 들어가서 여러 가지로 전환이 되고 다시 배출되는 것이라고 하지만, 어딘가 다른 통로들이 예비되어 있거나 또 상설돼 있지 않으면 이 몸은 그런 가둠의 자루로서 역할을 제대로 못하겠죠.
그래서 그런 통로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 몸에는 25군데의 큰 통로가 있어요.
대표적인 큰 통로가 25군데가 있다는 건데요. 물론 작은 통로들도 있는데, 그들은 세포 하나하나마다 이 모공 하나하나마다 다 드나드는 곳이 아니겠어요? 모공을 통해 땀은 배출이 되고 물은 들어가지 않고 그러죠. 물론 물도 오래 들어가면 조금씩 들어가요. 몸이 팅팅 불어나죠. 전혀 안 들어가지는 않는 거죠. 사실상 안 들어가고 안 들어간다고 할 정도로 막아놓고 밖으로 땀이 나오는 거죠. 땀도 소변으로 많이 나가야 될 부분이라서 땀을 많이 흘리고 나면 소변량이 줄잖아요. 그것처럼 땀이 나가기는 해요. 약간은 삼투압적으로 배출과 입력이 이루어지고 있는 출입구들이 큰 것이 우리 몸에는 25개가 있고, 작은 것은 무수히 많아요. 헤아릴 수 없어요.
큰 것으로 25개를 한번 보죠. 먼저 1번 가마가 있어요. 1번 가마 가마의 특징이 뭘까요? 일단 회오리가 있죠. 이 회오리를 보면 옆에 털이 있어요. 물론 머리에 털이 없는 분도 계시죠.
25개 큰 통로의 정체
우리에게 가마가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개마’ ‘고마’할 때처럼 신(神)이라는 뜻이죠. 그러니까 신이 드나드는 문이죠. 그런데 털이 있다 보니까 털이 자연 상태에서는 회돌이를 하고 있어요. 그래서 우리 가마를 생각하면 털과 회돌이 두가지를 생각해요. 그런데 회돌이는 맞는데 털은 아닐 수도 있잖아요.
등에도 여섯 번째 등뼈와 일곱 번째 등뼈 사이에 자잘한 털이 있는 회돌이가 있어요. 그 회돌이가 아주 섬세하게 잘 발전돼 있는 분, 대충 어영부영한 분은 있어도 회돌이가 없는 분은 없어요.그것도 일종의 가마의 형태를 띠고 있어요. 머리의 가마를 신문(神門)이라고 부르는 대신 이 등에 있는 것은 영문(靈門)이라 불러요. 영이 드나드는 문이라는 거죠. 그 다음에 몽고반점이 있던 자리, 꼭 몽골인 계통만 있는 건 아니죠.
‘몽고’라고 부르면 안 되는 거 아시죠? 몽골이라고 불러야 돼요. 몽고는 우리를 보고 독도를 다케시마라고 부르는 거와 같아요. 몽고는 몽골인들에겐 욕이에요. 프라하를 흐르고 있는 그 불타바를 몰다우라고 읽으면 독일인들에겐 이상하지 않을지 몰라도, 프라하인들에게 다케시마라고 불러주는 것과 동일한 뜻의 욕이 되죠. 몽골은 그들의 이름이고 몽고는 그 발음에 착안해서 중국인들이 그들에게 의미를 뒤집어 씌운 거예요. 어리석을 몽(蒙)에 아주 예스럽고 촌스럽다는 고(古)라고 한 거죠. 그래서 ‘몽고’라는 말은 피해야 되는데, 우리가 몽고반점이라 그러죠. 우리는 괜찮아요. 우리도 몽골 족과 같은 족이고 우리는 욕이 아닌 거 아니까요.
몽고반점 그 자리에도 가마가 있죠. 아이들을 키워 보셨으면 아시겠지만 거기도 회돌이가 있어요. 나중에 그 반점은 사라지고 회돌이도 희미해지지만 지금도 있어요. 털이 잘 자라지 않는 곳이어서 뚜렷하지는 않지만요. 그렇게 세 군데가 있어요.
그 다음에 다리 허벅지 안쪽에 혈해(血海)라고 하는 혈이 있어요. 그 혈해 위쪽으로 1cm 지점에 보면 또 회돌이가 있어요. 그렇게 5개가 있어요. 다 털과 관련이 있고, 회돌이도 있죠.
근데 25개 가운데 나머지는 어디 있을까요?
나머지 25개 제가 보여드리잖아요. 우리가 지문이라고 알고 있는 것은 전부 가마예요. 원래 네발 도치들은 발판이기 때문에 가마가 없어요. 우리는 직립 동물이 되고 마침내 여기 손에 가마가 생겼어요.10개의 가마가 생겼어요. 요상하게 손과 발의 상관관계에 의해서 발끝에도 10개의 가마가 생겨버렸어요.
우리는 이것을 지문이라고 불러요. 지문은 다 회오리인데 사람마다 회오리 형태는 달라요. 그리고 자기 안에서 이 회오리를 통해 무언가 통로로서 역할을 하고 있잖아요. 터미널의 역할을 하고 있잖아요. 그 터미널의 역할을 하는 바에 따라서 각각 지문의 스타일이 있어요. 거기 까지가 현대 지문을 연구하는 분들의 결론이에요.
그래서 이 손가락 지문 하나만 보면 나머지를 추측할 수 있어요. 하나만 보면 나머지 4개를 추측 가능하다는 거죠. 그런데 이 하나는 사람마다 다 달라요. 그러니까 이제 추적이 가능하죠. 물론 나머지 4개를 추측할 수 있어도 완벽하게 같을 수는 없고 스타일이 이럴 것이다 하는 정도가 되겠죠. 이것의 스타일이 이러면 또 다른 건 어떤 스타일을 보일 것이라는 무언가의 전형적인 방정식이 있더라 하는 그 방정식까지는 이해하는 거죠. 아니 방정식을 알아낸 거죠. 하지만 왜 그런 지는 모르죠. 그렇다는 걸 알아낸 것 하고, 왜 그런 지를 몰라낸 것 사이에 오늘날의 지식이 있는 거죠.
이 지문 부분들은 전부 무언가 드나드는 통로이고 내부의 어떤 상황을 반영하는 지점이 되죠. 그래서 손만 하더라도 또는 발 두 개는 대칭이죠. 지문을 이렇게 엄지와 엄지, 검지와 검지 등을 비교하면 비슷할 수 있어요. 이렇게 하면 각각이 티피컬하게 타입을 갖고 있으니까요. 그런데 지문을 서로 교차해서 비교하면 지문은 안 맞을 수 있죠. 왜냐하면 다른 타입이니까요. 새끼 손가락 타입, 네 번째 타입, 세 번째 타입, 두 번째 타입 이렇게 서로 다른 타입 5개가 대칭으로 구성돼 있어요. 발도 그렇게 돼 있어요.
그리고 발과 손은 각각 무엇을 가지고 있을까? 한의사들은 그 끝에서부터 경락을 찾아가죠. 발이든 손이든 공통점이 있어요. 어떤 점을 가지고 있을까? 지속적인 흐름을 반영하는 터미널이 하나 있어요. 그 다음에 단절적 단속이라고 해야 돼요. 단 이어지기는 하니까 단속적 흐름이라고 해야 되는데, 이것을 반영하는 게 하나 있어요. 그 다음에 인풋(input)을 상징하는 하나가 있고, 아웃풋(output)을 상징하는 하나가 또한 있어요. 그 다음에 이것을 조절하는 흐름이 하나 있어요. 이렇게 5가지가 하나의 짝이 돼서 대칭을 이루고 있고 발도 마찬가지이고요.
그 중에서 손에는 어떤 것이 반영돼 있을까요? 우리 심장이 하나 반영돼 있어요. 심장은 지속적 흐름입니다. 심장은 1초에 또는 1분에 몇 번 뛰는가를 알 수 있지만 심장은 그 뛰는 사이가 멈추는 건 아니죠. 심장의 역할에 의해서 피는 계속 핏줄을 통해서 흘러가요.
옛날 70~80년대 고장이 난 보일러처럼 공기가 차서 끊겼다가 물이 있다가 그러는 게 아니고 계속 흘러가죠. 보일러도 그렇게 되면 방이 안 따뜻해지죠. 에어를 빼야만 되죠. 어디에 공기가 차 있는지 모르니까 물이 다 나올 때까지 빼야죠. 어쨌든 심장은 계속 돌아가요. 중간에 약간의 공기가 찼다 빠졌다 할 수는 있겠죠. 그러면 예전에 질이 안 좋은 보일러처럼 몸이 가끔은 긍정적이지 못한 반응을 보이겠죠. 손발 끝이 차지거나 정신이 오락하고 혼미하거나 이러겠죠. 아무튼 심장은 지속적으로 흘러가요. 그것이 하나 반영돼 있어요.
그 다음 심장에 반대되는 편에 있는 게 또 하나 반영이 돼 있어요.그것은 끊겼다 이어졌다 해야 돼요. 그냥 끊기기만 하면 죽고 이어지기만 해도 죽어요. 뭘까요?
우리 몸에서 폐죠. 폐는 흡호(吸呼) 하지, 계속 흡흡(吸吸)하고 계속 호호(呼呼)가 같이 될 수가 없죠.지속화될 수 없죠. 그러니까 단속적이죠. 끊어졌다 붙었다 하는 흐름이 이렇게 하나 나오죠.
이제 몸 전체에서 무언가 들어오는 것을 관장하는 흐름이 하나 반영돼요. 나가는 것도 반영돼요. 그리고 1차적으로는 들어가고 나가는 것을 조절하는 조절 기관이 터미널로서 연결이 돼 있어요.
이것이 5개 지문의 역할이어요. 이 지문은 도장 찍는 데 쓰이는 게 아니죠. 내 몸에 있는 내부의 감각들이 반영되는 터미널들이어요. 각각의 감각을 가지고 있어요. 이 감각이 다르게 완성이 되다 보니까 사람은 마침내 밀고 당기고 하는 다양한 손 기능을 가지게 된 거예요. 이 5가지가 자기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손의 기능을 가지게 돼요.
이런 기능들을 통해서 우리는 글씨도 쓰고 도구도 잡고, 심지어 만져서는 안 되는 눈도 만지려고 해요. 그런데 지속적이고 단속적인 흐름은 감싸는 게 제일 끝에 있어요.
첫 번째 엄지 터미널이 끊겼다 이어졌다 하는 흐름이에요. 따라서 단속적인 건 자동으로도 가능하지만 의지적으로도 조절이 가능한 감각이에요. 숨은 자동으로도 쉬어지지만 자기가 알아서 쉴 수도 있어요.
심장은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 게 훨씬 많아요. 심장도 자기 뜻으로 할 수 있는 역(逆) 설계가 가능하지만 현대인에겐 꿈도 못 꾸는 일이죠.어쨌든 이 의지로 할 수 있는 엄지 부분이 커요. 이것이 중요한 터미널로 힘 있게 자리해 있어요. 그 대신에 감각의 발전도는 낮아요. 가장 일찍 발전한 감각이어서 힘도 좋고 터미널도 큰데 안 길어요. 새끼 손가락보다 평균적으로 길이가 5% 짧아요. 새끼 손가락은 심장이에요. 이 엄지와 새끼 손가락 두 개가 나머지를 포위하고 있어요. 지속적인 새끼와 단속적인 엄지 흐름에 나머지 터미널이 포함돼 있어요.
그 다음, 양쪽으로 들어가면서 인풋으로 검지와 아웃풋으로 약지가 각각 터미널로 자리 잡고 있어요. 가운데 중지는 조절 기관이에요. 조절 기관인 중지가 가장 길어요.외형적인 손가락의 형태만 봐도 또는 굵기와 길이 등만 봐도 인프터과 아웃프터 중에서 대개는 아웃프터가 약해요. 소화를 못해서 잘 못 먹는 사람들보다 잘 못 내보내는 사람이 더 많을 수밖에 없는 거예요. 힘이 가장 없어요. 이 힘 없는 데다 약지에 반지도 막 끼워버리죠.
왜 그런 줄 아세요? 가장 힘 없는 데 끼워 놔야 가장 사고를 안 치거든요. 여기 중지에 끼워 놓으면 깨질 가능성이 많거든요. 아웃풋에 끼워 놓으면 자리도 애매한 중간이고 안전하기는 한데 사실상 부담을 준다는 거죠.
어쨌든 컨트롤러 중지가 가장 강해요. 컨트롤러다운 그런 타입의 돌기를 가지고 있어요. 그 다음에 인프터는 인프터답고, 아웃프터는 아웃프터다운 각각의 돌기 문양의 타입이 있는 거예요. 사람마다 타입은 달라지지만 사람으로서 5개의 타입은 정해져 있어요.
그래서 어느 손가락인지 표 안 나게 찍어도 어느 손가락인지 짐작할 수 있어요. 이 핵심 무늬만 찍어놓고 봐도 손가락을 보는 사람은 이게 아웃프터의 지문이구나, 이건 인프터의 지문이구나, 이거는 단속의 지문이구나, 이건 지속의 지분이구나, 컨트롤러의 지문이구나 하는 것을 알 수 있어요.
그러면 이 지문을 통해서 얼마나 많은 감각이 발전할 수 있을까? 저는 어릴 때 배우긴 했는데 그 의미를 50, 60을 넘어서 깨달은 것도 많아요. 저는 5살 때부터 배우면서 자랐지만 의미를 모르고 그냥 하라니까 한 거예요. 근데 나중에 보니까 이게 우리 현대인에게는 아주 필요한 하나의 감각을 단련하는 방법이 되겠구나 싶었어요.
왜 현대인 얘기를 하느냐 하면 제가 겨울 차중한담 때도 그런 얘기했었는데요. 우리 국어 교과서가 ‘놀자’로 시작하잖아요. 역할을 놀든 그냥 플레이어 게임을 하든 플레이어 롤을 하든 놀아야 하죠. 사람이 다 놀고 있지 그럼 뭐 가만히 있겠습니까? 그렇죠? 놀아요. 노는데 이름 부르고 놀아요. 영희야! 철수야! 하고 자연스럽죠. 그런데 나중에 보니까 노는 데를 싹 가둬 놨어요. 우리의 사회로! ‘사회에서 놀자’로 유도해 놓았어요. 그 다음에 ‘사회에 생산이 되는 일을 하며 놀자’ 로 딱 유도해 놓았어요. 거기에 해당되는 것을 훈련을 해요. 거기에 감각이 돼요.
어릴 때 남학생들 딱지 갖고 놀고 구슬 갖고 놀아요. 표준어를 쓰는 서울에서는 구슬 치기라 했고, 아직 일본어 잔재를 못 버린 경상도에서는 다마치기라 했죠. 다 잃어버린 날도 있을 수 있죠. 다 잃어버리고 나면 마치 전 재산을 날리고 패가망신한 느낌으로 집에 들어가는 거예요. 집에 들어가서 어머니와 아버지에게 제일 먼저 해야 되는 거는 어떻게 용돈을 받아서 구슬을 확보하는 거죠. 그래야 숨을 좀 쉬고 ‘내가 살아 있구나’를 확인하게 되죠. 어느 날은 딱지를 다 잃어버렸어요. 어떻게 딱지를 확보 해야죠. 딱지를 다 잃어버리면 삶이 없는 것 같은 거예요.
그런데 어느 날 훌쩍 커버렸어요. 딱지가 한 가마니 있어도 아무런 관심이 없어요. 구슬이 뭐 사방에 흘러 다녀도 아무 관심이 없어요. 관심은 다른 데 가 있죠. 그걸 갖고 노는 것은 우습게 보이죠. 사람 사이에서 그렇게 우습게 보일 단계는 많을 거예요.
사람의 삶은 로켓 발사 엔진과 비슷할 수 있잖아요. 어릴 때 구슬치기와 딱지치기를 했던 인생이 하나의 1단계 로켓이었다면, 거기에서 끝나지 않고 나는 살아가잖아요. 2단계가 있어요. 위협감을 전혀 주지 않아요. 그렇게 2단계로 살아가죠.그런데 1단계로 살아가는 아이들은 자신들이 그렇게 살던 것을 유치하게 여기고 2단계로 가는 걸 당연하게 여겨요. 왜? 늘 훈련에 대해서 너는 미성년이야 너는 아직 미숙해, 너는 아직 어려, 너는 너에게는 성인의 삶을 기다리고 있어.
보니까 그 성인의 삶이 2단계 로켓이었어요. 생산적인 일을 하고 돈을 벌고 하죠. 그런데 2단계에 오른 사람들은 3단계로 안 넘어가요. 왜 이미 자신이 완성돼 있다는 성인이라는 의식을 가지고 있거든요.
성인(成人)과 애덜트(adult)는 달라요. 애덜트는 육체적으로 성숙한 존재예요. 성인은 인간적으로 완성된 존재예요. 애달트는 될 수 있어도 성인은 될 수 없어요. 성인은 끊임없이 가야 되는 과정상의 이름이에요. 애덜트에게 목적 의식적으로 준 이름이 성인에요. 애덜트는 현실적인 육체의 이름이에요. 뜻이 서로 달라요. 아무튼 애덜트가 되고 나면 그때부터 3단계는 없어요.
더 이상 우리의 삶은 딱지치기도 될 수 없고, 구슬치기도 될 수 없는 그냥 영원히 내 죽을 때까지 끌고 가는 목표의 삶이 돼 버리고 말아요. 그게 나의 2단 로켓트예요.
그러면 과연 3단은 없을까? 우리에겐 3단이 있을 수가 없어요. 왜? 우리에겐 3단으로 갈 수 있는 모든 감각 대신에 2단에 만족하며 살 수 있고, 2단에서 사는 것이 익숙하도록 그 육체와 신체의 감각이 훈련돼 버렸어요. 할 수 있는 게 제한됐어요. 그래서 뒤집어보지들 못해요. 뒤집어 보는 것 자체가 훈련에 의해서 금지돼 있어요. 우리는 많이 뒤집어 본다는 사람들이 역설적으로 뒤집어 보는 걸 별로 못 봤어요.
그렇게 되다 보니 결과적으로 25개 중에서 손의 10개 발의 10개 그리고 혈해 쪽의 두 개, 몽고반점의 하나, 영문과 가마 각각 하나 중에서 어느 것 하나 감각이 살아 있지를 않아요.
우리가 현재 이 손 끝에 힘을 모아서 이것이 중요한 터미널이라는 그런 관점에서 훈련을 해오고 있지 않아요. 이걸 갖고 집고 올리고 돌리고 하는 이런 것만 훈련돼 있어요. 우리는 이러한 노동이 필요한 장소에 투입돼서 노동하는 것에 적용돼 있어요. 물론 모든 노동은 소중하고, 귀중한 거예요. 그런데 모든 노동은 인간의 가능성에 대해서 한편 단절시킨 거예요. 3단 로켓트가 되는 것에 대해서 단절시킨 거예요. 모든 노동은 신성한 것이면서 모든 노동은 악랄한 거예요.
이 손끝 감각이 열려 있고 나머지는 무수히 열려 있다 그랬잖아요. 그런데 무수히 열려 있는 것을 움직일 수 있는 터미널인데, 이 터미널을 못 움직이게 하면은 무수하게 열려 있는 것도 그냥 자율 반응으로 불리고 말아요. 우리는 이러한 노동을 하는 전제 하에서 자율신경과 비자율신경이라는 걸 갖고 있을 뿐이에요.
세상에 비자율 신경이라는 건 없어요. 자율의 영역이 잘 침투하기 힘든 영역이라는 의미는 될 수 있어도, 근본적으로는 인간의 의지에 의해서 컨트롤 안 되는 자율신경이라는 것은 없어요. 이것이 컨트롤 안 되게끔 훈련되고 터미널에 의해서 그렇게 감각된 거예요. 그 전제 하에서 골프 선수들은 골프를 치고, 당구하는 사람은 당구를 하고 하는데, 그렇게 해봤자 3단의 감각을 이용하는 건 아니예요. 어쩌다가 어떤 사람들이 자기도 모르게 3단의 감각이 깨어나는 날이 있을 수 있어요.
우리가 그런 감각 훈련을 하면 노동이 안 돼요. 노동이 해롭다는 걸 아는 순간이 있어요. 보이차는 굉장히 좋은 것이면서 굉장히 나쁜 것이죠.왜? 보이차를 드시게 되면 평소에 이 정도는 내가 아픈지 안 아픈지도 몰랐던 걸 아픈 줄 알게 되죠. 술이 취하는지 안 취하는지 모르고 막 먹었는데, 보이차를 마시고 나면 내 주량이 어딘지 딱 알게 되죠.그래서 어떤 날은 두 잔도 안 들어갔는데 술이 안 넘어가죠.어딘가 컨트롤 하죠.
보이차만 그런 게 아니라 그 감각을 훈련해버리면 어느 날 사회적으로는 무해한 노동이고 표준 노동이고 누구나 할 만한 노동이라고 권장되는 노동이어도, 그 권장 노동이 자기에게는 권장되지 않을 수가 있어요. 그 노동 자체를 하려고 하는 순간 몸이 거의 주저앉아버릴 수가 있어요.
반대로 이 정도면은 거의 슈퍼맨이나 해야 돼는 것인데 아무렇지 않게 되는 것도 있을 수 있어요. 감각이 다르다는 이야기이죠. 그 감각에 조금이라도 접근해야 나에 대한 집착이나 생각의 순서에 대한 고정관념 그리고 앞면과 뒷면에 대한 고정관념이 조금이라도 빠져요.그리고 내게 잃어버렸던 감각이 생겨나요.그 감각훈련은 보이차를 마시면서 생기는 감각과 약간 비슷해요. 어릴 때 저는 그걸 훈련을 하면서 팔괘수(八卦手)라고 배웠어요. 그냥 배운 거였지. 그것이 감각 훈련에 도움이 되는 줄은 나중에 알았어요.
가만히 돌이켜보면 저에게 그걸 가르쳤던 분도 돌아가실 때까지 그걸 못 깨쳤던 것 같아요.왜냐하면 깨칠 이유가 없는 조건에 사셨던 분들이었고, 저도 그런 조건이 아닌 산에서만 살았더라면 지금까지 배우니까 배운 거야 하고 생각하고 말았을 거예요. 그냥 팔괘를 외우기 위해서 배운 거라고만 생각했을 거예요.
이 감각훈련을 할 때, 손가락 중에서 지속적으로 흘러가는 심장은 뺍니다. 심장 터미널은 가만히 둬도 흘러가니까요. 내가 어떻게 한다고 해서 도움은 되지만 이게 전체적으로 상관관계를 맺고 도움되지는 않아요. 실제로 심장이 안 좋으면 여기 새끼부터 저려옵니다.
나이가 드시면 아시게 되죠. 가끔 저리거나 하면 새끼 손가락부분을 만지는 것은 자기도 모르게 심장을 만져주고 있는 거예요. 특히 지치거나 잠을 못 잤거나 춥거나 할 때 여기 새끼 손가락 부위에 오죠. 근데 추우면 보통 손가락 끝에 기별이 같이 쪼글쪼글해 오지만 유난히 끝에만 그럴 때도 있어요. 이렇게 새끼 부위를 따라가면서 만지잖아요. 그러면 이제 심장이 좀 편안해지면서 괜찮아지죠.
그럼 나머지 4개 손가락이 남았어요. 이 엄지는 단속(斷續)으로 붙였다 떨어졌다 하는 흐름이에요. 폐(肺)예요. 폐는 쉬었다가 뱉었다 들이마셨다가 뱉었다 하죠. 중간에 단절이 꼭 일어나게 되죠. 이 흐름을 최대한 안정적으로 하려고 하는 게 다양한 호흡법이에요. 물론 그렇게 되지는 않죠. 끊임없이 코로 호흡이 들어가고 입으로 호흡이 나오고 하면서 하면 그게 사람인가요? 기계이죠.
넣고 빼고, 끄집어 넣고 당겨 빼는 건 아니라고 해도 어쨌든 이게 끊고 맺고 하는 거죠.
엄지와 새끼 손가락을 뺀 나머지 세 손가락을 1대 3으로 다 붙였다! 다 떨어뜨렸다! 두 개만 붙였다! 하나만 붙였다! 하는 경우의 수는 몇 개죠? ‘다 땠다’와 ‘다 붙였다’ 2 가지가 되죠. 그리고 두 개만 붙이는 게 몇 가지가 있죠. 3가지가 있죠. 한 개씩 붙이는 경우도 3가지가 있어서, 전체 8개의 경우가 있죠. 이 8개의 경우를 그냥 무작위로 하는 게 아니라 피가 흘러가는 데 길이 있듯이, 숨을 쉬는 데 들어가는 길이 있듯이 순서대로 하는 것이 8괘수였어요.
붙는 것을 길게 이렇게 실선(一)으로 할 수 있고, 떨어지는 것은 이렇게 나타낼 수가 있어요. 그 경우의 수를 보겠습니다. (엄지와 새끼를 뺀) 손가락 세 개가 다 붙는 경우가 있을 수 있죠.그럴 수는 없지만 회돌이와 회돌이가 최대한 붙는다는 느낌으로 붙이세요. 그 다음에 2번 검지를 떨어뜨리고 3번과 4번 회돌이를 붙입니다. 이어서 3번 중지를 비우고 2번과 4번 회돌이를 붙입니다. 이어서 네 번째로 4번 약지만 붙이고 2번과 3번은 떼고 붙입니다. 다섯 번째는 2번과 3번 회돌이를 붙이고 4번 약지 부위는 뗍니다. 여섯 번째는 3번 중지만 붙이고 2번과 4번 손끝은 뗍니다. 일곱 번째는 2번 검지만 붙이고 3번과 4번 회돌이는 뗍니다. 마지막 여덟 번째는 엄지와 새끼만 여전히 붙이고 나머지 세 손가락은 모두 뗍니다.
처음에는 이 감각 연습을 왼손으로 먼저 시작하세요. 왼손으로 해야 빨리 익히고 대칭 훈련이 빨리 됩니다.
1. 검지, 중지, 약지 다 붙이기
2. 검지만 떼기
3. 중지만 떼기
4. 약지만 붙이기
5. 약지만 떼기
6. 중지만 붙이기
7. 검지만 붙이기
8. 검지, 중지, 약지 다 떼기
이 감각 훈련을 하시게 되면 여러분들이 피부가 열리는 것을 차츰 확인해 갈 수 있습니다. 피부가 열려서 평상시보다 시원하거나 간지럽거나 아니면 시원하거나 간지럽거나 소름이 오거나 하는 것 등을 느낄 수 있어요. 평소에는 나무토막과 같았던 이 피부가, 힘들면 근육이나 아프고, 힘들면 땀이나 났던 이 팔과 팔꿈치 등이, 이제는 열렸다는 걸 느끼는 순간이 아주 빨리 옵니다.
먼저 손가락 지문이 있는 회돌이가 있는 곳에서 약간의 발열감이 생겨요. 발열감이 생기고 조금 있다가 당연히 팔 윗부분이 열려오는, 그래서 소름이 잘 끼치는 걸 느끼게 됩니다. 이 감각 작용을 했는데 소름이 끼쳤다는 것은 소름을 관장하는 기관인 영문이 작용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여섯 번째와 일곱 번째 등뼈 사이에 회오리인 영문이 작용하기 시작했다는 거예요. 그 순간 여러분 눈에 보이지 않았던 것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해요. 일단은 외형적으로 시력이 좋아져요. 그리고 그것의 감각이 살아있는 날은 시력 0.1이 시력 1.5가 되기도 해요. 이 감각이 닫히면 원래 시력이었던 0.1로 돌아가서 아무것도 안 보여요.
이러다 보면 어느 순간 노동을 하고 있는데, 노동이 지나치다고 느낀 순간 그때부터 몸에서 가려움증이 발생하죠. 열렸으니 부작용이 나오죠. ‘아니다’라고! 무리라고 하는 느낌이 일어나는 거죠. 어떤 건 무리라고 생각했는데 전혀 무리가 아니고 오히려 열리는 느낌이 오기도 하죠. 시원하게 말이죠.
그래서 이 손끝만 터미널이 아니라 터미널을 통해서 수많은 곳이 함께 열려간다는 겁니다. 터미널 훈련이 돼야 된다는 거죠. 터미널 훈련이 안 되면 우리에게 3단 로켓은 없다는 것! 자기가 아무리 학문을 하고 지적인 작업을 해서 "내 가치관에서는 이 사회 권력과 재물은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내가 먹고 살기 위해서 그냥 어쩔 수 없이 하는 것에 불과해!” 이렇게 하잖아요. 완전하지 않아요. 2단 로켓트에서 그냥 3단 로켓트 사이에서 간질거리는 거예요.
진짜로 초월하지 못해요. 그건 천년을 그렇게 해도 이 팔의 터미널을 열지 못해서, 그냥 나무 토막인 이상에는 초월하지 못해요. 이 터미널을 열지 않고서 3단 로켓은 점화가 안 돼요. 그러니까 굉장히 중요한 거예요. 이게 훈련을 해보면 얼마나 많이 해야 되냐고 물어보는 분이 있을 수 있어서, 조금만 해도 돼요! 익숙해서 눈 감고도 할 수 있는 정도면 돼요! 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억울한 느낌이 들죠. 왜? 터미널과 터미널을 붙인다고 붙이지만 1대 1이 아니다 보니까 제대로 붙질 않아요. 제대로 붙는 순간은 위의 경우의 수 가운데 4, 6, 7 밖에 없어요. 두 개만 붙어도 1대 1이 안 되니까 안 돼요.
사람이 네 발 도치는 아니지만, 네 발 도치라 치고, 자연물인 나무나 돌 혹은 흙이나 바위 등에 대고 연습할 수 있습니다. 플라스틱과 비닐 등은 빼고 하는 거죠. 자연물 위에 대고 하면 돼요. 5개를 다 대고 하면 돼요. 5개를 하되 곱게 오므리고 나면 땅과의 관계에서는 1 대 1이죠. 두 개를 붙이든 뭘 붙이든 1대 1이죠. 이 동작을 그대로 하면 되는 거예요.
이렇게 땅에 대고 하면은 돌기들이 더 붙어요. 자기 혼자 있을 때 자기 내부적으로 가둬놓고 하는 훈련을 하거나, 다른 것과의 사물과의 관계 속에서 서로 대가면서 할 때, 두 가지가 되면 굉장히 빠르게 감각이 회복이 되고 발전이 돼요.
가장 좋은 것은 나무이거나 흙이거나 그런 것이겠죠. 상대적으로 죽어 있는 나무나 쇠붙이 등은 좀 덜할 수밖에 없어요.플라스틱이나 알루미늄에 하면 아무런 느낌이 없어요. 차단돼서 서로 주어지질 않아요. 천이라고 하면 알루미늄보다는 낫고 비닐보다는 낫겠죠. 원 자연물에 가까울수록 그리고 원 자연물의 성격을 버리지 못하는 것에 가까울수록, 즉 흙이나 바위나 이런 것들이예요. 살아있는 나무는 할 수 방법이 별로 없잖아요. 바위도 할 방법이 별로 없잖아요. 흙도 할 방법이 사실은 만만치 않잖아요.그러면 그 다음에 좋은 건 뭐냐 죽어 있어도 나무인 거죠.
사람한테 하면 서로가 도움이 될 수 있어요. 받는 사람도 역할을 같이 받아요. 사람에게 서로에게 하면 받는 사람도 1의 도움은 있어요. 그러나 사람한테 하기가 쉽지 않고, 이해 못하는 사람한테 자꾸 했다가 뒤끝이 안 좋을 수도 있죠. 사람들이 자기도 모르게 손끝을 어딘 가에 대고 그래요, 그런데 질서가 있는 거라는 거예요. 이 질서를 어기고 했을 때는 반응이 없다는 거죠.
원래 이 인법과 같은 것이 이런 순서로 만들어진 거였구나! 라는 것을 나중에 알고 봤을 때, 이렇게 알고 만들었다고 본다면 굳이 그 질서를 깨고 싶지 않다 라는 보수적인 생각도 있습니다. 물론 몇 개 바꿔봤더니 감각이 아니더라는 거고요.오히려 저리고 어떤 건 심하게 했더니 입에서 단내가 나더라는 거죠. 그래서 순서는 지키는 게 좋겠다는 겁니다.
그리고 목마를 때는 해봐야 소용이 없더라! 입에 물기가 없어서 침도 없고 물도 없고 바짝 말라 있을 때는 별 의미가 없으니까 물로 입은 적시고 하는 게 좋다는 거죠.
저는 보통 겨울에는 찬물로 샤워를 하고, 여름에는 미지근하게 또는 약간 따뜻한 물로 해요. 여름에 너무 차게 하고 나면 금방 말라버려요. 몸이 더 더워요. 겨울에 찬물이 들어갈 때는 심장에 마비 오지 마라고 몸에 찬물 묻히는 대신, 새끼 손가락 부분을 주무르고 들어가요.심장에 해당하는 새끼 손가락을 주무르고 들어가면 찬물이 왔을 때 심장마비 걸릴 일이 없어요.그냥 시원하고 차가울 뿐이죠. 어쨌든 이런 것처럼 그 감각들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연결점이 있어요.
발에도 우리가 말 못한 기관들로 연결돼 있겠죠. 손에서처럼 지속적인 것과 단속적인 것을 양 끝으로 하고, 그 사이에 들어가고 나가고 컨트롤러 하는 식으로 해서 발에도 있겠죠. 12경락이라면 발에 더 많이 있겠죠. 여기 손에는 5개밖에 없으니까.
어쨌든 있는 균형은 지속적(새끼), 단속적(엄지), 인풋(검지), 아웃풋(약지), 컨트롤(중지)! 우리가 흔히 삼초(三焦)라고 하는 것이 컨트롤러 중에 컨트롤 아우프터예요. 사람에게 똥이 안 나온다! 관련된 곳은 어디 있죠?대장에 있죠. 여기에 인프터는 대장이에요. 대장은 우리가 생각하는 아웃풋에 가깝기 때문에 아웃풋터가 아니라 인프터예요.이 인프터에 쌓여 갖고 안 내려가는 거예요. 그럼 어떻게 하죠? 옛날 사람들이 배를 만지기도 하죠. 하지만 여기 오른쪽을 만져봐야 꾸르륵 꾸리지 않아요. 여기를 만지는 이유는 딴 데를 만지기 위한 사전 작업이죠. 어디냐? 여기 심장 밑 그리고 방광 위에 있는 삼초를 자극해 주기 위한 동작이예요. 여기 삼초 부위를 만져야 대변이 나와요. 여기 오른쪽을 만지면 안 나와요. 오른쪽을 만지면 똥손, 왼쪽을 만지면 약손이 돼요. 그런데 약손을 하기 위해서 흐름이 있죠. 여기 저기 좌우를 해줘야 약손 같은 느낌이 오죠.
그래서 여기만 누가 똥마렵다고 하면 여기를 만지면 바로 기별이 올 수 있어요. 지금도 만져 보시면 느낌이 달라요. 이쪽 삼초가 있는 왼쪽 부위를 계속 만지면 지금 화장실 가야겠다는 느낌이 와요. 아무튼 여기가 삼초이고, 이것이 아웃프터예요.
인프터와 상관 방면에서 이렇게 작용성을 가지고 있어요. 삼초는 엄밀하게 존재하지 않으나 기능해요. 어느 지점이기 때문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어렵긴 한데요. 그리고 이제 컨트롤러가 있어서 컨트롤을 하죠. 컨트롤러가 없으면 안 되죠. 컨트롤러의 기능 있는 아웃프터는 이 당겨지는 역할에 감각이 발전돼 있어요. 아웃프터를 단독으로 펴기가 참 어려워요. 아웃프터만 이상하게 단독으로 펴기가 힘들어요.
인프터가 제일 잘 펴져요. 인프터는 오무리는 것도 잘하죠. 오므리면 당겨지는 뿌듯한 살 겹침의 느낌이 있어요. 근데 펼 때는 인풋터가 잘 펴져서 동양 사람들은 인풋으로 욕하는 거예요. 그래서 손가락에 왔을 때조차도 그 장기의 기능성은 살아있어요.
예를 들어서 얹혔을 때 어디 만지시죠? 합곡(合谷)을 만지시죠. 그런데 이상하게 자기가 만지면 잘 안 내려가죠. 남이 만져주면 잘 내려가죠. 왜 그럴까요? 엉뚱한 데를 만져서 그렇죠. 자기가 만지면 누르는 방향이 달라지죠. 합곡이라고 하면 중간에 비어 있는 허공을 만지라는 게 아니라 이 합쳐진 어딘가를 만지라는 거죠.
남이 만지면 이렇게 검지방향 쪽으로 만져지게 되죠. 물론 자기도 이렇게 검지방향 쪽으로 만질 수 있어요. 그러면 남이 만지는 거와 동일하게 내려가요. 제대로 누르고 있으면 어떤 사람도 30초 내에 위가 움직이는 걸 느낄 수 있어요.
인프터를 만질 줄 알면 바로 기별 오죠. 여기 인프터인데 멀리도 안 들어가요. 인프터가 내려가서 뼈가 살짝 올라가는 데가 있어요. 안쪽에 들어가서 그 바로 밑에 앙칼진데 거기를 누르면 매우 아프죠. 그러면 바로 위(胃)가 움직이고 대장이 움직이죠. 대장이 움직이고 위가 움직여야 소화가 돼요. 대장이 움직이지 않고 위만 움직이면 소화가 안되요. 그래서 나중에 합곡을 안 만지게 되죠. 별로 효과를 못봤다는 건데요, 그건 인과의 필연성을 못 느끼는 거죠.
여러분! 왜 사람들이 마약에 빠지겠습니까? 인과가 바로 증명되니까 그렇죠. 마약을 먹었는데 1년 후에 해롱해롱할지 한 달 후에 해롱해롱할지 모르면 누구도 마약 안 합니다.
현대사회 인과의 시차가 괴롭잖아요. 이런 것들이 벌어지는 이유가 자기가 잘못 눌러놓고 인과의 필연성과 시차성을 확신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렇죠. 제대로 누르면 바로 내려가죠.
마찬가지로 이 손끝 감각 부분도 여러분들이 해보시면 시차는 있습니다. 사람마다 시차는 조금씩 다르지만 그 시차는 주식 정도의 시차입니다. 그렇게 길지 않습니다. 이 훈련을 내가 했는데, 죽을 때 효과가 올지, 올해 효과가 올지, 내년에 효과가 올지 모른다면 말씀 안 드리죠. 그렇지 않아요. 하는 만큼! 단 이때 ‘하는 만큼’은 시간의 절대량이 아니고, 하는 시간을 자주하는 거예요. 두 번을 하든 세 번을 하든 종종 하는 게 좋아요. 종종 하는 게 그게 빨리 깨어나요.
오늘 시간이 남았다고 이거나 종일 해볼까 해서 체조하듯이 하루 종일 해봐야 소용이 없고요. 이 여덟 가지 회돌이 붙이는 순서는 하나 둘 외워도 돼요. 어느 순간 잊지 않고 해보는 것이 좋아요. 하다못해 앞에 있는 게 이런 나무밖에 없어요. 책상밖에 없어요. 유리밖에 없어요. 거기에 대고 하면 돼요.
단 플라스틱과 알루미늄만 아니면 돼요. 쿠킹호일 쫙 펴놓고 하면 아무 감각도 개발되지 않아요.그렇지 않다면 3일 내에 살짝 따뜻해지는 걸 느낄 수 있어요. 터미널에 살짝 미세한 열감이 일어나는 걸 느낄 수 있어요.그리고 보름이면 내가 쉽게 소름이나 근질거림이나 하는 것을 느낄 수 있어요. 뭔가 있었네 하는 것을 느낄 수 있어요.
내가 안 했는데도 자동 반응이 일어나는 것은 한 달 정도면 느낄 수 있어요. 그 다음부터는 느려요. 그 다음부터는 정말 어느 순간 스테이지가 있듯이 스테이지처럼 올라가요. 느리다고 해서 효과를 못 느낄 만큼 느리지는 않아요.
손가락이 모자라도 이 기능은 다 있어요. 3개나 4개밖에 없는 분도 기능은 다 있어요. 비록 터미널은 사라져도 터미널의 흔적이 형성이 돼요. 터미널이 없는 분도 할 수 있어요. 터미널 없는 분은 꺾어진 대로 하셔도 돼요.
‘내 손가락이 좀 다쳤다.’ ‘내 손가락이 잘 안 구부러진다.’ ‘내 손가락이 좀 구조가 이상하다'. 신경 쓰지 말고 하셔도 돼요. 그리고 그 선에서 하실 수 있는 방법이 찾아보시고 안 되면 상의하시면 돼요. 저는 손가락이 펴지지도 않고 굽혀지지도 않는데 어떻게 하면 될까요? 다 답은 있어요.
왜냐하면 터미널은 있기 때문이에요. 터미널의 흔적이 온전치 않게 잘려버린 분이 있을 수 있는 것이고 원래부터 좀 짧게 나온 분이 있을 수 있는 것이죠. 그래서 이 터미널에 따라서 손가락을 봤을 때 어떻다 하는 건 아무 의미 없고요.
의미 있는 것은 인프터에 비해서 아웃프터가 길고 인프터에 비해서 아웃프터가 굵고 이런 분들은 변비로 고생하지 않아요.변비로 고생하는 분들은 아웃프터가 유난히 가늘고 매가리가 없을 때 좀 그래요. 그런데 그것도 만져주면 돼요.
인프터를 만져본 감각으로 아웃풋터를 만져보면 차요. 동일한 손가락인데 네 번째 손가락 만지면 차요. 이 다섯 손가락의 온도가 다 달라요. 병원에 가서 온도를 재면 똑같아요. 그런데 내가 만져보면 달라요.
그 다른 정도를 미세하게 느끼잖아요. 그리고 그 온도의 표준을 가지잖아요. 그러면 한의대에 가서 12경 하나 안 배웠어도 발가락 만져보고 손가락 만져보면 어느 게 가장 따뜻한 지, 어느 게 가장 차가운 지, 어느 게 중간 차가운 지, 어느 게 덜 차가운지, 어느 게 미지근한지! 이렇게 다 나오잖아요. 이것을 가지고 소양인지 소음인지, 태양인지 태음인지 다 알아요.
따뜻하고 차가운 건 우리가 음양 나눌 때와는 반대예요. 찬 것은 보충을 원하죠.
손가락 발가락에서 태양이라 그러잖아요.그러면 그것이 가장 차갑다는 뜻이어요. 태음이라고 그러면, 가장 뜨겁다는 뜻이어요. 이 엄지가 가장 뜨겁고, 이렇게 순서로 보면 이 약지는 차가워요. 끝에 두 개를 손가락으로 만져보면 온도 차이가 나요. 근데 기계에 넣어 재 보면 온도는 같아요. 그러면 기계가 보여주지 않는 감각이 손가락에 있다는 뜻이죠.
노동을 할 때는 이 두 감각은 필요하지 않죠. 노동을 할 때 어느 것이 더 따뜻한 감각인지, 어느 것이 더 차가운 감각인지 필요 없죠. 물건을 드는 데는 동일하게 드는 감각만 필요한 거죠. 그리고 내려놓는다는 감각만 필요한 거죠. 감각이 그렇게 다르다는 거고요.
감각이 그렇게 다른 것들이 깨어나요. 물론 터미널을 건드려야 깨어나는데 터미널을 안 건드리고 있죠. 우리는 손끝을 터미널이 아니라, 그냥 신체의 말단이고 이 말단은 노동을 위해 가장 중요한 포인트라고만 생각하죠. 그래서 모든 노동은 신성하지만 모든 노동은 3단계로 가는 면에서는 악랄한 거고, 음모인 거죠. 이런 얘기를 드리고요. 손가락 끝 회돌이 붙이는 감각 연습을 꼭 해보세요. 과제가 또 주어졌습니다.
오늘 이만 줄이겠습니다.
(3회차는 한꺼번에 게재합니다. 본문 중의 손가락 짚는 법이 필요할 것 같은데요. 사진 자료가 준비되면 댓글로 올리겠습니다.)
#박현선생님이야기마당 #팔괘수 #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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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귀한 말씀 고맙습니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