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의 턱 밑에 있다 해도 좋을 만큼 가까운 곳에 한산도가 있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의 삼도수군통제사 통제영이 설치되었던 조선 수군의 근거지이자,
최대 전승지인 한산대첩의 현장이며, 장군의 유명한 시조 '한산도가'가 지어진 곳이다.
섬마을의 곳곳에는 충무공 이순신의 혼과 숨결이 서려 있었다.
한산도는 통영여객터미널에서 배로 30여 분 가면 도착한다
통영에서 아침 9시 30분에 한산도로 출항하는 여객선에 올라탔다.
두 개의 선사에서 아침 7시부터 오후 7시 15분까지 30분 간격으로 운항한다.
오늘도 '섬섬옥수'와 동행하였다
얼마 동안이나 함께할지는 모르지만 참 소중한 벗이다.
대섬(죽도)
한산만 입구의 대섬인 대죽도와 소죽도는 시누대가 자라는 섬이다.
임진왜란때 화살을 만드는 재료를 공급했다는 섬으로 지금도 대나무가 자라고 있다.
해갑도(解甲島)
한산도 선착장이 가까워질 무렵, 해갑도(解甲島)가 나타났다.
싸움에서 이긴 이순신 장군이 갑옷을 벗고 땀을 식혔다는 섬이다.
거북등대
제승당 앞바다 암초 위에 세워진 거북등대는 1963년부터 한산도 길목을 지키고 있다.
바로 이곳이 한산대첩지임을 알려준다.
거북등대 뒤, 문어포 언덕 꼭대기에는 20m 높이의 ‘한산대첩비’가 세워져 있다.
한산도와 추봉도를 함께 돌아보기 위해서 차량 선적은 필수다.
만만한 섬 걷기 길이라 보기에는 많은 수고가 필요한 섬이다
이 섬을 종주하는 바다백리길의 이름은 '역사길'이라 명명되었다.
여객선은 30분만에 제승당 선착장에 도착하였다.
부슬부슬 내리는 비가 방해하였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제승당을 향해 걸었다.
제승당 가는 길
제승당(制勝堂)은 충무공의 본영임을 알리는 곳이다.
1593년부터 1597년까지 삼도수군의 본영을 삼았던 역사의 현장이다.
제승당(制勝堂)
'승리를 만드는 곳’이라는 뜻의 제승당(制勝堂)은 충무공이 작전 회의를 했던 집무실이다.
충무공은 제승당을 본거지로 삼아 한산도를 남해안 방어 기지로 구축했다.
복원돼 있는 제승당 수루에 오르면 한산도 앞바다가 훤히 내려다보인다.
이곳 수루는 적의 동태를 살피던 망루였다
이순신 장군의 유명한 시가 한산섬 앞바다를 조망하는 수루 위에 걸려 있다.
낮에는 왜적의 동태를 살피고, 밤에는 번민으로 잠 못 이루었을 그를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해온다.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수루에 홀로 앉아
큰 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하는 차에
어디서 일성호가는 남의 애를 끊나니.“
덮을개
제승당 선착장에서 5분 남짓 걸어가다 오른편 길로 접어들면 덮을개다.
하늘을 가릴 만큼 훌쩍 자란 곰솔숲을 지나 망산 등산로가 시작된다.
‘덮을개’는 왜군에 발각되지 않게 조선 수군의 함선과 무기를 덮어 위장했다는 곳이다.
대고포(大羔浦)
승용차를 타고 한산도 해안을 따라 한 바퀴 돌았다.
가장 먼저 나타나는 마을은 대고포(大羔浦)마을이었다
이곳에서 군수용 소금을 구워 공급한 염전이 있었던 곳이라하여 염포(鹽浦)라 불렀다.
장곡(長谷)마을
마을 뒤에 긴골짜기(長谷)가 있어 군영에 필요한 숯과 연료를 만들어 공급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장곡마을은 장곡 본 마을, 독암마을, 벌통골 3개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용의 지혈을 타고났다는 명지(名地)로 임진왜란 당시 당산봉수대가 있었다.
창동(倉洞)마을
삼도수군통제영 당시 약 3,000석 가량의 군량미를 비축했던 창고가 있었던 곳.
그런 연유로 창동(倉洞)이라 불리게 되었다.
한산도와 인근 각처에 둔전(屯田)을 일구게 하여 여기서 생산된 수천 석의 군량을 이곳에 쌓아 놓았다.
생이섬
입정포마을 앞에 그림같은 섬, 생이섬이 떠있다.
가난하지만 효심 지극한 청년이 어머니의 장례를 제대로 치르지 못해 울고 있었다.
그러자 꽃상여가 여기까지 떠 내려왔다고 한다.
‘생이섬’이라는 이름도 ‘상여’라는 사투리에서 나온 것이란다.
다시 보니 정말 꽃상여를 닮은 것도 같다.
진두(津頭)마을
한산도의 중심 마을인 진두(津頭)는 조선 수군의 진영이 있던 곳이다.
예부터 한산도와 추봉도 사이의 좁은 해협을 연결하는 나루터였기에 진두(津頭)라고 쓰기도 한다.
야소(冶所)마을
충무공 이순신이 각종 병장기를 제조하고 수리하였던 곳이다.
'풀무'란 뜻의 한자인 야(冶)를 따서 야소(冶所)라 일컫게 되었다.
오늘날의 병기창(兵器廠)이 있었던 곳이다.
의암(衣岩)마을
수군들의 군복을 짓고 수선하는 피복창이 있었던 마을이다.
수많은 군복을 빨래하여 널어 말렸다 하여 옷바위(衣岩)라 일컬어진 지명이다.
마을이 정남방이어서 일조 시간이 길고, 앞 바닷가에는 넓은 몽돌밭이 있어 안성마춤이었다.
하포(荷浦)마을
각 진영에 보급할 군수물자의 조달과 보관, 보급에 관한 일을 하였던 곳이다.
각 진영에 보급할 물자를 어깨에 메고 싣고 풀었다 해서 멜개 또는 하포(荷浦)라 부르게 되었다.
장작지(長作支)마을
수군이 진을 치는 해상 훈련을 했던 곳이라 해서 진작지(陳作支)라 불렀다.
거북선을 주축으로 하는 통제영의 수군들이 학익진(鶴翼陣)등의 각종 진법을 연습했던 곳이다.
문어포(問語浦)
왜적의 패잔병들이 노인에게 도망칠 길을 물었던 곳이라 한다.
마을 뒤 음달산 정상에는 1979년에 한산대첩 기념비가 세워졌다
한산대첩 기념비 가는 길
문어포마을에서 오솔길을 따라 10여분 올라간다
한산대첩 기념비로 가는 오솔길 앙쪽에는 동백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었다.
하얀 동백
붉은동백 사이로 하얀 동백나무가 몇 그루 있었다.
하얀 동백의 꽃말은 '순결, 비밀스러운 사랑, 어머니와 아이의 사랑'이다.
한산대첩 기념비
문어포마을 뒤 음달산 꼭대기에는 20m 높이의 ‘한산대첩비’가 세워져 있다.
비석 아래 거북선의 용머리가 일본 도쿄 방면을 바라보고 있다
왜적이 우리나라를 다시 침략하지 못하도록 지켜보겠다는 수호의 의미가 담겨 있다.
용머리가 향한 방향을 바라보면 한산대첩이 벌어졌던 바다가 또렷이 보인다.
의항(蟻項)마을(개미목)
왜군들이 막상 여기까지 몰려들어 왔으나 수로(水路)가 막혀 오도 가도 못하게 되었다.
왜적의 패잔병이 바다로 도주하기 위하여 개미허리처럼 산을 파헤쳤던 곳이다.
개미떼처럼 엉겨 붙어 파놓은 지형이 개미허리 모양 같다 하여 의항(蟻項)이라 부르게 되었다.
추봉대교
추봉도는 한산도와 바로 이웃해 있는 섬이다.
2007년 두 섬을 잇는 추봉대교가 개통됨으로써 이제는 마치 ‘하나의 섬’처럼 여겨지고 있다.
추봉도는 한산도와 거제도 사이에 끼여 그동안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는 처지였다.
하지만 추봉대교가 개통된 이후 섬엔 부쩍 생기가 돌고 있다.
때 묻지 않은 자연과 현대사의 상처가 아로새겨진 섬, 추봉도의 앞날은 밝아 보인다.
봉암해수욕장
봉암해수욕장은 추봉도의 또 다른 볼거리다.
동그랗고 맨들맨들한 각양각색의 몽돌이 깔려 있다
이 몽돌은 ‘모오리돌’이라고도 불린다.
봉암해수욕장 방파제에 각종 헤산물의 모형이 설치되어 있었다.
해변을 따라 300미터 남짓한 산책로가 단정하게 가꿔져 있다
추원(秋元)마을
봉암해수욕장에서 차를 돌려 반대 방향으로 달려 추원마을에 도착했다.
추원마을은 예부터 수군들의 요충지였다.
1419년 세종 때 왜구의 소굴인 대마도 정벌을 위해 이종무 장군이 출병했던 곳이다.
이곳에서 출병식을 하고 대마도 정벌에 나선 것이다.
마을앞 정자에서 충무김밥을 먹으며 쉬어 갔다.
마을 할머니께서 회관에 들어가서 식사하라고 따뜻하게 말씀하신다.
예곡(禮谷)마을
원래의 지명은 ’여곡(女谷)‘이었는데, 포구의 형상이 여음(女陰)처럼 생긴 것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이러한 전래의 지명이 상스럽다 하여 근세에 '예곡(예골)'으로 개칭했다고 한다.
6·25 전쟁 당시 전쟁 포로들을 가뒀던 포로수용소가 있었던 마을이다
느닷없이 수많은 불도저들이 들이닥쳐 군인들이 주민들을 내쫓고 집들을 밀어버렸다고 한다.
주민들은 초등학교 운동장에 천막을 치고 피난민 아닌 피난 생활을 이어가야 했다.
휴전협정이 체결되고 1955년 포로수용소가 폐쇄되고서야 주민들은 다시 옛 마을로 돌아갈 수 있었다.
포로수용소 유적
유엔군 측의 처사에 불만을 품은 포로들이 반란을 일으킨 적이 있다.
거제도 수용소장이 포로들에게 감금됐다가 풀려나기까지 했다.
이후 거제도의 포로들 가운데 ‘요주의 인물’들을 추려내 별도로 수용한 곳이 바로 추봉도다.
곡룡포(曲龍浦·꼬부랑개)
예곡마을에서 산을 넘어 구불구불한 길을 달리면 곡룡포에 다다른다.
마을에 이르는 언덕길이 고부랑길인 것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곡룡포는 토박이지명인 ’꼬부랑개‘를 음차표기한 한자 지명으로 생각된다.
한산도를 떠나다
한산도에서 오후 2시 5분에 출항하는 한산농협카페리호에 탔다
2박 3일 동안에 5개의 섬을 탐방한 알찬 시간들이었다.
돌아오는 배 안에서 또 다른 섬의 탐방계획을 세우는 시간이 행복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