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28일 “오늘의 말씀 묵상 편지”
“주께 드려 향기로운 냄새가 되게 할지니라.”
“주께서 또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기를 "아론이 기름 부음을 받는 날에 그와 그의 아들들이 주께 드릴 제사는 이러하니라. 그들은 고운 가루 십분의 일 에바를 영속하는 소제물로 삼아 그 절반은 아침에 드리고 그 절반은 저녁에 드리되 기름과 함께 그것을 납작한 판에서 만들어 구울 것이요, 너는 그것을 안으로 가져다가 소제물의 구운 조각을 주께 드려 향기로운 냄새가 되게 할지니라.
(And the LORD spoke to Moses, saying, "This is the offering of Aaron and his sons, which they shall offer to the LORD, beginning on the day when he is anointed: one-tenth of an ephah of fine flour as a daily grain offering, half of it in the morning and half of it at night. "It shall be made in a pan with oil. When it is mixed, you shall bring it in. The baked pieces of the grain offering you shall offer for a sweet aroma to the LORD.)”
임마누엘!!
‘소제물’의 결론은 ‘소제물의 구운 조각을 주께 드려 향기로운 냄새가 되게 할지니라.’입니다.
먼저 ‘향기로운’은 히브리어 'nichoach(니호아흐). ‘진정시킴’, ‘달램(quieting)’, ‘위로함’, ‘진정시킴(soothing) 등의 의미입니다.(예: 창 8:21, “향기”; 레 26:31 “향기로운”).
기본적으로 어근 누아흐는 공간적인 행동을 하지 않음 및 안전함과 관련됩니다. 이는 예를 들면 아라랏산에 "머물렀"던 방주(창 8:4)와 이집트에 "내린" 메뚜기(출 10:14)에서 엿볼 수 있습니다. '안전(security)’은 수 3:13에서 '정복'이라는 부대적 의미를 지닙니다. 이 단어의 사역능동형(히필형)은 사역적 의미와 허락의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첫째, '두다(deposit)‘라는 의미를 지닙니다. 즉 '어떤 것(어떤 사람)을 루아흐하게 합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에덴 동산에 "두신다"(창 2:15). 만나(출 16:34), 지팡이(민 17:4, H19), 소산물을 담은 광주리(신 26:4, 신 26:10)가 하나님 앞에 "놓입니다".
둘째 용법은 '어떤 것(어떤 사람)을 쉬게 허락합니다, 즉 상관 않고 내버려두다'를 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가나안을 그와 같이 상관 않고 내버려두셨습니다(삿 2:23). 그리고 다윗도 시므이를 내버려두었습니다(삼상 10:25). 이 어근은 단 한번 '동맹한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사 7:2).
누아흐는 최소한 4가지 중요한 신학적 용법으로 사용됩니다. 죽음과 관련된 용법, 영적인 용법, 군사적 용법, 구원론적 용법입니다.
첫번째 용법은 욥 3:13, 욥 3:17에서 볼 수 있듯이 죽음에서 쉰다는 것과 관련이 됩니다. 여기에서 욥은 그의 생존을 한탄하고 사산(死産)을 찬양합니다(참조: 잠 21:16). 단 12:13에서 하나님은 다니엘에게 그가 끝날에는 죽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
심리적, 영적 의미는 욥 3:26에 나옵니다. 이 구절에서 욥은 그가 불안 가운데 있으며(라가즈), 안락(샤카트)이나 평강(샬와)이 없다고 불평합니다. 잠 29:17은 ’아들을 징계하라. 그리하면 그가 마음의 안식을 줄 것이며 영혼에 기쁨을 줄 것이다.‘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영적인 안식(고통이 없는 상태)은 사 14:3, 사 14:7(참조: 잠 29:9)에 나타나 있으며 사 28:12에 가장 분명하게 나타나 있습니다(그러나 사 28:12에서는 분명히 구원론적 의미를 내포함). 영적인 안식을 누릴 수 있는 유일하고도 참된 곳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마누아흐, 시 116:7).
이 단어의 군사적 용법은 이스라엘의 원수들을 패배시키고 그들에게 이 땅에서의 안식(승리와 안전)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신 12:10)과 그 성취(수 21:44)를 반드시 수반합니다!. 안식을 계속하여 누리는 것은(삼하 7:1) 그들의 복종 여하에 달려 있었습니다(민 32:15). 전쟁의 사람이자 도구인 다윗은 하나님의 안식할 처소를 만들도록 허락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좇아 통치하였으며 평화를 이룩한 왕 솔로몬(즉 안식의 사람)이 허락 받았습니다(대상 22:9). 하나님의 군사적 주권은 팔레스틴 넘어서까지 미치었습니다(노아흐, 에 9:16). 그는 다른 '신들'과 달리 지역에 국한되지 아니하셨습니다. 이러한 상징적 용법은 시 125:3에 나타나는데, 여기에서는 '악의 주권'("악인의 권세")이 의인에게 '머물지 못하리라'("미치지 못하리니")(즉 정복하여 다스리기 위해 미치지 못하리니)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역시 이와 비슷한 것으로 잠 14:33, 전 7:9, 슥 6:8, 특히 민 11:25, 왕하 2:15, 사 11:2를 참조.
이 단어의 구원론적 용법은 안식일에 관한 신학 주변을 형성합니다. 창 2:2-3에서 샤바트(노동의 중지)가 하나님의 안식을 기술하지만 출 20:11에서는 누아흐가 사용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사람은 세상적 추구(출 31:12-17, 참조: 사 58:13-14)를 그쳐야 할 뿐만 아니라 승리/구원의 안식의 상태로 들어가야 합니다(수 1:13, 참조: 신 25:19). (군사적 안식과 마찬가지로) 이러한 안식을 가능케 하는 것은 오로지 하나님의임재와 은총 뿐이다(출 33:14, 참조: 사 14:3, 사 14:7). 진정한 안식/구원은 메시야 시대에 선포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방 언어(들)로 이러한 안식을 선포하는 상태에서 이스라ᅟᅥᆨ넣기 고전 14:12). 그러나 하나님은 결국에 메시야를 통하여 자신의 선택한 백성을 위한 참된 안식을 성취하실 것입니다(사 63:1 히 3:7-19, 히 4:1-13).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디서나 언제나 향기로운 존재가 되어야ㅡ합니다.
이는 향기롭다는 어근에서 루아흐 곧 성령의 임재를 읨하고 있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온 세상은 악취로 가득하다고 할지라도 성령의 권능은 불과 같고 기름과 같고 바람과 같아서 넉넉히 이깁니다.
감사합니다.
서울에서
이 우복 목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