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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석의 탄생 50주년을 맞이해 김광석 노래모음을 준비해 보았습니다. 1964년생이니까 살아 있었다면 50번째 해였을텐데 너무도 일찍 가버린 사람. 95년도에 라이브 공연 1천회를 돌파했던 생음악의 아이콘이었습니다. 아직까지 살아 있었으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곁에서 노래를 불렀을지. 안타깝기만 합니다.
오늘 김광석 노래모음을 정리한 이유는 평소 즐겨 듣던 가수이자 인생의 비포장길에서 자빠질 뻔 할때마다 힘이 되던 좋은 노래가 정말 많아서입니다.
음악 블로그를 표방하면서 김광석 노래를 빼먹고 다른 음악만 다룬다는 것은 블로거로써 물이 없는 사막에서 앙꼬 없는 찐빵을 먹으며 이어폰 없는 아이팟을 들고 손님 없는 잔치에 향하는 도라에몽 없는 진구(다른 말로 아라치 없는 마루치) 신세와 다를 바 없습니다. 단증 못 딴 태권브이 신세죠. 김광석은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김현식과 더불어 호소력이 가장 짙고 곡 마다 느껴지는 감정이 가장 진솔하게 다가오는 가수 같아요.
아무튼 각설하고, 글을 정리하다 보니 좋은 노래가 너무 많아서 뭘 골라야할지 고민도 많이 했습니다만 주로 제가 즐겨 듣던 곡들 위주로 노래모음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사랑했지만>
이 노래는 김광석 2집의 곡이고 본격적으로 김광석의 이름을 알려준 곡인데요. 한동준이 작사작곡한 곡입니다. 수동적인 사랑 노래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고 합니다만 나이 드신 어느 할머님이 이노래가 좋아 비오는 날 레코드 가게 앞에서 비를 맞으며 끝까지 듣고 마음속에 담아 기억하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더욱 열심히 부르게 되었다는 곡입니다.
<나의 노래>
김광석의 나의 노래는 1,2집에서 다른 사람이 작곡해준 노래로 인기를 조금씩 얻고 있던 김광석이 그야 말로 '나의 노래'를 가지고 대중들에게 어필하기 시작한 시발점과 같은 앨범이 3집이라고들 하는데요. 나의 노래 역시 김광석이 작사작곡한 곡은 아닙니다. 하지만 김광석의 하나 뿐인 딸이 아빠가 노래하는 모습 중에서 특히 이 노래 할 때를 좋아했다고 합니다.
<바람이 불어오는 곳>
이 노래는 갓 케이블 방송이 시범 방송을 시작하고 난 뒤 Mnet에 살짝 밀리던 KMTV가 야심차게 준비한 김광석 콘서트 장면으로 넣었습니다. 음악이 끝나고 나면 짧게 멘트가 나오는데 들어보시면 재밌습니다. 동영상에서는 살짝 기분이 쳐지게 부르지만 낯선 곳으로 출장을 가거나 현장 촬영 등 업무를 나갈 땐 항상 이 노래를 듣곤 합니다.
<서른 즈음에>
이곡이 1994년 한국노랫말 대상에서 좋은 노랫말상을 수상한 곡입니다. 그 때 당시에는 잘 모르고 있다가 나이가 점점 차면서 서른 즈음이 되니 정말 와 닿았던 노래입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한참 창창하고 미래가 밝은 나이인데 '내일 모레가 서른이다. 그런데 해 놓은게 없다.' 하는 좌절감이 숨통을 조여오던 그 때 들으며 위안을 삼았던 곡입니다. 딱히 들으려 하지 않아도 기분이 우울하고 쳐질때면 이 노래가 제일 먼저 떠오르더군요. 김광석 노래모음에 있는 곡들 중 가사가 좋기도 하지만 나처람 갑갑해 하는 사람이 나 하나가 아니라는 사실에서 많은 위안을 준 곡입니다.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김광석의 노래 한곡 한곡 힘이 안되는 곡이 없지만 굳게 마음을 다지는 노래로 이만한 곡이 없어요.
"이제 우리 다시는 사랑으로 세상에 오지 말기, 그립던 말들도 묻어버리기, 못다한 사랑.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다음에 나오는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와 더불어 사랑에 생채기난 아픈 가슴을 달래주던 명곡입니다.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이별 후 복잡하고 괴로운 마음이 어느정도 정리되고 나면 이제 놓아줘야 한다는 마음이 들게 마련이죠. 이별을 해 본 사람이라면, 특히 사랑하던 사람을 떠나보내고도 아직 사랑하는 마음이 남아 있는 그런 상황을 겪어본 분이라면 이 노래에 느끼는 공감은 아마 몇배 클 거예요. 저는 수많은 메탈밴드 공연 못 본거 다 합쳐도 이 노래를 라이브로 직접 듣지 못한게 더 아쉽습니다.
<그녀가 처음 울던 날>
이 노래는 김광석의 노래로 알고 있지만 사실 기타 교습서를 많이 내시는 이정선의 노래입니다. 이 노래가 수록된 <다시 부르기2> 음반은 윤도현의 <한국 ROCK 다시 부르기>와 더불어 국내 가요 리메이크 앨범 중 최고가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다시 부르기1>도 포함이지요.
짧은 포스팅 안에 김광석 노래모음을 다루려다 보니 좋은 노래가 너무 많아 뺄 곡은 없고 글은 길어지고 고민이네요. 1부, 2부로 나눠서 쓸 걸 그랬어요.
<이등병의 편지>
군대 가기 전에, 그리고 군에 가서 이 노래 한 번 안들은 남자가 있겠습니까! 지난번 군인을 위한 노래 모음 글에도 잠깐 소개했는데요. 전 친구들 다 배웅해주고 혼자 들어갈 때 너무 쓸쓸해서 혼자 이 노래를 엠피쓰리에 넣어 들으며 분위기를 잡았습니다. 옷 깃도 좀 세우고 쓸쓸한 가을 바람을 맞으며 들어갔는데 그것도 봐주는 사람이 없으니까 기분이 안나더군요. ㅋㅋ
<말하지 못한 내사랑>
김광석의 노래는 모태솔로를 위로하는 곡도 있습니다. 말하지 못한 내사랑은 어디쯤 있을까? 없죠. 없어서 아직 말을 못해봤죠. 역시 위안을 주는 노래는 김광석이 최고인게 사랑을 해본 사람이나 사랑을 못해본 사람이나 골고루 어루만져 줍니다.
<먼지가 되어>
원곡은 이미키라는 가수가 1986년인가 87년에 내놓았고요. 그 후에 1991년에 이윤수라는 가수가 리메이크하고 1996년 김광석 버전이 나옵니다. 이 곡은 슈퍼스타K에서 로이킴과 정준영이 편곡해서 불렀다고 합니다. 그건 못봤어요. 오디션 프로그램은 잘 안봐서요. 원곡도 가창력이 장난 아니예요.
<어느 60대 노부부의 사랑이야기>
지난번 포스팅에도 한 번 다룬 적이 있는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는 한국 블루스의 갓파더 김목경의 곡입니다. 김목경 버전과 살짝 다른 느낌을 주는데요. 김광석이 찾아가 이 노래를 부르고 싶다고 하자 "해라~!" 하고 허락해 주시며 노래값은 어떡하냐 하니 그동안 빌린 돈으로 퉁 치자고 했던 쿨한 김목경님 덕분에 김광석의 목소리로 이 곡을 듣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나이가 들어서도 이런 애틋한 사랑을 할 수 있을까 고민에 빠지게 만드는 곡입니다. 반성도 하게 되고요. 김광석 노래모음에 절대 빠져선 안될 곡입니다.
<일어나>
영상을 보면 노래하기 전에 본인이 삶에 대해 느끼던 답답함을 풀기 위해 쓴 노래라고 합니다. 살기 싫고 그만 살까 싶을때 어차피 살거 즐겁게 살기 위해 만들었다는 노래라고 하면서 들려주는 곡인데요. 이런 적극적인 사고를 가지신 분이 자살을 했다는게 지금도 믿기지 않아요.
<부치지 않은 편지>
정호승 시인의 글은 군에 있을 때 여러 책으로 접하게 되었습니다. 훗날 정호승 시인의 책을 찾아 서점을 뒤지던 시절도 있었는데요. 김광석의 부치지 않은 편지라는 곡을 처음 접한게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 에 삽입된 곡을 듣고 여운이 깊이 남았었습니다. 그 후 군입대를 하면서 군에서 정말 많이 들었어요. 저는 촌에서 자라서 김광석의 공연을 직접 볼 기회는 없었는데요. 군 입대하기 전에 짧막하게 떠돌던 비디오 파일을 구해서 본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는데, 그 비디오 파일을 몇날 며칠 입대하는 날까지 보고 또 보고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노래 마지막의 "그대 잘가라.." 하는 부분을 들을 때면 김광석의 콘서트 장면이 떠오르곤 합니다.
1964년 경상북도 대구시 대봉동 방천시장 번개전업사에서 3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초등학교 입학 전에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창신동(현재는 종로구 관할)으로 이주하여 창신초등학교, 경희중학교, 대광고등학교를 나왔으며, 중학교 시절 현악부 활동을 하였고 이때 선배들로부터 바이올린을 다루고 악보를 보는 법을 배웠다. 대광고등학교 시절 합창부로 활동을 하면서 음악적 감성을 키웠다.
1982년에 명지대학교 경영학과에 입학하였고, 이후 대학연합 동아리에 가입하면서 민중가요를 부르고 선배들과 함께 소극장에서 공연을 시작하였다. 1984년 12월 노래를 찾는 사람들 1집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1985년 1월 입대하였으나 군 생활 중 큰형이 사망함으로 인해 6개월 단기사병(방위병)으로 복무를 마치고 제대하였다. 복학해 다시 노래를 찾는 사람들에 합류하여 1, 2회 정기공연에 참여한다. 1987년 학창시절 친구들과 함께 동물원을 결성해 동물원 1집과 2집을 녹음하였다.
1989년 10월 솔로로 데뷔하여 첫 음반을 내놓았으며, 이후 1991년에 2집, 1992년에 3집을 발표하였고, 1994년에 마지막 정규 음반인 4집을 발표하였다. 정규 음반 외에 리메이크 앨범인 다시부르기 1집과 2집을 1993년과 1995년에 각각 발표하였다. 1991년부터 꾸준히 학전 등의 소극장을 중심으로 공연하였으며, 1995년 8월에는 1000회 공연의 기록을 세웠다.
1996년 1월 6일 자택에서 전깃줄로 목을 매 자살했다.[6] 향년 32세. 시신을 화장한 후 사리 9과가 나와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7] 유족으로는 아내와 딸이 있다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
곱고 희던 그 손으로 넥타이를 매어주던 때
어렴풋이 생각나오 여보 그때를 기억하오
막내아들 대학시험 뜬눈으로 지내던 밤들
어렴풋이 생각나오 여보 그때를 기억하오
세월은 그렇게 흘러 여기까지 왔는데
인생은 그렇게 흘러 황혼에 기우는데
큰딸아이 결혼식날 흘리던 눈물방울이
이제는 모두 말라 여보 그눈물을 기억하오
세월이 흘러감에 흰머리가 늘어가네
모두다 떠난다고 여보 내손을 꼭 잡았소
세월은 그렇게 흘러 여기까지 왔는데
인생은 그렇게 흘러 황혼에 기우는데
다시 못올 그먼길을 어찌 혼자 가려하오
여기날 홀로 두고 여보 왜 한마디 말이 없소
여보 안녕히 잘 가시게
여보 안녕히 잘 가시게
Music Saloon of Lonely 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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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 ◐ 김목경 작사 작곡 - 김광석 노래
곱고 희던 그 손으로 넥타이를 메어 주던 때
어렴풋이 생각나오 여보 그때를 기억하오
막내 아들 대학시험 뜬눈으로 지내던 밤들
어렴풋이 생각나오 여보 그때를 기억하오
세월은 그렇게 흘러 여기까지 왔는데
인생은 그렇게 흘러 황혼에 기우는데
큰 딸아이 결혼식날 흘리던 눈물 방울이
이제는 모두 말라 여보 그 눈물을 기억하오
세월이 흘러감에 흰머리가 늘어가네
모두 다 떠난다고 여보 내 손을 꼭 잡았소
세월은 그렇게 흘러 여기까지 왔는데
인생은 그렇게 흘러 황혼에 기우는데
다시 못 올 그 먼 길을 어찌 혼자 가려하오
여기 날 홀로 두고 여보 왜 한마디 말이 없소
여보 안녕히 잘 가시게
여보 안녕히 잘 가시게
여보 안녕히 잘 가시게.
이 노래는 김목경이 영국 유학 시절에 자취방 창문을 통해 어느 영국 노부부를 보았는데 그때 그들의 자식들이 방문해서 노부부의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 작곡 했다고 합니다. 또한 지금은 고인이 된 김광석은 이 노래를 부르게 된 계기의 추억이 있었다고 하네요. 故 김광석의 추억 담 마포대교를 건너는 중 버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가 하도 절절해서 나도 모르는새에 눈가가 촉촉히 젖어왔다. 김목경씨의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라는 노래, "다시 부르기 2집'에 담기로 했다. 녹음에 들어가서, 가사 중간의 "막내 아들 대학시험"이라는 대목에 이르기만 하면 이상하게 목이 매여 녹음을 진행할 수가 없었다 몇번인가 시도를 했지만 마찬가지, 결국은 술을 마시고 노래를 불렀다. 우리에겐 김광석의 노래로 더 잘 알려져 있습니다.
첫댓글 올해는 대구가낳은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불운의 가수 탄생50주년이 되는 고 김광석님의 추억을 더듬어 봅니다.으로 남아있습니다.
님은 떠났지만 그가 남긴 불멸의 명곡 우리들 가슴속에 영원히 한떨기 아름다운 향기로운
옛말에 "천재는 단명하다."라고 하시드니...
사실이 그런가 봅니다.
우리 가까이에 그러분이 계셨다는것을 잘 모르고 있었네요!
좋은자료 잘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