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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재작년 여름 두번이나 미뤄온 한 달짜리 마지막 배낭여행을 다녀왔다. 인도 서북지방에서 파키스탄으로 들어가서 카라코람 하이웨이를 타고 장수마을 훈자를 거쳐 중국 신장, 위구르 지역과 파미르 고원을 들른 후 키르키스탄 고산지대와 우즈베키스탄 실크로드 유적지들을 보는 것이 주요 일정이다.
당초에 동창 S형과 같이 가려고 지난번부터 별렀지만 이번에도 사정이 있어 같이 가지 못하고 한 두 명씩 모인 여행 MATE 12명이 함께 다녀왔다. 그 중 한명은 길잡이 역할을 하는 친구로 이동하는 길안내와 숙소안내 등이 주요 임무이고 행선지에 도착하면 먹거리 해결과 볼거리 찾아 움직이는 등은 각자가 알아서 해야 한다. 다행히 이번 길잡이는 해박한 역사 지식이 풍부해서 30대에서 70대까지인 길 벗들에게 가는 곳마다 도움을 주어 좋았다.
작년에 가평에 개간공사와 마지막(?) 집짓기를 마치고 배추 농사를 지은데 이어, 올 봄에는 참취(취나물)와 곤달비(곰취와 비슷함) 농사 짓느라 계속 바빴고, 사과 과수원에는 고라니, 멧돼지 습격이 몇차례 있어서 안되겠다 싶어 울타리치는 작업을 땀범벅으로 마치고 나니 7월 하순이 다 되었다. 그래서 5,6월을 미루다 7월 25일 출발일을 약속해 놓았고, 딱 한 달 여행을 마치고 8월 하순에 돌아 왔다.
먼저 날씨와 지역적 특이점을 얘기해 보면, 중앙아시아의 이맘때는 한여름이 수그러드는 건기지만, 한낮에는 볕이 상당히 따가왔다. 다만 파키스탄, 중국 최서단 신장,위구르와 키르키스탄 일부 지역은 고산과 고원지대라 밤에는 썰렁했고, 키르키스탄 전통 유르트(몽고 빠오, 게르와 비슷)에서의 하룻밤 야영을 위해 침낭까지 준비해 가야 했다.
1. 인도 서북부/ 델리-암릿차르
인도 델리의 여행자 거리 빠하르간지는 전보다는 많이 깨끗해지고, 어슬렁거리는 소도 안보였지만, 그래도 힘든 배낭여행의 출발지로는 제격으로 붐비고 시끄러웠다. 다른 사람들은 여럿이 LOCAL투어를 나갔지만, 나는 전에 안 본 곳 몇군데를 전철과 릭샤를 타고 혼자 돌아다녔다. 처음 들른 암릿차르의 시크교 최대 성지 황금사원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2. 파키스탄/ 라호르-이슬라마바드-나란-미나핀-훈자-소스트
국경을 넘어 라호르 유적지와 수도 이슬라마바드의 파이살모스크등을 찾아가 보고, 대통령궁을 둘러보려 하였으나 공교롭게 가는 날 7/28이 파키스탄에서도 대통령이 탄핵되어 궁 근처가 페쇄되었고, TV에서는 연상 특집뉴스르 틀어대고 있었다. 어디를 가나 민권이 강해져 가는 걸 느낄 수 있고, 어쩌면 트럼프도 무슨 일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잠깐 머리를 스쳐갔다.
이슬라마바드를 벗어나면서 바로 카라코람 하이웨이로 접어들어 탁실라 유적지를 보고 나서 나란에 짐을 푸니 벌써 고도가 2,500M이다. 그런데 오는 중간에 경찰이 우리 일행 버스를 세워 한참을 잡아 두기에 웬일인가 했더니, 파키스탄은 정국이 불안정해서 지난주에 라호르 지역에서 차량테러가 있었다고 하고, 관광버스는 의무적으로 경찰(거의 군인 수준임)이 칸보이를 하거나 차량에 같이 타고 움직여야 한단다. 그렇게 시작된 경찰 호위는 다른 관할구역으로 넘어갈 때는 다음 경찰에게 인계하면서 훈자에 도착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파키스탄은 히말라야 산맥 줄기가 뻗어 있어 등산객의 구미에 딱 맞는데, 한 친구는 정말 산을 좋아해서 산만 접하고 머무르면 기어올라갔다. 나란에서 일박 후 오후에 미나핀으로 출발하기 전에, 이 친구는 라카포쉬산(7,788M, 카라코람 산맥에서 K2 다음으로 유명함) 베이스캠프까지 왕복 8시간 코스를 새벽에 이미 출발하고, 나는 아쉽지만 무리하지 않고 늦게 출발해서 그래도 절반 가까이 올라갔다가 내려왔다. 아직은 그래도 40-60대 후배들 보다 더 많이, 더 잘 움직일 수 있어 고맙게 생각하면서. 이번 여행기간중에도 하루 안 거르고 남보다 조금 일찍 일어나서 스트레칭, 체조, 걷기 등을 한시간 이상씩 하고 아침을 먹으니 밥맛도 잃지 않았고, 다른 때 여행과 달리 배탈도 한번 안났다. 물이 안 좋은 지역이라 미리 준비해 간 햇반과 라면 덕도 있었지만.
나란과 미나핀의 중간에 있는 해발 4,100M의 바부사르 PASS를 버스로 넘었는데 아무도 고산증세를 안 느껴 다행이었고, 마침내 장수마을 훈자에 도착해서 3박을 했다. 훈자는 TV에도 여러번 소개가 되었지만 장수마을로 특히 4가지 과일이 유명한데, 살구, 호두, 사과, 오디로 오디는 익어도 검지 않고 흰색인 것이 특징이다. 특히 살구는 붉은 살구, 흰 살구등 35종이 있다고 하며 가는 곳 마다 지천인데, 곳곳에 아낙네들이 씨를 빼고 말리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나도 처음부터 생각하고 간 터라 말린 살구를 한 푸대 사서 먹어서 줄어드는 햇반 등 먹거리의 빈자리에 넣고 왔다. 훈자는 장수 비결이 말린 살구를 장복하는 것과 산위 빙하에서 내려 온 탁한 물을 거르지 않고 그냥 마시는 것에 있다고들 한다. 밀키스, 환타같은 음료수처럼 훈자의 물은 아주 탁한데, 미세하고 거무튀튀한 미네랄 입자가 흐르는 물속에서 노는 모습이 고물고물 그대로 보여도 가라앉히지를 않고, 사람들은 그대로 마시는 것은 물론, 호텔의 수도꼭지에서도 그 물이 흘러 나온다. 우리는 직접 마시는 용기는 발휘하지 못하고, 시종일관 생수를 사 먹으며 배탈에 대비했지만, 이동하며 세탁을 안 할 수 없어 호텔 주인한테 물어보니 흰 옷을 세탁해도 괜찮다고 하길래 시도해보았더니, 거짓말같이 얼룩도 안 생기고,이상이 없었다.
훈자에서도 HOPER 빙하도 가 보고, 탁한 물을 막아 만든 자연수영장에서 노는 아이들, 유네스코 문화유적 마을과 오래된 시골 마을 등을 찾아 쉬지 않고 발품을 팔아 다녔다. 그런데 NAGAR라는 마을에 가서 점심을 먹으며 얘기를 나누니, 동네 젊은이 20여명이 한국에 유학가서 기술분야 등을 배우고 있다고 해서 감회가 깊었다. 작은 마을에서 인구대비 상당히 많은 청년들이 우리나라로 유학을 갔다고 하니 그들이 나중에 나라의 기둥도 되겠고 우리나라 홍보대사 역할도 할테니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카라코람 하이웨이는 간략히 설명하면, 고속도로가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높고 길게 이어진 자동차 도로로, 파키스탄 아보타바드에서 중국 신장의 카슈가르까지 뻗어 나간 1,250KM의 길이로 히말라야, 힌두쿠시, 카라코람의 거대한 산맥을 가로질러 만들어진 도로이다.
3. 중국/ 타슈쿠르간-카슈가르
파키스탄 국경도시 소스트에서 카라코람 하이웨이의 최절정이자 세계에서 가장 높은 국경인 쿤저랍 PASS (해발 4,800M)를 넘어 중국 타슈쿠르간으로 들어 갔다. 지금부터는 신장, 위구르 지역으로 오래 전의 강제 합병에 대한 불만이 팽배해 있어 가끔 폭동이 일어나는 곳이라 국경을 넘는데도 시간이 엄청 걸리는데다, 국경 넘는 중, 버스에서 내려 개별행동은 일체 하지 못하게 하고, 화장실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곳에서 그것도 단체로 묶어서 이동을 시킨다. 거기다가 처음 짐검사를 까다롭게 하고 보통 IMMIGRATION이 바로 붙어 있는데 여기는 차로 한시간 반 정도를 움직여야 여권검사를 받는 곳으로 이동한다. 이동간의 도로도 중간 중간에 공사하는 것 같이 헤집어 놓고 차종에 따라 30-50KM로 제한속도로 묶어 서행시킨다. 이런 것들 모두가 사람들이 많이 모이지 않게 하는 테러 방지책의 일환이라는 것이다.
타슈쿠르간-카슈가르 이동 중에는 유성으로 생긴 호수중 세계에서 가장 큰 호수인 카라쿨호수와 파미르고원의 일부인 넓은 평원 등을 보면서 가느라 볼거리가 있었고, 카슈가르에선 모스크 등 이슬람 문화의 정취를 느낄 수 있어 좋았지만, 그래도 중국 한족의 위세에 눌려 있는 현지 주민들의 밝지만은 않은 모습이 바탕에 깔려 있는 듯 싶어 조금은 안스러웠다.
4.키르키스탄/타쉬라밧-촐폰아타-비쉬켁-오쉬
다시 엄격한 국경 입출국을 거치고 해발 3,750M인 토르갓 PASS를 넘어 키르키스탄 타쉬라밧으로 들어가 첫날은 전통 유르트에서 말도 타고, 주위 산의 초원도 거닐어 보면서 일박을 했다. 이 근처부터는 중국에서 뻗어 온 텐샨산맥과 호수등의 고지대 풍경이 눈에 들어와 마음이 푸근해진다. 대부분의 여행 친구들이 시끄러운 도시보다 자연이 훨씬 좋다는 얘기를 했다. 다른 배낭여행 때도 그랬지만 이번에도 엄청난 여행 고수들이라 나 어디 갔다왔는데 하는 식의 여행 자랑은 식상할 정도로 웬만한 나라는 다 갔다 온 친구들이다. 그러니 자연을 사랑하는 공통점도 있게 마련이다.
TV에 나오는 제주도 4배 크기의 이식쿨호수, 수도 비쉬켁에서의 전통 바자르, 근교의 양과 소를 거래하는 큰 동물시장 등도 둘러보고, 호텔에서는 시간여유가 있어 수영도 해 가면서 벌써 종반으로 접어들어 가는 시간의 빠름을 느끼기 시작한다. 국경도시 오쉬에서는 앞산에 올라 이슬람 성지도 보고 구멍이 5-6개나 뚫린 동굴과 솔로몬왕의 왕좌 5봉 오르기, 빤질 빤질하게 닳은 자연 미끄럼 바위에서 미끄럼도 타면서 여유를 즐겼다.
5. 우즈베키스탄/페르가나-타슈켄트-사마르칸트-부하라-히바
우즈베키스탄에 들어서니 크게 달라진 게 길의 차량이 대부분 대우차와 후속 시보레의 모델이다. 키르키스탄부터 PONY 등 아주 오래된 대우차들이 많이 보이기 시작하더니 이곳에 오니 마티즈 등 소형차가 엄청 많아진 반면에 아직까지 그렇게 많이 보이던 일본차는 거의 자취를 감추고 마치 대우 왕국에 들어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대우가 이곳에 현지 공장을 만들고, 중간에 달려 온 도로도 POSCO 등 우리나라에서 시공한 곳이 많았고, 우리와 많은 인연을 맺어서, 한때는 김우중 회장이 대통령에 출마하면 당선될지도 모른다는 얘기까지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참고로 아직도 부하라에는 100% 한국자본이 투자된 포스코-대우 면방이 대우 마크를 달고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고 한다.
우즈베키스탄에는 12-13세기 중앙아시아를 지배했던 징키스칸에 이어, 몽골의 후예 아미르 티무르가 14-15세기에 이 지역을 평정하면서 서쪽의 페르시아까지 넘보고 다투었다. 그때 이후 세운 모스크와 메드라사(신학교), 성, 미나렛(첨탑)등의 유적과 무덤등이 엄청 많았으며, 수도 타쉬켄트에는 현대식 건물과 넓직 넓직하고 깨끗한 도로, 공원등과 조화를 이루어 보기 좋았다. 그리고 사마르칸트도 스케일 크게 지은 유적들이 곳곳에 군락을 이루며 분포해 있어, 사진을 찍으며 천천히 다니니 편했다.
특히 부하라와 히바에서는 각각 2박을 하면서 비교적 몰려 있는 유적지를 천천히 걸어다니며 보면서 귀국 직전의 여유를 즐길 수 있었다. 수없이 많은 바자르(재래시장)을 둘러보는 것도 재미있는데 고려인 아주머니와 우리말로 인사도 나누고, 김치 등 우리 음식을 사다 먹기도 했다. 또 현지인들과 얘기하다 보면 “주몽” “대장금”등 한국 드라마 얘기도 가끔씩 나오곤 했다.
그곳에서도 중간에 CNN등 뉴스를 보니 괌 근처에 미사일을 발사하겠다는 엄포와 줄다리기로 시끄러운 와중인 걸 알았고, 우리 한국민이 이웃 큰 나라들 싸움에 같이 휘말려 그런 저런 여파로 이국 멀리 와서 고생하며 사는 걸 보며, 지정학적으로 어려운 위치에 있는 우리가 그래도 어떻게든 똘똘 뭉쳐 나라힘을 모아야만 후손들이 편할텐데 하는 절박한 기분도 많이 느꼈다.
참고로 실크로드는 당나라 장안에서 로마까지 이어진 길이었으며, 키르키스탄에서 우즈베키스탄의 주요 도시와 유적지로 이어지는 실크로드는 인류문명의 교류가 진행된 통로로, 130년 전인 근세에 와서 당시에 중국여행 후 5권의 책자를 낸 독일의 지리학자 히리트 호펜이 처음 명칭을 부여한 것으로, 이 길을 통해 이루어진 주요 교역물자의 하나가 실크였기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그 중 사마르칸트는 실크로드의 중간 거점도시로, 숱한 사람과 물자를 이어주던 문화의 교차로였다.
이상으로 여행 줄거리를 마치고 다른 얘기를 좀 하려 한다. 이번 여행 메이트 중 재미있는 사람을 하나 얘기해 보려는데, 손아래 띠동갑 60세로, 노름으로 한 밑천을 잡아 땅도 사고 건물도 산 사람 얘기다. 처음엔 을지로 양복점의 재단사로 사회에 발을 들인 후 우연찮게 노름에 손을 댔는데 자기 말로는 완전 타짜는 아니라도 패를 읽는데 일가견이 있어 열 번 붙으면 팔할 가까이 승률이 있었단다. 거기다 고객(?)이 현찰 동원 능력이 좋은 친구들이라 10여년 전인데도 하루밤에 몇천은 거뜬히 쓸어담곤 했다고 한다. 그래서 현재는 건물을 세도 주고 농장도 있고, 부동산 사무실도 가지고 있다면서, 이런 류의 사람들 거의 공통인 외제차도 굴린다고 자랑이다. 그래서 땀흘려 열심히 사는 다른 젊은 친구들이 기가 너무 죽을까 보아 내가 맞불작전을 조금 펴서 그 이후로는 좀 조용해지긴 했지만, 어쨌든 어느 여행에서든 전체 분위기를 편하게 균형잡는 게 나이백이인 나의 주요 역할 중 하나인 건 틀림이 없다.
여름, 겨울 방학 때는 교사들이 여행을 많이 나선다. 이번에도 아들뻘 되는 룸메이트와 다른 몇 명이 교사였다. 시간 많고 요즘 잘 나가는 직업의 하나라 교사 여행 천국인 셈이다. 그런데 본인들도 실토하지만, 같이 생활해 보면 공무원, 군인, 교사 등 전문직 종사자들은 주로 한가지 일에 몰두해서 그런지 시야가 조금 한정되는 것 같고, 남보다 나 먼저 하는 등 남을 배려하는게 조금 부족한 경우가 많은 걸 느낀다. 제조업체나 굴뚝산업 등에서 땀흘려 가며 위, 아래 눈치보며 조직생활해 본 사람들과는 달리, 처녀, 총각이 바로 일터에 나가면 선생님 소리를 듣고 동등한 대접을 받다 보니 알게 모르게 쉽게 사는게 몸에 배어서 그런 것 같다. 때로는 환경이 사람을 만드는 것이, 대한항공 조현아가 온실 속에서만 살았으니 갑질이 뭔가를 알 수 없는 것도, 비슷한 얘기일 것 같다. 그러니 부모나 관계인의 따뜻한 인성교육이 어렸을 적부터 절실히 필요하다는 얘기이고.
또 요즘은 개인 신상 명세가 비밀로 되어 있다 보니, 나이를 한 두살 올려 얘기해서 일종의 나이대접을 받아 보려는 친구들도 있다. 나의 경우에는 2, 3일만 지나면 웬만한 사람들 신상을 금방 정확히 파악하는데, 이번에도 자기 마음 고생하면서 쓸데없이 그렇게 나이부풀리기하는 친구들이 몇 명 눈에 띄었다. 그래도 이번 여행 메이트들은 대체로 편하고 까다롭지가 않아서 좋았다.
이쯤에서 장기간 배낭여행을 마치는 변으로 마무리해야겠다, 사실 개인적으로 다닐만큼 다녔고, 볼만큼 본 것도 있지만, 또 다른 일면으로는 그렇게 많이 다녀도 다른 사람한테 도움을 주거나 이바지하는 소위 擴大再生産(확대 재생산)할 나이도 지난데다가 이제는 가깝고 편한데 가서 머무는 여행, 안 가 본 좋은 곳이 많은 국내여행 쪽으로 방향을 좀 돌릴까 한다. 사실 가평에서 집사람과 흙과 벗하고 살다 보면 여행 다닐 시간을 많이 낼 수 없기도 하고, 어쨌든 이제는 남은 세월을 주로 가평에서 보내며, 모든 걸 SLOW 모드로 바꾸어 가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앞으로 이렇게 살겠다 싶은 생활 모습을 靑馬 유치환의 심산(深山)이라는 시로 대신하고 마치고자 한다.
심심 산골에는 산울림 영감이 바위에 앉아 나같이 이나 잡고 홀로 살더라.
좋은 나날들 되소서. 가을이 시작되는 9월초에. 靑 巖 이 창 성 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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