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21:28]
그러나 너희 생각에는 어떠하뇨 한 사람이 두 아들이 있는데 맏아들에게 가서 이르되 얘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 하니....."
그러나 너희 생각에는 어떠하뇨 - `그러나'의 뜻인 접속사 '데'는 앞의 문장에 대한 반대 내용(역접)을 연결하기 위해서 사용되는 '알라'와는 달리 앞의 말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새로운 내용을 전개해갈 경우에 사용된다. 따라서 이 문구는 '한편 다음과 같은 비유에 대해 너희들은 어떻게 생각하는가?'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러므로 예수의 주장과 반대되는 사실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이야기를 통해서 자신의 주장을 계속 확증시킬 것임을 암시한다. 또한 '너희 생각에는 어떠하뇨'라는 말은 마태가 예수의 비유를 소개할 때 혼히 사용하는 표현이다. 본 비유에서 이 말은 사람들의 흥미를 유발시키는 역할 뿐만 아니라
비유의 내용을 객관적인 것으로 만들므로써 이 산헤린의 공회원들로 하여금 비교적 객관적인 대답을 하도록 유도한다. 한 사람이 두 아들이 있는데 - 두 아들과 포도원을 가진 그 `사람'은 하나님을 상징한다. 그러나 이 문맥에서 '아버지'가 세리들과 창기들이 처음에는 거부하였으나 후에는 믿고 따랐던 세례 요한을 상징한다고 보는 사람들도 있다.
물론 전자가 더욱 적절한 해석이다. 한편 예수께서는 '아들'이라는 표현을 법적 상속권이 강조된 용어 '휘오스'가 아니라 이 보다 훨씬 부드러운 단어인 '테크논'을 사용함으로써 아들들에 대한 아버지의 애정을 암시하고 있다. 한편 비유의 이 두 아들들에 대해서 (1) 맏아들은 율법과 의를 강조하면서도
세례 요한과 예수의 가르침과 그 권위를 부인하는 유대 종교지도자들과 율법주의자들을, 둘째 아들은 스스로 죄인임을 알고 죄사함을 얻기 위하여 예수께 나아온 세리와 창기를 상징한다는 견해, (2) 맏아들은 이미 선민으로 선택받았음을 자랑하는 유대인을. 둘째 아들은 새이스라엘 백성이 되려고 주께로 돌아오는 이방인들을 상징한다고 하는 주장이 있다.
어찌되었든 본문에서 마태는 이 두 아들을 통해서 하나님을 위해 일하겠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한 세례 요한과 예수를 거절한 유대지도자들과, 율법을 완전히 실행할 수 없음으로 인해서 스스로가 죄인임을 알고 있으나 예수를 믿음으로써 새사람이 되려고 하는 사람들의 서로 상반(相反)된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 -
구약에서는 흔히 포도원이 이스라엘을 가리키는 상징적 표현이 되었는데 신약에서는 교회 혹은 세상의 의미로 사용되었으며 그것이 무엇을 상징하든지 간에 그 포도원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라고 하는 사실은 결코 변함이 없다. 한편 '오늘 가서 일하라'고 하는
아버지의 명령은 긴박성을 띠고 있는 것으로 아들들에게 이미 어떠한 개획이 있든지간에 이에 상관없이 아버지의 명령을 따라야 할것임이 강조되고 있다. 이웃 사랑을 통한 복음전파의 사역은 그 일을 맡은 주의 성도들에게 오늘, 지금, 여기에서 부여되고 있는 긴급명령이다.
[마 21:29]
대답하여 가로되 아버지여 가겠소이다 하더니 가지 아니하고...."
아버지여 가겠소이다 - 아버지에 대한 존경과 순종이 표현되고 있는 이 대답에는 '내가 틀림없이 가겠다'고 하는 확신과 자발적 의지가 내포되어 있다. 맏아들은 부르심이 있자 기다렸다는 듯이 즉시 응답하였다.
그러나 사실상 그는 복종할 생각도 없었고 이에 대해 뉘우칠 마음의 변화도 전혀 없었다. 이 모습은 바로 성전 안에서는 하나님의 뜻에 따르겠다고 맹세하면서도 성전 밖에서는 그 맹세를 이행치 않는 서기관, 바래새인들의 위선적인 생활상을 보여주는 것이다.
[마 21:30]
둘째 아들에게 가서 또 이같이 말하니 대답하여 가로되 싫소이다 하더니 그 후에 뉘우치고 갔으니......."
싫소이다 - 아버지의 면전에서 그 명령을 단호히 거절하는 이 표현은 어쩌면 하나님 앞에서 공공연한 죄를 짓는 것을 상징하는 말일 수도 있을 것이다. 사실 그에게 있어 아버지의 명령은 너무 갑작스러운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하늘 아버지의 명령은 다른 모든 해야할 일보다 우선 순위에 있는 것이므로 '싫다'고 거절한 태도는 어쨌든 잘못된 것이었다.
뉘우치고 갔으니 - 뉘우친 것에 끝나지 않고 아버지의 명령에 순종했다. '뉘우치다'라는 말에 사용된 '메타멜로마이'는 마음과 생각과 의지의 변화가 일어난 것을 가리키는 '메타노에오'보다 약한 의미로 감정적인 차원에서의 후회, 뉘우침, 나중에 유감으로 생각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메타멜로마이', 즉 '뉘우치고'가 꼭 회개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가룟 유다도 뉘우쳤으나 스스로 목매어 죽어 버렸다. 그러나 본문의 둘째 아들은 양심의 가책을 느낀 동시에 '자신의 의지'를 실현할 장소로 가지 않고 '아버지의 의지'를 실행하기 위해 포도원으로 갔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행동 전체, 즉 '뉘우치고 간' 바로 그 행동 자체가 올바른 회개를 뜻하는 '메타노에오'가 되었다. 매튜 헨리에 의하면 '뉘우침'이란 말에는 '때늦은 지혜와 병 치료 후의 몸조리'라는 뜻이 있다고 한다.
[마 21:31]
그 둘 중에 누가 아비의 뜻대로 하였느뇨 가로되 둘째 아들이니이다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리들과 창기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리라....."
그 둘 중에 누가 아비의 뜻대로 하였느뇨 - 두 아들은 모두 죄인이다. 맏아들은 아버지를 속이고 그 명령을 행하지 않은 거짓과 위선의 죄를 범했으며, 둘째 아들은 아버지의 명령은 완전히 거절하는 무례를 범하였다. 맏아들은 예의바른 자이지만 정직하지 않은 자이고, 둘째 아들은 정직하지만 고집이 세다.
예수께서는 이 물음을 유대교권 주의자들에게 제기하심으로써 그들이 답변을 통해 스스로의 정죄를 선언하게 하셨다. 세리와 창기들이 - 일종의 이스라엘의 천민 계층으로 그들은 완진히 죄인들이요 소외받는 자들이었다. 특히 그들은 결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는 자들, 사회의 쓰레기들이라고 공식적으로 말해지던 부류이다.
한편 '세리'라는 말인 '텔로네스'는 '통행세 등을 착복하는 자들'로 보통 '강도'라는 말과 동일한 의미로 사용되었으며 동족의 피를 빨아먹는 매국노로 취급될 정도였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리라 - '앞서가다', '앞으로 인도하다'의 뜻인 '프로아고'를 '너희 보다 먼저 들어가리라'고 표현하기
보다는 세리와 창기들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지만 '너희는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번역해야 한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 이같이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말이 유대종교지도자들, 율법주의자들에게도 여전히 소망이 되는 말씀이며 그들의 회개를 촉구하는 말씀으로 이해한다.
즉 먼저 회개하는 자가 먼저 천국에 들어간다. 따라서 나중에 회개하는 자들은 나중에라도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하는 사실도 암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