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된 친구 서넛이 만났다. 46년만이니 세상이 많이 바뀐 세월이다. 그 땐 컴퓨터도, 핸드폰도, 카페도, 지하철도, 맥도널드도, 칼라탤리비전도 없었던 시절이었다. 20대 초반의 풋풋한 젊은이들이 이젠 60대 중반을 넘어가는 할아버지들이 되어 만났다. 기쁨과 어색함이 비대칭으로 맞물리듯이 누가 먼저 할 것 없이 서로 얼싸 안았다. 한참 후 서로의 얼굴들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세월이 흔적들이 여기저기 보였다. 나도 그랬고 친구들도 그랬을 것이다. 걸음걸이에서, 말하는 억양에서, 커피 잔을 쥐는 손놀림에서, 자글자글한 눈가 주름살에서, 얼굴에 피어오르는 검버섯에서, 쭈글쭈글한 손등에서, 약간 휘어진 허리에서, 처진 어깨에서 삶의 무게와 고단한 여정이 물씬 묻어났다.
만남 내내 한 친구의 모습이 내 마음에 걸렸다. 조금 전 만나기로 한 장소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그 친구가 저만치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걷는 모습이 뭔가 조심스러워 보였다. 오랫동안 입원했다가 방금 퇴원해 그동안 보지 못한 햇살을 어떻게 처리해야할지 몰라 두리번거리며 어설프게 걷는 어떤 중늙은이 같았다. 최근에 다른 친구를 통해 그 친구의 근황을 듣기는 했지만, 오늘 정작 그 친구를 마주하고 앉으니 내 마음엔 애잔함과 쓸쓸함에 촉촉한 이슬비가 내리는 듯 했다. 하기야 오늘 날씨가 그랬으니 말이다.
그 친구는 지난 17년 동안 일주일에 두 번씩 병원에 누워 투석을 해야 하는 친구다. 그 일로 시력을 거의 상실했다. 물체의 형체만 알아볼 뿐이다. 49살에 발병한 이후로 지금까지 정말 힘겹게 살아왔다. 자신의 혈액을 투석기에 통과시켜 혈액을 걸러 낸 다음 그 혈액을 자신의 혈관에 다시 넣어주는 것이 투석이란다. 말이 투석이지 말이지 일주일에 두 번씩 창백한 병원 침대에 누워 투석해야하는 자신의 처지가 오죽 원망스러웠을까. 말의 실타래를 풀어가면서 “삶의 한창 때에 왜 이런 일이 나에게?”라는 말에 이르러 잠시 말을 더듬는다. 친구의 아내와 두 어린 딸들이 짊어져야할 삶의 무게가 내 어깨마저 짓누르는 듯했다. 친구는 이렇게 살아야 하는 이유를 더듬어 찾아보려고 무던 애를 썼지만 찾지 못했을 때의 좌절감과 내적 분노는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는 충동으로 이어지기도 했단다. 아무리 신앙을 고통 속에 대입시켜 보려 해도 현실적 좌절과 분노는 사라지질 않았다고. 친구가 말을 이어가는 동안 나는 잠시 카페의 천정을 올려다보았다. 넋을 잃은 사람처럼 멍하니.
“그런데 말이야, 호준아!” 말을 이어가던 친구가 천정을 보고 있던 내게 이렇게 말을 한다. 물론 그 친구는 내가 천정을 보고 있는지를 정확하게 볼 수는 없었겠지만, 그 소리에 나는 정신이 바짝 들었다. “응.”하고 대답했다. “그런데 말이야, 그 후로 언젠가부터 나는 내가 앞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이 내게 축복으로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보게 되었어.” “이전에 깨닫지 못한 놀라운 사실은, 바깥세상을 볼 수 없게 되자 비로소 내 내면 세상이 보이기 시작한 거야!” “참 희한하지? 보이는 세상을 보지 못하게 되자 보이지 않은 세상을 보게 된 셈이야. 그 세상에서 나는 신비롭게도 하나님의 임재와 사랑을 깊이 느끼게 되었다네.” 나는 그 친구의 말에 더 거들 말이 없었다. 기껏해야 “응, 친구야. 보지 않았으면 좋은 몹쓸 광경들이 너무 많은 이 세상을 안 보고 사는 게 좋을지도 모르지”라고 궁색한 맞장구를 쳤을 뿐이다.
눈을 떴지만 보지 못하는 사람보단 앞을 보지 못하지만 앞을 볼 수 있는 친구가 오늘따라 더 복 받은 사람처럼 보이는 것은 웬 일일까? 보이는 현상세계를 볼 수 없기에 보이지 않는 세상을 볼 수 있도록 하신 하나님이 오늘따라 정의롭고 긍휼하신 분처럼 느껴졌다.
친구의 손을 잡고 카페의 계단을 내려왔다. 헤어지며 다시 손을 잡았다. 온기가 서로의 몸속으로 투석되는 것 같은 이상야릇한 느낌이었다. 다른 친구가 그 친구의 집까지 동행해주겠다며 친구의 손을 넘겨받았다. 보이는 세계 말고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볼 수 있는 사람은 정말 행복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하루 종일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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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류호준,『시시한 일상이 우리를 구하다』에 실린 글)을 쓴지 5년 후인 어제 내 친구 이중화 목사(71세)가 하늘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오늘 강원도 춘천시 호반병원 장례식장에 다녀왔습니다. 좋은 그리스도인, 좋은 목사, 좋은 남편, 좋은 아버지, 좋은 할아버지였던 친구가 더 이상 고통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위로를 얻을 뿐입니다. “친구야, 투병 생활하며 많이 고생했지? 무거운 짐 다 내려놓고 아버지의 품에 안식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23년 동안 한결같이 남편의 병을 수발하며 지팡이가 되어준 사모님의 헌신에 경의를 표합니다. 남편을 떠나보내고 홀로 남겨진 유숙자 사모님과 장성한 두 딸들과 어린 손자손녀들을 주님의 자애로운 손길에 맡깁니다.
첫댓글 보이지 않는 세상을 볼 수 있는 것~
감사와 아픔이 함께 느껴집니다~
정의롭고 긍휼하신 하나님께서 늘 함께 해 주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