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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시인의 방 [蒜艾齋 산애재] 원문보기 글쓴이: 松葉
▲시집 [☆틀렸다☆]의 앞표지(좌)와 뒤표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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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렸다]
나태주 시집 / J.H.CIASSIC / 도서출판 지혜(2017.02.20) / 값 1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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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렸다
나태주
돈 가지고 잘 살기는 틀렸다
명예나 권력, 미모 가지고도 이제는 틀렸다
세상에는 돈 많은 사람이 얼마나 많고
명예나 권력, 미모가 다락같이 높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요는 시간이다
누구나 공평하게 허락된 시간
그 시간을 어디에 어떻게 써 먹느냐가 열쇠다
그리고 선택이다
내 좋은 일, 내 기쁜 일, 내가 하고 싶은 일 고르고 골라
하루나 한 시간, 순간순간을 살아보라
어느새 나는 빛나는 사람이 되고 기쁜 사람이 되고
스스로 아름다운 사람이 될 것이다
틀린 것은 처음부터 틀린 일이 아니었다
틀린 것이 옳은 것이었고 좋은 것이었다
시인의 무덤
나태주
날마다 쓰는 시가
그대로 무덤인데
무슨 무덤을 또
남긴단 말이냐!
마른 입술
나태주
봄햇살
봄바람
더 보고 싶어
마른 입술
마른 침
마음이 아파
시
나태주
돌아서 돌아서
머뭇거리지 말고
빠르게 곧장 오너라
준비 차리지 말고 오너라
그래야 사랑이
사랑이지
그래야 시가 시
아니겠느냐
팁
나태주
적은 돈을 받고서
너무 많이
허리 굽혀 인사 한다
돈이 슬프다
인간은 더욱 슬프다.
사는 일이란
나태주
아, 오늘도 하루를
무사히 잘 보냈구나
저녁 어스름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며 다시
너를 생각한다.
오늘은 잘 지냈겠지
생각만으로도 내 가슴은
꽃밭이 되고 너는 제일로
곱고도 예쁜 꽃으로 피어난다.
저녁노을이
자전거 바퀴살에 휘어 감기며
지친 바람이 어깨를 스쳐도
나는 여전히 살아서
숨쉬고 있다는 생각
그 생각만으로도 나는
다시금 꿈을 꾸고 내일을
발돋움하는 사람이 된다
그래 내일도 부디 잘 지내기를
아무 일 없기를
어두워 오는 하늘에도
길가의 나무와 풀에게도
빌어본다
사는 일이란 이렇게 언제나
애달프고 가엾은 것이란다.
섬진강 1
나태주
시인 김용택이
퍼서 팔아먹은 물
시인 송수궍이 퍼서
다시 팔아먹으려 했으나
움쩍도 하지 않았다.
잘람잘람
나태주
어머니, 어머니
샘물가에서 물동이로
물을 기를 때
물동이에 가득 채운
물 머리에 이고 가기 전
넘치지 않게 하기 위하여
물동이 주둥이를 손바닥으로
슬쩍 훑어내듯이
오늘 내가 너에게
주는 마음은 잘람잘람
그렇지만 넘치지 않게
오늘 내가 너에게
주는 시도 잘람잘람
그렇지만 넘치지 않게.
골목식당
나태주
가을이라 그런가
된장국 맛이 새롭다
시래기며 무
대충 썰어서 끓인 된장국
배고프지도 않은데
밤밥 한 그릇을 비웠다
예쁜 누나네
고모네 집 찾아가
한 상 잘 차려
대접받은 마음.
날이 저문다
나태주
머뭇거리며 머뭇거리며
한 날이 저문다
누구에게나 기념할 만한 날이고
위대한 날
무슨 생각이 그리 많은지
천천히 고개 숙인다
아직도 할 말이 많이
남아있다는 듯
바람도 돌아와 두 손을 접고
향일성의 꽃들도 입을 다물겠지
세상에 나와서 허락 받은 오직
첫날이자 마지막 날인 오늘
내가 너를 생각하고 잠시나마
너를 사랑했던 일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일이었음을
나는 잊지 못한다
좋은 꽃
나태주
나빠지면 얼마나 더
나빠지겠나
고개를 들었을 때
꽃이 되었고
좋아지면 얼마나 더
좋아지겠나
고개를 숙였을 때에도
꽃이 되었다
더 좋은 꽃이 되었다
잃어버린 시
나태주
누구나 마음속에 어린아이 하나 살고 있지요. 눈이 맑고 귀가 밝은 아이. 작은 바람에도 흔들리고 구름 한쪽에도 울먹이고 붉은 꽃 한 점에도 화들짝 웃는 아이.
우리가 어린 시절 다니던 초등학교 운동장에 두고 온 아이입니다. 고향 떠나올 때 고향집 초라한 마루 끝에 손사래 쳐 eP어놓은 바로 그 아이입니다.
그 아이 불러내야 합니다. 그 아이 손을 잡고 다시금 먼 길 떠나야 합니다. 그리하여 그 아이를 시켜 말을 하게 해야 합니다. 보는 것 듣는 것 생각하는 것 그 아이더러 대신 말하라 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당신의 시, 잃어버린 바로 그 시입니다. 다시금 찾아야할 우리들의 시입니다.
부부
나태주
부부간 금슬이 좋지 않았다
오래 앙숙이었다
그런데 정작 부인이 세상을 뜨자
그는 쉽게 일어서지를 못했다
겨우 몸을 추스렸을 때 그는
사람들의 세상 속으로 가지 않고
채소밭으로 나가
채소들을 들여다보며 살았다
생전 부인이 기르던 채소들,
알다가도 모른 일이다.
네가 오는 날
나태주
네가 오는 날은
비워두는 날
하늘을 비우고 땅을 비우고
초라한 나의 인생조차 비워둔다.
비어있는 하늘 땅 가득
너를 채우고
비워둔 나의 인생가득
너를 채워서
세상에는 없는 꽃
크고도 맑고 향기로운
꽃 한 송이 피워내고자
까치발 딛고 긴 목을 하고서
급한 나머지 내가 먼저 서툴게
꽃 한 송이 피우기로 한다.
어린사랑
나태주
너
거기 있어라
너 부디
거기 있어라
내가 부를 때
대답할 수 있도록
너 부디 그 자리
지켜 있어라.
진행형
나태주
피어나는 꽃들은
마음을 하늘로
하늘로 밀어올리고
지는 꽃들은
마음을 아래로
아래로 떨어뜨린다
네 앞에서 나는
하늘로 하늘로
피어오르는 꽃
그러므로 나의 사랑은
언제나 진행형이다.
향기
나태주
잘 가라 내 앞에 잠시
예쁘게 앉아 있던 꽃
가서는 잘
살아라
더 예쁘게 살아라
네가 남긴 향기로만으로도
나는
가득한 사람이란다.
찔레꽃
나태주
그립다
보고 싶다
말하고 나면
마음이 조금 풀리고
사랑한다
너를 사랑한다
말하고 나면
마음이 더 놓인다
그런 뒤러 너는
꽃이 된다
꽃 가운데서도
새하얀 꽃
찔레꽃 되어
언덕 위에 쓰러져
웃는다.
산수유
나태주
아프지만 다시 봄
그래도 시작하는 거야
다시 먼 길 떠나보는 거야
어떠한 경우에도 나는
네 편이란다
오늘의 꽃
나태주
웃어도 예쁘고
웃지 않아도 예쁘고
눈을 감아도 예쁘다
오늘은 네가 꽃이다.
풋잠
나태주
안경도 모자도 없이
그곳에 갔었네
언덕에는 바람이 일었고
너의 몸에서 나는 풀꽃 내음이
바람 속에 번졌네
행복한 마음이 생겨
두 눈을 꼭 감았지
한참 만에 발자국 소리가 들리더니
누군가의 나의 볼에 입술을 포갰네
퍼뜩 눈을 떴을 때 거기에
네가 웃고 있었네
눈빛도 새하얀 꽃 마가렛
오오 어린 사랑 누이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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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의 말
내 마음의 아이에게
아이야, 고마워.
내 마음 속에 네가 살고 있어서
나는 쉬지 않고 숨을 쉴 수 있고
또 시를 쓸 수도 있단다.
언제나 먼 곳을 꿈꾸고
언제나 낯선 것들을
그리워하는 너,
결코 나는 한번도 너를
만난 일은 없지만
시를 쓸 때, 시를 생각할 때,
언뜻언뜻 너의 뒷모습을 보곤 하자.
앞으로도 오래
내 마음 속에서 떠나지 말고
나와 함께 살아주기를 바란다.
2017년 봄을 기다리며
나 태 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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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태주 詩集 [※틀렸다※]
[ 해설 ] -
인생은 틀리고 시는 옳았다
이형권 문학평론가
낙지자樂之者와 아이의 시
시인으로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무엇이 시인으로 하여금 현실의 욕망을 넘어 사무사思無邪의 세계에 빠져들게 하는가? 이 물음에 대한 적실한 대답을 우리는 나태주 시인의 시와 삶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는 1971년 「대숲 아래서」로 등단한 이래 46년간 한 순간도 쉼 없이 시작에 몰두해 왔다. 그 결과 그는 50여 권의 시집을 발간하면서 한국 서정시의 대표적인 시인으로 자리매김을 하게 되었다. 그의 시 가운데 “시집 한 권 한 권이/ 한 사람씩 일평생”(「시집을 묶는 마음」)이라는 구절은 그가 이번 시집을 묶는 마음의 자세가 오롯이 드러난다. 이번 시집 한 권을 발간하는 일은 나태주 시인이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 태어나는 하나의 시적 사건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잘 알려진 대로 그는 이성선 시인이나 송수권 시인과 함께 해방 이후 우리나라 3대 서정 시인으로 평가받아 왔다. 반세기 가까운 시간 동안 시를 쓰다 보면 보통 시인들은 일시적으로 슬럼프를 맞기도 하고 절필의 시간을 가지기도 한다. 그러나 나태주 시인은 그러한 ‘보통’의 시인에서 벗어나 언제나 현역 시인으로 활동을 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 비결은 무엇일까? 그것이 단지 시에 대한 애정 혹은 열정이라고 말하기에는 다소 부족한 느낌이 든다.
나태주 시인이 반세기 가까이 꾸준히 시를 써 올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보다 시를 즐기는 마음을 간직해 왔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공자의 표현을 빌리면, 시를 ‘잘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知之者不如好之者 好之者不如樂之者 논어, 「옹야편」)는 말이 그와 잘 어울린다. 나태주 시인에게 시는 잘 아는 것이면서 좋아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진정한 즐김의 대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시 자체를 즐기면서 창작을 했다는 점에서 오랜 세월을 시와 함께 살아올 수 있었던 것이다. 또 하나 그가 영원한 현역 시인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은 항상 깨끗하고 순수한 감각을 유지하려고 노력해 왔기 때문이다.
두리번거리다가
한 발 늦고
망설이다가
한 발 늦고
구름 보고 웃다가
꽃을 보며 좋아서
날 저물어서야
울먹인 아이
빈손으로 혼자서
돌아온 아이
- 「시인」 전문
이 시에 의하면 “시인”은 “아이”와 같은 존재이다. 그 “아이”는 세상사에 민첩하지 못한 탓에 “두리번거리다가/ 한 발 늦고// 망설이다가/ 한 발 늦고” 하는 존재이다. 그의 두리번거림이나 망설임은 속도감에 의존하여 살아가는 현대인의 각박한 삶과 대비되는 모습이다. 그런데 그 “아이”가 한발씩 늦은 삶을 살아가면서 추구하는 것은 “구름”과 “꽃”의 세계이다. 이때 “구름”은 이상 세계를 “꽃”은 심미의 세계를 표상하는 것으로 읽을 수 있다. 그런 세계를 추구하다가 하루해가 저물자 “울먹”이면서 “빈손으로 혼자서/돌아온 아이”는 세속의 가치에서 멀리 떨어져 사는 순수하고 아름다운 존재가 아닐 수 없다. 그 “아이”는 세속의 차원에서는 비록 “빈손”으로 돌아왔지만, 마음 깊은 곳에는 풍요로운 서정을 가득 채워 돌아왔다고 할 수 있다. 그 “아이”는 다른 시에서도 “누구나 마음속에 어린아이 하나 살고 있지요. 눈이 맑고 귀가 밝은 아이, 작은 바람 하나에도 흔들리고 구름 한 쪽에도 울먹이고 붉은 꽃 한 점에도 화들짝 웃는 아이”(「잃어버린 시」)와 다르지 않다. 그 “아이”는 “다시금 찾아야 할 우리들의 시입니다.”(같은 시)라는 시구에 드러나듯이 나태주 시인이 추구하는 시심을 상징한다.
고통으로 발견한 오늘의 선물
시를 즐기는 마음과 아이와 같이 순수한 마음은 나태주 시인이 시적 감각을 유지하는 필수불가결한 요소이다. 그것은 속악한 현실이나 속인들과는 다른 생각, 다른 언어를 추구하려는 마음과 연계된다. 나태주 시인은 원로시인의 경륜을 간직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이들을 보고/ 젊은이들을 본다”(「늙은 시인」)고 한다. 이 시구는 한 시인으로 인생을 살아가면서 언제나 “젊은이”의 감각을 유지하려고 노력을 하고 있다는 뜻을 담고 있다. 어느 시인이 “시인은 늙지 않으려면 죽어야 한다”(황지우, 「의혹에 대하여」)고 노래했던 것처럼, 나태주 시인은 시적 감각을 늙지 않게 하기 위해 “젊은이들을 본다”고 하는 것이다. 이를 미학적으로 말하면, 시인은 어제의 삶보다 새롭고 어제의 시보다 새로워지기 위해서는 매일매일 죽음을 만드는 존재이다. 낡은 감각을 매일매일 죽이고 새로운 감각을 살려내야 하는 것이 시인의 운명인 것이다. 이처럼 젊은 감각은 세상과 삶과 언어, 그리고 시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가능케 한다.
돈 가지고 잘 살기는 틀렸다
명예나 권력, 미모 갖고도 이제는 틀렸다
세상에 돈 많은 사람이 얼마나 많고
명예나 권력, 미모가 다락같이 높은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요는 시간이다
누구나 공평하게 허락된 시간
그 시간을 어떻게 써 먹느냐가 열쇠다
그리고 선택이다
내 좋은 일, 내 기쁜 일, 내가 하고 싶은 일 고르고 골라
하루나 한 시간, 순간순간을 살아보라
어느새 나는 빛나는 사람이 되고 기쁜 사람이 되고
스스로 아름다운 사람이 될 것이다
틀린 것은 처음부터 틀린 일은 아니었다
틀린 것이 옳은 것이었고 좋은 것이었다
― 「틀렸다」 전문
시인은 자신이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을 “틀렸다”라고 규정한다. 이 시에서 “틀렸다”는 것은 인생에 대한 시비是非의 문제라기보다는 가치관의 다름 혹은 차이의 문제이다. 시인은 보통 사람들이 추구하는 “돈”이나 “명예나 권력, 미모”의 차원에서 보면 자신의 인생에 대해 이미 잘 살기 “틀렸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틀렸다”는 인식은 이와 같은 속악한 현실의 차원에서만 그렇다는 것이지 시적인 차원에서는 ‘옳다’라고 본다. 시적인 삶의 차원이라는 것은 세속에 얽매이지 않으면서 “누구나 공평하게 허락된 시간”을 자기 주도적으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이면 예외 없이 꼭 같이 허락된 시간에 “내 좋은 일, 내 기쁜 일, 내가 하고 싶은 일 고르고 골라/ 하루나 한 시간, 순간순간을 살아”가는 일이 소중하다고 본 것이다. 그러면 “어느새 나는 빛나는 사람이 되고 기쁜 사람이 되고/ 스스로 아름다운 사람이 될 것이다”고 한다. 그러니 자신의 삶이 현실의 기준으로는 “틀렸다”고 할 수 있을지 몰라도, 인간적 진실 혹은 시적 진실의 차원에서는 “틀린 것이 옳은 것이었고 좋은 것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역설에는 “돈”이나 “명예나 권력”과 관련된 현실의 인생은 화려하지 못했으나, 진실과 순수 서정을 추구하면서 시인으로 살아온 삶은 옳았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사실 인간에게 진정으로 소중한 것들은 아무리 자본주의 사회라 할지라도 “돈”이나 “권력”으로 해결할 수 없다. 사랑이나 우정, 모성과 같이 드높은 가치가 그러하고, 나태주 시인이 평생 추구해 왔던 순수 서정이나 시적 진실도 그러하다.
인생에 대한 역설적 인식은 속악한 현실의 논리를 극복하고 아름다운 시적 진실로 나아가는 중요한 방식이다. 가령 “고통은 나의 스승/ 나를 살게 해 주는 고마운 벗/ 고통은 나를 늘 깨어있게 한다”(「고통」)에도 그런 인식이 드러난다. 유한한 인간이 살아가면서 반드시 만나게 되는 “고통”은 삶의 소중함을 일깨워준다는 점에서 “고마운 벗”과 같은 존재이다. 나태주 시인은 그리 오래 되지 않은 시기에 실제로 죽음의 문턱까지 다녀왔던 인생의 “고통”을 깊이 맛본 적이 있다. 그때의 “고통” 이후 나태주 시인은 하루하루를 소중한 선물로 여기며 살고 있다. 따라서 하루하루를 하나의 인생에 버금가는 삶을 살아가게 해 준 “고통”이야말로 그의 인생에 전해진 최고의 선물이 아닐 수 없다.
날마다 오늘이 첫날
날마다 오늘이 마지막 날
날마다 그렇게 우리는
기적의 사람들
언제나 내 앞에 있는 너는
최초의 사람이고 또
최후의 사람인 것을
― 「날마다」 전문
세상을 이렇게 살 수 있다면 인생을 정말로 알차게 영위하는 것이다. 이 짧지만 멋진 에피그램에는 인생과 시의 고수가 아니면 도달하기 어려운 높은 정신적 경지, 아니 영혼의 소리가 내포되어 있다. 사람이 “날마다 오늘이 첫날”이자 “마지막 날”이라는 생각으로 인생을 살아간다면 정말 삶의 “기적”이 일어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더구나 “오늘”에 “내 앞에 있는 너”가 “최초의 사람”이자 “최후의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산다면 정말로 인간적이고 풍요로운 삶을 살아갈 것이다. 그렇다면 이 시에서 “오늘”은 인간의 현존성을 가장 집약적으로 드러내주는 시간이다. 어제는 지나간 시간이고 내일은 다가올 시간이기에 “나”와 “너”의 현존성을 생생하게 담보하지 못한다. “오늘”이라는 현재의 시간만이 “나”와 “너”의 존재감을 가장 명료하게 나타내 준다. 영어 단어 중에 현재를 뜻하는 present가 선물이라는 의미를 동시에 지니고 있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인간에게 “오늘”은 그 무엇보다도 소중한 선물이니까 하루하루를 열성으로 살아가라는 의미가 암시되어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 사실 하나의 인생이라는 것이 “오늘”이라는 하루하루가 모여서 이루어지는 것일 뿐이니 “오늘”을 열심히 사는 길이 충실한 인생을 완성하는 지름길이다. 다른 시에서도 “날마다 맞이하는 날이지만/ 오늘이 가장 좋은 날이라 생각하고” 산다면 “당신의 인생 하루하루는/ 최고의 인생이 될 것이다”(「최고의 인생」)는 시구도 이런 인식과 궤를 같이 한다. 이런 맥락에서 “그러므로/ 내 앞에서 지금/ 웃고 있는 너는/ 천국의 사람이다.”(「그러므로」)는 아름답고 따뜻한 시구가 탄생한다.
삶의 방식으로서의 공감과 사랑
하루하루를 인생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살아가면서, 지금 만나고(생각하고) 있는 사람을 최초이자 최후의 사람으로 여긴다는 것, 그것은 진실하고 밀도 높은 삶의 방식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그렇게 만나는 사람이 “당신과 함께라면/ 고달픈 인생도/ 즐거운 여행이라고”(「함께하면」) 생각할 수 있는 존재라면, 정말로 그 누구보다도 풍요로운 인생을 살아간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삶의 방식을 우리는 공감의 인생론이라고 명명할 수 있을 터, 공감 가운데 가장 으뜸이 되는 것은 역시 사랑이 아닐 수 없다. 나태주 시인은 사랑의 시인이라 할 만큼 사랑을 주제로 한 시를 꾸준히 써 왔는데, 이번 시집에서도 여전히 사랑을 주제로 한 시들이 빈도 높게 나타난다.
꽃이 피면 갈 채비를 하고
바람 불면 언덕을 넘고
봄이 오면 다만 사랑을 하리라
사랑하는 사람은 눈을 감네
입맞춤 해 달라 그러는 건지
사랑하는 사람은 고개를 떨구네
세상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아도 좋으리
다만 사랑으로 세상은 빛을 더하네
― 「다만 사랑으로」 전문
이 시에서 “사랑”은 인간이 이 세상을 살아가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이다. 전체 내용을 보건대 시의 제목인 “다만 사랑으로”에서 “다만”은 ‘오직’이라는 말로 바꾸어 읽어도 무방하다. 시인은 따뜻한 계절이 돌아와 “꽃이 피면” “사랑을 하리라” 다짐을 하면서 길 떠날 “채비”를 한다. 그런데 그가 찾아 나선 “사랑하는 사람은 눈을 감”고 “고개를 떨구”고 있다고 한다. “눈을 감”는다는 것은 마음 깊은 사랑을 느끼기 위해 가시적인 현상을 벗어나는 것이고, “고개를 떨구”는 것은 높은 사랑 앞에 진지하고 경건한 마음의 자세를 표상한다. 시인은 이런 “사랑”만 있다면 “세상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아도 좋”다고 한다. 세상에 사랑(하는 사람)만 있으면 그 무엇도 필요치 않다는 뜻이다. 이렇듯 “사랑”이 인생의 전부일 수 있는 것은, 그것이 “세상”에 “빛을 더”해 주기 때문이라고 한다. “빛”은 성경에서도 말씀하듯이 세상의 처음이자 모든 것이므로 “사랑”이라는 “빛”만 있으면 된다고 보는 것이다. 다른 시에서도 “내가 너를 생각하고 잠시나마/ 너를 사랑했던 일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일이었음을/ 나는 깨닫는다.”(「날이 저문다」)고 했거니와, “사랑”은 세상에서 그 어떤 것으로도 대체할 수 없을 만큼 최고의 가치를 지닌다. 나태주 시인은 진정으로 사랑을 사랑하는 사랑 지상주의자라고 불려도 무방할 듯하다.
그러나 나태주 시인이 추구하는 사랑은 에고이즘이나 에로티시즘의 차원에 머무는 것은 아니다. 그의 사랑은 이타적이고 정신적인 차원에서 주체와 타자의 마음이 깊은 공감을 이루어내는 상태를 의미한다. 예컨대 “마음의 오솔길 돌고 돌아/ 아무도 모르는 절 한 채/ 지은 것이 너와 나/ 평생의 사랑이었다”(「미황사」)고 고백할 때, “아무도 모르는 절 한 채”는 비밀의 은둔 공간이라기보다는 순수하고 절대적인 “사랑” 자체를 의미한다. 이 “사랑”은 또한 확장성이 무한한 것이어서 타자나 우주와 한 몸이 되는 일이다. “사랑”에 이르면 세상의 모든 것이 내 것인 듯한 환상 속에 빠져드는 것과 같다. 즉 사랑하는 주체로서의 “나”와 객체로서의 “너”는 세상과 우주와 전일체를 구성하는 위대한 사랑의 주인공들이 된다.
맑고 깨끗하게
커다란 눈
눈물 그렁그렁
그 눈 안에 하늘
그 눈 안에 호수
그리고 나
― 「사랑」 전문
이 시에 의하면 사랑하는 사람의 “눈”에 “하늘”과 “호수”가 있으니, 그 사람은 천상과 지상을 아우르는 가치를 지닌 존재일 터, “나” 또한 그 속에 있으니 사랑은 타자와 우주가 하나가 되게 한다. 사랑은 천지인天地人을 모두 합일하여 인간적, 우주적 공감이 이루어지게 하는 오묘한 것이다. 사랑에 대한 이런 인식은 “네 앞에서 나는/ 하늘로 하늘로/ 피어오르는 꽃// 그러므로 나의 사랑은/ 언제나 진행형이다.”(「진행형」), “웃어도 예쁘고/ 웃지 않아도 예쁘고/ 눈을 감아도 예쁘다// 오늘은 네가 꽃이다”(「오늘의 꽃」 전문)와 같은 시(구)에도 드러난다. “나의 사랑”은 늘 “현재형”이어서 “하늘로/ 피어오르는 꽃”처럼 숭고해지고, “너” 또한 어떤 상황에서도 “예쁘다”고 말할 수 있는 존재가 된다. “나”와 “너”는 사랑으로 인하여 서로에게 “꽃”과 같이 무한 의미를 지니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이런 사랑은 시간의 경계를 넘어서는 것이기도 하여 “그 생각만으로 나는/ 다시금 꿈을 꾸고 내일을/ 발돋움하는 사람이 된다”(「사는 일이란」).
그러나 사랑에 대한 열망이 크다고 하여 무분별한 사랑을 꿈꾸는 것은 아니다. 즉 “더 가까이 오지 말아라/ 그만큼 있을 때가/ 네가 제일 예쁜 때란다”(「그만큼」)에 드러나듯이, 그의 사랑은 항상 일정한 거리를 간직한 채 품격을 지켜낼 줄 아는 필리아(마음)의 사랑이다. 그래서 모자란 사랑의 거리를 지향하는 에로스나 넘치는 거리를 지향하는 아가페와는 다른 인간적인, 너무도 인간적인 마음의 사랑이다. 나태주 시인이 노래하는 사랑이 아가페나 에로스의 차원과 긴밀하게 연결되지 않는 것은 사랑에 대한 균형 감각과 절제미를 중요시하기 때문이다. 이 이유는 아가페가 너무 종교적인 것이고, 에로스는 너무 육체적인 것이라서 몸과 마음의 균형 감각을 유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품격 있는 사랑을 위해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은 지속적인 사랑을 위해 중요한 요건이다.
지상의 시간에 대한 성찰
이 글의 모두에서 우리는 시인으로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해 물었다. 다시 우리는 ‘원로 시인’으로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돈이 별로 필요 없을 때/ 세상의 돈이 내게로 왔고/ 내가 남자도 아닐 때/ 세상의 여자들이 나를 좋아했다/ 그래도 돈을 아껴서 쓰고/ 세상의 여자들을 사랑해야겠다”(「명예」 전문)는 시를 보면, 인생이라는 것이 얼마나 아이러니한 것인지 떠올리게 한다. 젊은 시절 정말로 돈과 여자가 필요할 때는 그것들이 자신에게 찾아오질 않고, 노년에 이르러 간절하게 필요하지 않은데도 그것들이 자신에게 다가왔다고 한다. 시인은 이 모순마저도 넉넉한 마음으로 긍정하면서 자신에게 다가온 “돈”과 “여자”를 아끼고 사랑하겠다고 다짐한다. 이 시집에는 이런 차원에서 이 땅의 대표적인 서정 시인으로서 반세기를 살아온 나태주 시인이 자신의 삶 혹은 시간에 대해 성찰적으로 돌아보는 시편들이 적지 않다. 그 가운데 시간에 대한 인식을 보여주는 시편들이 흥미롭다. 시간은 인간의 한계를 규정해 주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 한계를 정신과 상상의 차원에서 극복하게 하는 매개 역할을 한다.
지상의 모든 시간은
사람을 기다려 주지 않는다
기차도 사람을 기다려 주지 않고
계절도 꽃도 사람을 기다려주지 않고
내 앞에 앉아서 웃고 있는 너도
나를 기다려 주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
어찌할 텐가?
더욱 열심히 살고
더욱 열심히 사랑할 밖에는
달리 길은 없다.
― 「지상의 시간」 전문
이 시에서 “지상의 모든 시간”은 인간으로서의 한계 상황을 의미한다. 그것은 “사람을 기다려주지 않는다”고 한다. 그것은 일상생활에서도 마찬가지여서 “기차도” 시간이 지나면 더나가고, “계절도 꽃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지나가 버린다. 심지어는 “내 앞에 앉아서 웃고 있는 너”마저도 “기다려주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이처럼 세상의 모든 것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사라지고 사랑하는 사람마저 언젠가는 떠나야 할 대상일 뿐이다. 이와 같은 시간의 한계에 대한 인식은 인간의 한계에 대한 인식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그러한 한계를 넘어서는 유일한 길은 “더욱 열심히 살고/ 더욱 열심히 사랑”하는 것이다. 인간의 삶에서 이상을 추구하지만 완전한 이상은 없고, 영원한 사랑을 추구하지만 그런 사랑은 없다. 다만 그 추구심이 영원히 있을 따름이다. 인간의 삶과 사랑이 영원하다는 것은 그처럼 완전한 것을 향한 추구심이 그렇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런 한계에 대한 정직하고 냉정한 성찰이다. 부조리한 현실의 삶을 살아가면서 인간적 한계를 인정하는 동시에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서 더 열심히 살고 사랑하겠다는 것, 이 지상에서 그 이상의 지혜로운 생각을 찾기는 어렵다. 이 지혜가 바로 나태주 시인이 많은 연륜에도 불구하고 영원한 현역 시인으로서 젊은 감각을 유지하면서 시를 쓰는 비결이다.
진정한 삶의 지혜는 시간의 종말 혹은 죽음마저도 삶의 일부처럼 여기는 넉넉한 마음에서 우러나온다. 예로부터 선현군자들은 죽음을 삶의 일부로 여기면서 그것을 결코 두려워하지 않았다. 나태주 시인의 그런 인식은 종교적 차원에서의 윤회 사상이나 재생 신화보다는 한 생명으로서의 생태적 순환에 대한 사유와 관계 깊다.
될수록 건강한 나무
정갈한 나무 하나를 골라
그 아래 심어다오
시를 세상보다 사랑하고
사람보다 좋아한 사람
잘 살다 살다 갔음
이제 편안히 누웠음
그냥 그렇게만
묘비에 적을 일이다
유난히 햇빛 곱고 오늘은
바람조차 순하고 맑은 가을날.
―「수목장」 부분
시인은 자신의 생명이 다하는 날 “수목장”을 하고 싶다고 한다. 죽은 사람들 나무 곁에 묻는 “수목장”은 단순한 매장이나 화장보다도 더 생태적인 장례 문화라 할 수 있다. 시인은 만일에 자신이 죽으면 “정갈한 나무”의 “아래 심어다오”라고 말하고 있다. 이 표현 속에는 죽음이란 것이 슬픈 소멸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삶의 출발을 뜻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담겨 있다. 죽은 뒤에 자신을 묻어달라고 하지 않고 “심어다오”라고 함으로써 죽음을 새로운 정신이 탄생하는 계기로 삼는 것이다. 새로운 정신이란 “시를 세상보다 사랑하고/ 사람보다 좋아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시를 이토록 죽음과 그 이후까지도 사랑하겠다는 마음은 이즈음 세상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시적 장인 정신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생각은 “날마다 쓰는 시가/ 그대로 무덤인데/ 무슨 무덤을 또/ 남긴단 말이냐?”(「시인 무덤」 전문)에서도 흥미롭게 드러난다.
하늘의 꽃, 땅 위의 별
나태주 시인은 이즈음 한국 시단에서 누구보다도 인기가 많다. 그의 시와 시집들은 다른 어떤 젊은 시인이나 중견 시인의 것들보다 소비가 잘 되고 있다. 문화적 소비가 영상물에 치중되고 있는 오늘의 현실을 감안할 때 아주 독특한 사례라고 할 만하다. 그의 시가 인기를 끄는 이유는 소통과 공감의 측면에서 단연 앞서나가기 때문이다. 그는 그야말로 ‘누구나 읽어도 이해가 되지만, 아무나 쓸 수 없는 시’를 쓴다. 그의 시는 진솔한 체험을 바탕으로 일상 언어와 간명한 표현을 지향하면서 최근 우리 시가 당면한 소통과 공감의 부재 문제를 해결한다. 나태주 시 가운데 요즈음 인구에 자주 회자되는 시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풀꽃」 전문)를 보면 그런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4행의 짧고 간명한 표현 속에 진정한 아름다움이란 “자세히” 그리고 “오래 보아야” 알 수 있다는 점을 표현했다. 나아가 그 대상이 “너”라고 지시함으로써 독자들과의 심미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이 시집에 자주 등장하는 간명한 시편들은 「풀꽃」과 같이 소통과 공감의 순발력을 발휘하면서 누구나 읽기에 용이한 특성을 보여준다. 특히 1부에 실린 대부분의 시편들은 10행 이내의 짧은 형식을 보여주고 있는데, 시상은 단순해 보이지만 음미할수록 깊은 맛이 솟아나오는 가편佳篇들이 적지 않다. 이 시집의 짧은 시 중에 단연 돋보이는 명품을 하나 살펴본다.
하늘의 꽃처럼
땅 위의 별처럼
내게는 바로 너
가슴 속의 시.
― 「너」 전문
이 시가 보여주는 상상의 경지는 아주 흥미롭다. 불과 2행 2연 총 4행에 불과한 시지만, 그 함축적 내용은 대형 서사시의 그것에 비교할 만큼 많은 것들을 내포하고 있다. 1연의 “하늘의 꽃”은 하늘과 지상이, “땅 위의 별”은 지상과 하늘이 혼연일체가 되어 만들어내는 조화로운 곳이다. 그곳은 천지의 구분이 없듯이 빈부의 차이도, 비천의 차이도, 남녀의 차이도, 삶과 죽음의 차이도 없는 세계이다. 다시 말하면 하늘과 땅, 그리고 인간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전일적 유토피아의 세계이다. 시인은 이런 이상 세계를 감각하고자 하는 열망으로 시를 써 온 것이다. 이런 세계에 대한 감각은 “하늘에 입술을 댄다/ 땅에 입술을 댄다/ 때로는 강물에 들판에/ 바다에도 입술을 댄다// 스스로 거룩해지는 날이다.”(「입술」 전문)와 같은 적극적인 시적 실천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이때 “나”로 등장하는 시인은 지상과 하늘을 매개하는 존재로서 우주수와도 같은 역할을 하는 존재이다. 따라서 나태주 시의 순수 서정시는 작은 것들을 통해 거대한 우주와 인생의 우여한 곡절들을 시적 서정으로 높고 넓게 승화시키고 있다. “가슴 속의 시”가 되어 “하늘의 꽃처럼/ 땅 위의 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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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4의 글 ◆
아프지만 다시 봄
그래도 시작하는 거야
다시 먼 길 떠나보는 거야
어떠한 경우에도 나는
네 편이란다.
―「산수유」전문
인생을 고행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그렇다면 말이다
거기서 글자 한 자만 고치자
당신과 함께라면
고달픈 인생도
즐거운 여행이라고.
―「함께라면」전문
나태주 시인은 이즈음 한국 시단에서 누구보다도 인기가 많다. 그의 시가 인기를 끄는 이유는 소통과 공감의 측면에서 단연 앞서가기 때문이다. 그는 그야야말로 ‘누구나 읽어도 이해가 되지만, 아무나 쓸 수 없는 시’를 쓴다
― 이형권 / 문학평론가. 충남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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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태주羅泰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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