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렙산에서 엘리야에게 나타나신 하나님(8-18)
이제 하나님은 직접 말씀으로 엘리야에게 임하십니다. 여호와의 천사가 가져다 준 음식으로 기운을 차린 엘리야는 40일에 걸쳐, 장장 300킬로미터 이상의 길을 주야로 걸어 시내 반도의 호렙 산(시내 산)에 이르렀습니다. 그가 그곳 동굴에서 유숙할 때 여호와의 말씀이 임했습니다. 침묵하셨던 하나님께서는 이제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고 말을 건네십니다(9).
5/20일 전도 전도지 핏켓열공모습
이 물음은 엘리야를 책망하는 말이 아니라 자신을 돌아보고 다시 하나님께 돌아오라는 신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가 이스라엘을 떠난 이래 그를 고통 속에 두시면서도 그가 충분히 혼자의 시간을 보내고 먹고 쉴 수 있게 보살피셨습니다. 엘리야는 본인이 여호와께 열성을 다했으나 목숨이 위태한 채로 혼자 남았다면서 허탈감과 외로움과 두려운 심정을 토로합니다.
그가 부른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10,14)는 ‘온 군대의 하나님’으로서 바알을 꺾고 승리한 전사임을 암시합니다. 엘리야의 “열심”은 하나님만을 향한 충성과 신의에서 나온 질투였습니다. 열정을 불태우며 사명을 완수했기에, 그는 백성들이 하나님께 돌아오고 자신은 자유로울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현실에서 백성들은 하나님의 언약을 버리고, 그의 제단들을 헐었으며, 여호와의 선지자들을 죽게 내버려 두었습니다. 혼자 남겨진 자신은(실상은 100명의 선지자가 살아있다! [18:4]) 목숨마저 위태롭습니다. 그의 한탄은 인간의 눈으로 가뭄 전과 진배없는 현실을 바라볼 때 생기는 본능적인 반응입니다.
말씀으로 임하신 하나님께서는 이번에는 직접 나타나 엘리야를 다시 사역의 길로 부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에게 굴에서 나가, 그 앞에 서라고 명하셨습니다. 엘리야는 하나님의 얼굴을 직접 보지 않기 위해(출 33:20) 겉옷으로 얼굴을 가리고 나갔습니다(13). 그 후 여호와가 지나가시자 여호와 앞에 크고 강한 바람이 불어, 산이 갈라지고 바위들이 부서졌습니다. 바람 후에는 지진과 불이 연달아 일어났습니다. 그
런데 바람, 지진, 불 가운데 여호와는 계시지 않았습니다. 대신 불 이후에 고요하고 가는 소리(“세미한 소리”, 12)가 들렸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강림의 장면은 떨기나무에서 모세에게 소명을 주신 일(출 3:2-4), 모세 앞에 나타나신 일(출 33:18-23) 등을 연상시켜 그가 엘리야에게도 소명을 주고 세밀하게 인도하실 것을 기대하게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에게 했던 질문(9)을 반복하셨고(13), 엘리야 또한 대답을 반복합니다(14).
하나님께서는 이제 그에게 새 사명을 맡겨 선지자 직분을 회복하게 하십니다. 그의 임무는 하나님이 지목한 세 명에게 기름을 부어 왕과 선지자로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메섹의 하사엘을 아람의 왕으로, 님시의 손자(“아들”) 예후를 이스라엘 왕으로 사밧의 아들 엘리사를 선지자로 임명하셨습니다(16).
이들은 나라와 직분이 다르지만, 하나님께서 북이스라엘의 죄를 심판하는 데 쓰임 받을 자들입니다. 하사엘과 예후는 북이스라엘을 심판하는 매개(“칼”)가 될 것이며, 그들의 재난을 피하는 자들은 엘리사에 의해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진멸의 시대에도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 중 바알을 섬기지 않는 자 7천 명을 남기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여기서 초점은 남겨진 ‘수’가 아니라 남긴 ‘주체’가 ‘하나님’이심에 있습니다. 7천이란 수는 상징적인 수로 남겨진 무리를 총칭합니다. 그들은 바알에게 무릎을 꿇거나 입맞춤을 하지 않은 신실한 자들입니다(호 13:2). 큰 심판의 때에 신실한 자를 따로 남기신다는 하나님의 약속에는 크신 긍휼과 주권이 드러납니다(습 3:12-13; 롬 11:5).
앞서 갈멜 산에서 백성들의 신앙 고백이 그들의 마음을 미리 돌이키신 하나님의 긍휼로 인해 이루어진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18:36,39). 하나님의 약속은 홀로 남겨진 것 같아 외롭고 괴로워하는 엘리야를 향한 위로의 말씀이기도 합니다.
선지자로 부름 받은 엘리사(19-21)
하나님의 사역자들에게도 우울증이 찾아올 수 있습니다. 자신의 열심에 근거한 믿음은 영적 우월감에 젖어둘 우려가 있습니다. 열심히 했는데 만족스러운 결과가 없으면 깊은 영적 우울증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자신의 열심에 도취 되는 신앙인이 아니라 하나님의 열심에 감사하며 하나님을 겸손히 섬기는 자로 살아가야 합니다.
19엘리야가 거기서 떠나 사밧의 아들 엘리사를 만나니 그가 열두 겨릿소를 앞세우고 밭을 가는데 자기는 열두째 겨릿소와 함께 있더라 엘리야가 그리로 건너가서 겉옷을 그의 위에 던졌더니 20그가 소를 버리고 엘리야에게로 달려가서 이르되 청하건대 나를 내 부모와 입맞추게 하소서 그리한 후에 내가 당신을 따르리이다 엘리야가 그에게 이르되 돌아가라 내가 네게 어떻게 행하였느냐 하니라 21엘리사가 그를 떠나 돌아가서 한 겨릿소를 가져다가 잡고 소의 기구를 불살라 그 고기를 삶아 백성에게 주어 먹게 하고 일어나 엘리야를 따르며 수종 들었더라(19-21)
하나님의 명령(16)에 따라 엘리야는 엘리사를 선지자로 부릅니다. 그는 다메섹으로 가는 중 아벨므홀라에 들릅니다. 그곳 밭에서 열두 쌍의 쟁기질하는 소를 앞에 거느리면서, 열두 번째 겨릿 소로 밭을 갈고 있는 엘리사를 발견합니다(“만나니”, 19). 많은 소가 있는 만큼 밭이 넓고 여럿이 일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엘리야는 밭을 가로질러 가서 엘리사에게 그의 털 겉옷을 던졌습니다(왕하 1:8). 이는 선지자 직을 엘리사에게 위임한다는 상징적 행위입니다. 의미를 알아차린 엘리사는 소를 버리고 그에게 달려갔습니다. 그는 부모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엘리야를 따르겠다고 말합니다. 이때 엘리야의 대답인 ‘돌아가라 내가 네게 무엇을 했느냐?’(20)는 꾸짖음일 수 있으나, 핵심은 그가 선지자로 부름 받았음을 각인시키는 것입니다.
엘리사는 돌아가 소 두 마리를 잡아 멍에와 쟁기를 태워(제사를 드리고) 고기를 삶아 친족과 이웃(“백성”, 21)을 대접했습니다. 이는 작별과 축복을 나누는 장면이며, 사역에 대한 엘리사의 헌신과 결단을 나타냅니다. 이제 모세에게 있어 여호수아처럼(수 1:1), 엘리사는 엘리야의 수종을 들며 선지자의 길로 들어섭니다.
자신의 기대와 열심이 하나님보다 크게 보일 때 낙심하게 됩니다. 열심과 열심정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우리는 하나님의 계획과 뜻에 겸손히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기대하시는 것은 어떤 상황에도 흔들림 없이 하나님을 바라보는 우리의 신실한 마음입니다. 우리에게 사명을 주신 분도, 그 사명을 이루도록 도와주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