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에 주의를 기울여 주길 다시 한번 당부하며, 혹시라도 이곳 태국과 서구의 관습상의 차이로 인해 본의 아니게 여러분을 당혹스럽게 만들 말을 하게 된다면 양해해 주길 바랍니다. 사실은 조금 심한 듯한 말이 수행에는 도리어 도움이 됩니다. 그러지 않으면 법문을 들으면서 자신을 일깨우기보다는 졸거나 지루해지기 십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결국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한 채 떠나게 되지요.
수행에는 다양한 방법이 있다고들 하지만, 실제로는 단 하나의 방법이 있을 뿐입니다. 과일 나무를 예로 들자면, 과일을 빨리 수확하기 위해서 속성재배를 하면 과일은 빨리 얻을 수 있으나 나무는 실하지 못합니다. 반면에 정상재배를 하면 과일은 더디게 얻더라도 나무는 실해서 오래 삽니다. 수행도 이와 같습니다.
내가 처음 수행을 시작했을 때는 이 점을 미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때때로 좌선수행이 정말 눈물 날 정도로 지루하기만 했습니다. 어떤 때는 목표를 너무 높게 잡고 어떤 때는 너무 낮게 잡아 마음의 균형을 잃어버리곤 했습니다.
오늘 보니 여러분들은 국적이 다양한 것 같군요. 따라서 여러 스승들로부터 다양한 수행법들을 익혔으리라 짐작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까지 찾아온 걸 보니, 마음이 이런 저런 의심에 시달리고 있음이 틀림없을 듯싶군요. 사실 어떤 스승은 이 방법이 좋다 하고 또 다른 스승은 저 방법이 좋다 합니다. 이처럼 세상에는 수많은 스승들과 가르침들이 있지만, 그 가르침들과 수행법들을 어떻게 조화시켜야 할지를 알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 결과 혼란만 증대되고 의심과 불확실성이 팽배해졌을 따름입니다.
그러므로 너무 많이 생각하려 들지 마십시오. 생각을 하려면 각성된 상태에서 (알아차림과 함께) 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