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에 나온 ‘박목월 평전·시선집’ 자하산 청노루에서 사랑했던 아름다운 여대생과의 이별의 아픔을 노래한 시가 박목월의 이별의 노래라고 아래와 같이 밝혔다.
목월이 피난시절 대구에서 알게 된 H씨 자매가 있었다. 자매가 모두 목월의 시를 좋아해 그를 자주 찾아왔다. 처음에는 흔히 있는 팬과의 만남 정도로 대했다. 그러는 사이 휴전(1953년 7월)이 성립되었다. . 목월은 가족보다 먼저 서울로 올라왔다. 서울의 대학들이 다시 문을 열었고 자매도 상경했다. 경주시 건천읍 모량리 목월의 생가터. 언니가 결혼을 하자 이번엔 동생이 혼자 목월을 찾았다.
동생의 가슴에 사랑의 뜨거운 불길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목월도 그녀에게 기울어져 가고 있었다. 1954년 초봄부터, 두 사람이 서울의 밤거리를 함께 거니는 날이 많아졌다. 목월은 40을 바라보는 나이였다. 자책감으로 괴로웠다.
어느 날 두 사람의 관계를 알고 있는 가까운 시인 Y를불러 H양을 만나 자신을 단념 하도록 설득해 달라고 부탁했다. Y씨를 만난 H양,Y씨의 말을 듣고 나서, “선생님,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죄가 아니겠지요.
저는 다만 박 선생님을 사랑할 뿐, 이 이상은 아무 것도 바라지 않습니다. 이런 무상의 사랑은 누구도 막을 권리가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그녀는 손수건으로 얼굴을 감싸고 울었다. 그해 여름이 가고 가을 바람이 불어 왔을 때 목월은 서울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그녀와 함께 제주도로 떠나 동거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제주 생활이 넉 달째 접어 들어 겨울 날씨가 희끗 희끗 눈발을 뿌리던 어느날 부인 유익순이 제주에 나타났다. 목월과 H양이 살고 있는 집을 찾아온 그녀는 두 사람 앞에 보퉁이 하나와 봉투 하나를 내 놓았다.
보퉁이에는 목월과 H양이 입고 겨울을 지낼 수 있는 한복 한 벌씩이, 그리고 봉투에는 생활비에 보태 쓰라는 돈이 들어 있었다.
남편은 물론 H양에 대해서도 그녀는 전혀 싫은 소리를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의 고달픈 객지 생활을 위로했던 것이다. 그러한 그녀 앞에서 H양은,“사모님!”하고 울었다. 목월도 눈시울이 뜨거워짐을 느꼈다. ...
그 하숙 생활은 그 후 두 달 남짓 끌다 끝났다. 유익순 앞에서 울었던 H양은 목월을단념하게 된 것이다. 결국 목월은 H양과의 이별 후 제주에 좀 더 머물다 1955년 초봄 가정으로 돌아왔다. 현재 70대 노장년층들이 고교시절 목청 높여 애창했던 노래가 시인 박목월의 ‘이별의 노래‘와 ’떠나가는 배‘
박목월(본명박영종)시인,(전직)대학교수 생:1916년1월6일생~ 1978년3월24일:몰(당62세) 출생지:대한민국 경북 경주시 데뷔:1939년 문장'길처럼'등단 경력:한양대학교 문리대학 학장 수상:1972년 국민훈장 모란장 1952년 전쟁이 끝날 무렵 박목월 시인이 중년 이었을 때
그는 제자인 여대생 H양과 사랑에 빠져 모든 것을 버리고 종적을 감추었다. 가정과 명예와 서울대 국문학과 교수 자리도 마다하고 아무 것도 가지지 않고 홀연히 사랑하는 연인과 함께.... 얼마 간의 시간이 지나고 박목월의 아내는 그가 제주도에서 새로이 살고 있다는 걸 알게 되어 남편을 찾아 나섰는데 마주하게 되자...
머리채 잡는 난투극을 벌이는 대신.두사람에게 ' 힘들고 어렵지 않냐'며 돈 봉투와 추운 겨울 지내라고 두사람의 겨울 옷 보따리를 내밀고 서울로 사라졌다. 박목월과 H양은 그 모습에 감동하고 가슴 아파하며 사랑을 끝내고,헤어지기로 하였고 박목월이 서울로 떠나기 전날 밤,이 詩를 지어 사랑하는 연인 H양에게 이별의 선물로 주었다고 한다.
그 詩가 이리저리를 거쳐서 김성태 선생이 작곡하게 되어 첨으로 부산에서 발표됐다고 한다. '이별의 노래' 박목월 작사, 김성태 작곡
1. 기러기 울어예는 하늘 구만리 바람이 서늘 불어 가을은 깊었네 아~아~아~아 나도 가고 너도 가야지.~ 2. 한낮이 기울며는 밤이 오듯이 우리의 사랑도 저물었네 아~아~아~아 나도 가고 너도 가야지.~ 3.산촌에 눈이 쌓인 어느날 밤에 촛불을 밝혀 두고 홀로 우리라 아~아~아~아 나도 가고 너도 가야지~
H양은 사랑과 인생을 걸었지만 박목월의 부인이 다녀간 며칠 후 부산에서 그 H양의 아버지(당시목사)가 찾아와 설득했고, 사흘을 버티다 결국 이별을 선택한 목월의 연인(H양)은 부친의 손에 이끌려 제주항으로 떠나고, 망부(忘婦)를 태운 꽃상여를뒤따르듯 목월이 따르고, 그 뒤를 목월이 제주에서 문학 활동을 하면서 알게 된 양중해 선생 (당시 제주 제일중 국어교사)이 이별의 장면에 동행하게 된다.
목월의 연인은 차마 고개를 돌리지 못하고 뱃전에서 고개만 떨구었다고 한다. 이 모습을 그날 저녁 양중해가 詩로 썼고 같은 학교 음악교사인 독학으로 작곡 공부를 하다시피한 변훈선생에게 이 詩를 주어 지금은 ‘제주의노래’가 된 불후의 명곡 "떠나가는 배"가 탄생 하였다고 한다.
'떠나가는 배' - 양중해 작사, 변 훈 작곡- 1. 저 푸른 물결 외치는 거센 바다로 떠나는 배 내 영원히 잊지 못할 님 실은 저 배는 야속하리 날 바닷가에 홀로 남겨두고 기어이 가고야 마느냐 2.터져 나오라 애설픔 물결위로 한 된 바다 아담한 꿈이 푸른 물에 애끓이 사라져 내 홀로 외로운 등대와 더불어 수심뜬 바다를 지키련다 3.저 푸른 물결 외치는 거센 바다로 떠나는 배 내 영원히 잊지 못할 님 실은 저 배는 야속하리 날 바닷가에 홀로 남겨 두고기어이 가고야 마느냐
기어이 가고야 마느냐 가곡으로도 널리 알려진 `떠나가는 배'시를 자연석에 아로 새긴 높이 3m, 폭 2.2m 크기 시비(詩碑)가 제주항 여객선 부두가 바라다 보이는 제주시 탑동 해변 공연장 잔디밭에 세워져 1999년 12월 부인 유익순은 돌아온 남편에게 한마디도 탓하지 않고 반갑게 그리고 따뜻하게 맞이해 주었다. 제주시 관덕정 동화여관.거기서 그들의 사랑은 꽃이 피기 시작합니다. 여인은 시인을 위해 밥을 짓고 빨래를 했습니다. 과자도 만들어 주기도 했습니다. 배우만큼 예뻤고 몸도 날씬한 그녀는 몸이 약했던 모양입니다. 목월은 그녀를 업고 병원에도 다니고 바닷가도 다니며, 그들은 그렇게 사랑을 했습니다. 그들은 인근 문인들을 불러시 낭송회도 하였습니다. 당시 제주 제일 중학교 교사로 있던 양중해 시인도 목월과 함께 시를 읊고 술잔을 나누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모든 사랑이 열매를 맺을 수는 없나 봅니다.
♥ 옮겨온 글에서 ♥
https://youtu.be/Qs5jHPMM3-8?list=RDQs5jHPMM3-8&t=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