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자의 권학문시 해설. 朱子의 勸學問詩
심규홍/버지니아 거주
少年易老學難成 (소년이로학난성) -소년(은)이 노(하고) 학(은) 난성(하니)
一寸光陰不可輕 (일촌광음불가경) -일촌광음(이라도) 불가경(이라)
未覺池塘春草夢 (미각지당춘초몽) - 미가지당 춘초몽(한데)
階前梧葉已秋聲 (계전오엽이추성)- 계전오엽(은) 이추성(이라)
번역 : 젊은이는 쉬이 늙어가고 학문은 이루기 어려우니 짧은 시간이라도 가볍게 (헛되이) 보내지 마라. 연못가의 봄풀은 (아직도) 꿈을 깨지 않았는데 계단앞의 (뜰앞의) 오동잎은 벌써 가을소리를 내더라.
형식 : 이렇게 세로가 네줄로 된 시를 절귀(구)라고 하며 각기 기승전결의 네가지 기능을 담당합니다. 가로가 일곱자로 된 시를 칠언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윗시의 형식은 칠언절구(七言絶句)가 되겠습니다. 절구로 된 시에서 중요한 것은 두번째와 네번째 줄의 마지막 자(字)가 유성음으로 택해져야 하는데 이를 운자(韻字)라고 합니다. 윗시에서는 각 줄의 끝자들이 모두 울림소리로 되어있는데 이는 예외적으로 특별한 경우인 것 같습니다.
저자 : 이 시를 쓴 사람은 남송의 대유학자인 주희(일명 주자)로서 그는 주자학을 집대성한 분입니다. 이 권학문시는 아마도 주자의 노년기에 쓰여진 작품으로 추측됩니다.
한자풀이 : 첫줄에 쓰인 易는 두가지의 뜻을 지니고 있는데 하나는 쉬울 이, 또하나는 바꿀 역입니다. 여기서는 전자의 의미로 쓰였습니다. 그래서 보통 '소년은 늙기 쉽고'로 번역이 되는데 문맥상 易를 부사로 보아 '젊은이는 쉬이 늙어가고'로 바꾸어 번역했습니다. 다음 다음에는 問자가 생략되었다고 보는데, 그 이유는 엄격한 정형시로서의 한시(漢詩)가 가지는 글자수의 제한으로 인하여 그렇게 된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墨이라는 것에는 '배운다' 혹은 '깨닫다'라는 뜻이 있는데 이 자체로는 미흡합니다. 그래서 묻는다는 뜻의 問이 더해져야만 배우고 묻고 하는 진정한 학문이 되기 때문입니다. 즉, 학무에는 물음(問)이 있어야 참된 학문이 될 수 있는데 영어로는 Critical Study 라고 (비평적인 학문) 말할 수 있습니다.
둘째 줄에서 광음(光陰)이라는 것은 '빛'과 '응달'을 의미하며 해와 달을 상징하는 단어로써 세월이라는 뜻입니다. 일촌광음(–寸光除)을 줄여서 촌음(寸除)이라는 단어가 생겨났습니다.
셋째줄에서 池塘과 春草사이에는 之라는 소유격이 생략된 셈이지요. 그리고 未자는 위가 짧은 때는 끝 말(末)자가 되므로 주의가 요구됩니다.
넷째줄에서도 已(이미 이)자와 비슷한 자들이 있어서 자칫하면 혼동하기 쉽습니다. 그중 하나는 己(자기 기)이며, 다른 하나는 巳(뱀 사)입니다.
구조 : 이 시에서 저자가 강조하고 있는 권면은 둘째줄입니다. 첫째줄은 '일촌광음이라도 불가경이라'는 것에 대한 이유와 근거가 됩니다. 셋째줄에서 '지당 춘초'는 소년에 대한 비유이며 ' 계전오엽'은 노년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미각 몸'에서 '이추성'으로 연결되는 것이 바로 易(쉽다)하다는 것입니다.
주제 : 이 시안에 숨겨져 있는 중심단어는 바로 時間입니다. 시간이 가지는 가장 큰 특성은 일방향성(One Way) 인데 이는 곧 우리가 잃어버린 과거의 시간을 되찾을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건강이나 명예나 재산은 비록 잃어버렸어도 다시 찾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시간은 한번 흘러가면 다시는 되돌아 올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시간은 너무도 귀중한 것입니다. 그런데 저자는 이토록 귀한 시간을 촌음이라도 허비하지 말고 공부하는데 사용하라고 합니다.
여기서 '학문'은 철학적인 혹은 종교적인 진리의 탐구 혹은 得道와 修道로 바꾸어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미주현대불교'에서 특별기획으로 연재되고 있는 돈오돈수와 돈오점수에 대한 글들 중에 종교학자 노영찬 교수님의 「깨달음과 닦음의 의미」라는 글을 보면, "유교는 철저히 점진적 수련을 강조하며 동시에 갑작스런 깨달음의 상태를 경계한다. 또한 '닦음'없이 지름길로 聖人의 경지에 도달할 수 없음도 강조한다"고 설명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에 닦음은 당연히 시간의 함수가 될 수 밖에 없으며, 닦음에 있어서의 시간은 절대적인 변수(Variable) 로 작용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대유학자인 주자의 권학문시의 주제가 왜 '일촌광음 불가경'이 되어야 하는지 충분히 이해가 되고도 남습니다. 그것은 漸修를 하는데 있어서 필요한 다른 조건들이 갖추어져 있다고 가정할때, 이 '점수'는 시간이 많이 투자될 수록 더욱 높은 경지에 도달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주자의 권학문시는 돈오점수에 있어서 점수(漸修)의 중요성을 멋지게 설명해 주는 훌륭한 작품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1992년 6월호 미주현대불교 제 26 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