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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태복음 7장 22-27절 이런 사람이 되게 하소서3-지혜로운 자가 되게 하소서2
지난 주에는 이 세상을 살려면 지혜가 필요하지만 이 세상 지혜로는 구원받고 천국에 들어갈 자가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보내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이 되게 하셨다는 말씀을 들으셨습니다.
오늘은 지혜로운 자가 되게하소서 두 번째 말씀으로 이 세상 지혜를 동원해서 집을 짓는 자와 하나님의 지혜로써 집을 짓는 자가 무엇이 다른지, 그리고 어떤 결과를 맞게 되는 지를 보면서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는 성도가 되시길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님은 산상수훈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질서를 마태복음 5-7장까지 가르치셨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에서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를 가르치신 말씀입니다. 그 전반적인 말씀의 한가지 특징을 말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의식하고 하나님 앞에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다 “하나님 앞에서” 삽니다. 그 누구도 하나님의 눈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이 자신을 항상 보고 계신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않고 삽니다. 교회에 다니지 않는 사람만이 그런 것이 아니라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조차 하나님을 인식하지 않고 삽니다. 다만 자기가 무엇인가 필요하거나 절박할 때 하나님을 찾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하지만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참된 신앙의 사람들은 항상 하나님을 의식하면서 삽니다. 그래서 죄를 짓지 않으려고 멀리하며, 하나님의 뜻대로 선을 행하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고자 간구하게 됩니다. 그런 그가 구하는 것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에 관심을 두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히면서 삽니다. 삶 가운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한 삶을 살고자 애를 씁니다. 그래서 자기의 삶의 영역에서 어떻게 해야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지를 하나님께 항상 여쭈어보고 하나님의 성령이 가르쳐주시는 은혜를 따라 순종하면서 살게 됩니다.
물론 어린 신앙의 사람들은 이런 일이 익숙하지 않지만 예수님 안에서 점점 성장할수록 하나님께 묻는 시간을 많이 갖습니다. 그래서 신앙이 성장한 사람들이 기도를 많이 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고자 기도하고, 예배에 참여하고 성경을 읽으며 살아있는 하나님과의 교제 속으로 들어가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런 사람의 삶이 완벽하다는 것은 아닙니다. 완벽에 가까울 수는 있지만 완벽하지 못합니다. 그뿐 아니라 마귀로부터 계속적인 시험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마귀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이라고해서 시험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마귀는 성숙한 사람을 넘어뜨림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영적인 타격을 주는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귀는 성숙한 신앙인을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더 많이 공격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숙한 신앙인은 어린 신앙인보다 훨씬 더 많이 하나님과 함께 있는 시간을 갖고자 구별합니다. 여러분들의 신앙의 정도는 어떻습니까? 하나님과 얼마나 함께 있기를 애씁니까?
오늘 말씀을 보면 두 종류의 건축자들이 나옵니다. 하나는 반석 위에 집을 짓습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모래 위에 집을 짓습니다. 반석 위에 집을 짓는 사람은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반석을 뚫고 기둥을 박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사람은 쉽게 집을 집니다. 왜냐하면 모래에 기둥을 박는 것은 매우 쉽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반석 위에 집을 짓는 사람과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사람의 차이에 대하여 “내 말을 듣고 행하는 지혜로운 자”와 “내 말을 듣고도 행하지 않는 어리석은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지혜로운 자와 지혜롭지 못한 자는 교회 밖의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교회 밖의 사람들은 이미 심판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영혼의 집조차 짓지 않습니다. 그러나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은 영혼의 집을 짓습니다. 그런데 한 부류는 모래 위에 짓고 한 부류는 반석 위에 짓는 것입니다. 열 처녀의 비유도 역시 이와 마찬가지로 지혜로운 다섯처녀와 어리석은 다섯처녀로 나뉘어지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하늘의 신령한 지혜를 주시길 축복합니다.
때때로 반석위에 영적인 집을 짓는 사람들이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사람을 보고 부러워할 때도 있습니다. 그들이 제대로 된 신앙생활을 하지 않는 데도 잘먹고 잘 사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세상에서 큰 복을 받은 사람들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시험이 듭니다. 왜 자신은 그렇게도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려고 하는데도 어렵게 사는 데 저 사람은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지 않는데도 잘되는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이런 일은 여러분들에게만 일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이에 대하여 시편 기자도 역시 같은 상황을 하나님 앞에서 고백하며 노래하고 있습니다. 시편 73편의 시는 레위지파 사람인 아삽이 지은 시입니다.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우선 1-20절입니다. 길지만 이 구절들을 부분부분 읽어가면서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아삽의 시] 하나님이 참으로 이스라엘 중 마음이 정결한 자에게 선을 행하시나 나는 거의 넘어질 뻔하였고 나의 걸음이 미끄러질 뻔하였으니 이는 내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질투하였음이로다”
시인은 하나님이 공의의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선하신 분으로써 마음이 정결한 자에게 선을 행하십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것같은 상황을 보면서 실족할 뻔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자기가 보니까 악인이 망해야 하는 것이 정상인 것같은데 오히려 악인이 형통하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오만한 자도 역시 마찬가지로 형통합니다. 그들이 하고자 하는 일을 성취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을 보니 마음 속에 질투가 납니다. 자신은 신실한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는데도 어려운데 어떻게 악을 행하는 악인과 오만한 자들이 오히려 형통하고 잘되는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지 않는대로 불구하고 세상적으로 잘되는 사람들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가질 때가 없습니까? 하나님은 공의를 행하시는 분이신데 어떻게 악을 행하는 사람을 보시면서도 잘되게 하시느냐 하는 것이냐는 강한 의문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기 마음 상태를 솔직하게 열어놓고 있습니다. ‘나는 오만한 자가 잘되는 것을 보니 질투가 난다’는 것입니다.
거기다가 악인과 오만한 자들을 주시해서 보는데 그들이 이 세상에서 그렇게 잘 살다가 죽을 때도 보니 고통도 없고 편안하게 죽는 것처럼 보입니다. 거기다가 그들은 고난도 없고 재앙도 당하지 않습니다. 다음 절을 보니까 이렇게 고백합니다. “그들은 죽을 때에도 고통이 없고 그 힘이 강건하며 사람들이 당하는 고난이 그들에게는 없고 사람들이 당하는 재앙도 그들에게는 없나니”
그런 그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니까 교만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리고 강포를 행합니다. 다른 사람들을 무시하면서 포악하게 대한다는 것입니다. 억압하고 빼앗고 괴롭히는 일을 행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왠일인지 그들이 추진하는 악한 일들이 잘되어서 부자로 떵떵거리면서 삽니다. “그러므로 교만이 그들의 목걸이요 강포가 그들의 옷이며 살찜으로 그들의 눈이 솟아나며 그들의 소득은 마음의 소원보다 많으며”
그런 그들은 또한 악하고 거만합니다. 그런서 다른 사람들을 대할 때 거만하게 거드름을 피우며 말을 합니다. 또한 상처를 주는 말도 서슴지 않습니다. 자기를 높이기 위해 다른 사람들을 낮추는 것입니다. “그들은 능욕하며 악하게 말하며 높은 데서 거만하게 말하며 그들의 입은 하늘에 두고 그들의 혀는 땅에 두루 다니도다”
그들은 또한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말을 합니다. “그러므로 그의 백성이 이리로 돌아와서 잔에 가득한 물을 다 마시며 말하기를 하나님이 어찌 알랴 지존자에게 지식이 있으랴 하는도다” 그런데도 그들의 얼굴은 항상 평안해 보이고 또 그들의 재물은 불어납니다. “볼지어다 이들은 악인들이라도 항상 평안하고 재물은 더욱 불어나도다” 하지만 이렇게 하나님이 없는 자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의 결말은 파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심판때까지는 그것이 표가 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침묵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런 악인들의 형통을 보면서 자신의 처지를 보니 완전히 딴판입니다. 너무나 힘이 들고 고통스럽습니다. 그는 고백합니다. “내가 내 마음을 깨끗하게 하며 내 손을 씻어 무죄하다 한 것이 실로 헛되도다 나는 종일 재난을 당하며 아침마다 징벌을 받았도다 내가 만일 스스로 이르기를 내가 그들처럼 말하리라 하였더라면 나는 주의 아들들의 세대에 대하여 악행을 행하였으리이다 내가 어쩌면 이를 알까 하여 생각한즉 그것이 내게 심한 고통이 되었더니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그들의 종말을 내가 깨달았나이다 주께서 참으로 그들을 미끄러운 곳에 두시며 파멸에 던지시니 그들이 어찌하여 그리 갑자기 황폐되었는가 놀랄 정도로 그들은 전멸하였나이다 주여 사람이 깬 후에는 꿈을 무시함 같이 주께서 깨신 후에는 그들의 형상을 멸시하시리이다”
사람들의 문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영원한 세계보다 눈에 보이는 시한부적인 세계를 우선시합니다. 또한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는 눈에 보이는 신상을 더 우선시합니다. 또한 그들은 자기들이 만들어 놓은 신을 자기들이 믿는 오류를 범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악인들이 잘되는 것을 보니 악한 일을 하지 않고 선한 일을 한 자신이 어리석어 보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자신이 악을 행하거나 오만한 자처럼 살 마음은 전혀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믿어지기 때문입니다. 그의 마음은 반석이신 하나님을 의뢰함으로 견고히 서있습니다. 그가 하나님 앞에서 경건하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현실에서는 악인들이 잘되고 마치 복을 받은 자처럼 살고 있지만 하나님의 관심은 그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주님의 뜻을 구하는 사람들에게 향하고 계십니다. 그는 그 사실을 성소에 예배드리러 갔다가 알게 되었습니다. 그로인해 그는 기뻐하면서 영광의 하나님을 찬송하고 있습니다. 23-28절입니다.
“내가 항상 주와 함께 하니 주께서 내 오른손을 붙드셨나이다 주의 교훈으로 나를 인도하시고 후에는 영광으로 나를 영접하시리니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 밖에 내가 사모할 이 없나이다 내 육체와 마음은 쇠약하나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시요 영원한 분깃이시라 무릇 주를 멀리하는 자는 망하리니 음녀 같이 주를 떠난 자를 주께서 다 멸하셨나이다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적을 전파하리이다”
자신은 항상 주님과 함께 해왔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자신의 오른손을 붙들어 주셨습니다. 주의 교훈으로 인도하셨습니다. 그리고 후에는 영광으로 영접하실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영광의 나라인 영원한 천국으로 인도하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에서나 땅에서나 하나님은 영광을 받기에 합당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로인하여 시인은 더욱더 하나님을 의뢰할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하나님 만한 반석이 없기 때문이며 영원한 분깃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멀리하는 자들은 다 망할 것입니다. 그들은 마치 음녀가 바람이 나서 자기 남편을 떠난 결과가 파멸인 것처럼 음녀같이 주를 떠난 자를 하나님은 심판하십니다. 다만 그들이 살아 있는 동안에 회개할 기회를 주십니다. 하지만 그들이 하나님의 인내를 끝까지 무시하고 회개하지 않는다면 반드시 그 죄를 물어 다 멸하시는 분이십니다. 성경과 성령은 그 사실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시편 1편 4-6절을 보면 이 사실을 확인할 수있습니다. “악인들은 그렇지 아니함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그러므로 악인들은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들이 의인들의 모임에 들지 못하리로다 무릇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 결과는 명백합니다. 피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회개할 기회를 악인들에게도 주시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모으고 쌓아두는 것은 모두가 불타게 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일생을 살면서 심혈을 기울여 쌓았던 재물들이 그들을 구원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분노를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그제서야 알게 될 것입니다. 이 땅에서 그들은 수많은 사람들의 부러움의 대상이었지만 영원한 나라에서 그들은 지옥의 형벌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며 단 한방울의 물조차 구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그토록 소중히 여겼던 대인관계의 대상이었던 사람들 중 그 누구도 그들을 구원해줄 수 없음은 물로 그들 자신도 구원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이 세상의 즐거움은 지극히 잠깐 같아서 날아가는 빠른 화살 같고 잠깐 덮인 안개와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땅의 것을 추구하는 자만큼 어리석은 자도 없습니다. 그런데 교회에 다니는 수많은 사람들이 마치 불신자들과 똑같이 이 세상에 가치를 두고 세상 것을 얻고자 애를 쓰며 모으고 또 모으는데 집착을 합니다. 그들 역시 그들과 함께 세상의 것을 추구했던 불신자들과 같이 영원한 불못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그들이 지은 집이 무너지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따랐던 그리스도인들은 고백합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적을 전파하리이다” 하나님과 가까이 하는 것이 복입니다. 여러분 이 사실을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하나님께 가까이 하십시오. 그런 사람들은 하나님을 자신의 피난처로 삼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된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의 것들에 참된 가치를 두지는 않습니다. 그런 것들은 잠시 주님을 위해 사용해야할 도구들에 불과할 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세상의 재물들이나 권세나 명예나 세상의 성공을 얻고자 그렇게 애를 쓰지 않습니다. 물론 맡은 자리와 맡은 일에서는 충성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충성하는 이유가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입니다. 이런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의 마음은 언제나 자신을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와 자신의 독생자를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이며 자신이 아버지이신 하나님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사람에게 하나님은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십니다. 성령충만이 하나님의 충만인 이유는 성령으로 충만한 자체가 하나님으로 충만한 것을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능력을 나타내는 것과는 조금 다른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도 하나님과의 관계가 결여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22절에 바로 그런 사람들이 나옵니다. 우리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많은 일들을 했습니다. 그들이 가지고 있고, 또 행한 권세는 참으로 놀라운 것들입니다.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을 했습니다. 오늘날로 이야기하면 목사 노릇을 한 것입니다. 그리고 주의 이름으로 귀신도 내쫓았습니다. 누가 귀신을 내쫓을 수 있습니까? 귀신이 누구의 말을 듣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귀신들이 사람을 부렸으면 부렸지 누구에게서 쫓겨날 대상이 아닙니다. 그들의 힘은 강합니다. 그러나 그 강한 귀신들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앞에 쫓겨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앞에서는 맥을 못춥니다. 그만큼 예수 그리스도의 권세가 절대적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의 권세를 다 받으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 권세가 어디서 나왔습니까? 하나님 아버지께 죽기까지 순종하시고 복종하심으로 말미암아 나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에게 부여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권세는 절대적입니다. 그 권세가 귀신들린 자에게서 귀신을 내쫓는 것입니다.
그런데 선지자 노릇을 하던 이 사람들이 주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았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리스도의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그들은 또한 주님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도 행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할 수 없는 일들을 주님이 주신 권능으로 해냈습니다. 그런데 그런 그들을 예수님은 모른다고 하십니다. 23절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그들의 문제는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을 한 것도,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은 것도, 또 주의 이름으로 많은 능력을 행한 것도 아닙니다. 그들의 문제는 바로 에수님의 말씀을 듣고도 아기는 불법을 행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불법을 행했다는 근거가 무엇입니까? 그들을 예수님께서 모른다고 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일핟다고 하면서 사람들이 돌리는 영광을 자기들이 가로챘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문제는 예수님의 일을 한다고는 하지만 나무이신 예수님께 붙어있는 가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산상수훈을 통해 계속해서 사람에게 보이려고 선한 일들을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의 것을 구하지 말고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행하는 능력에 비해 그들이 행하는 일들은 거짓선지자들이 행하는 일을 한 것입니다. 진실로 그들은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나라와 백성들을 사랑해서 행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사랑으로 행한 것이 아니라 자기의 이익을 위해 행한 것입니다. 그들은 가장 중요한 사랑을 버렸습니다.
진리는 사랑과 함께 세워져야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들을 사랑했을 뿐 진정으로 하나님과 자기에게 나아와 말씀을 듣고 병고침을 받고 그 능력의 혜택을 입는 사람들을 사랑하는 사랑으로 행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믿음은 있었지만 사랑은 없었습니다. 그들은 땅의 소망은 있었지만 하늘의 소망은 없었습니다. 많은 목회자들이 큰 능력을 받아 자기들의 교회를 키우는데 힘을 쏟습니다. 물론 일반 교인들 역시도 자기의 집을 키우는 데만 힘을 쏟습니다.
여러분들이 여기서 기억할 것은 그들이 주님의 교회를 세우기 위해 일했다고 생각했을지 몰라도 예수님이 보실때에는 그들이 그들의 교회를 부흥시키고 성장시키기 위해 힘을 썼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겉으로 볼 때 표시가 나지 않습니다. 모래 위에 집을 세운 사람이나 반석위에 세운 사람이나 두 종류의 사람 모두 집을 세웠기 때문입니다. 겉모습은 비슷하거나 똑같이 세웠을 수는 있지만 한 사람은 그리스도를 사랑해서 그 명령대로 하나님의 집을 세웠고 교회를 세웠지만 한 사람은 그리스도보다 자기를 더 사랑해서 교회를 세운 것입니다. 그 때문에 그들에게 창수가 일어났을 때 그 내면에 감추어져 있던 것이 드러나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전하신 산상수훈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위에 세운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는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쳤어도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그 주추를 반석 위에 놓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와 그리스도께서 하신 말씀 위에 집을 세웠다는 것입니다. 요령을 피우거나 술수를 행한 것이 아니라 에수님께서 가르치신 말씀의 의도를 알고 예수님을 사랑하는 그 사랑으로 집을 세운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사랑하시는 모든 사람들을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여러분들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를 다니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예수님을 사랑함으로 인해 예배를 드리며 예수님을 사랑함으로 예수님이 말씀하신 고난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그 고난 속에서도 사랑은 빛이 납니다. 생명의 빛이 납니다. 구원의 빛이 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참 맛이 납니다. 그리스도께서 그 사람 안에 거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의 지혜가 어디에서 나왔습니까? 그리스도를 진심으로 자신의 주인으로 믿고 모신 데서 나온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보다 그리스도를 더 사랑하고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지체인 성도들을 더 사랑하고 또 아직 세상에 있지만 그리스도께서 구원하시고자 하시는 그리스도의 양인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지혜를 가진 사람은 그리스도의 사랑이 그 안에서 살아 역사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진정으로 희생활 수 있고 진정으로 십자가를 질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기뻐하고 행복해합니다.
식당에서 밥을 먹고 나오면 물을 마시는 냉온수기가 있고 그 옆에 커다란 화장지가 걸려있습니다. 입을 화장지로 씻으라고 갖다가 걸여놓은 것입니다. 그런데 이 화장지가 얇아서 세게 당기면 위에서 끊어져 버립니다. 그러면 뒤엣 사람은 손을 거꾸로 넣고 화장지를 빙글빙글 돌려야만 꺼낼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같이 일하는 아가씨가 화장지를 홱 잡아 끊는 것을 보고 화장지를 살살 돌리면 뒤엣 사람이 편하게 쓸수가 있다고 말하자 그 아가씨가 말합니다. “왜 나만 그런 희생을 해야해요?”하고 묻습니다. 그래서 제가 말했습니다 “그러면 뒤엣 사람들이 기쁘잖아요. 그리고 그렇게 해주는 우리도 기쁘고”
어쩌면 다른 사람들을 위한 작은 사랑의 배려가 무시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여러분들의 마음을 들여다보시면서 선을 행하라고 하십니다. 주님의 사랑의 방식대로 살려고 하는 사람을 자기만을 아는 사람들을 보면 어리석어 보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도 자기 방식대로 믿는 사람, 그리고 자기의 성공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 볼때는 여러분들의 행동이 어리석어 보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런 사람이 진정으로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지만 에수님의 말씀을 듣기는 듣지만 듣고도 행하지 않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같습니다. 그는 쉽게 교회 생활을 하고 종교생활을 하지만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부는 그 날 그것들이 집에 부딪칠 때 그 무너짐이 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들은 육신의 타격만 받는 것이 아니라 영과 혼과 육체가 모두 타격을 받고 무너집니다. 엄청난 충격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도 몰랐던 자신의 실체를 그제서야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구원받았을 거라고 합리화시키고 불법을 행하면서도 자기 행동을 합리화시켰겠지만 하나님은 절대로 그들의 겉모습과 행동에 속아 넘어 가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날마다 시간을 정하여 예수님 앞에 앉아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며 그 말씀대로 헌신한 마리아같이 자기의 전부인 향유를 예수님께 부어 드린 것같이 자신을 온전히 드리는 사람이 됩니다.
여러분!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십시오. 예수님이 인정하시는 지혜를 구하십시오, 그래서 주님의 뜻을 알고 주님이 주닌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십시오. 여러분들이 이 땅에서 하나님의 아름다움과 영광을 드러냄은 물론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기업을 상속받고 영원히 기빠히고 감사하면서 다른 구원받은 많은 성도들과 함께 천국생활을 하게 될 것입니다. 이 복이 여러분들 모두에게 임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