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추(立秋). 르노삼성의 1.5 디젤 엔진을 얹은 두 모델을 타고 강원도 태백으로 1박 2일 시승을 떠났다. ‘가을에 접어 들었음’을 뜻하는 입추. 연일 찌는 듯한 날씨가 이어지면서 우스갯소리로 ‘입 조심해. 추워지려면 멀었어’라는 말도 나온다. 그도 그럴 것이 태백으로 떠난 날 서울의 최고 기온은 36도다. 무더위를 뒤로 한 채 고도가 높고 산으로 둘러싸여 열대야가 없다는 ‘태백’으로 향했다.
서울 강남역을 출발해 강원도 정선을 거쳐 최종 목적지인 태백 오투리조트를 가기로 했다. 이틀 간 시승할 차는 SM6와 클리오. 두 모델 모두 1.5L 디젤 엔진을 얹었다. 시작은 SM6다. SM6는 가솔린 모델만 타 본 탓에 디젤 모델은 조금 낯설었다. 게다가 QM3나 클리오와 같은 엔진을 썼다니. 이들보다 더 큰 몸집에 얹혀 버거워 하진 않을까 걱정이 앞섰다. 동시에 같은 엔진이 서로 다른 차에서 어떤 성격을 보여줄지 궁금해졌다.
1.5L 디젤 엔진을 얹었다는 사실 만큼이나 이날 시승차의 색상도 낯설다. 빛 바랜 듯 옅은 은색의 정확한 색상명은 ‘울트라 실버’다. ‘아메시스트 블랙’이나 ‘보르도 레드’ 등 르노삼성차의 매력적인 색상을 봐 와서 그런지 썩 마음에 들진 않는다. 르노삼성은 과감하고 선명한 색상이 디자인과 더욱 잘 어울리는 느낌이다. 운전대는 1박 2일간 동승한 동료 기자가 먼저 잡았다. 실내는 이미 에어컨 바람으로 시원하다. 2단까지 올려 놓은 통풍 시트로 춥기까지 했다.
이날 시승차는 SM6 1.5 디젤 LE 트림에 S-Link 패키지와 프리미엄 시트 패키지를 추가한 모델이다. 참고로 SM6 디젤에는 최상급 트림인 ‘RE’가 없다. S-Link 패키지는 8.7인치 내비게이션과 BOSE 사운드 시스템, CD 플레이어, 뒷유리 매뉴얼 선블라인드를 포함하고 있다. 프리미엄 시트 패키지에는 퀼팅 시트와 앞좌석 통풍시트, 운전석 파워 시트, 동승석 파워 시트, 앞좌석 프레스티지 헤드레스트가 있다. 덕분에 앞 좌석은 부족함 없이 매우 고급스럽다. 가격은 개별소비세 인하분을 반영하면 2975만 원, 여기에 S-Link 패키지 118만 원과 프리미엄 시트패키지 83만 원을 더해 3176만 원이다.
아쉽게도 시승차에는 장거리 주행 시 유용하게 쓰일 수 있는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ACC), 차선이탈 경보 시스템(LDW) 등이 포함된 드라이빙 어시스트 패키지Ⅱ가 없었다. SM6 디젤 모델의 경우 LE 트림에서 187만 원에 드라이빙 어시스트 패키지Ⅱ를 추가할 수 있다.
도심을 빠져나가는 동안 실내를 살폈다. 세로로 긴 디스플레이와 운전대 뒤 자리한 음량 조절 버튼 등은 이제 르노삼성의 특색으로 자리 잡은 듯하다. 온도 조절, 통풍∙열선시트 등 운전 중 사용이 잦은 버튼은 밖으로 빼 놨기 때문에 사용하다 보면 익숙해진다. 그러나 내비게이션은 여전히 적응이 어렵다. 출발하기 전 목적지를 설정해 도심을 빠져나가는데 무엇 때문인지 반 박자씩 느린 반응을 보였다. 마치 지나온 길을 되짚어 주듯. 차량 내비를 끄고 핸드폰 내비를 사용하기로 했다.
“클리오와 같은 1.5 엔진 얹은 SM6, 충분할까?”
첫 번째 목적지는 강원도 정선의 곤드레밥 맛집 ‘함백산 돌솥밥’이다. 서울 강남역에서 209km 가량 떨어져 있어 차가 막히지 않는다면 3시간 정도 걸린다. 중간 지점 부근 휴게소에 들러 운전자를 교체했다. 운전대를 잡고 시동을 켜니 디젤 특유의 진동과 소음이 느껴진다. 타 브랜드의 디젤 세단과 비교하면 소음이 심하거나 거슬리지 않는다. 오히려 정숙한 편에 더 가깝다. 다만 주행을 시작하면 얘기가 조금 달라진다. 고속 주행시 하체에서 오는 소음과 풍절음은 꽤 들리는 편이다.
SM6의 1.5 디젤 엔진은 6단 듀얼클러치자동변속기 (DCT)와 조합을 이뤄 최고출력 110마력, 최대토크 25.5kg.m를 발휘한다. 같은 엔진과 변속기를 사용한 클리오보다 20마력, 토크는 3.1kg.m 끌어 올렸다. 덩치에 맞춰 조금씩 손을 본 것인데 어느 것이 더 낫다고 단정 짓긴 어렵다. 차급과 성격에 맞게 적절히 조율한 듯 하다.
휴게소에서 빠져나와 바로 고속도로를 달렸다. 운전대를 잡기 전 답답할 것이란 생각은 기우다. SM6 1.5 디젤은 일상 주행에서 크게 부족하지 않은 성능을 발휘한다. 중∙고속까지 꾸준하고 부드럽게 밀고 나간다. 평화로운 주행에 알맞는, 딱 배기량에 충실한 모습이다. 달리는 재미는 없다. 스포츠 모드에 두고 가속하면 사운드 제너레이터가 가상의 엔진음을 보태는데 예상치 못한 ‘그릉’ 하는 엔진 소리에 처음엔 ‘오’ 하고 감탄한다. 하지만 달릴수록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은 느낌이다. 오히려 이 소리와 가속력 사이에 괴리감이 느껴져 어색하다.
운전대는 제법 큰 편이다. 시트는 어깨 높이가 낮은 편이지만 불편하지 않다. 특히 머리를 넉넉하게 받쳐주는 커다란 헤드레스트가 일품이다.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은 운전대와 계기판의 각도다. 시트와 운전대를 체형에 맞춰 이리 저리 조절하다 보면 운전대가 계기판을 살짝 가리는 경우가 있는데 SM6의 계기판은 살짝 누워 있어 어떻게 조절 하든 가릴 염려가 없다.
“이 곳에 와서야 입추를 실감했다”
슬슬 운전이 피곤해질 쯤 함백산 돌솥밥집에 도착했다. 상갈래 교차로 입구 한 편에 조그맣게 위치해 있는 곳인데 빛 바랜 간판과 대기줄을 보고 맛집임을 직감했다. 식사 메뉴는 딱 두 가지다. 돌솥밥(1만 원)과 곤드레 돌솥밥 정식(1만2000원). 곤드레 돌솥밥 정식을 시켰다. 함백산이 키운 곤드레가 듬뿍 얹힌 돌솥밥이 나왔다. 함께 나온 반찬은 족히 10가지가 넘는다. 아무 말 없이 한 그릇을 싹 비웠다.
식사를 마치고 나른해진 몸을 깨우기 위해 “커피!”를 외치며 다시 차에 탔다. 식당 앞을 지나 태백을 향해 함백산로를 따라 올랐다. 살짝 단단한 승차감으로 장거리 운전이 피곤해질 무렵 굽이진 오르막길을 오르는데 정교하고 깔끔한 핸들링이 인상적이다.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다. 원하는 만큼 운전대를 돌리면 움직이는 양도 딱 그만큼이다. 당연한 것일 수 있지만 시승을 하다 보면 운전대를 돌리는 정도와 실제 바퀴가 움직이는 정도 사이의 괴리가 느껴지는 경우를 심심찮게 찾을 수 있다.
과거 탄광업이 흥했던 시절 함백산은 무연탄 생산 중심지였다. 그래서인지 탄광 도시 고유의 흔적과 감성이 곳곳에 묻어 있다. 길을 따라 오르다 보면 함백산 자락에 삼척 탄좌 시설 일부가 그대로 남아 우뚝 솟아 있다. 도로 옆에 조그맣게 흐르는 계곡은 바위 색깔부터 다르다. 과거 모습은 어땠을까 상상하며 오르다 보니 한 카페가 나왔다. 산장을 연상케 하는 이곳은 광부들의 휴식처이자 잠자리였던 삼탄객실을 개조해 만든 곳이라고. 카페 앞 마당에는 돌 더미와 함께 석탄을 실어 나르던 도구들이 놓여 있다.
카페를 이리저리 둘러보니 얼마 전 오픈한 게스트하우스를 구경시켜 주겠다고 주인이 나섰다. 같은 건물에 카페와 이어져 있는 게스트하우스는 문을 연 지 얼마 안 돼 매우 깔끔했다. 빈 방에 잠시 들어가 보니 쏟아지는 햇빛을 마음껏 맞으며 조용히 명상의 시간을 갖고 싶을 때 적당한 장소인 듯 했다. 열대야로 잠 못 드는 요즘 같은 날에도 이 곳은 밤이 되면 기온이 22도까지 떨어져 에어컨이 필요 없다고 한다. 이 곳에 머무는 사람들이 자연 바람을 느끼고 갔으면 하는 마음도 있다고. 실제로 모든 객실엔 에어컨이 없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들고 카페의 야외 테라스로 나왔다. 볕은 여전히 따갑고 뜨거웠지만 바람은 시원했다. 습한 기운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 상쾌한 바람, 지난 두 달여 동안 단 한 번도 느끼지 못했던 바람이다. 다른 나라에 와 있는 듯한 기분까지 들었다. 이 곳에 와서야 입추를 실감했다.
시원한 바람에 장시간 시승의 피로를 덜어내고 최종 목적지인 오투리조트로 향했다. 카페에서 나와 길을 따라 그대로 오르면 첩첩하게 산으로 둘러 있는 곳에 다다른다. 높이 올라갈수록 안개로 덮였다. 비가 곧 쏟아질 것처럼 을씨년스러운 날씨에 서둘러 목적지에 도착했다. 뭐니 뭐니해도 르노의 1.5리터 엔진은 ‘연비’다. 강남역에서 트립 컴퓨터를 리셋하고 출발해 막히는 도심과 뻥 뚫린 고속도로, 굽이진 오르막길을 거쳐 도착해 확인한 SM6의 연비는 20.3km/L였다.
“1.5리터 물 만난 클리오”
다음 날 아침, 서울로 돌아가는 길에는 흰색 클리오를 시승했다. 시승차는 '에뚜알화이트' 색상에 레드 데코를 더한 인텐스 트림 모델이다. 라디에이터 그릴과 도어 패널 하단에 붙은 붉은색 장식이 밋밋한 인상에 활력을 불어 넣는다. 시승차 가격은 개별 소비세 인하 후 2278만 원. 여기에 하이패스와 전자식 룸미러를 포함해 20만 원이 추가된다.
먼저 운전대를 잡았다. 전 날 SM6를 타고 달렸던 굽이진 길이 더욱 재밌게 느껴졌다. 같은 파워트레인을 가졌지만 훨씬 작고 가벼우니 당연한 일이다. 더 잘 달리고 재미있다. 디자인 상으로만 봤을 때 그리 내키지 않았던 벨벳 시트는 오히려 몸을 단단히 잡아줘 좀 더 달려도 되겠다는 확신을 심어 준다. 여기에 즉각적인 핸들링 반응과 민첩한 몸놀림이 더해져 달리기 재밌다. 고속에서도 허둥대거나 멈칫하지 않는다. 중, 고속까지 가속이 매끄럽다.
그렇다고 고성능이나 엄청난 효율을 발휘하는 것은 아니다. 진정한 고성능은 유럽에서만 경험할 수 있다. 유럽에서는 클리오의 고성능 모델인 클리오 RS를 판매하고 있다. 달리는 내내 연비는 SM6 디젤보다 낮았다. 주행 조건이 완전히 같진 않았지만 같은 고속도로를 달리는 동안 SM6는 19-20km/L 수준에서 왔다 갔다 한 반면 클리오는 16-17km/L 사이를 오갔다. 연비가 나쁘진 않지만 재미에 좀 더 중점을 둔 차라고 이해하면 되겠다.
실내는 화려하지 않다. 모닝이나 스파크 같은 경차의 느낌이다. QM3와 전반적인 레이아웃이나 소재가 같다. 플라스틱이 대부분인 실내에 등받이 각도 조절은 여전히 시트 옆 다이얼을 빙글빙글 돌려야 한다. 불편함 속에서도 실용성을 확인할 수 있는 부분도 깨알같이 존재한다. 동승자석 앞 대시보드에 뚫려있는 수납합은 꽤 유용하다. 굳이 열었다 닫았다 하는 수고로움 없이 간단한 짐을 넣다 뺏다 할 수 있기 때문.
SM6 보단 시승 시간이 짧았지만 아무래도 작고 가벼운 차체가 주는 재미는 무시할 수 없나 보다. SM6의 존재 이유가 무난한 주행 성능과 연비라면 SM6도 매력적이지만 SM6보단 클리오가 더 꼭 맞는 옷을 입은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