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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골산 봉서방 원문보기 글쓴이: barnabak
갑절의 영감을 사모하라
열왕기하 2:1-14
1.
최근에 저는 참으로 황당한 편지를 받았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많은 목회자들이 받았으리라고 생각합니다만 청주 시온교회 신천지에서 보낸 편지입니다.
발신자는 ‘예수님의 대언의 사자 이만희’였고요, 내용인즉 이렇습니다.
“목사님 안녕하십니까? 저를 적대시하지 마시고 성경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참으로 저는 스스로 온 자가 아닙니다.
예수님의 대언의 사자로 교회들을 위해 보냄을 받고 왔으며, 제가 교회들에게 전할 것은 계시록이 이루어진 것이며 이를 증거 하기 위해 왔습니다.
이것들을(여기에서 이것들은 계시록을 말합니다.) 보고 들은 자는 저뿐이며 저 외 그 누구도 아는 자는 한 사람도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뜻 계시록을 가감하면 그 누구도 구원받지 못합니다.”
그 후 이어지는 내용가운데 “약속의 목자를 무시하고 받아주지 아니하면 구원받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니 목사님과 교인들이 이만희가 주께서 보낸 자로 믿고 받으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편지는 이제 이단들이 기성교회 목회자들에게까지 대놓고 자기들의 주장을 편지한다는 대담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 시대가 정말 영적으로 너무나 어둡고 타락한 시대임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단교회에는 절대 무슨 일이 있어도 가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단교회에 빠지는 것은 육을 망하게 할 뿐 아니라 영이 지옥가게 만드는 가장 안타까운 일입니다.
특히 교회 밖에서 하는 성경공부는 절대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공부하자고 꼬이는 것은 대부분 신천지 이단이 교인들을 자기 교회로 이끌어 들이는 첫 번째 방법입니다.
이렇게 영적으로 타락한 시대에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2.
오늘 본문을 보면 엘리사가 스승인 엘리야에게 갑절의 영감을 달라고 간구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 엘리야를 하늘로 올리고자 합니다.
하나님의 부름을 받을 때가 가까웠음을 느낀 엘리야는 자기가 지금까지 공들여 세우고 훈련시킨 선지자의 제자들을 만나기 위한 여정을 시작합니다.
길갈에 있는 선지자 학교에 머물러 있었던 엘리야는 길갈을 떠나 벧엘 신학교를 방문하고 이어서 여리고 신학교를 방문하여 선지자의 제자들을 만나는 것으로 지상에서의 일을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엘리야의 마무리 사역은 제자들을 볼아 보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아름답고 보람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엘리야는 자신이 이 세상을 떠날 때 자신을 대신하여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할 제자들을 세우고 양육하고 격려하는 귀한 일을 하였습니다.
다음세대를 위하여 제자들을 세웠다고 하는 것은 엘리야의 업적 중에서도 놀라운 업적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게 선지자 학교를 방문하려고 길을 떠날 때마다 엘리사는 엘리야 선생님을 따라갑니다.
‘너는 여기 머물러 있으라.’고 해도 여호와의 살아계심을 두고 맹세를 하면서 끝까지 따라갑니다.
결국 끝까지 엘리야와 엘리사가 함께 합니다.
드디어 요단강을 건넜을 때 엘리야가 묻습니다.
‘내가 네게 어떻게 할지를 구하라’
네가 무엇을 구하는지, 무엇 때문에 나를 이렇게 끝까지 따르는지 네 소원을 말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엘리사는 담대하게 “당신의 성령의 하시는 역사가 갑절이나 내게 있게 하소서.” 하면서 갑절의 성령의 역사를 구하였습니다.
엘리사는 성령의 하시는 역사를 갑절이나 구하였습니다.
3.
엘리사가 “당신의 성령이 하시는 역사가 갑절이나 내게 있게 하소서” 하고 성령의 역사를 구한 것은 정말 솔로몬이 구했던 지혜만큼이나 탁월한 선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엘리사가 스승인 엘리야의 사역을 통하여 확실하게 알 수 있었던 것은 성령의 역사였습니다.
엘리사는 불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역사나 그가 기도할 때 비가 오지 아니하고 다시 기도할 때 비가 오는 엄청난 역사는 결코 엘리야의 능력이 아니라 그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성령님의 역사임을 분명히 알았던 것입니다.
엘리야의 뒤를 이어 선지자의 사역을 감당할 때 자신에게 필요한 것도 다른 어떤 것이 아니라 성령의 역사하심임을 깨닫게 된 엘리사는 하나님의 성령을 구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 성도들의 능력도 성령님이신 줄 믿습니다.
결코 우리의 힘이나 지식이나 능력이 아닙니다.
우리가 주님의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 하심인줄 믿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도 엘리사와 마찬가지로 성령의 함께 하시는 역사를 구해야 합니다.
엘리사는 엘리야의 능력보다 갑절이나 내게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갑절의 영감을 달라고 하는 간구를 우리가 오해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여기에서 갑절이나 있게 하옵소서하는 것은 엘리야의 능력의 두 배를 달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장자의 유업을 달라는 의미입니다.
이스라엘에는 장자는 차자보다 항상 두 배의 유산을 물려받게 되었습니다.(신명기21:17)
그러기에 갑절의 역사를 구했다고 하는 것은 자신을 엘리야의 후계자로 장자로 삼아달라는 의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당시에 많은 제자들이 있었는데 그 가운데서 자신을 장자로 후계자로 삼아달라는 것입니다.
그런 후계자의 표시를 자신에게 달라는 것이 바로 갑절이나 있게 해달라는 간구의 의미입니다.
그런 장자의 표시는 바로 성령의 역사였습니다.
엘리사는 바로 성령의 역사를 구한 것이고 성령의 충만을 구한 것입니다.
4.
그 당시 엘리사가 성령의 충만을 간절히 소원한 대에는 세 가지의 이유가 있었습니다.
먼저는, 시대가 배나 악하여졌기 때문에 이 시대를 이기기 위해서 성령의 충만이 필요했습니다.
여러분 오늘의 시대는 날이 갈수록 악해져가고 있습니다.
아이에스(이슬람 국가)의 화형식은 인간이 얼마나 악한 존재인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들이 요즘은 우리 주변에서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를 살면서 우리는 불의하고 악한 시대를 극복해 나가기 위하여 성령의 충만을 구해야 합니다.
우리가 성령의 충만을 구하지 않으면 우리도 세상 속에 빠져서 세상과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성도의 구별된 삶을 살아갈 수 없습니다.
둘째로, 엘리사는 자기의 사명이 배나 중대함을 알았기 때문에 맡은 사명완수를 위해서 성령의 충만을 구하였습니다.
엘리야는 엘리사가 표현한대로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었습니다.(12절)
다시 말하면 이스라엘을 지키는 어떤 군대보다도 큰 역할을 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군대의 병거와 마병을 통하여 나라를 지켜주기도 하시지만 그러나 하나님 앞에 바르게 서는 한 사람의 신실한 신앙인을 통하여 나라를 지키시고 축복하시기도 합니다.
아합은 엘리야를 가리켜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자라고 했지만 실제로 이스라엘을 괴롭게 했던 자는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는 아합이었고 엘리야는 이스라엘을 구원했던 선지자요 병거요 마병이었습니다.
그런 엘리야가 이제는 떠나갑니다.
이스라엘을 지키던 선지자가 떠나갈 때에 그 선지자를 대신할 누군가가 필요했습니다.
엘리사는 자신이 그런 자가 되기를 원하였고 그러기 위하여 성령의 역사가 갑절이나 필요했던 것을 알고 갑절의 영감을 구하였습니다.
우리도 주님께서 맡겨주신 사명을 잘 감당하기 위하여 성령의 충만을 간구해야 합니다.
세 째로, 엘리사는 자신의 연약과 무능함을 알았기 때문에 성령의 충만을 구하였습니다.
성령의 권능을 받으면 약한 자가 강해지고 무능한 자가 능력 있는 자가 되어 악한 세상도 이기게 되는 줄 믿습니다.
그러기에 오늘 우리들도 성령의 충만을 구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우리가 가져야 할 올바른 신앙의 자세입니다.
5.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오늘 많은 성도들이 성령의 충만을 전혀 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갑절의 영감을 구하여 적극적으로 주님의 뜻을 이루어드리고 능력 있게 살기 보다는 그저 적당하게 신앙생활을 하면서 연약함을 즐기는 모습으로 살아가는 성도들이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아도 엘리야의 제자들이 엘리사 외에도 50명이나 더 있었습니다.
이들도 여호와께서 엘리야를 데려가실 줄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제 마지막 선생님을 만나는 마당에 서 있으면서 이들은 엘리사처럼 끝까지 스승을 따라가지도 않았고 스승님에게 무엇을 구하지도 않았습니다.
단지 멀리서 두 사람만 바라보고 있었을 뿐입니다.(7절)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가 빠지기 쉬운 잘못가운데 하나가 이런 열심 없는 모습입니다.
라오디게아 교회처럼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는 적당하게 신앙생활을 하려는 유혹입니다.
이것저것 많은 것을 시킬 것이 두려워서 열심을 내려고 하지 않습니다.
기본적인 신앙생활에 만족하고 더 이상의 시간이나 물질이나 능력을 투자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주님의 모습처럼 성장하고 성숙하려고 애쓰고 노력하는 간절함도 없습니다.
적당하게 세상도 즐기고 세상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적당한 신앙생활을 하려고 합니다.
그러다보니까 신앙의 성숙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지도 않고 하나님의 거룩한 뜻이 이루어지지도 않습니다.
우리들을 통하여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지도 않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엘리사처럼 성령의 역사가 갑절이나 있기를 구해야 합니다.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는 말씀처럼 성령의 충만을 구하여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이루어드리는 이 시대에 쓰임 받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6.
그러면 어떻게 갑절의 영감을 받아 성령 충만한 삶을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성령을 사모하여 적극적으로 구해야 합니다.
오늘날 신자들이 사모하여 구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내가 무엇을 얼마나 가지느냐? 얼마나 풍성하게 누리느냐? 어떤 유명한 존재가 되느냐? 이런 것들에 관심이 많고 그것을 사모하여 구할 때가 많습니다.
엘리사와 같이,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갑절의 성령을 구하는 사람은 의외로 많지가 않습니다.
혹시 갑절의 성령을 구해도 자기 출세, 자기 영광을 위해서 구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엘리사는 갑절의 영감을 구하고 성령의 충만을 구하였습니다.
이것이 엘리사와 비교해볼 때 우리들에게 부족한 모습입니다.
엘리사의 마음은 자신을 세우신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이루고 싶은 그 간절한 열망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사회적 지위나 존경이나 물질이나 이런 것들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하나님, 내게 성령을 갑절로 주시지 않으시면,
엘리야를 통해서 주셨던 그 능력이 갑절로 제게 있지 않으면,
저는 제 직분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저를 통해서 이루실 이스라엘의 회복도 저는 감당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 제게 선지자로서 능력을 감당할 성령의 영감을 갑절을 주시옵소서.'
이런 사모하는 마음으로 우리는 갑절의 성령의 역사를 구해야 합니다.
구하는 자에게 주실 것이라는 말씀을 믿고 간절히 구할 때 하나님은 성령의 충만을 주실 것입니다.
두 번째는, 성령이 임하시는 장소에 있어야 합니다.
10절에 보면 엘리야는 엘리사가 구하는 것이 어려운 일임을 전제하면서 ‘그러나 나를 네게서 데려가시는 것을 보면 그 일에 네게 이루어질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반대로 ‘데려 가시는 것을 보지 않으면 이루어지지 않을 것’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엘리야를 데려가시는 것을 보는 때에 네가 구하는 것이 이루어진다는 것은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는 곳에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오늘 성령의 역사가 이루어지는 곳은 물론 다양하고 어디서든지 성령의 역사는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성령의 역사는 기도하는 곳에서 이루어지고 말씀이 선포되는 곳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은 더 확실한 사실입니다.
오순절 마가 요한의 다락방에서 기도하던 무리들이 성령의 충만을 받았습니다.
사도 바울을 통하여 말씀을 듣던 고넬료와 그 집에 모여 있던 사람들이 성령의 충만을 받았습니다.
성령의 충만을 받기 위하여 우리는 기도의 장소에 모여서 기도해야 하고 말씀이 선포되는 곳에서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이런 장소를 배제하고 노래방이나 게임방이나 술집이나 오락실을 전전할 때 성령의 충만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어디에나 계신 하나님이시지만 주님의 교회에서 기도하고 말씀을 경청할 때 성령은 더 충만하게 역사하실 것을 믿고 더욱 주님의 전을 사모하여 모이기를 힘쓰는 여러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세 번째는, 하나님만 바라보고 의지해야 합니다.
14절 말씀을 공동번역에 보면 이렇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엘리야의 겉옷으로 물을 쳤으나 물이 갈라지지 않았다. 그래서 ‘엘리야의 하느님 야훼여, 어디계십니까?’ 하면서 물을 치자 물이 좌우로 갈라졌다. 그리하여 엘리사가 강을 건너는데”
엘리사가 엘리야의 흉내를 내어 겉옷을 들고 스승의 힘을 빌어 요단강을 칠 때 물이 갈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엘리사는 이제 직접 하나님을 찾습니다.
자신이 하나님을 직접 찾고,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이 말은 엘리사가 이젠 다른 것을 의지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했을 때 요단강이 갈라지는 능력을 경험하게 되었고 이제 엘리사는 능력의 사람으로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 받게 되었습니다.
7.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정말 오늘 이 시대는 갑절의 영감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악의 세력은 더욱 커져가고 있고 시대는 더욱 악해져가고 있고 마귀는 우는 사자처럼 삼킬 자를 찾고 있습니다.
이단 사상은 교묘하게 믿는 자들을 유혹하고 있고 많은 사람들이 세상 속에 빠져 정신 못 차리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 시대는 신앙의 위기 시대입니다.
갑절의 영감이 필요하고 성령 하나님의 도우심이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고는 세상과 마귀를 이기며 승리할 수 없고 맡겨준 사명을 감당할 수 없고 죽어가는 영혼을 구할 수 없습니다.
성령의 충만을 사모하시고 간절하게 끈질기게 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전을 사모하시고 하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우리 모두 갑절의 성령의 역사를 받아 살아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