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드로와 가룟유다
마26:31-35
2026년6월16일(주일)
기동찬
31.그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오늘 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기록된 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의 떼가 흩어지리라 하였느니라
32.그러나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
33.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모두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결코 버리지 않겠나이다
34.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35.베드로가 이르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하고 모든 제자도 그와 같이 말하니라.
제목 : 베드로와 가룟유다
베드로와 가룟 유다, 이 두 사람은 다 예수님의 제자입니다. 어제 큐티 본문에서는 가룟 유다가 등장했고, 오늘 본문에서는 베드로가 등장합니다. 이 두 사람은 예수님의 제자인데 쓰임 받는 용도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한 사람은 복된 사람이 되었고, 한 사람은 그렇지 못했습니다.(24절). 지금도 로마에 가 보면 베드로 동상이나 베드로 성당이 어마어마합니다. 그러나 가룟 유다에 대해서는 흔적이 없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두 사람의 차이점이 있다면 무엇이었을까요?
분명히 이 두 사람은 차이점이 있습니다. 두 사람에 대하여 일일이 열거하지 않아도 두 사람은 차이가 있다는 것을 이미 우리는 어는 정도 알고 있습니다. 저는 요즘 큐티 본문을 가지고 말씀 묵상하면서 저는 개인적으로 큰 은혜를 받고 있습니다.
오늘은 어떤 부분이냐? 31절입니다.
31...오늘 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예수님께서 지금까지 제자훈련 하셨는데, “오늘 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31절). 성공처럼 보입니까, 실패처럼 보입니까?
제 눈에는 실패처럼 보입니다. ‘아, 예수님도 제자 훈련에 성공하지 못하셨구나,’
“오늘 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31절).
이렇게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심정, 그 마음은 어떠했을까?
사람은 누구나 느낌이 있습니다. 예수님도 그런 느낌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오늘 밤 내가 체포되어 가야바 대제장의 뜰로 끌려가면 과연 제자들 중에 끝까지 나와 함께 동행 할 자들이 누구일까, 예수님이 보실 때, 한 명도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제자들에게 31...오늘 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주님은 저들이 왜, 지금, 주님 자신을 따르고 있는지...그리고 주님 자신이 체포 되어 끌려 갈 때는 여지없이 다 나를 버리고 도망갈 것이라는 것을 다 아시고 계셨습니다. 이유는 저들이 주님을 따르고 있는 목적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지향하느냐, 아니면 유한한 세상의 나라를 지향하느냐 누구든 주님을 따르는 목적이 분명해야 합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나라에 대하여 계속해서 가르치시고 말씀해 오셨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따르는 제자들은 세상 나라에 대하여 계속해서 관심을 가지고 주님을 따랐습니다. 그러니 주님이 체포 되어 가야바 대제사장의 뜰로 끌려 갈 때, 저들은 더 이상 주님을 따를 이유가 없어진 것입니다. 이것을 주님은 다 아시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결정적으로 언제 변화 되었느냐,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난 후에 완전 변화 되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난 후부터 이들은 주님을 따르는 목적이 달라졌습니다.
‘아, 주님이 말씀하신 하나님의 나라가 있구나,’
‘유한한 이 세상 나라가 다는 아니구나,’
‘이 세상에서의 삶은 잠시 잠깐이지만 주님께서 말씀하신 하나님의 나라는 영원하구나,’
주님의 부활을 통해서 제자들은 ‘저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 눈이 열렸습니다.
주님은 부활하신 후 베드로를 찾아 갔습니다. 베드로를 만나 주셨습니다.
부활 하신 예수님이 왜, 가룟 유다는 찾아가지 않았을까요? 아시다시시피 가룟 유다는 이미 자기의 길을 가 버렸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룟 유다에게 정말 많은 기회를 주셨습니다. 마지막 애찬식을 나누는 자리에서 까지 주님은 그에게 기회를 주셨습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뭐라고 말씀하셨는가 하면,
21...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한 사람이 나를 팔리라 하시니
22.그들이 몹시 근심하여 각각 여짜오되 주여 나는 아니지요
23.대답하여 이르시되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그가 나를 팔리라
24.인자는 자기에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25.예수를 파는 유다가 대답하여 이르되 랍비여 나는 아니지요 대답하시되 네가 말하였도다 하시니라.(마26장). 자상하심과 인자하심으로 ‘네가 말했네.’
예수님께서 분명히 가룟 유다가 알아들을 수 있도록 말씀해 주셨습니다. “네가 말했네.”
주님의 이 음성을 듣고 가룟 유다가 할 일은 ‘회개’입니다. 그러나 그가 회개 했다는 말씀은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베드로는 다릅니다. 주님이 하신 말씀이 생각나서 그는 철저히 회개했습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31절,
31...오늘 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라고 말씀하실 때,
베드로가 뭐라고 합니까?
33.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모두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결코 버리지 않겠나이다.
진심이었을까요? 허풍이었을까요?
저는 베드로의 이 말은 진심이었다고 봅니다. 예수님을 체포하러 올 때 말고의 귀를 내려 친 자가 베드로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주님을 끝까지 지키려고 했던 자가 맞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34.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35.베드로가 이르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하고 모든 제자도 그와 같이 말하니라.
예수님의 이 예언은 그대로 적중합니다. 예수님께서 가야바 대제사장의 관정으로 끌려 가실 때, 베드로는 멀찍이 예수님을 따라갑니다.
57.예수를 잡은 자들이 그를 끌고 대제사장 가야바에게로 가니 거기 서기관과 장로들이 모여 있더라
58.베드로가 멀찍이 예수를 따라 대제사장의 집 뜰에까지 가서 그 결말을 보려고 안에 들어가 하인들과 함께 앉아 있더라.
“베드로가 멀찍이 예수를 따라...”(58절) 문제는 “멀찍이”에 있습니다.
69.베드로가 바깥 뜰에 앉았더니 한 여종이 나아와 이르되 너도 갈릴리 사람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 하거늘
70.베드로가 모든 사람 앞에서 부인하여 이르되 나는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하겠노라 하며
71.앞문까지 나아가니 다른 여종이 그를 보고 거기 있는 사람들에게 말하되 이 사람은 나사렛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 하매
72.베드로가 맹세하고 또 부인하여 이르되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더라
73.조금 후에 곁에 섰던 사람들이 나아와 베드로에게 이르되 너도 진실로 그 도당이라 네 말소리가 너를 표명한다 하거늘
74.그가 저주하며 맹세하여 이르되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니 곧 닭이 울더라
75.이에 베드로가 예수의 말씀에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
베드로와 가룟유다의 차이점? 여기서 발견합니다. “통곡”입니다. “심히 통곡하니라.”
왜 베드로가 “심히 통곡”했습니까?
75절. 이에 베드로가 예수의 말씀...하심이 생각나서....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 하니라.’
베드로와 가룟유다의 차이점이 있다면, 한 사람은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나서 “심히 통곡”했고, 한 사람은 예수님이 그의 귀에다 대고 말씀을 들려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통곡’이 없었습니다. 이 말은 가룟 유다에게는 ‘온전한 회개’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심히 통곡”했다고 했습니다. 회개했다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자신의 존재가치가 이것 밖에는 안 되는가.’ 라고 하는 한심한 생각, 주님을 부인한 자신을 향한 심한 절망감입니다. 애통함이 그를 통곡하게 했습니다.
33.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모두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결코 버리지 않겠나이다. 라고 큰 소리 쳤는데, ‘아, 나는 요거 밖에는 안 되는구나.’ 베드로는 ‘자신의 존재 가치가 형편없는 인간임을 깨닫고 자신의 가슴을 찢으며 회개 했다.’는 것입니다. 통곡입니다.
이 통곡은 자기 자신을 향한 실망감입니다. 이 통곡은 자신의 존재가치에 대한 절망감입니다. 아, 나는 그래도 괜찮은 인간인 줄 알았는데, 아니네, 나는 정말 몹쓸 인간이네, 나는 이것 밖에는 안 되는구나, 나는 형편없는 인간이구나, 라고 하는 철저한 자기 절망감이요, 깨달음이요, 예수님에 대한 미안함과 죄송함에서의 밀려오는 “통곡”입니다.
이렇게 ‘통곡’하는 시간을 통해서 베드로는 진정한 자기의 정체성을 발견합니다. 그래서 존재로서의 변화는 자신의 내면에서부터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거듭남은 자신을 향하여 절망해 본 자가 경험할 수 있는 은혜입니다.
인생이란 뭔가? 나는 어떤 존재인가?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 심히 통곡하며’, 자신 스스로 생각하기를 ‘나는 진짜인 줄 알았는데, 나는 가짜였구나,’ ‘나는 형편없는 인간이구나,’ ‘나는 아무것도 아니구나,’ ‘나는 주님의 가슴을 아프게 한 자였고, 나는 리더의 가슴을 찢어 놓는 자였구나,’ ‘나는 부모님의 마음을 뒤집어 놓는 형편없는 인간이구나,’ 이렇게 자신 안에 “애통함”이 가득한 자,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고 주님이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러니 베드로의 ‘통곡’, 그의 ‘애통함’은 그로 하여금 자신의 존재 가치를 새롭게 발견하게 해 주었던 것입니다.
무엇이 베드로로 하여금 통곡하게 했다고 했습니까?
75절. 이에 베드로가 예수의 말씀...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 하니라.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나서’ 평소에 큐티 열심히 하고 말씀 읽고 그 말씀을 중심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그럴 때 자신의 완악함을 볼 줄 알게 되고, ‘애통함’으로 ‘통곡’할 수 있고, ‘통곡’할 줄 아는 자가 복 된 자입니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무엇이 베드로를 변화 시켰습니까?
말씀이 그를 변화 시켰습니다. 말씀이 그로 하여금 통곡하게 했고, 말씀이 그로 하여금 깨닫게 했고, 깨어지게 했습니다.
복된 사람은 말씀 앞에서 깨어질 줄 아는 겸손한 자입니다. 복된 사람은 말씀 앞에서 자신을 바꿀 줄 아는 슬기로운 자입니다. 복된 사람은 말씀 앞에서 자신을 새롭게 합니다. 복된 사람은 말씀 앞에서 회개할 것은 회개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자신의 심혼 골수를 찔러 쪼갤 때, 자신이 변화 되는 것을 압니다. 거듭나는 제자가 됩니다.
주님의 말씀이 능력입니다. 이 능력은 베드로로 하여금 통곡하게 하는 은혜가 있게 했습니다. 이 은혜는 애통함의 은혜입니다. 깨어짐의 은혜입니다. 거듭남의 은혜입니다. 혼의 깨어짐, 영의 깨어짐, 자아가 깨어짐, 베드로는 통곡함으로 깨어졌습니다. 이것이 크나큰 은혜입니다. 이 크나큰 은혜는 제자로서 거듭남의 은혜요, 변화됨의 은혜입니다. 이런 은혜는 ‘통곡’하는 자에게, ‘애통’하는 자, ‘심령’이 가난한 자에게 주어집니다.
주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자신을 배반하고 부인하고 저주까지 한 베드로를 찾아 가셨습니다. 왜, 그가 통곡함으로 회개한 것을 주님은 다 아시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버리고 다시 고기잡이 하러 간 제자들을 주님은 찾아 가셨습니다.
요21:1.그 후에 예수께서 디베랴 호수에서 또 제자들에게 자기를 나타내셨으니 나타내신 일은 이러하니라
2.시몬 베드로①와 디두모라 하는 도마②와 갈릴리 가나 사람 나다나엘③과 세베대의 아들④들⑤과 또 다른 제자⑥ 둘⑦이 함께 있더니
3.시몬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하니 그들이 우리도 함께 가겠다 하고 나가서 배에 올랐으나 그 날 밤에 아무 것도 잡지 못하였더니
4.날이 새어갈 때에 예수께서 바닷가에 서셨으나 제자들이 예수이신 줄 알지 못하는지라
5.예수께서 이르시되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대답하되 없나이다
6.이르시되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잡으리라 하시니 이에 던졌더니 물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더라
7.예수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베드로에게 이르되 주님이시라 하니 시몬 베드로가 벗고 있다가 주님이라 하는 말을 듣고 겉옷을 두른 후에 바다로 뛰어 내리더라
8.다른 제자들은 육지에서 거리가 불과 한 오십 칸쯤 되므로 작은 배를 타고 물고기 든 그물을 끌고 와서
9.육지에 올라보니 숯불이 있는데 그 위에 생선이 놓였고 떡도 있더라
10.예수께서 이르시되 지금 잡은 생선을 좀 가져오라 하시니
11.시몬 베드로가 올라가서 그물을 육지에 끌어 올리니 가득히 찬 큰 물고기가 백쉰세 마리라 이같이 많으나 그물이 찢어지지 아니하였더라
12.예수께서 이르시되 와서 조반을 먹으라 하시니 제자들이 주님이신 줄 아는 고로 당신이 누구냐 감히 묻는 자가 없더라
13.예수께서 가셔서 떡을 가져다가 그들에게 주시고 생선도 그와 같이 하시니라
14.이것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 세 번째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것이라
15.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요21:15.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16.또 두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양을 치라 하시고,
17.세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이르되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양을 먹이라.
그렇습니다.
주님은 통곡함으로 회개하고 거듭난 베드로에게 찾아가서 “내 양을 먹이라.”고 했습니다. 베드로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했고, 그는 당대에 대사도가 되었고, ‘하나님의 나라’에 존귀한 일꾼으로 쓰임 받았습니다. 그런 그의 모습은 지금도 역사의 현장 이탈리아 로마에 가면 동상으로 남아 있습니다. 베드로 성당도 대단합니다.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그가 하나님 나라에 존귀하게 쓰임 받았다는 것입니다. 이런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소망합니다.
함께 기도하길 원합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베드로는 자신은 더 이상 주님을 따를 자격이 없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실패한 나, 연약한 나, 비겁한 나, 배신하고 주님을 저주까지 한 자신을 보면서 베드로는 주님을 따를 자격이 없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베드로는 그런 자신을 발견하고, 주님의 말씀이 생각나서 대성통곡하며 회개했습니다.
이 모습을 주님은 다 아셨고 보셨고 그를 받으셨습니다. 회개한 베드로에게 부활하신 주님은 직접 찾아 가셨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베드로, 그가 주님을 뵙고 느낀 것은 자신은 주님을 배신하고 부인하고 저주까지 했지만, 주님은 여전히 베드로 자신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나를 사랑하시고 계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아, ‘주님은 여전히 나를 사랑하고 계시는구나.’라고 하는 것을 경험했을 때 그는 ‘완전히 거듭난 제자’가 되었습니다.
주님이 찾아간 베드로는 어떤 베드로였습니까?
주님을 부인하고 배신하고 도망가고 저주한 베드로였지만,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나서” 밖으로 나가서 “심히 통곡”한 베드로였습니다. 그런 베드로를 주님은 찾아 가셨습니다.
“심히 통곡”한 베드로, 주님의 말씀 앞에 철저히 깨어진 베드로, 철저히 회개한 베드로를 주님은 찾아 갔습니다. 오늘 우리도 비록 넘어지고 자빠지고 쓰러질지라도 말씀 앞에서 베드로와 같이 회개할 때, 부활하신 주님은 여전히 우리에게도 찾아 오셔서, ‘나는 너를 사랑 한다.’ 라고 말씀해 주실 줄 믿습니다.
연약하면 연약한 대로,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넘어지면 넘어진 대로, 너의 연약한 모습을 보고 철저히 회개하는 너를 사랑한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생각하면서, ‘심히 통곡’하는 자에게는 오늘도 부활하신 주님께서 찾아 오셔서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아들아, 사랑하는 딸아,’ ‘나는 여전히 너를 사랑한다.’ 라고 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게 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이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시51:17)이라고 했습니다. 지난번에 기정현 목사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지금 우리 자신을 향하여 ‘사랑하는 아들아, 딸아, 나는 너에게 큰 번성, 큰 추수를 바라기 보다는, 지금 내가 너에게 바라는 것은 너 자신의 진솔한 모습 그대로를 보기를 원한다. 큰 번성 큰 추수는 거기서부터 출발하기 때문이다.’라고 하는 말씀에 은혜 받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베드로처럼 나 자신에게 유·불리함에 따라 예수님을 가까이 하기도 하고 멀리 하기도 하는 비겁하고 위선적인 우리 자신의 모습에 직면할 때, 우리는 우리의 연약한 모습을 주님 앞에 내려놓고 통곡할 수 있는 줄 알아야 합니다.
시51:17. 하나님이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애통하는 마음(통회하는 마음, 통곡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
주님은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마12:20).
주님을 따르는 길, ‘제자의 길’은 내 힘으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이 주님을 따라 갈 수 있는 길입니다.
♬ 내 힘으로 안될 때 빈손으로 걸을 때 내가 고백해 여호와 이레
주가 일하시네 주가 일하시네 주께 아끼지 않는 자에게
주가 일하시네 주가 일하시네 신뢰하며 걷는 자에게
1. 날이 저물어 갈 때 빈들에서 걸을 때 그 때가 하나님의 때
내 힘으로 안될 때 빈손으로 걸을 때 내가 고백해 여호와 이레
주가 일하시네 주가 일하시네 주께 아끼지 않는 자에게
주가 일하시네 주가 일하시네 신뢰하며 걷는 자에게
2. 우리 모인 이 곳에 주님 함께 계시네 누리네 아버지 은혜
적은 떡과 물고기 내 모든 걸 드릴 때 모두 고백해 여호와 이레
주가 일하시네 주가 일하시네 주께 아끼지 않는 자에게
주가 일하시네 주가 일하시네 신뢰하며 걷는 자에게
주님 제 힘과 결단으로는 주님의 제자로서 따라 갈 수 없지만 베드로가 자신의 형편 없는 모습을 보고 ‘대성통곡’하고 회개하고 주님 제 힘으로는 주님을 따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제 삶의 주인 되시면, 제가 주님을 따라 갈 수 있습니다.
주님 정말 저는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하지만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제가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빌4:13)라고 하는 고백이 있는 자는 제자의 반열에서 주님을 따라 갈 수 있음을 선포합니다.
제자는 몇 년 째 주님을 믿었느냐, 연수가 아닙니다. 우리의 결심이 진심이어도, 그것 만으로도 안 됩니다.
목숨드릴 각오를 한다고 해도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진정한 주님의 제자는 나의 열심히 아닙니다.
자기 자신이 철저히 깨어지고 죽어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이 자신의 삶에 주인 될 때 가능한 것입니다. 이런 자가 주님의 제자가 됩니다. 베드로는 그렇게 되었습니다.
사도로 거듭났습니다. 증인의 삶을 살았습니다. 진정한 회개, 통곡, 이것이 베드로와 가룟 유다를 차이 나게 한 점이었습니다.
진정한 회개, 통곡이 있었던 베드로, 이런 베드로에게 주님은 찾아 오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베드로에게 나는 여전히 너를 사랑한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베드로는 통곡하는 시간을 통해서 자기 자신이 철저히 깨어지고 죽고, 주님을 따르는 길은 내 힘만으로는 안 되고, 주님을 주인으로 모셔야 함을 깨달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제자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일꾼이 되고 싶으냐,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성령 충만 받기 위하여 꼭 기도시간을 확보하시기를 바랍니다.
이 시간을 확보하는 사람은, 비로서, ‘주님, 제 힘으로 안 됩니다. 주님 도와 주시옵소서.’ 라고 고백하고 간구하는 겸손한 사람이 됩니다. 이런 분들이 베드로처럼 실패한 자리에서도 다시 일어나 끝까지 존귀하게 쓰임 받게 되는 성도가 될 줄 믿습니다.
같이 저를 따라서 기도하겠습니다.
주님, 제 힘으로 안 됨을 깨닫게 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주님, 저는 깨어지고 죽고, 제 삶에 부활하신 주님이 주인 되셔야 합니다. 그래야지만 제가 주님의 제자로 주님을 따라 갈 수 있습니다. 제가 간구할 때마다, 약속하신 주님의 영으로 제게 충만하게 채워 주시옵소서. 그래서 제 생각이, 제 인격이, 제 삶이, 온전히 주님을 따르는 삶이 되게 해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나라 위하여, 베드로처럼 존귀하게, 끝까지 쓰임 받게 해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내 힘으로 안 될 때 빈손으로 걸을 때 내가 고백해 여호와 이레
주가 일하시네 주가 일하시네 주께 아끼지 않는 자에게
주가 일하시네 주가 일하시네 신뢰하며 걷는 자에게
1.날이 저물어 갈 때 빈들에서 걸을 때 그 때가 하나님의 때
내 힘으로 안될 때 빈손으로 걸을 때 내가 고백해 여호와 이레
주가 일하시네 주가 일하시네 주께 아끼지 않는 자에게
주가 일하시네 주가 일하시네 신뢰하며 걷는 자에게
2.우리 모인 이 곳에 주님 함께 계시네 누리네 아버지 은혜
적은 떡과 물고기 내 모든 걸 드릴 때 모두 고백해 여호와 이레
주가 일하시네 주가 일하시네 주께 아끼지 않는 자에게
주가 일하시네 주가 일하시네 신뢰하며 걷는 자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