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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실(蠶室)
최 성 배
지옥철역의 계단을 거슬러 올라간다. 햇빛이 눈을 찌른다. 하얀 빛살은 회오리 쳐 온통 눈을 헤집으며 안으로 들어온다. 눈부신 물살이 걷잡을 수 없도록 밀려들어온다. 세상이 아려온다. 햇볕이 작살처럼 내리찍는다. 달궈진 테헤란로를 달리는 차량들마저 빌딩들과 아파트 숲에서 되쏘는 열기로 숨을 죽인다. 그 틈바구니를 헤집고 가는 살갗은 소름처럼 땀방울이 돋는데, 빌딩들의 날선 모서리는 날마다 낯설고 섬뜩하다. 시내버스를 타고 내려 걷는다. 내딛는 발걸음은 관성으로 움직인다. 누가? 내가!
긴 골목길로 들어선다. 짧아진 그림자는 내게서 떨어질 기미가 없다. 햇빛이 물러가도 껌처럼 붙어있을 게 빤하다. 어둠을 쑤시는 가로등 불빛이 기다릴 테니까. 뜨거운 기운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파고들어 절정에 다다른 암컷의 입김처럼 나를 핥는다. 목에서 등허리를 휘감아 도는 끈끈하고 불쾌한 마수를 견디기 어렵다. 목이 탄다. 시원한 물을 마시고 싶다.
-커피도 조금만 마시면 몸에 좋대요.
둥근 얼굴을 쳐들며 또릿한 눈빛으로 아내가 말했었다. 별로 좋아하지 않은 시커먼 물을 마시기 시작한 것도 얼마 전부터다. 햇덩이가 머금고 있던 뜨거움을 독버섯처럼 퍼져가던 도시에 퍼붓는다. 뜨거운 햇볕 가득한 아스팔트사막에서 왜 뜨거운 커피가 생각나는 것일까. 아내는 지금 초고층 아파트 안에서 남의 아이를 안고 서성거리고 있을 지도 모른다.
-창신동에서 왕십리로 중곡동에서 여기까지 밀려왔네요.
아내는 이삿짐 종이상자 속의 신문지에 둘둘 말아진 그릇들을 풀면서 말했다. 내가 툴툴거리며 맞받았다.
-그게 밀린 건가? 버리고 온 거지. 이제 중심지는 이쪽으로 변했어!
어제 같은 몇 년 전에만 해도 그랬다. 이제, 나는 갈수록 여려지고 아내의 눈빛은 결기 가득하다. 아내는 나에 대한 증오심의 불꽃을 어디에다 애써 감췄을까.
도심으로부터 삐져나와 사방으로 퍼져나간 세포들. 다세대, 다가구 주택들이 굴 껍데기마냥 닥지닥지 붙어있는 동네. 큰길 모서리의 빵집과 약국, 작은 상점, 부동산업소, 휴대폰가게, 미용원, 분식집, 화장품가게 건너 교회. 그만그만한 층 높이의 집들은 닮은꼴로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사람들이 모여 도시를 이루며 바글바글 모여들수록 도시는 확장된다. 사람이 사람을 불러오고 동네들이 늘어나면 건물들은 장맛비 맞은 수풀처럼 자꾸 하늘 높이 자라난다. 뽕나무밭이 고층 숲으로 변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하나 둘 늘어난 빌딩들은 새로운 도시가 되었다. 돈이 돈을 먹어 더 높고 큰 빌딩을 짓는다. 방해물이 된 군용기활주로의 방향을 비틀어서라도 철골조는 위세 당당하게 하늘로 치솟는다. 네고블록의 조각들은 차곡차곡 쌓여서 성채의 망루를 123층으로 만드는 중이다. 욕망은 와르르 쏟아져 모래시간 속으로 파묻혀버릴 것임에도, 바벨탑을 불러들이고 블록들을 결집시킨다.
*
오래된 건물의 지하 토굴이 아니라도 지옥은 어디에나 있다. 나는 약을 삼키고 지옥으로 들어가 염라대왕이 무서워 이부자리 속에 숨는다. 세상이 무서워서 졸리지 않아도 시름시름 잠잔다. 어쩌면 꿈을 꾸기 위하여, 악몽을 내쫒기 위하여 또 다른 이승을 살기 위하여 잠을 자는지도 모른다. 사물은 그대로인데, 아(我)와 타(他)가 뒤죽박죽되어 또 다른 세계의 터널이 장치된 곳 같은. 혼이 순간을 통과하는 시간에도 터널이 붕괴되어 매몰되면 지옥이다. 암흑을 빠져나오려고 발버둥치는 찰나에서 다음으로 넘어온다. 저승에서 꾸는 꿈인가, 생시인가.
-문을 꼭 열어서 방안 공기를 환기시켜야 해요. 반찬 없다고 굶지 말고 밥은 꼭 챙겨먹어요.
퉁명스런 말 속에 챙겨주는 아내의 마음은 새삼스러운 게 아니다. 밀폐된 공간에서는 산소가 부족해도 코골이를 한다고 그랬다. 아내는 밑반찬을 장만해서 유리그릇에 담아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가끔 나도 모르게 짜증을 내도 아내는 모른 척 눈을 내리 깔며 흘렸다. 식솔의 안위와 먹을거리를 책임져야 할 나의 무능까지도 한숨으로 넘겼다. 어떻든 불통의 벽은 서로의 입장을 너무 헤아려도 존재하리라. 불쑥불쑥 내미는 생각의 연결고리들. 가끔 씩 서늘한 기운이 내 몸을 툭툭 건들고 지나갈 때면, 아내의 느낌은 어느 새 내 곁에 있다.
바깥은 늘 덥기만 한 게 아니다. 눈썹달을 삭풍이 후려치며 싸늘한 시간이 지나갈 때도 있다. 나는 이승에서 얻지 못한 생애의 슬픈 전생을 찾고 있을까. 좁은 의식을 떨치지 못하여 낮에 전철에서 본 낯선 여인을 기억해낸다. 화장기 없이 핼쑥한 여인은 꽤 무거울 것 같은 종이가방을 두 개나 안고 있었다. 여러 곳의 역을 통과할 때까지 여인은 눈을 뜨다말다 했다. 아내와 닮은 그 여인. 소스라치게 놀라 눈뜨면 이불 밖으로 쭈그리고 잠든 내 몸뚱이. 비몽사몽(非夢似夢)으로 몸이 쇠락하여 헛헛해지면 망상은 더욱 기승을 부린다.
빨강색 털 곰이 씰쭉 웃는다. 서랍장 위에서 입을 헤벌리고 있는 호랑이와 춤추는 분홍 토끼, 넝쿨을 씹고 있는 초록빛 당나귀도. 동물들은 저마다 예쁜 색깔 옷을 걸치고 작은 마을을 이룬다. 아이의 손때가 묻은 장난감들은 남겨진 채 그대로다. 저들은 나를 내려다보며 비웃는 것 같다. 미련한 곰탱이 같으니라고! 그럴까? 설마 아니겠지.
똥그란 눈을 별처럼 깜빡였던 아이는 말없이 널브러진 네고와 장난감들 속에서 지냈다. 아이는 흩트리고, 아내는 그것들을 치우기를 게임처럼 해댔다. 그냥 놔두지 뭘. 또 치워야 할 건데. 나는 되풀이되는 일상에 중독된 지 오래다.
빌라 입구의 꽃들이 시들시들 떨어질 무렵이었다. 쓰레기봉투를 버리고 팔뚝만한 나무를 올려다보았다. 하얀 나비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머리를 흔들었다. 엉뚱한 이미지들만 머릿속을 빙글빙글 돌았다. 변비에 질린 똥처럼 낱말은 꽁꽁 숨어서 나타나지 않았다.
-집 앞에 있는 그 하얀 꽃나무가 뭐지?
아이에게 옷을 챙겨 입히던 아내는 눈을 둥그렇게 떴다. 아내는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반문했다.
-목련꽃 말이에요?
그래, 그래. 그걸 잊었다니. 어설픈 이미지조차 나를 떠나려했다. 꽃잎은 하염없이 떨어지고 푸른 잎들은 돋아 손바닥처럼 커졌다. 맞벌이를 하던 딸은, 맡겨놓은 아이를 데려가면서 못내 시선을 맞닥뜨리지 않았다. 그리고 아내에게 마지막으로 돈봉투를 내놓았다. 나는 못 볼 것을 본 것 마냥 당황스럽고 난감했다.
-엄마? 전세대출금 내고 카드 값을 막으려니까 죄송해요.
아내는 생활비라도 벌어야겠다며 집을 나갔다. 아이를 봐주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가끔 씩 집에 들어왔고, 금방 사라졌다.
-돈 많은 집인가 봐요. 멀지는 않은 곳인데, 고층 아파트에요. 서울 시내와 한강이 한 눈에 다 보이는 그런 곳.
*
이따금 휴대전화가 울린다. 아내의 목소리 뒤로 칭얼대는 아이의 울음이 들린다.
-병원에는 다녀왔어요? 병원 갈 적에 잊지 말고 서랍장에 넣어둔 돈 가져가요. 전기세하고 수도요금은 통장에서 자동으로 빠져나갈 테니까.
아이의 주인이 누구라도 아내의 품에 안긴 아이는, 전생부터 그녀와 인연일 게다. 언제부터 질긴 인연의 끈들이 그녀의 운명을 지배하고 있었던 것일까.
심장이 없는 동물들 사이에서 아내의 사진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울긋불긋한 단풍나무 옆에 기댄 아내의 얼굴이 어둡다. 아니다, 내 느낌에 따라 아내의 표정이 변한 듯싶다. 자식은 어미에게 우상이다. 체세포로 복제된 분신이다. 세상의 엄마들은 아이의 밥이다. 아내처럼 딸도 아이를 위해 육신을 소모한다. 그 모든 행위의 본질은 밥이다. 동물의 세계에서는 언제나 먹이에 대한 일이 승패를 좌우한다. 먹이를 거절하고 인간성을 지키려했던 이들은 그저 위대하다. 자신의 육신을 감당할 수 없는 처지에 이른 사람들은 절망을 안고 뒹굴 수밖에 없다. 노동이 시간에 비례하여 에너지를 소비하고, 새로운 에너지를 축적하기 위한 것이다. 사람들은 순전히 에너지에 얽매어 일생을 산다. 죽어가는 삶을 위해 에너지를 만들고 에너지 때문에 희생한다.
로얄빌라와 희망빌라 B101호 사이의 비좁은 공간에는 아무렇게나 던져놓은 재활용품과 쓰레기봉투들이 뒤섞여있다. 너절하게 쌓여진 그것들은 감쪽같이 사라지지 않는다. 이 동네사람들은 구멍을 들락날락거리는 개미떼처럼 아침저녁만 잠시 소란스러울 뿐이다. 날마다 오가는 사람들은 대부분 서로를 모른다. 알 턱이 없으며 알아야 할 까닭도 없다. 그들이 누군지, 나 또한 허점을 드러내지 말아야한다. 익명성이란, 보장을 받기 위해 감추어야 할 일이다. 대부분의 인간들은 오직 자기 자신의 살 일에만 몰두한다. 가끔 차량의 경적과 배달오토바이의 방귀 내뿜는 소리들이 골목길의 가라앉은 공기를 휘젓는다. 도대체 어제와 오늘이 별다를 바 없어 보인다.
납작한 아파트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던 잠실이었다. 시간은 낡은 건물들을 삭혀버린다. 어느 시기에 재개발이라는 바람 때문에 이곳의 콘크리트 덩어리들도 빠개져 밀려나갔다. 그 자리에 하늘 높은 줄 모르게 고층아파트들이 뚝딱 지어졌다. 유리벽으로 치장한 몸뚱이들이 서로 경쟁하듯 늘어났다. 햇빛이 유리벽을 툭 건드리면 난반사된 빛살은 사정없이 사람들의 눈을 찌른다. 반사각도에 따라 불특정 다수와 건물 벽은 대립한다. 아파트꼭대기와 층층마다 창문과 화려한 조명 뒤에는 어둠이 웅크리고 있다.
이곳의 지명을 들을 때면, 땅콩껍데기 생각이 난다. 땅콩대신 번데기가 들어있는 방. 누에들은 뽕잎을 갉아먹고 마지막 잠을 자면, 2.5그램의 고치가 되어 1,500미터의 실을 인간들에게 빼앗긴다. 그것들은 제 아비와 어미처럼 날개를 달지 못한다. 씨앗과 알은 태아와 같을진대, 짝짓기도 못하고 영영 깨어나지 못한 채 잠이 든다.
여릿여릿 다가오는 추억의 언제였던가. 마을의 한가운데 우리 집으로 화사한 햇살이 날아들었다. 고만고만한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훌쩍거리는 누런 코를 소매로 훔치고 있던 아이들에게 대청마루에 앉아있는 할머니가 손짓을 했다. 백발을 쪽진 할머니는 물레를 돌리며 누에고치의 실을 감고 있었다. 누에고치들을 대막대기로 젓는 할머니의 손등에 파리한 힘줄이 돋아났다. 뜨거운 감빛 물에 둥 둥 떠있는 하얀 죽음들. 그 모양은 마치 흙속에서 파낸 땅콩과 흡사했다. 누런 껍질 속에 옹골차게 들어있었을 기름진 알갱이들은 이미 주검으로 햇빛을 보았다. 명주실을 뺏긴 번데기는 먹잇감일 뿐이다. 아이들은 앞에 나서려고 팔꿈치로 밀치며 서로 몸싸움을 하면서 줄을 섰다. 할머니의 손가락에서 번데기가 나오기 무섭게 아이들은 일제히 어미 새가 물어온 벌레를 받아먹으려는 새끼들처럼 주둥이를 벌리며 한입 씩 받아먹었다. 움츠려 굳어진 벌레가 내 입 속으로 들어왔다. 깨무는 순간, 비릿한 구린내가 이비인후에 가득 차버렸다. 나는 구역질로 오장육부를 비틀어 짰고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
-아이구! 하필이면, 내 새끼가 재수 없이 상한 걸 먹다니.
다른 아이들은 멀쩡했다. 손자가 먹은 번데기가 잘못 되었다는 자조로 할머니는 탄식했던 걸까. 나는 이후 번데기에 대한 역겨운 혐오감에 시달렸다. 길거리에서 파는 번데기조차 외면하며 만지지도 못했다.
-김 씨네 땅콩 밭에 서리 할 때는 생 땅콩을 마구 씹어 먹었던 적도 있었잖아. 민수 너는, 비린내가 난다고 그것도 못 먹었지?
-그래, 그래. 그때는 전쟁 후라 단백질이 부족했어. 지금도 단백질을 사려고 모두 돈이면 눈깔이 벌겋지 않더냐.
-수놈들 하는 짓이 다 그렇지 뭐. 식솔들 쳐 먹이려고 별 지랄 다하는데 살인인들 마다할까.
-야? 넌, 문구점 때려치웠다며? 네가 쓴다는 그 시집들은 잘 팔리더냐?
사채업자와 정육점주인과 퇴직공무원까지도 제각각 한마디씩 뱉었다. 오랜만에 만난 이들은 현실과 추억을 넘나든다. 나는 단 몇 줄의 글들을 끼적거려 밥을 만들지 못하건만, 친구들은 그렇게 묻곤 했다. 아니면, 말고! 흰 벌레들이 푸른 뽕잎을 갉아 먹는 것처럼, 고향친구들은 튀밥을 사각사각 씹어 먹지 않았다. 친구들은 까마아득한 그림자에 매달려있었다. 모두 가족과 자신의 몸뚱이를 위하여 에너지를 얻으려고 늙어버렸다. 짜글짜글한 이마의 주름살을 찡그리며 오래되어 망가진 레코드판의 나이테마냥 추억만 되풀이했다.
인생의 거품을 걷어낸 늙은이들은 아이들의 기억이 된다. 오래된 압축파일이 금세 늙은이들을 아이로 만들어 버리다니. 추억은 잔인하다. 우리는 눈부신 어느 가을날의 잠자리 떼처럼 정신없이 날다가 사라지겠지. 모두 시간의 먹잇감일 뿐이다. 시간을 마구 퍼먹었던 대가는 죽음이다. 머릿속이 시끄럽다. 잡다한 생각들이 서로 꼬리를 붙잡다가 사라진다. 눈이 씀벅거려서 감는다. 눈꺼풀을 열면 눈이 또 아릴 것이다.
뚝, 뚜욱, 뚝, 뚝! 어디선가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그 소리는 일정한 리듬을 타고 들린다. 열려있는 내 귀청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예민하다. 한참 후 소리가 끊겼다. 잠은 소리와 함께 달아난다. 잠은 정치망그물에 걸려들지 않는다. 쌍끌이그물로도 잡을 수 없다. 달아난 잠은 쉽사리 오지 않을 터. 나를 겁박하며 뜬눈으로 새우게 한 고뇌와 어지러움의 원인은 자꾸 고장 나서 막바지까지 이른 몸뚱이다. 몸뚱이의 망가진 부품과 이를 유지하려는 욕망의 엇박자는 자연의 이치다. 병원균이 잔혹하게 쓰나미로 밀려오는데 이 몸뚱인들 어찌 감당을 할 것인가. 뭔가 거센 파도처럼 밀려오는 듯 머리가 무겁다. 뱃속이 뒤틀려 메슥거린다. 이러다가 번데기처럼 오므라드는 건 아닐까. 어떤 욕구가 남았기에 식탐은 끼니를 거머쥐고 있는가. 나는 정말 지겹도록 이제는 나의 육신의 한계를 느낀다.
*
강가에 우뚝우뚝 솟아있는 초고층의 유리벽아파트들. 아내는 맨 꼭대기에 서있었다. 나는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천길만길 아득한 낭떠러지 밑에서 운무가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유모차를 탄 것은 앙증맞게 생긴 아이였다. 조막손을 오글오글 쥔 아이가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까르륵 웃었다. 나는 아내와 함께 유모차를 밀며 낡은 아파트와 호수공원을 지나 슈퍼마켓 같은 데를 돌아다녔다. 석양이 강물 위로 번졌다. 노을빛이 아내의 눈에 반사되었다. 못내 서러운 느낌이 뭉클하게 내 가슴을 저몄다. 나는 돌아보았다. 아! 저런! 어느 새 그들의 실루엣이 아스라이 초고층 꼭대기에 다시 붙어있었다. 유모차를 잡고 서있는 아내가 아파트 꼭대기에서 내게 손을 흔들었다. 아리아리한 꿈이었나보다. 비몽사몽(非夢似夢)을 잡아먹고 블랙홀에서 나를 엿보는 또 다른 나!
-베란다에 서서 내려다보면 우리가 사는 곳이 멀리 한눈에 다 보여요. 너무 높으니까, 무서운 줄도 모르겠네요. 이대로 새가 되어 훨훨 날아갔으면 얼마나 좋을까.
가끔 아내는 전화를 한다. 위태로운 삶의 언저리는 그 시간마저 자유롭지 못하다. 하긴, 행복이란 영원히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니까. 행복을 지닌 사람들도 언젠가 새로운 난관에 봉착하므로.
너무 더워서 문을 꼭 닫았다. 안 보다 바깥이 더웠다. 집 밖으로 내뿜는 에어컨 열기와 길바닥이 반사한 무더위가 집을 엿보았기 때문이다. 선풍기로는 등줄기에서 주르르 흘러내리는 땀을 감당할 재간이 없다. 바람조차 실종되었나보다. 컴컴한 밤이 되어도 열기는 수그러들지 못한다.
골목 구석구석에 처박힌 사람들을 지켜줄 것은, 에어컨바람과 텔레비전 화면뿐이다. 드라마의 인물들은 하나같이 지지부진한 사연에 얽혀있다. 시시껄렁한 뉴스는 존재감마저 없을뿐더러 날마다 위태롭다. 제 자신에 관련된 사건만 눈과 머리채를 잡아당길 뿐이다.
<뉴스>지난 해 낙태약을 불법으로 판매하는 국내유통조직을 검거 후 한동안 뜸했던, 먹는 낙태약이 다시 인터넷상으로 암암리에 거래되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수술을 안 받고 낙태하려는 여성들이 임신 초기에 이 약을 복용하면, 수정란이 자궁벽에 착상되지 못해 유산되게 하는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런 약을 먹더라도 태아를 배출하는 후속 과정을 거쳐야 하므로 더 큰 문제를 발생할 수 있다며, 미국에서도 과다출혈이나 심근경색, 사망 등 부작용 사례가 많다고 합니다.
이제 긴급뉴스의 자막이 지나가도 나는 놀라지 않는다. 나는 안다! 사람들의 생애는 날마다 흘러가고, 내일에 대한 희망 역시 속절없다는 것을.
*
어깨 죽지와 종아리를 긁을수록 기분 나쁘게 간지럽고 가렵다. 어느 틈으로 들어와 어둠속에 숨어 있던 놈이 짓일 거다. 하루 전에 사부작사부작 잠입했을 것이다. 대낮에는 어림없다. 놈에게는 에프킬러가 뿜어대는 입자들이 있다. 더 무서운 핵폭발의 섬광처럼 눈 시릴 햇빛도 있다. 그러나 햇빛은 이 방에 잠간 기웃거리다가 훌쩍 지나가버린다. 놈은 단 한 개의 무기이며 삶의 원천일 비루한 주둥이를 내 살갗에 힘껏 내질렀으리라. 한로(寒露)가 지나고 상강(霜降)이 되어도 지독한 놈은 앵앵 소리를 낸다. 생존에는 누구나 목숨을 건다. 목숨, 그 하나 밖에 없는 것을 지키려고 놈이나 나나, 아득바득 그 하나를 내던진다. 그래본들 놈이나 나나 삼라만상의 먹이사슬의 구조로부터 벗어날 도리는 없다. 그러하거늘 놈의 생애도 무기력한 나의 일상에서는 찰나일 뿐이다. 이 몸이 잠들어있는 그 순간에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바이러스들은 본능적으로 세포에게 공격을 감행하겠지. 시나브로 야들야들한 살덩이의 세포는 빳빳해지며 단단한 뼈대조차 골다공증을 거쳐 바스라 질 터다.
그대로 눈을 떴다 감으며 나는 누워있다. 창가에 어리는 빛이 조금 밝아진다. 가로등 불빛일까. 날빛인가. 벽에 걸린 시계바늘의 각도가 어슴푸레하게 들어온다. 밤이 슬그머니 도망을 간 건 틀림없으렷다. 동녘 햇빛이 나타날 시간이 가깝다. 서너 뼘만큼 한 창문에 어리는 빛은 부윰한 자태로 바뀌어간다. 얼굴과 목에서 꿈틀꿈틀 경련이 일어난다. 타인의 데스마스크가 내 얼굴에 붙어 있는 것 같다. 허접한 육신을 짜고 볶은 고통은 나를 쥐어짠다. 나는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며 오도카니 앉아있다.
칙칙 치익~전기밥솥에서 증기를 뿜는 소리가 들린다. 어떤 것이든 살아있는 일은 존재를 표현한다. 질질 끌고 온 몸은 갈수록 내게 슬슬 반항을 하고 있다. 어디서부터인지 마비가 되어있을 내 몸은 분명 무너지는 신호를 보냈겠지. 망가질 몸뚱이를 억지로 끌고 온 나도 구질구질한 놈이다. 냉장고에서 유리찬합을 꺼낸다. 잘게 썰어놓은 김치의 색깔은 벌겋다. 아내와 먹었던 돼지갈비와 잡채와 참나물과 수박을 떠올린다. 아내는 어깨가 아프다면서 깔끔하게 청소를 하고 떠났다. 파르라니 도드라진 굵은 힘줄이 아내의 종아리를 기어 다녔다. 정맥염이다. 아내는 젖은 눈시울을 내게 들킨 적이 없다.
아내는 며칠 째 들어오지 않은 모양이다. 낮에라도 잠깐 왔다면 어딘가 그녀의 흔적이 있어야 한다. 제대로 잠이나 들었는지 모르겠다. 타의의 힘에 의해 몸과 마음이 구속되면 노예가 따로 없다. 아내의 몸에 고여 있는 슬픔은 얼마나 될까.
나라가 빚쟁이로 전락할 그 어수선할 무렵, 사립학교재단은 금융 비리에 관련되었다. 학교조차 구조조정의 대상이었다. 전교조 활동을 했던 후배를 감쌌든 일로 정보기관에서 조사를 받고 나온 것은 나의 꼬리표였다. 밥그릇을 내동댕이칠 일이었던가. 중학교국어선생 십 수 년의 퇴직일시금을 아내에게 내밀었다. 몇 천 만원을 손에 쥔 아내는 동분서주했다. 초등학교 앞에서 어설프고 옹색한 문방구점을 했던 시절, 어둑한 가게 안으로 들어온 고사리 손들은 나의 고객이었다. 학교에서 소용되는 문구류는 물론 과자와 장난감들도 놓고 팔았다. 꼬맹이들이 들고 온 구깃구깃한 돈은 돌고 돌았다. 코 묻은 돈으로 밥을 먹을망정, 비굴하게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다. 구차한 삶은 원래 비루하다. 한동안 우리는 그런대로 흘러갔다. 갑자기 동네가 술렁거렸다. 판이 뒤집어졌다. 재개발로 초고층 아파트가 들어선다는 것이다. 웃는 자와 우는 자가 한꺼번에 생겨났다. 전세로 들어간 가게는 재개발에 밀려 우리는 쫓겨나갔다.
내 몸이 비틀어지며 갈피를 못 잡은 것도 그 무렵이다. 뇌 영상검사(CT, MR촬영)결과를 보러 병원에 갔다. 복도에 있다가 아내에게 화장실을 다녀오마고 잠깐 나갔던 터.
-신경세포에 일종의 종양이 생겨 번지는 증세입니다.
의사는 판사가 판결문을 읽듯 아내에게 말했다. 문틈으로 보인 그들은 밀통하는 사이처럼, 의사가 지분지분 말하고 아내는 심각하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아내는 뭐가 불안한지 문 밖으로 자꾸만 고개를 돌렸다. 로또복권에 걸리듯 나쁜 악마가 내게 당첨된 것이다. 언제나 인간은 확률의 문제에 걸려있다. 병원 문을 나서며 다리가 후들거렸다. 세상은 저리도 활기가 넘치는데 나는 분리수거 될 쓰레기였다.
아아앙, 아우앙~앙앙, 소리가 들린다. 소리의 진폭은 일정한 리듬을 타며 벽 안으로 들어온다. 내 귓전에 와 닿았다가 멀어지고, 다시 또 다시 머문다. 소리가 차츰 머릿속을 누른다. 어린애의 칭얼대는 울음인가. 귓전을 맴도는 것은 혹시 고양이 소리가 아닐까. 달팽이관에도 편견이 있을 수 있겠지. 가끔 한밤중에 쓰레기봉투를 할퀴는 녀석들의 짓거리를 본 적이 있다. 발정 난 암고양이가 내지르는 본능의 소리 말이다. 암컷과 수컷이 흘레붙는 짓은 온몸을 다 받치는 쟁투이니만큼. 아이의 울음과 고양이들의 소리가 뒤섞인 것은 아닐까.
-여러 차례 낙태한 것 때문에 내가 그 죗값을 받고 있는 거라구요.
가끔 한숨을 쉬면서 아내가 내뱉었다. 아내는 자기 자신의 말대로 죄업을 닦는 노릇에 얽매어있는지도 모른다. 아내가 휴대전화 메일로 보내온 그 아파트의 애 사진은 꼭 아내를 닮았다. 아니, 닮았다는 것은 나의 편견일지도 모른다. 그저 사람의 윤곽이 비슷하면 사람들은 닮은 법이다. 코와 입과 눈이 닮지 않은 사람은 거의 많지가 않다. 같은 인류이므로 당연하다. 원래 사람의 눈은 3개였는데, 가운데 눈이 퇴화되어 두개골 안으로 숨어버렸다고? 심미안이라는 말이 그래서 나왔을까. 그래서 전혀 앞을 보지 못하면서도 사물을 보고 그림을 그리는 소경도 있다는 것이다. 듣고 배우는 인식의 테두리 안에서 인간은 죄와 벌을 맞추려드는 것일까. 천국도 지옥도 모두 인식을 넘어서는 법이 없는 것 같다. 죄의식을 치유할 방법이 내겐 없다. 나는 못난 슬픔을 휴지처럼 버린다. 잔인한 시간을 기다린들 내 몸뚱이는 이제 끝으로 치닫고 있을 뿐.
*
소나기는 뜨거운 계절을 식히며 가을을 부른다. 가로수도 시나브로 성장점을 멈출 것이다. 햇볕은 데워졌으나 산들바람이 흩으러버린다. 사방으로 뻗은 길을 따라 우뚝우뚝 서있는 유리 기둥들. 거대한 인공의 실루엣들은 새어나온 불빛으로 감싸인 채 어둠의 유혹을 견디지 못한다. 지하철역 출구들은 날숨과 들숨으로 인파를 빨아들이고 내뱉는다. 햇살이 내리는 아침에 흐르다가 그림자가 개 혓바닥처럼 길게 늘어질 무렵이면 둥지로 들어온다. 거리의 질서를 조급하게 만드는 일몰.
사람들이 밀려오고 밀려간다. 사람들은 시냇물 졸졸 흐르는 물살을 따라 점점으로 떠나가는 나뭇잎 같다. 마치 휘휘 늘어진 버드 나뭇잎들을 한 움큼 훑어다가 펴서 물 위에 뿌리면 정처 없이 떠가듯. 이어폰을 낀 앳된 여자, 모자 쓴 젊은이, 핸드백을 들고 큰소리로 재잘거리는 아가씨들, 민틋한 빌딩들 아래를 달리는 배달오토바이, 꿩 잡은 사냥꾼처럼 건들거리며 가방을 어슷하게 멘 남자, 종종걸음으로 지하철 구멍으로 빨려가는 여인. 옷가게와 화장품가게 쪽에서 시끄러운 음악이 사람들의 귀를 잡아당긴다. 인도 위로 수많은 머리들이 들쑥날쑥하며 시냇물에 떠가는 나뭇잎들처럼 흘러간다. 지하철의 구멍을 향하여 또는 지하철을 버리고, 둥지를 찾는 새들처럼. 무릇 모든 구멍들의 역할은 얼마나 대단한가. 우리는 구멍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포유류들은 구멍에서 태어나 죽어서도 구멍 속으로 사라진다.
씽씽 달렸던 버스들과 승용차들은 잠시 붉은 신호등에 갇힌다. 초록색 버스는 흡사 화물차다. 카드 찍는 소리만큼 마냥 승객들을 마구 싣는다. 옆구리의 문이 열리면 사람들은 우르르 내리고 탄다. 버스는 다음 정류장을 향하여 내쳐 멀어진다.
버스가 신호등을 기다린다. 일흔도 훨씬 넘어 보이는 늙은 여인이다. 은행나무 가로수 둥치에 기대어 초점을 잃은 채 멀거니 쪼그려 앉아있다. 졸림도 아니건만, 오후의 빛살에 맞아 푸석한 얼굴인가보다. 빠글빠글 머리를 한 여인은 붉은 꽃들이 점점이 박힌 헐렁한 바지와 빨강 꽃무늬가 추상적인 블라우스를 입었다. 자질구레한 비닐자루들의 주둥이를 까서 펼쳐놓았다. 비닐자루 안에는 콩, 인삼, 도라지, 잡곡 따위다. 즐비한 상가 앞으로 행인들이 지나다니나 누구 하나 그 여인을 거들떠보는 사람은 없다. 은행나무의 긴 그림자가 여인의 얼굴을 겨우 가려준다. 오후의 따가운 햇볕은 여인을 치근덕거리며 눈부시게 거리를 휘젓는다.
늙은 여인은 해가 질 무렵까지 저 물건들을 다 팔 수 있을까. 여인의 굵은 손마디처럼 삶의 질곡도 매듭지어 졌을지 모른다. 푸른 신호가 들어와 버스가 움직이자 나는 고개를 돌리며 아내의 모습을 떠올린다.
몇 년 전이었지, 아마. 버스는 밤새 달렸다. 태풍이 남쪽 먼 바다로부터 몰려올 거라고 했다. 아내와 나는 승객들과 대절버스에서 내려 백담사를 거쳐 설악의 준봉을 향해 걸었다. 잿빛 보살옷차림으로 가파른 산길을 따라 가는 아내의 얼굴은 평안해보였다. 새벽길 걷는 게 죽을 맛이라고 두런거리는 보살들 목소리가 들렸다. 잠은 아침으로 겉돌고 깨어있어도 깬 것이 아니었다. 새벽잠을 설치거나 전날 밤 지새우거나 날밤을 지새워야 갈 수 있다는 봉정암(鳳頂庵). 산새들도 어지러운지 산꼭대기를 우러러 올라가다가 휙 떨어지듯 안 보였다. 진신 사리탑을 보러 숨차게 올라가는 사람들이 드문드문 꼬리를 찾았다. 비 오듯 흘린 땀과 고통을 참고 공룡능선 비켜 오르는 불자들의 소망이 극락세계를 그리는 것이었을까.
-아들이 교통사고로 죽었으면 손자는 어떡하누?
-민들레 씨앗처럼 사방으로 흩어져 사는 게 사람들 팔자더구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던 늙은 여인이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려다가 난간을 꽉 붙잡았다.
-하마터면 죽을 뻔 했어!
침침한 눈을 비비며 앞서 가던 늙은이들이 두려움을 털면서 말했다. 아내와 나는 후텁지근한 날씨를 내치려고 말을 주고받으면서 바위틈을 오르고 있었다.
-우리가 죽어서도 이다음에 또 만나게 될까요?
나를 뒤돌아보면서 아내가 말했었다. 가파른 깔딱 고개를 막 지나서 비 오 듯 땀을 흘릴 무렵, 빵빵하게 부풀다가 바람이 빠진 목소리였다. 나는 풀잎을 스치는 산들바람처럼 대수롭지 않게 아내의 말을 흘렸으리라. 아무래도 모르겠다. 내 안의 또 다른 나를 버리거나 얻으려고 그랬을까. 어제의 일들은 한숨처럼 후회한들 끝없이 되풀이되는 나약한 짓거리일 뿐인데. 일생동안 그 육신의 고통을 접고서 깨달음에 가까이 다가가려는 마음이 용기를 주었던가. 맑은 물 흐르는 소리, 새소리, 바람소리. 고요한 숲속에서 중생의 발걸음소리와 욕망으로 바빴던 그 기억조차 아물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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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닐봉지를 묶어들어 버리려고 바깥으로 나갔다. 안개가 자우룩하다. 헤아릴 수 없는 미세한 물방울들은 그저 연기처럼 집들을 휘휘 감돌고 있다. 안개는 밤새 떠도는 귀신들을 싸고도는 옷자락이 되어 서서히 사라지려나. 아침햇살조차 안개에 가려 미소를 잃었다. 아물아물하던 골목 끝은 숫제 보이지 않았다. 도시의 구조물들은 안개귀신의 옷자락에 감겨 민망할 정도로 사라졌다.
아내가 있는 아파트는 한강이 보이는 북향이라지? 유명회사가 지을 아파트 분양광고의 문안처럼 흐르는 강물을 조망하는 느낌이 아내에게도 스며들었는지 모른다. 나는 손을 탈탈 털며 다시 지옥으로 들어간다. 시간에 시달릴 아내에게 감옥은 따로 없다. 나의 지옥보다 아내의 감옥은 더 지독할 것이다. 자유라는 말이 모든 사람에게 다 통용되는 것은 아니다. 전화가 울린다. 칭얼거리는 애 목소리도 간헐적으로 들린다.
-약은 빠뜨리지 않고 잘 먹고 있어요? 빨래를 널고 있으니까, 이따가 전화 할게요.
휴대폰을 타고 들려오는 아내의 목소리를 젖히고 웬 소음이 불쑥 끼어든다. 출력을 높인 기계 소리마냥, 따다닥! 쿵! 쿵! 쾅~ 느닷없는 굉음이 아내와 나를 단절시킨다. 이미지들이 뒤섞여 요동치는 찰나다. 손가락을 몇 번이고 누른다. ‘전화를 받을 수 없습니다.’ ‘전화를 받을 수 없습니다.’ 웬일이지? 무슨 까닭일까? 아내의 전화는 계속 불통이다. 까만 잉크가 맑은 물에 번지듯 머릿속이 차츰 어두워진다.
밥을 물에 말아서 떠먹으려다 무심코 텔레비전을 켠다. 시끌시끌한 오락프로화면에 자막이 뜨다가 갑자기 사라진다. 아나운서가 긴장된 표정으로 말한다.
<긴급뉴스>오전 8시경 서울 강남구 삼성동 골든파크 아파트에 민간 헬리콥터가 충돌하여 이 아파트 202동 35~36층 일부가 파손되고 헬기는 추락하여 조종사 2명은 사망했다. 소방방재청에 따르면, 사고 헬기는 스콜스키 S-76기종으로 김포공항을 떠나 잠실선착장으로 가는 도중 짙은 안개로 시야를 잃고 아파트에 부딪친 것으로 보인다. 이 사고로 아파트베란다에 있던 여성과 아이가 사망하고, 주민들은 대부분 대피하여 피해가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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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하늘 높은 곳에서 죽었고, 나는 땅속에서도 살아있다. 나는 슬픔의 바람에 밀려 발길을 이곳에서 멈춘다. 그녀의 탯줄이 끊어져 으앙, 으앙 울며 세상으로 나왔던 포구마을. 황금빛살은 산산이 부서져 붉게 탄 노을은 강어귀로 번진다. 가끔 눈을 떠도 빛이 부시거나 캄캄하여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가뭇한 실루엣이 눈으로 들어온다. 물에 떠있는 청둥오리들이 흔들린다. 푸드득! 갑자기 한 마리가 발 갈퀴로 출렁거리는 물결을 헤치고 날개를 편다. 밀물과 썰물에 갇혀 오도가도 못 하는 물고기의 비늘을 찾아서 떠나는 것인가. 철새 한 마리는 푸르른 하늘을 가냘픈 날개로 저어 먼 지평선 가로 질러서 어디로 가는 것이냐. 저 까뭇한 철새도 동족들 놓치고 떠돌아 온 세월의 기억을 찾아 헤맬까. 어쩌다가 부리로 물고 온 슬픔마저 놓쳤는지 모른다. 아내는 환생의 유혹에 못 견뎌서 구천을 떠도는 벙어리 새가 되었나보다.
미련한 나는, 희망이란 신기루에 얼마나 시달렸던가. 희망 따위는 억울하게 죽은 귀신들이 싸질러놓은 똥 같은 유혹의 다름 아니었다. 그녀의 고통이 나의 고통은 아니라고 도리질했던 나는, 내 안에 비겁하게 만들어놓은 덫에 걸린 것이다. 인연이 끝났으나 바들바들 떨며 기다릴 그 영혼의 그림자를 찾아가야겠다. 짧은 날개로 머나먼 바다를 건너려면 또 얼마나 바람과 싸워 더 멀리 날아야 하는가. 마침내 돌아올 수조차 없지만 서둘러 떠나야하는 길.
그녀가 멀리서 내게로 손짓을 한다. 아, 당신? 행여나 새가 되었을지라도 다시 내게로 오시라. 흰 구름이던 짙은 안개로 덮였건 돌아오시라. 싫으시면 눈부신 겨울 햇살로 내려와 강 물결을 은비늘로 반짝이시라. 얼음 속으로 흐르는 당신의 겨울 강 울음소리 들려서, 나는 으스름에 묻혀 소리 질러보나 메아리는 길을 잃어 되돌아오지 못한다. 어둠 저편 하구에서 푸드득거리며 올라오는 까마귀 한 마리 날아가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