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 강승택 | 날짜 : 13-10-19 12:53 조회 : 1829 |
| | | 오후 한시 30분, 공항 행 버스를 타기까지는 아직 4시간가량의 여유가 있다. 여권을 비롯해 필요한 물건은 빠짐없이 챙겼는지 다시 한 번 꼼꼼히 살핀 후 여행가방의 지퍼를 채운다. 아내와 딸아이의 도움까지 받아가며 어젯밤 일찌감치 마무리 지은 가방이다. 이상이 있을 리 없건만 괜한 긴장감은 같은 동작을 반복하게 만든다. 창밖엔 여전히 비가 내린다. 날씨마저 을씨년스러우니 혼자 나서는 길이 신명이 날 리 없다. 무엇보다 아내에게 미안하다. 방안 정리라도 해주고 갈 요량으로 주위를 살피니 여기저기 널려진 일 꺼리들이 한 눈에 들어온다. 세탁기 앞에 수북이 쌓인 옷가지들과 음식물 쓰레기, 며칠 전부터 깜빡거리는 전구 등. 이 정도쯤, 하려들면 일도 아니다. 부지런히 몸을 움직이니 막혔던 마음마저 뚫린 듯 상쾌하다. 이다음 이승과 작별할 때도 할 일은 분명히 매듭짓고 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엉뚱한 생각을 해보며 현관문을 나선다.
여행 첫날, 알렉스(현지 가이드 김철호)가 보내는 아침의 음악편지로 터키에서의 첫 일정을 시작한다.「시인과 촌장」이 부르는「사랑일기」.귀에 익은 노래지만 이곳에서 들으니 느낌이 한결 신선하다. 서먹했던 차안에 온기가 흐른다.“여행은 연애와 같은 것. 잠자는 오감을 활짝 열자. 관광객이 아닌 여행객의 자세로 사색이 있는 여행을 하자. 지구라는 학교에 왔으니 다양한 경험을 하고 가자.” 알렉스가 최면이라도 걸듯 우리 일행을 향해 쉼 없이 날린 어록의 일부이다.
첫 만남부터 강렬한 인상을 뿜어내는 그의 한 마디 한 마디가 출발부터 예사롭지 않다. 짧은 꽁지머리에 도수 높은 안경, 삼각 도리우찌 모자를 쓴 그는 외모만큼이나 경력 또한 특이한 가이드다. 우리나라 유수의 국립대학을 나왔다는 그의 인생 역정은 때로 우리를 안타깝게도, 응원의 박수를 보내게도 했지만 따지고 보면 그는 영리한 생활인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지중해 선상에서 듣는 「아바」의 「안단테 안단테」와 회원들의 작품낭독. 그와 함께 어디선가 들려오는 행복에 겨운 비음 섞인 여자의 목소리. 아내는 이 시각 무얼 하고 있을까. 터키인에게 유일한 낙은 축구다. 이번 여행 중 가이드로부터 전해들은 한국과 터키의 축구에 얽힌 이야기는 한 편의 잘 짜여 진 드라마를 보듯 듣는 내내 마음을 졸이게 했다. 48년간 월드컵 본선무대에 한 번도 오르지 못한 그들이지만 스스로는 세계에서 가장 축구를 잘한다고 믿는 국민이다. 그런 터키가 월드컵 유럽 예선 첫 경기에서 기회를 잡았다. 상대는 막강 전력의 브라질. 실력으로는 적수가 될 수 없음에도 믿는 구석이 있었으니 다름 아닌 한국인 주심이다.
축구에서의 심판은 신(神)과도 같은 존재. 그 절대 권력의 심판을 다름 아닌 형제의 나라 한국인이 맡았으니 적어도 판정으로 인한 불이익은 없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결과는 참담했다. 도움을 받기는커녕 한국인 심판의 명백한 오심으로 인해 한 꼴을 헌납했고 뒤이어 또 한 꼴을 먹었다. 이 때 마이크를 잡은 터키 축구 협회장이 절규했다. 우리의 형제 한명이 우리를 학살했다고. 6,25전쟁 때 연인원 15000여명의 육군을 파견했고 3400명에 이르는 실종자와 포로를 내면서까지 도와준 형제의 나라 심판의 판정으로는 믿기지 않는 결과였다.
그리고 2002년 한일 월드컵 3,4위전이 열린 대구 경기장. 한국과 터키의 경기가 맞붙으며 드라마는 반전으로 돌아섰다. 붉은 악마가 내건 대형 현수막과 파도타기 응원.‘우리는 하나’ 이것만으로도 심장이 멈출 지경인데 경기 결과까지 꿰맞추듯 2:3으로 한국이 패했다. TV를 지켜보던 터키 국민의 반응이 어떠했으리라고는 짐작하고도 남는 일이었다. 거리에서, 시장에서 스치는 사람마다 그들은 서툰 우리말로 “때한민국!”을 외쳤다. 10년도 더 지난 그 현장에 그들은 여전히 서 있었다. 여행은 우리에게 세 가지의 유익함을 준다고 한다. 첫째는 타향에 대한 지식이고 둘째가 고향에 대한 애착이며 셋째는 자신에 대한 발견이다. 이번 여행이 성지 순례가 목적이 아니었으나 우리는 성경에 나오는 수많은 역사적 사실을 현장에서 확인 할 수 있었다. 너무도 생생하게 그 흔적들이 남아있어 전율마저 느낄 지경이었다. 동서양을 잇는 터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곳. 터키는 그렇게 지구의 한편에 든든히 버티고 있었다. 여행 마지막 날. 오늘도 어김없이 알렉스의 음악편지로 하루를 시작한다. 마지막 편지다. 흐르는 노래는‘향수’와‘고향집 가세’그래, 오늘은 고향에 가는 날이다. 7박9일간의 짧은 이별이었지만 집으로 돌아가는 것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으랴. 담 너머 논둑길 황소마차 덜컹거리며 지나가는 고향집은 아니어도 말이다. |
| 임재문 | 13-10-19 13:50 | | 강승택 선생님의 글을 읽으니 요즈음 제가 하고 있는 일들이 떠오릅니다. 지금 저는 우리 제2종교개혁연구소 임태수 소장님의 성지 순례기를 정리 하고 있습니다.테제수도원을 지나 토리노로 토리노에서 이탈리아순례기를 정리하고 있습니다. 이국의 풍물들이 새롭게 느껴옵니다. 월드컵 열풍이 요즘은 많이 시들어 가고 있는 느낌입니다. 2002년 월드컵이야 말로 우리 모두를 하나로 만든 마술사였습니다. 감사합니다. 강승택 선생님 ! | |
| | 강승택 | 13-10-20 09:21 | | 임선생님, 감사합니다.순례기를 정리하시다보면 본인이 직접 현지를 다니는 착각이 들때도 있으시겠습니다. 완성되면 저도 한 번 읽을 수 있는 기회가 있기를 기대합니다~ | |
| | 김권섭 | 13-10-19 16:03 | | 강승택선생님 안녕하셨습니까. 성지순례를 다녀 오신것도 같고 터키 축구 반응을 보고 오신것도 같습니다. 여행의 세 가지 유익함, 첫째 타향에 대한 지식 둘째 고향에 대한 애착 셋째 자신에 대한 발견. 대리 여행 만족이었습니다. 다메석, 데살로니가, 에베소, 아덴, 안디옥이 그려집니다. 감사합니다. | |
| | 강승택 | 13-10-20 09:23 | | 김선생님께서 꼭 한번 다녀오셔야 할 곳이 아닌가싶네요. 성경지식이 풍부하신분은 더욱 실감이 날듯 하더군요. 감사합니다 | |
| | 임병문 | 13-10-19 19:29 | | 선생님의 글을 보니 선생님을 뵈운 듯 반갑습니다. 유달리 우리에게 살갑던 그들, 가시기 전, 이미자 시인의 여러 당부를 들으며 그녀가 말했던 곳을 꼭 찾아가 보리라 약속햇던 일이 생각납니다. 구시가지의 뒷 골목도, 터키석을 가공하던 공방도, 힘이 왕성한 터키말도 타보셨겠네요. 재미있는 얘기 만나서 나누어요. | |
| | 강승택 | 13-10-20 09:25 | | 임선생님께서는 아직도 구름위를 떠다니시는듯한 환상속에 사시는 분 같아서 호기심이 많이 갑니다. 언제 한 번 만나서 좋은 말씀 들었으면 하는데 가능할런지요? | |
| | 정진철 | 13-10-20 05:56 | | 재미있는 여행을 하셨군요 . 건강하게 돌아 오셔서 축하합니다. 요즘 터키도 테러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강선생님이 하신 이야기중에 이승과 작별할때도 분명히 매듭지었으면 좋겠다고 하셨는데. 공감합니다. 특히 비행기를 타고 떠날때면 이것이 마지막 여행이 아닌지 한번씩 되돌아 보게 되더군요. 아마도 땅에서 하늘로 올라가니까 그런 생각이 드는건 아닌지 하고 생각해 본적도 있습니다. ㅎㅎ 다음에는 사모님하고 같이 좀 가세요. 나이 먹어가면서 혼자여행은 웬지 을씨년 스러워 보입니다. ㅎㅎ | |
| | 강승택 | 13-10-20 09:35 | | 정선생님 말씀 100% 공감합니다. 혼자 가니 영 불편한 점도 많고 챙길 것도 많고 아주 신경쓰이는 일 뿐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
| | 김용순 | 13-10-20 07:05 | | 참 좋으셨습니다. 나는 북한강 건널 때, 태평양, 인도양을 날으셨군요. 로마, 기독교 유적 등이 많아 나도 꼭 가 보고 싶었는데, 언제쯤 갈 수 있게 될런지. 아무튼 축하드립니다. | |
| | 강승택 | 13-10-20 09:27 | | 김선생님이야말로 여행에 관한 한 타의 추종을 불허하시는 분 아니겠습니까. 언제 중국과 몽골의 이야기 풀어놓으시기 바랍니다~ | |
| | 류인혜 | 13-10-20 08:13 | | 음악과 여행, 좋은 가이드를 만났으니 낭만의 완성입니다. 터기는 꼭 가보고 싶은 나라인데 다녀오신 강승택 선생님 부럽습니다. 옛날 일곱 교회의 흔적을 따라 가보고 싶었습니다. 기회가 참 좋았는데, 인생에서 때를 놓치고 다음 기회를 잡기란 어렵지요. 잘 읽었습니다. | |
| | 강승택 | 13-10-20 09:29 | | 맞습니다. 이번 여행은 멋을 아는 가이드를 만나 낭만적인 분위기속에 여행을 할 수 있지않았나 생각합니다. 신앙심이 깊으신 류선생님이 꼭 한번 다녀오시면 좋을 여행지인것 같아 강추합니다~ | |
| | 임병문 | 13-10-20 09:36 | | 강승택 선생님, 환상이라니요. 그날 그 모임에서 간곡히 말하던 이미자 시인의 말씀을 잊으셨습니까? 시인의 눈에 비친 수필가 강승택의 진정한 모습, 어쩌면 그녀의 얘기가 맞는지도 모릅니다. 다시 보아도 좋은 글, 흔히 접하는 기행문의 오류를 벗어난 여정수필, 탄탄한 문장력, 좋은 소재를 주제화시키는 여유와 노련함, 참좋은 글이라생각합니다. 건필을빕니다. | |
| | 강승택 | 13-10-20 11:58 | | 격려의 말씀 감사합니다. 다만 한 가지, 앞부분의 말씀은 아직도 미몽속에서 완전히 깨어나지 못하신 듯 하여 심히 염려스럽습니다! | |
| | 김창식 | 13-10-21 20:46 | | 얼쌰 키스가 부른 터키 민요 '우스크다라(Uskudar)'가 생각납니다. 어렸을 적 흥얼거리곤 했는데요."우스크다라 머나만 길 떠나 왔더니~~" | |
| | 강승택 | 13-10-22 06:51 | | 역시 김선생님은 음악에 대한 관심이~ 저역시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많이 흥얼거렸던 기억이 납니다. | |
| | 임병식 | 13-11-01 10:16 | | 가을을 맞아 터키여행을 다녀오셨군요. 터키는 6.25때 파병을 해준이후 형제의 나라가 되었는데 각별한 환대를 받으셨는지 모르겠군요. 유익한 여행이 되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 |
| | 강승택 | 13-11-02 09:43 | | 비록 우리보다 국민소득은 떨어져도 낙천적인 그들의 생활모습이 몹시 인상적이더군요. 지난 9월 협회행사에 참가했던 여행기입니다. 감사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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