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짧은 여행이었지만 즐겁고 유익한 시간 이었다. 벚꽃이 만개했다는 진해벚꽃 군항제 소식을 전하는 뉴스를 보면서 아직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진해를 가자고 짐을 꾸려 나선 것은 4월 2일 아침.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지만 많이 올 것 같지는 않다는 예보를 믿고 남부터미널에 도착하니 10:45이었다 . 11:30 출발 버스에 오르니 두 번째 줄 좌석이라 앞도 옆도 잘 보여서 좋았다. 고속버스가 이렇게 쾌적하게 좌석이 바뀐 줄은 몰랐었다. 통로 좌우 2좌석으로 되어 있었는데 이제 한 쪽은 2좌석 한 쪽은 1좌석으로 되었으니 자연히 좌석폭이 비행기 좌석보다 더 여유롭고 쾌적하였다. 앞 뒤 간격도 커서 다리를 펴기도 쉬었다. 럭셔리한 버스다. 차도 밀리지 않고 잘 달리고 천안을 지나면서는 가는 비도 그쳤다.
대전에서 대진 고속도로를 경유하리란 예상과는 달리 경부고속도로로 가더니 1시간 40분 만에 금강휴게소에 닿았다. 휴게소가 새로이 개축되었는데 아주 멋졌다. 20분간 주어진 휴식시간에 사골우거지국밥을 맛있게 먹었다. 대구에서 구마고속도로로 가려나 했는데 김천을 지나더니 중부내륙고속도로로 접어들었다는 안내가 나왔다. 전에 김천에서 중부내륙고속도로 북상한 일은 있지만 남으로도 이게 연결 된 줄은 알지도 못했는데 처음 보는 산과 들을 달리는 기분이 상쾌하였다. 함안 부곡 등의 표지가 보이고 우포늪 표지도 보였다. 주변 풍광이 매우 아름다웠다. 날씨는 화창할 대로 화창한 가운데 가로수 벚꽃이 많이 보이기 시작하더니 드디어 진해시가가 보이기 시작하면서는 벚꽃 천지가 된 듯하였다. 인근 산에도 희끗희끗 벚꽃이 피었다.
전날 막 시작된 축제 플래카드가 여기 저기 보이고 각지에서 모여든 차량이 도로에 가득하게 주차 되어 있었다. 4시간 20분 걸린다고 했는데 겨우 5분이 지연 된 3:55분에 터미널에 도착하였으니 이 정도면 우리나라 대중교통은 세계에 내놓을 만하다 . 바람은 조금 불었으나 날씨는 맑았다. 바람에 꽃잎이 날리는 것이 안타까웠다.
바로 인근에 있다는 말을 듣고 해군사관학교를 찾았다. 걸어서 10분도 안 걸려서 정문에 도착 했는데 4시까지만 출입이 되니 내일 오라는 것이다. 안을 들여다보니 영내 벚꽃 가로수가 활짝 핀 것이 정말 아름다웠다. 나는 경비병에게 이미 입장한 사람들이 다 나올 때까지만 보고 나오면 안 되느냐고 했더니 그럴 수 없다는 것이었다. 단 5분 늦었기 때문에 못 본다고 생각하니 이왕 축제 일환으로 개방하는 것인데 너무 일찍 출입을 마감하는 것 아닌가 하고 섭섭하기도 하였지만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발길을 돌려 길게도 펼쳐져 있는 먹을거리 행사장을 거쳐 여좌천이란 데를 찾았다. 전날 뉴스에서 소개된 바 있는 곳이었다. 길이가 1.5키로가 된다는 직선으로 좁다란 개천 양 언덕에 짙은 흙빛 목제 보도가 정말 멋있었다. 벚꽃이 만개하여 터널을 이루었고 중간에 무지개 다리도 여러 개 놓여 있었다. 개천도 잘 정비되어 돌로 깔려 있었고 서울의 청계천처럼 보도로 걸을 수도 있었다. 전에 어느 방송국의 로망스라는 드라마 촬영지였다고 소개 되고 있었는데 그럴만한 곳이구나! 라고 여겨졌다. 피곤한 줄 모르고 바람에 흩날리기도 하는 꽃잎을 맞으면서 왕복하며 실컷 걸었다.
숙소를 정하고는 택시를 타고 항구로 갔다. 밤이 되어 항구의 모습은 제대로 볼 수 없었지만 횟집들이 많았다. 손님이 좀 많은 집으로 들어가 모둠으로 소(5만 원)를 주문했다. 탕과 밥을 먹지 않아도 충분한 양이었고 종업원도 싹싹하며 친절하였다. 숙소는 불도 잘 넣어주어서 잠을 푹 잘 잤다. 아침 식사를 하러 나섰지만 국밥류는 헤비할 것 같아 간단히 편의점에 들려 세모김밥과 따끈한 캔 커피로 마쳤다.
어제 못 본 해군사관학교를 보려고 갔다. 9시 부터 개방한다고 하였다. 정문 옆에 대기중인 영내를 운행하는 버스를 타고 벚꽃 가로수길을 따라 5분쯤 들어가니 환상적인 부두가 나오고 산 밑에 그림같이 아름다운 사관학교 건물이 군데 군데 보였다. 좋은 환경이었다. 부두에는 해사생도들과 해군 수병들이 여러 개의 텐트를 치고 안내를 하고 있었다.
먼저 부두에 정박한 모형 거북선에 들어갔다. 고증에 의하여 실물크기로 재현한 것인데 안에 들어가 보니 옛날에 이렇게 만들기도 결코 쉽지 않았을 것 같았다. 성웅 이순신 같은 위대한 지도자가 있었기에 이 나라가 유지돼 오지 않았을까? 바로 옆에 있는 충무공 기념관을 들렸다. 아산 현충사에서도 본 바 있지만 이 충무공과 관련한 다 많은 자료를 볼 수 있었으며, 해군창설에서 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자료를 세세히 살펴볼 수 있었다. 해군을 창설하고 초대 해군참모총장과 국방장관을 역임한 손원일 제독에 대하여 많은 것을 알 수 있었기 다행이었다. 잘 다듬어진 부두가의 벚꽃나무들 그리고 잔잔하면서도 파란 진해항 저 산 아래 해사 건물들과 연병장 모두가 그림 같은 풍광이었다.
다시 버스를 타고 여러 배들이 정박한 부두로 옮겼다. 2010년 소말리아 해적들에게 납치된 석해균 삼화주얼리호 선장과 21명의 선원들을 무사히 구출한 바 있는 구축함 "최영함"을 승선하여 살펴보았다. 현대중공업에서 건조하여 2008년에 인수하였다는 4,500톤 급 구축함으로 길이가 150미터라고 하며 우리나라에서 이지스함 다음으로 큰 전함이라고 하였다. 선상의 무기들과 조타실을 비롯하여 선내 구석구석을 돌아보면서 이렇게 거대한 배가 그 몹쓸 해적들 때문에 그 멀리까지 항해하여 갔었던 것이 분하기도 하였다.
이 구축함의 선장인 부대장은 대령이다. 지휘관으로서 군사지식 외에도 기계 통신 무기 등 엄청나게 많은 지식을 갖추어야 제대로 지위할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이어서 해양대학교 학생들의 학습에 쓰이는 3천 톤급 실습선에 승선하여 설명을 들었다. 모두 걸린 시간은 3시간. 어제 저녁 때 잠깐 보면 될 텐데 왜 안 들여 보내주나 하고 야속하게 생각하였던 내가 얼마나 뭘 모르고 있었구나 하고 스스로 부끄러워졌다. 1년에 단 한 번 있다는 해군사관학교 개방행사는 단순한 벚꽃 관람행사가 아니라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그저 벚꽃 핀 거리를 보는 것이라면 과천 미술관 입구,여의도 윤중제, 하동 섬진강변, 쌍계사 입구, 강릉 경포대, 경주 보문단지나 전주군산 간 도로를 보아도 된다. 그러나 진해 군항제는 그것들과는 시뭇 다르다. 그래서 해군사관학교 영내를 돌아보는 코스를 꼭 봐야 된다고 생각하였다.
버스터미널로 돌아와서 부산행 버스를 탔다. 손님이라곤 달랑 우리 내외뿐인데도 정시에 출발하였다. 중간에 몇 군데서 승차한 손님이 있었지만 그래도 인원은 다 해서 열 명이 안 되었다. 우린 맨 앞좌석에 앉아 주위를 환히 내다보며 신나는 1시간 가량의 멋진 드라이브를 즐겼다. 웅천이란 곳을 거쳐서 부산신항을 지나 부산으로 접어드는 도로를 달리는데 온통 가로수가 벚나무였다. 만개한 꽃이 정말 아름다웠다. 남쪽엔 가로수고 뭐고 다 벚꽃인 듯싶었고 벚꽃이 아니면 행세할 수도 없는 것 같았다.
부산시내 하단이란 곳에서 내려 지하철로 부산역으로 갔다. 지방에서 처음 타보는 지하철이다. 지하철내도 그렇고 역사 내 분위기가 서울지하철과는 조금 다른 맛이 났다. 열 정거장을 지나 부산역에 당도하니 광장 옆에 부산시티투어버스가 있었다. 코스는 해운대 쪽과 태종대 쪽 2가지가 있었다. 요금은 만 원인데 이 표 한 장으로 2코스를 다 돌 수 있다고 하였다. 우선 태종대 방향 버스를 탔다. 영국런던에서 볼 수 있었던 2층 버스다. 서울에도 최근 시티투어로 2층 버스를 운행한다는 뉴스는 있었는데 아직 보진 못했다. 우린 2층 맨 앞에 자리를 잡았다. 다행히 날씨가 포근하였기 때문에 2층에 앉아 시가지를 훤히 다 내려다 볼 수 있었다. 부산대교를 지나 영도에 들어가서 순환도로를 달려 태종대에 들렸다가 송도해수욕장을 지나 부산역으로 오는 1시간 40분의 시내 관광이었다. 이 버스가 잠시 쉬었다가 다시 해운대 쪽으로 갔다.
우린 맛있는 김밥을 사다가 점심을 해결하였다. 버스는 광안리 해수욕장을 지나 해운대 방향이다. 놀라울 정도로 변한 해운대 시가지를 2층 버스에서 제대로 관람하였다. 멀리서 바라보는 해운대 시가지는 홍콩이나 싱가포르에 에 온 느낌이었다. 완전히 이국적인 풍경이었다. 버스는 뉴스에 자주 등장하는 바다위의 광안리대교를 지나 역시 1시간 40분 만에 부산역에 당도하였다. 두 코스 합하여 3시간여의 시티투어는 아주 값진 관광을 해주었다.
서울역 광장은 이제 광장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변해버렸지만 부산역 광장은 분수도 멋있고 주위가 건물들이 잘 정비되어 있어서 호감이 갔다. 동래로 가서 온천도 하고 동래파전도 먹고 쉬고 가려던 계획을 바꾸어 집으로 가기로 하고 부산역으로 들어갔다. 6시 발 KTX표를 사고 역사를 돌아보는데 새로 설계하여 지은 역사라서인지 짜임새가 있고 느낌이 좋았다. 6시에 출발한 열차는 어둠이 아직 내리지 않았을 시간인데 바깥이 캄캄하다. 이상도 하구나. 이렇게 긴 터널이 있나? 그러더니 12분 만에 밖이 환하게 나타났다. 역시 터널이었다. 그러고도 여러 번 터널이 있었으니 산을 많이 뚫느라고 공사가 힘들었을 것 같다. 당초 이 고속철을 왜 만드느냐고 반대하는 의견도 많았었다. 좁은 나라에 철도가 국토 다 먹어버린다고.
경부고속도로는 말할 것도 없고, 인천공항건설 때도 얼마나 반대가 심했던가? 지나 놓고 보니 다 헛소리였다. 만일 경부고속도로가 없었다면 인천공항이 만들어지지 않았다면 오늘날의 물류이동을 감내할 수 있겠는가? 끔찍한 일이다. 이런 것들이 다 우리경제의 성장동력이 되고 있는 것이다.
고속철은 광명을 지나 2시간 50분 만에 서울역에 도착, 부산역 출발 3시간 35분 만에 집에 안착하였다. 피로감도 거의 없는 편한 여행이었다. 꼭 하루 반 만에 벚꽃도 보고 부산도 돌아보는 즐거운 여행이었다. 앞으로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편하게 자주 돌아보자고 아내와 약속하였다. 대한민국은 정말 편리한 나라다.
첫댓글 짧지만 알차고 보람되고 오래기억에남을 좋은여행 자~알다녀오셨네요.
군항제, 내년에는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