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전문가칼럼
은퇴 자금 10억 필요? 은행·보험사의 공포 마케팅이다
조선일보
정희원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의사
입력 2023.11.01. 03:00업데이트 2023.11.01. 06:18
https://www.chosun.com/opinion/specialist_column/2023/11/01/YYGO6I5R4ZF27FAIFCQR6RSJY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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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원의 늙기의 기술]
입주 간병 비용 월 500만원, 10억 부자도 ‘돌봄 비용’은 버거워
건강한 몸·마음이면 60대부터 지출 급감… 생각보다 돈 적게 들어
느리게 나이 들며 적게라도 계속 돈 버는 ‘부자 노년’으로 삽시다
부자(富者). 표준국어대사전은 부자를 ‘재물이 많아 살림이 넉넉한 사람’으로 정의한다. 2021년, 미국의 퓨 리서치 센터는 한국을 비롯한 17국의 성인 1만9000명을 대상으로 스스로의 삶을 의미 있게 만드는 가치가 무엇인지 조사했다. 대부분 국가의 응답자들이 꼽은 가장 중요한 가치가 ‘가족’이었던 것에 비해, 유일하게 한국인은 ‘물질적 풍요’를 최고의 가치로 꼽았다. 이 물질적 풍요를 성공적으로 이룩한 이들을 곧 부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 사회는 누구를 부자라고 부르고 있을까? 매년 연말이 되면 대한민국의 부자에 대한 보고서가 나온다. 이런 보고서들에서 흔히 사용하는 부자의 기준은 통상적으로 ‘금융자산 10억원을 보유한 개인’이다. KB 금융그룹이 작년에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전체 인구의 0.82%인 42만4000명이 이 기준에 부합했다.
한국인은 부자가 되고 싶은 마음에 진심이다. 더 빨리 부를 이뤄 경제적 자유를 얻고, 은퇴하고자 하는 생각을 ‘파이어(FIRE·Financial Independence, Retire Early)’라고도 하는데, 지난 몇 년간 우리나라에서도 사회적 트렌드가 되었던 것 같다. 무엇보다, 자산시장이 활황일 때에는 차입 등 여러 방법을 통해 무리해서 자산을 증식하는 이들이 사람들의 부러움을 사기도 한다. 금융시장의 역사 속에서 이런 벼락부자들이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는 때가 버블의 정점에 가까울 때이니 더욱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 증명되어 있음에도, 버블에서 바람이 빠지는 순간까지도 부나방처럼 달려드는 사람들의 심리만은 결코 변하지 않는 것 같다.
현대 사회에서 돈이 중요한 것은 맞는다. 시장경제 사회에서, 사람의 생존을 위한 모든 기본적 욕구는 돈에 의해서 충족된다. 주거 환경이나 사회 경제적 상황이 사람들의 생물학적인 노화 속도와 연관되어 있다는 보고도 있다. 돈은 사람의 건강수명에도 영향을 준다. 미국의 경우, 경제적으로 상위 10%에 해당하는 사람은 하위 10%에 해당하는 이들보다 기대 수명이 20년이나 길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소득 수준이 하위 20%인 한국인의 건강수명은 65.2세로, 상위 20% 국민의 건강수명(73.3세)에 비해 8.1세 낮았다(2018년 기준). 그러나 돈이 기본적인 삶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삶의 목적이 되는 것은 건강하지 않다.
그래픽=이철원
이 배금주의(拜金主義)적 시각에 기여하는 것 중 하나가 금융 자산 10억원이라는 한 가지 숫자, 즉 ‘재물이 많음’ 하나만으로 부자를 정의내리는 것에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은 ‘살림이 넉넉한 사람’이라는 부분이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넉넉’이라는 것은, 버는 돈이 쓰는 돈보다 많은 상태가 지속적으로 유지될 수 있는 시스템을 의미한다. 평생 동안 이러한 경제적 잉여 상태를 유지하면서도 주관적, 객관적으로 궁핍하지 않고 건강한 몸과 마음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을 부자로 정의하는 것이 보다 올바르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삶을 설계하면, 성급한 마음에 가슴 졸일 필요 없이 누구나 부자가 될 수 있을 뿐더러, 건강과 부의 선순환을 이뤄내기도 쉽다. 돈을 벌어 더 빠른 속도로 불려내는 것에 집착하지 않고, 오히려 잠재적으로 나의 삶을 넉넉지 못하게 만들 요소가 무엇인지를 살필 수 있는 능력이 생기게 된다.
특히, 100세 시대에는 생애주기의 관점에서 미리 여러 가지 부자 시스템을 준비해 놓는 것이 좋다. 크게 네 가지 요소가 있는데, 빠르게 떼돈을 버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첫째, 질병과 노쇠를 꾸준히 예방하기 위해, 느리게 나이 드는 건강한 삶을 산다. 가능한 한 질병, 노쇠에 의한 돌봄 요구의 발생을 늦춘다면, 큰 폭의 지출을 절감할 수 있다. 집에 거주하는 노인이 장기요양 서비스를 받는 경우 생활비를 포함한 월 평균 총 지출비용은 약 200만~300만원으로 조사되고 있는데, 이 중 가장 큰 비용을 차지하는 것이 요양인건비다. 만약 24시간 간병이 필요한 경우 요양인건비를 2023년 기준으로 월 500만원 가까이 지출하게 된다. 월 500만원을 예금 이자 등 수익으로 벌기 위해서는 20억원에 가까운 현금성 자산이 필요하다. 10억원 부자라도 돌봄 요구 앞에서는 장사가 없고, 노년에 튼튼한 몸과 마음을 가지는 것만으로도 20억원의 가치는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둘째, 돈을 버는 시기에는 버는 돈을 소중히 여긴다. 우리의 생애주기에서, 흑자를 내는 시기는 가운데 부분의 약 30년이다. 이 시기의 소중한 소득을 즐기고 과시하는 데 낭비해 버리는 이들이 많다. 이는 노년의 빈한함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높다. 반면, 경박단소한 소비는 지갑과 마음에 모두 여유를 준다.
셋째, 평생 공부하고 평생 사회에 참여하는 활동적인 삶을 계획한다. 즐겁고 몰입할 수 있는 일을 찾아, 평생 현역의 마인드로 조금이라도 현금 흐름을 만들면, 막대한 현금성 자산을 보유한 효과가 있다. 활동적인 삶은 저절로 만성질환과 노쇠, 치매를 예방하는 효과가 있기도 하다. 아주 급여가 낮은, 취미나 자원 봉사에 가까운 일이라도 부자 시스템의 선순환을 만드는 중요한 원동력이 된다.
넷째, 장기적인 관점에서 위 세 가지 방법에 의해 쌓여가는 자산을 관리한다. 시류에 부화뇌동하지 않고 100년을 바라보는 시각으로 차분한 자산 분배의 관점에서 투자에 임하면 실패가 적다.
이 네 가지 방법을 따르면, 자연스럽게 부가 증가되며, 그 부를 담을 수 있는 사람의 그릇도 점진적으로 커지기에, 탈이 나지 않는 부를 유지할 수 있다. 2021년 국민연금연구원에 따르면 사람들이 생각하는 적정 노후 생활비는 부부 기준 월 277만원, 개인은 월 177만원이었다. 실제로는 이보다 훨씬 적게 든다. 2022년 가계복지금융조사를 분석해 보면 60대부터는 소비 지출액 자체가 빠르게 줄어드는데, 평균 가구원 수가 1.9명인 70대 가구 평균 연간 소비지출액은 1932만원이었다. 은퇴에 10억원이 필요하다느니 하는 이야기와 함께 금융 회사들은 공포를 조장한다. 조급함에 성급한 투자로 소중한 노후 자금을 잃는 이들도 많다. 오히려, 늘 살림이 넉넉한 진짜 부자의 시스템이 완성될 때, 노년의 경제적 자유도 완성될 수 있다.
그래픽=이철원
정희원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의사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의사
조2
2023.11.01 06:31:06
현직 의사께서 쓰신 글임에도 어떤 자산 전문가나 인생 컨설턴트 글보다 공감이 됩니다.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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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가몬데
2023.11.01 06:08:17
균형잡힌 시각이 돋보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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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an N.Y
2023.11.01 06:10:16
그래서 젊을때 한푼이라도 덜 쓰고 모아야 노년이 편안하다는 어른들 말씀이 맞다.적어도 자식들에게 민폐 끼치지 않을 정도는 되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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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즉사우필생
2023.11.01 06:35:02
이런 상식을 이야기해주면 꼰대라고 비이냥 거리는 철없는 것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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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오루
2023.11.01 06:59:03
한살이라도 젊었을 때 수입이 있는 쪽쪽 써 버리기 보다는 저축을 하는 것, 그리고 건강을 유지하는 것,, 이러한 것들이 노년의 부자를 만드는 비법 이구만. 젊은 시절 호사의 유혹을 이겨내고, 몸을 함부로 내돌리지 않아서 노년부자의 밑거름을 만드는 지혜가 필요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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猫한 사랑
2023.11.01 06:24:37
은행의 잔꾀에 놀아나서는 쪽박 차기 딱 입니다. 거저 금이나 국채에 묶어두는 방법이 최고 일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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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승
2023.11.01 07:33:38
노후 대책의1순위는 매일 1시간 산책 하는 것이다. 산책은 현관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현관에서 나와 동네 한바퀴를 매일 걸어서 움직이는 것이다. 걸으면서 이것 저것 생각하고 노래 들으면서 걸으면 마음의 평안해진다.이것이 육체의 건강으로 이어지면서 자기 일을 찾을 수있고 일하는 사람은 소득이 더 창출된다. 즉 걷는것에 몰입하라. 이것이 노후대책 1순위다. 건강이 피폐되면 재산은 다 유산으로 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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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rtleusa
2023.11.01 06:50:50
기사의 제목이 옳바르지 못하다. 은퇴자금은 수입없이 모아놓은 돈을 사용하기 때문에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것이다. 은행과 보험회사의 공포마케팅이 아니다. 그들의 친절한 조언이다. 은행과 보험회사의 도움으로 은퇴자금을 만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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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사냥꾼
2023.11.01 08:50:21
맞다... 10억이 있지도 않은데, 생활을10억에 맞춰 살면 언제나불행하다... 조금은 부족해도 사람답게 사는 정도 - 얼마가 되는지는 모르지만 - 의 삶을 추구하고, 만족하면 행복한 삶일거다... 지분자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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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금
2023.11.01 07:43:55
공감된다 나는 69세로 4년전 정년퇴직하고 귀촌해서 일주일에 5일을 이것저것 배우러단니고 텃밭50평 가꾸고 정원 가꾸고하는데 한달에 50만원정도만 써도 여유있네요(여행경비제외) 생활비(병원비포함)는 집사람이 사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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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과 모차르트
2023.11.01 07:40:47
아마 이 의사의 글은 자녀들이 부모들에게 의지하지 않고 모두 제 밥벌이 할 때 가능한 이야기일 겁니다. 자식(들)이 제대로 일자리도 못 잡고 부모에게 얹혀 살거나 심지어 결혼해서 가정을 이루고도 캥거루처럼 산다면 쉽지 않을 걸요? 다시 말해서 자식 Risk가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는 맹점이 있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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虛心坦懷
2023.11.01 08:52:05
부동산에 매몰된 노후는 불쌍하다 팔아서 또 축소해서 충분한 현금으로 여유로운 삶을 살아갑시다 욕심은 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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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ain
2023.11.01 07:49:34
금융권과 언론이 은퇴 후에 필요한 자금을 너무 부풀리는 것 같다. 작은 일이라도 지속적으로 하면서 욕심 없이 노년을 보내면 그렇게 힘들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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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파
2023.11.01 09:11:58
'多多益善'. '百人百色'. 자기 분수에 맞게, 행복한 마음으로 살면 되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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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최고
2023.11.01 09:02:34
공감 100% 입니다. 3년 전에 은퇴한 입장에서 말하면 현직 때 대비 소비가 50% 이상 줄게되더군요. 과소비, 보여주기식 구매 등이 줄어든 것이기 때문에 불행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게 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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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야필부
2023.11.01 08:44:37
근검절약해야 노후가 행복하다. 공짜로 주는 돈에 길들여 펑펑써고 알바로 돈벌어 해외여행하고 없어면 부모찬스로 살고.... 복지정책 전면수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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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장궁
2023.11.01 08:26:12
평생 현역이 최고입니다. 모두들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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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잎사랑
2023.11.01 07:55:00
돈장사하는 사람들의 장난질은 인간이 다 없어질 때 까지 계속될꺼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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曰曰
2023.11.01 08:34:22
맞는다 가 표준표현이된 모양인데, 맞다 로 쓰자. 왜 늘 쓰던 표현을 안쓰나. 글 읽기가 역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