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티나무
詩 / 양 현근
풍경들, 푸르게 푸르게
물들도록
당신을 사랑하고 싶은 탓이다
별 되지 못한 생각들
우렁우렁 일어나서
겹겹의 기억으로 뿌리내리면
손바닥만한 그리움
안마당 가득 울울창창하도록 널어 놓고
날 저물도록 당신을 기다리고 싶은 탓이다
바람 깊은 날이면
외로운 잎사귀마다
세상의 소란을 몇 장씩 매달아 놓고
헐떡거리는 햇살들
잠시 쉬었다 가게 하고 싶은 탓이다
그렇게 한 세상
야무지게 흔들리고 싶은 탓이다
몸 속을 배회하는
푸른 울음소리를 벗삼아
차라리 슬프도록 무성해지고 싶은 탓이다
지난 여름...
그 남자는 속리산 자락 물줄기를 따라
참으로 뻔질나게 오르락 내리락 거렸습니다.
언제나
주말 그리고 휴일이면
특별한 약속이나 별달리 갈 곳이 없을 때면 찾던 그곳 이었습니다.
군자산 자락 골짜기와 괴강의 물줄기.
그리고 겹겹이 쌓인 속리산 자락을 바라보며
바람에 일렁이는 너른 초록 논 너머 은빛 반짝이는 강이 보이는 곳에서
살고 싶다란 생각을 참 많이 했었습니다...
넘실거리는 푸르름의 바다보다,
숱한 세월을 안고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켜 온 커다란 느티나무의 그늘이 그리웠고
유유자적 너그럽고 고요히 흐르는
그 강줄기와 논자락이 편안하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지난 몇 달 동안의 괴산 나들이에는,
그 남자 나름대로의 꿍꿍이가 있었습니다.
그런 이유로 피곤함도 모른 채,
들뜬 마음으로 수풀을 헤쳐가며 산등성이를 오르고
자신보다 훨씬 키가 큰 옥수수 밭을 헤매이며
이 집, 저 집 내놓은
빈 농가를 제 집 드나들듯 들락거리며
요모조모 땅을 둘러보며 많은 생각을 하였습니다.
주말과 휴일...
조금이라도 자연과 좀 더 오랜시간 접하고 싶었고
지금보다 더 나이가 들면
여유로움의 시간을 좀 더 즐기고 싶어 했기에
조그마한 텃밭이 그리웠고,
정성스러운 자신의 손 길이 닿은 계절마다 볼 수 있는
형형색색 소담스러운 꽃들이
자신의 곁에 머물기를 원하였던 것이었지요.
무엇보다 유년시절에 뛰어 놀던 마당 너른 집의 커다란 꽃밭이 그리웠고
칙칙한 아파트의 형상과 콘크리트 냄새.
그리고 하루가 멀다하고 파헤치는 시끄러운 공사 소음과 먼지
아스팔트 열기가 더 해져 짜증스런 길 막힘이
질렸기 때문이었겠지요.
한 낮의 햇빛이
발코니 창에 머무른 무료한 어느 여름 휴일 날.
그 남자는 그 여자에게
조심스레 말을 건네 봅니다.
'우리 드라이브나 갈까? '
그 여자의 속 마음은 어떤지 잘 알 수는 없었지만,
그 남자가 원하는 일이었기에
수북히 쌓인 빨래더미와 분리수거 할려고
한 쪽 구석에 쌓아 놓은
쓰레기가 너저분하게 널려있음에도
귀찮고, 짜증스러움을 감춘 채
묵묵히 잘 따라 나서 주었습니다.
이윽고 고속도로에 접어 들고
휴일을 맞아
다들 어디를 가는지
질주하는 차량들 틈속에 파 묻혀
아이들 문제며, 살아가는 문제며
이런저런 잡다한
이야기를 화두로 꺼집어 내어봅니다.
그러나
생각하면 생각 할 수록
이야기하면 이야기 할 수록
지금 놓여있는 현실은 나를 비켜가지 않을 양
떡 하니 버티고 있기에
머릿 속은 실타래 얼키 듯 복잡하기만 합니다.
잠시 동안의 침묵이 흐르고
그 남자는 묵묵히 담배를 꺼내 입에 물어봅니다.
어디쯤 왔을까...
이윽고 눈 앞에 너른 개울이 펼쳐지고
휴일을 맞아 가족 단위로 피서 왔는지
물장구치며 함성을 지르는
아이들의 해 맑은 모습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맑은 물...
높다란 산...
커다란 느티나무
군데군데 피서철 휴양객들이 묵어 갈 수 있는
예쁘게 지어놓은 팬션들이 눈에 들어오고
그림같은 전원주택 들도 보입니다.
우와~~
이런 곳에서 아무 생각없이 한 달간만 살았음 좋겠다.
우리 이 곳에 예쁜 집 한 채 짓고 살을까?
무엇 먹고 살고요?
옥수수 농사 지어서...?
꼭 그런 건 아니지....
그 남자는 그새 말 꼬리를 슬며시 감추며
뭐...조그맣게 집 지어 놓고 왔다갔다 하며 텃밭 가꾸며 전원생활 하면 되지...
그 여자에게 처음부터 내 생각을 이해시키며
동의를 구할려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여행중에 보았던 멋진 그런 곳에서 막연히 살면 좋겠단 생각을 하였던 것이었지요.
그 여자는 지난 어린시절,
시골에서 자랐던 탓인지 시골 생활에 대해서
다소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며 투정을 부렸습니다.
내심 연이 이어져 있는
지금의 사는 곳과 가까운 경기도 양평이면 좋으련만
이미 그곳은 내 자신이 둥지를 틀기에는 버거운 곳이 되어 버린지 오래이고
무엇보다도 인간들의 그릇된 욕망과 허영으로
점칠된 곳으로 변해 있었습니다.
한 여름, 오후의 햇살이 얼굴을 콕콕 찌릅니다.
우리 저 정자에서 잠시 쉬어갈까?
커다란 느티나무가 눈에 보이고 약간은 어설프지만 개량 기와를 얹어 만든
정자가 눈에 들어 옵니다.
먼 길 떠남을 채비하는 매미들은
낯선 길손의 방문에 놀란 양, 목청이 부르틀세라 울어 제치고
바람은 나뭇잎에 묻어 부드럽게 이야기를 건냅니다.
정자 옆 졸졸거리며 흐르는
맑디 맑은 도랑물은 참으로 여유롭게 흐르고...
한 낮 햇볕에 달구어진 도랑 건너 옥수수 텃밭은
마치 커다란 가마솥
한 솥 가득 넣고 찌는 옥수수 익는 냄새가
구수하게 전해주는 듯 합니다...
바람과 한참 이야기하며
그렇게
흐르는 도랑물 소리에 귀 기울이며 있을 때,
경운기 한 대가 수확한 옥수수 자루를 가득 싣고
털털거리며 다가옵니다.
여름 햇빛에 잔뜩 그을린 모습에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웠지만
환갑이 갓 넘었을까?
초로의 농부는 흥얼거리던 노래를 멈추고
낯선 이방인의 방문에 흘깃 거리며
잠시 정자에서 쉬어갈 양
시동을 멈추고 경운기에서 내립니다.
얼핏 스치며 지나는 손바닥은
장갑도 끼지 않은 채 옥수수 단을 베었는지
시 퍼렇게 물이 들어 있었고
힘들었던 지난 세월을 보여주듯
손 등은 두꺼비 등 처럼 두터워 보였습니다.
이윽고 눈이 서로 마주치고,
그 남자가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를 건네자
아마도
'누구네 집에 왔는지, 모르는 사람들이네?' 하면서
있지말아야 할 사람들이
왜 여기에 있는지를, 까닭이라도 묻는 듯한
그런 눈빛으로 바라봅니다.
그 남자는 그런 농부에게
라이터 불을 당겨 담뱃불에 붙여 주면서
용기내어 말을 건넵니다.
옥수수를 따 오시는 모양이죠?
예, 그런데 일손이 부족해서 다 따질 못했어요.
휴일을 맞아 한가롭게 나무 그늘에서 쉬는
그 남자와 그 여자에게 마치 들으라고 하듯 말입니다.
올 옥수수는 이미 모두 따고, 요즘에는 중작을 수확하고 계시단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이곳 옥수수는 그러면서 옥수수 예찬을 늘어 놓으신다.
어르신...
그 옥수수 조금 파실 수 있으시나요?
보아하니 말씀대로 잘 영글었고 쪄서 먹음 참 맛있겠네요...
그런데 어르신,
이 마을에 빈집이나, 집 지을만한 땅
나온거 있읍니까? 하며
그 남자와 그 여자가 누구며,
왜 자기네 마을에 왔는지를 묻기도 전에,
그 남자와 여자는 마을 침입 이유를 건네고,
소식(?)을 기다립니다.
그 촌노는 말 꼬리를 슬며시 감춘 채
"빈 집이 있기는 있는데...!"
이장이 그 집에 대해 잘 알고 있을텐데...
혼잣말로 중얼 거리는 듯
초로의 그 농부는 귀찮음인지
입에 물은 담배를 뻑뻑 피워대며
그 남자와 그 여자에게 전합니다.
아마 이장은 지금 집에 없을 걸...?
마침 오늘 장날이라
아까 읍에 나가는 것 같던데...
그러면서 요즘 땅 나오는게 그리 흔치 않어....
집이나 땅 알아 볼려면 읍에 있는
부동산사무실에 가 알아 보는게 편하지...
아, 맞다!!
그 지역 현황을 잘 알고 있는 부동산 중개 사무실가면 제일 났겠다 싶어
그 남자와 그 여자는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허겁지겁 읍으로 향합니다.
그런데 오늘 휴일이라 어떨지...
한편으로는 기대 반, 염려 반 마음 조아리며 자동차를 내 달리자
그새 읍에 다달읍니다.
마침 장날이라 그런지 북접되는 생소한 낯 선 고장에 와
넋이라도 나간 듯 두리번 거리고 있을 때
마침 문을 연 부동산 사무실이 눈에 번뜩 들어옵니다.
실례합니다...
바깥 날씨와는 달리 시원한 사무실은
낡은 선풍기 한 대가 덜덜거리며 돌고 있고
그 남자와 그 여자가 컴컴한 그림자를 두리우고 출입문을 막고 들어가자
주인인지 직원인지 한 사람이 화들 짝 놀라 쇼파에서 일어납니다.
아마 무료한 시간을 보내자니 잠깐 오수에 취한 듯
괜시리 방해가 되어 나타난
낯 선 방문객에게 계면쩍인 웃음으로 맞이합니다.
어떻게 오셨나요...?
아...네!!
이 곳 괴산에 조그만 전원주택 지을 땅이나 빈 농가주택 있음 보러 왔습니다.
마치 기다리기도 한 듯 잘 왔다고 인사를 건냅니다.
서울이나 대전 그리고 청주 등지에서 많이 보러들 오십니다.
그런데 금액이 얼마 정도의 땅을 찾는지요...? ⊙⊙
이 곳 시세가 어떤데요?
땅 나름예요. 생각만큼 싸지는 않습니다.
전원주택 지을 만한 땅이면 2~300여평 정도를 많이 찾으시는데
딱히 그 정도 평수 나오는게 참 드뭅니다.
그렇죠...
시골 땅 이란 것이 어디 내 입 맛에 꼭 맞게 나오는게 있습니까?
입지 조건에 따라 틀리지만 보통 얼마얼마 정도 합니다.
어디에 가면 그 정도의 땅이 있긴 합니다만...
집을 짓다 말아서요.
건축주가 나름대로 사정이 있어 짓다말고 돈이 필요 해 다시 내 놓았습니다.
그래요?
한 번 보여줄 수는 있나요?
지금은 혼자 있어 그렇고...
어차피 서울 올라가는 길 이라면 가는 길에 직접 둘러보고 가시죠.
찾긴 무척 쉽습니다....
꿀 맛 같은 단잠을 방해한 그 남자의 말이 귀찮은 듯
아마도 '당신네 들이 들어와서 살 수 있는 집이 아니다' 싶기도 하고,
'보여줘야 사지도 않을 것이다' 하는 것 처럼 들리는 듯 합니다.
.....
그 남자가 그 여자에게 묻습니다.
저 큰 개울 건너 저 집인가 본데... 어때?
주변 모습은 괜찮은데...시골 집 치곤 너무 큰 것 아녜요...?
가서 한 번 둘러보자...그러면서
남자만 좋다면, 여자도 괜찮다고 이쁜 대답을 합니다.
이쪽 마을과 저쪽 마을을 잇는 조그만 다리를 건넙니다.
영월이나 이곳에서 가까운 진천을 가면
옛 부터 내려오는 전통방식의 다리가 놓여있어
참 운치가 있어 보이고 마음속으로 정겹게 다가서곤 하였는데
아무렴 어떻습니까?
다리가 없어 무릎위로 바지춤을 걷어 올리고 뒤뚱거리며 그냥 건너는 것 보단
훨씬 났다는 스쳐 지나가는 나의 생각도
편안함과 안락함으로 물들여진
지금의 생활에 길들여진 탓으로 돌리곤 말았습니다.
마을의 어귀에 도착할 쯤에 내심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기대는 하지 않았습니다.
마을 입구에는 지붕이 폭싹 내려 앉아있는 집이 보이고
동네 어귀에 차를 세워 놓고 둘러 볼 양 기웃거리자
저 만치 울타리 그늘에 앉아 쉬고 있는 몇 몇 마을 사람들의 시선이 조금은 부담스러웠지만
집을 보러 간다는 기대에 찬 흥분감에 안중에도 없었습니다.
젊은 사람들이 떠난 마을은 적막만이 밑돌고,
다가 올 겨우살이를 위해 김장 배추 파종을 하는
부부인 듯한 두 노인이 눈에 들어옵니다.
소리쳐 말을 건내봅니다.
'안녕하세요!! 할아버지....'
'볕이 아직 뜨거운데 두 분이서 먼일을 그리하세요...?'
'어데서 무슨일 때문에 오셨수?'
'아...네!!'
'저 산 밑에 있는 집 좀 보러 왔어요'
'저 집은 무슨 사유가 있는지 집을 짓다말고 저렇게 방치해놓고 있네'
그러자 할머니가 말을 거둡니다.
'왜? 저기 와 살라고...?'
'아...네.' '집을 내놓았다 해서 한 번 둘러 보러 왔어요...'
'저 집터 참 좋지' '암...좋고 말고...'
'저 집 짓기 전, 저 집에 살던 사람들 다 잘돼서 도시로 나갔어...'
할머니께서는 벌써부터 젊은 이웃이라도 만난 양
이것 저것 물으시면서 좋아라 하신다.
옛 부터 우리 조상들은 좋은 집터를 고를 때 ‘배산임수’ 라는 말을 흔히 썼습니다.
'배후에는 산이 있고 앞에는 개울이 흐르며,
남향을 바라보고 있는 땅이
최적의 입지조건을 갖추었다고 볼 수 있다'는 이야기처럼
딱 맞아 떨어지는 것 처럼 생각되는 그곳은
마치 저곳을 두고 이야기 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동안에 이 집의 내력을 보여 주는 듯,
짓다 말은 집은
마당에는 훌쩍 자란 잡초만이 무성하고
거대한 허연 콘크리트 구조물과 어울려
군데군데 흉물스러운 녹슨 철근이 보이고
이층으로 오르는 계단에는 부화를 마치고
떠난 새 둥지도 보였습니다.
이층에서 바라 본 전면 풍광은
가히 우리가 흔히 일반적으로 말하는
그림같은 그런 모습였습니다.
겹겹히 쌓인 산 자락하며
마을 앞을 유유히 흐르는 큰 개울하며
그리고 그 앞에 펼쳐진 초록의 논들...
적당히 받쳐주는 집 뒤의 산.
그 옆으로 흐르는 자그마한 도랑하며
이층 발코니에서 손만 뻗으면
빨간 홍시가 손에 닿을 듯한
감나무와 밤나무
그리고 앞 뜰의 커다란 은행나무 하며....
그 남자 머릿속엔 빠르게 그림이 지나갑니다.
여기 거실 전면과 옆 바닥의 시멘 콘크리트를 돋은 부분은 방부목을 이용해 데크를 완성하고,
지붕은 빨간색 그림자 아스팔트 슁글을 덥고
외벽은 월넛과 크림색의 치장 벽돌로 가슴 높이로 쌓은 후에
그 위로는 드라이비트로 마감하고,
거실 창호가 있는 전면 벽은 치장목을 이용해 멋도 부리고
내장이야 뭐, 늘 상 하는 일이니 마루깔고 루바치고 이런식으로 마감하면 되지....
슬라이드 필름이 넘어가 듯, 그림이 착착 그려집니다.
그러나 연실 이리저리 돌아보며
얼굴이 버얼겋게 상기 된 내 모습을 바라보던
그 여자의 얼굴 표정엔 약간은 불만어린 모습이 고조되어 비칩니다.
콘크리트 냄새가 싫어 시골에 살고 싶다는 사람이
흙집이나 통나무집이면 모를까
짓다 말은 이 커다란 콘크리트 집을 무엇때문에 구입 해
돈을 처 발르냐하며 그 남자를 나무라는 것 같았습니다.
푸르름을 간직한 논자락의 볏 잎이 바람에 떠밀려 춤을 춥니다.
초록바람 이었습니다.
나즈막한 산 언덕 아래 시원한 바람에 밀린 햇빛이
산 그늘이 되어 다가오고
저 만치 흐르는 앞 개울은 햇살에 떠밀려 반짝인 채 내 눈을 멀게합니다.
그러나 어떤 일을 시작하면
끝을 봐야하는 나의 조급함과 성급함을
높다란 군자산 자락은 말없이 야단을 치면서 묵묵히 바라 보고만 있었습니다....
- 상주 보은답사 중 달새님이 -
그렇게 시간이 흘렀습니다.
초록의 논은 어느새 황금빛 들판으로 누렇게 변하였고
빨갛게 익은 뒷 뜰의 홍시는 산 새들의 밥이 되어
흉물스럽게 매달려 있었으며
감나무 이파리는 바람에 낙엽되어 힘없이 주저 앉아 있었습니다...
막연한 이상만 품고 땅을 찾았던 지난 여름...
한 번의 아픔은 좋은 경험으로 받아 들여졌습니다.
그새 꼬인 일을 해결하고자 이리뛰고 저리뛰고...
그동안에 마음 고생도 했고 시행 착오를 겪었지만
다시 그 여자를 어우르고, 조르고...
그 여자는 그 남자가 원하는 일이었기에 하는대로 묵묵히 따라 주었습니다.
참으로 고마웠습니다...
그리 어렵지않게 동의를 구해서
괴산에 다시 조그마한 터를 알아보기로 하였습니다.
너른 강과 계곡이 있고
높다란 산이 있는 그런 그림같은 풍광이 펼쳐진 곳이 좋겠지만은
십 여회 이상 괴산 나들이를 통해 땅을 보는 안목도 키웠고
그 땅의 가치에 대해 다시 한 번 돌아보는 계기가 되어
눈 높이를 낮추어 천천히 다시 둘러보자는 생각에
땅이 좀 작더라도 마을과 좀 떨어지고
한적한 곳도 괜찮겠다는 생각으로 잠시 숨을 고루었습니다.
인터넷을 통해 사전 정보를 미리 입수하고
네비게이션 없이 달랑 지도 한 장 들고
번지 수만 머릿속에 담은 채 시골집을 찾기란 힘이 듭니다.
그 남자 역시도 속마음 같아서는
지나가는 촌노에게 아님, 마을 이장댁에 찾아가서
혹시 이 마을에 빈 농가 나온 것 있냐고,
이런저런 이유로 빈 농가를 찾고 있노라고 하면,
쉽게도 구할 수도 있었을텐데...하는 생각을 했습니다만,
그 남자는 쑥맥스럽게 그러지를 못했습니다.
그 탓으로 좀 더 쉬운 길을 놔두고
한참을 돌아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을을 알리는 장승이 보이고
마을 유래가 담겨있는 표지석이 눈에 들어옵니다.
은티마을...
마을 이름도 참 이쁩니다.
몇 채 되지않는 산 비탈 조용한 마을의 풍경이 보이고
좁은 길을 접어들자 포장을 해 쌓아놓은 사과 상자가 보입니다.
두런두런 사람들 말 소리에 이끌려 무작정 집을 들어가니
이제 마악 수확을 하였는지 가족들로 보이는
몇몇이 탐스러운 사과를 선별을 하고 있었습니다.
아저씨 안녕하세요...!!
어디어디를 찾는데요. 찾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 새 좀 나이가 든 아주머니께서 사과를 깍아 덥석 입에 넣어 주십니다.
매 번 느끼는 것 이지만 사람들이 참 순박하고 정이 넘쳐 좋습니다.
이런 시골 인심에 이끌려 조금은 불편하더라도
서로 부딪기며 시골에서 살려는 이유 중 하나 일것 입니다.
모처럼의 설레임으로 오던 길을 다시 되 돌아
이 곳, 저 곳을 두리번 거립니다.
분명 요 근처인 것 같은데 내가 찾는 그 집터는
쉽사리 눈에 들어 오지를 않습니다.
내심 이것 때문에,
이 여자가 툴툴거리며 싫어하지나 않을까하고
염려도 되었습니다.
정보를 준 부동산사무실 관계자와
통화를 하면서도 연신 고개를 기웃거리며,
빈집으로 보이는 집을 찾습니다.
저 집일까?
그래 저 집이면 좋겠다 싶었습니다.
예전의 초가집으로, 볏짚을 걷어내고
슬레이트 지붕으로 바꾼 듯 합니다.
그 짧은 순간에도 어떻게 어떻게 수리하면,
참 좋은 집이 되겠다고 스쳐 지나갑니다.
가파르고, 길지않은 자그만한 언덕을 오르면서도
한 편으로 그리 생각했하기로 했습니다.
경사도가 가파른 만큼 적게 오르고,
지대가 높아지니 풍광이 좋겠지!' 하고
좋은게 좋은 거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합니다.
얼기설기 놓여있는 길을 다시 접어드니
커다란 느티나무가 눈에 보이고
마을을 알리는 또 다른 표지석이 눈에 들어 옵니다.
알록달록 단풍이 곱게 든 자그마한 야산이 둘려 쌓여있는,
몇 가구 되지않는 조그마한 마을이 아늑한 포근함으로 다가왔습니다.
내심 속으론, 이 마을에 있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기대는 하지 않았습니다.
언제나 그렇듯이 산수 좋은 곳을 찾아 온 관광객이나
또는 지나가는 나그네 마냥 휭~~둘러보고 나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을 입구에서 안길을 따라 조금 지나니,
눈에 익은 감나무와 제법이나 정겨웁게 쌓아있는 돌담이 보입니다.
맞어...바로 저 집이다.
얼기설기 쌓아놓은 돌담이 보기 좋습니다.
속으로 쾌재를 불렀습니다.
마치 소풍가서 보물찾기에서 보물이 적힌
그 쪽지를 찾았을 때의 그 느낌이랄까...? 바로 그런 기분이었습니다.
주인이 찾지 않은 늙은 감나무엔
빠알갛게 익은 홍시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고
그 앞으론 마르지 않은 자그마한 맑은 도랑에
피라미들이 한가롭게 헤엄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조금은 약해 보이는 다리 앞에 차를 세우고 집 앞에 다다르니
정겨운 돌담과는 달리, 슬레이트 지붕이 다 허물어져 가는
빈집이 어색하게 느껴지는 순간입니다.
대지가 몇 평 정도되고, 전에 누가 살았는지 그런 건 안중에도 없고
천천히 집을 둘러 봅니다.
돌담의 정겨움이 참으로 좋았으나,
일부 손을 보아야 할 것들이 많이 눈에 들어옵니다.
한 쪽은 허물어져 시급히 손을 보아야 할 듯하고...
전혀 정리되지 못한, 어쩌면 흉물스럽기 까지한 모습이 나타납니다.
애시당초 생각지 않았던 모습입니다.
내가 생각했던 모습은,
집은 초라하고 볼품 없으나, 옛스러움이 묻어나는...그런 집 이었는데,
이건 아니라는 생각도 듭니다.
그래도 초라하고 볼품없는 조건, 그 조건 몇가지는 갖추었습니다...
부동산 사람이 일러준 설명과는 달리 집 터가 그리 커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 남자와 그 여자가 안 마당에 서서 돌담 옆 감나무를 바라 봅니다.
그 둘은, 일단은 눈 앞에 펼쳐지는 모습에 높은 점수를 줍니다.
이 곳, 저 곳을 둘러 봅니다.
집을 손 보지 않은지가 꽤나 된 듯 합니다.
이상하게도 그 남자와 그 여자는,
살것인지, 아님 말것인지를 생각하기도 전에, 집수리를 먼저 생각합니다.
급할 것도 없고, 서두를 이유도 없는데...
복잡한 것은 다음에 생각하기로 하고, 일단 만족하기로 합니다.
남자는 사전에 몇 가지는 준비를 했습니다.
부동산 거래시 주의 사항, 좋은 땅 보는 법, 기타등등 자료를 준비하였으나
아, 이 터가 내가 집 지을 터이다 생각하니 참고사항으로만 느껴집니다.
앞 마당엔 감나무 몇 그루와
석류나무인지 한 그루...
뒤 뜰엔 자연 두릅나무와 고염나무 등
가을 빛으로 적당히 물든
이파리가 좋아 보입니다.
대문은 달지않을 생각입니다.
그냥 삽작문처럼 유명무실하게 경계만
표시될 수 있도록 하면 좋겠단 생각이 듭니다.
뒷 뜰...
구릉진 부분은 정리를 하여,
자연석을 이용하여 석축을 쌓고
돌계단을 놓으려 합니다.
가장 고민스러운 부분입니다.
본래 흙과 볏짚를 넣어
집을 지었다고 합니다만,
외벽을 시멘트로 덮었습니다.
물론 살면서 가꾸기위해 시멘트로 덮었겠지만,
아쉬운 부분입니다.
시멘트를 겉어내고, 황토를 입힐까?
아니면 허물고 새로 지을까?
싶은 생각에 조금은 복잡스러워집니다.
기둥만 조금 더 굵고 조화스럽다면, 벽체와 지붕을 바꾸고 싶은데
기둥자체도 너무 가냘퍼 보입니다.
그래도 둥글게 다듬은 주춧돌은 참 마음에 듭니다.
새로 짓더라도 재활용하면 좋을 듯 합니다.
집을 들어 오면서 보이는 풍경입니다.
바로 앞 마당 밖에는
사시사철 마르지 않은 듯한 맑은 도랑이 흐르고,
그 옆으로는 조그마한 동산이 받쳐주어 아늑하고 포근하게 느껴집니다.
마을 앞, 동구 밖 너머는 문경으로 이어지는 시원스레 뚫린 국도가
그 건너편에는 백두대간 조령산 자락이 보입니다.
무엇보다도 마을 입구엔 언제나 빈 마음을 기댈 수 있는 연풍성지가 있어 좋았습니다.
돌 담옆 전봇대가 더 좋은 경치를 가리는 듯 싶은 생각에 아쉽기만 합니다.
전봇대가 없다면 훨씬 더 좋은 전망이되리라 생각됩니다만
전봇대 역시 옮겨야 할 듯 보입니다.
헛간 역시 철거해야 할 듯 싶습니다.
낡으면 낡은데로 운치라도 있다면, 그냥 두고 싶지만
워낙 낡고 기울어져 있어, 활용해야 할 이유는 전혀 없을 듯 합니다.
허물어 버리고 그 자리에 행랑채 겸 찜질방으로 쓸 수 있는
조그마한 한 칸 짜리 황토집을 배치하고
이웃집과 접한 경계 돌담 쪽 기존 행랑채 역시도 헐어버리고
볕이 잘 드니 만큼 돌담을 낀 작은 꽃밭을 만들면 좋겠단 생각 지녀봅니다.
행랑채와 집 입구 사이에 삐죽 들어 간
바깥 화장실이 있는 자투리 공간은
지어지는 집의 규모에 따라
있을 수도, 없을 수도 하는 공간입니다만,
남는다면 텃밭으로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한 담 너머 하천 부지를 잘 이용하면
마을 끝자락 집이니 만큼,
잘하면 텃 밭으로 활용 가치도 높을 수 있으나
먼저 점유하여 사용하고 있는 사람이
있는지라 너무도 아쉬운 부분입니다.
현재 어떤식으로 집을 지을 것인가
머릿속은 복잡하기만 합니다.
아무래도 기존 집을 철거하고,
새로 신축하는 일만 남은 듯 싶습니다.
계절이 바뀌고 새 봄이 오면
혼자서 천천히 지어볼 생각입니다.
혼자서 짓겠다고 하니,
누가 보아도 그렇겠지만
그 여자가 미덥지 않은 모양입니다.
건축 전공이라 나름대로 알고 있기는 하나
지인들의 조언을 얻어 시간이 걸리더라도 조금은 토속적이고 옛스러운 집을 짓고 싶은 마음입니다.
생각은 경구조 목조와 황토 그리고 돌이 적절히 혼합 된 집을
지을 생각입니다만 어쩔지 모르겠습니다.
아직 시작하지 않아 겁없이 발을 내 딛기는 합니다만,
결코 녹녹치 않은 쉽지않은 여정일 듯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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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질게 길기만 한 겨울 밤.
이제, 마악 소한이 지나고 겨울은 중반으로 치달은 채
가녀린 흐느낌으로 떨고 있을 감이파리 하나가
홀로 빈 집을 지키며, 잔가지 바람에 부딪혀 뚝뚝 잘려져 나가
가지 끝마다 신음을 달고 몸부림치더라도
창호지 사이 새어나오는 엷은 불 빛은, 싸한 바람 사이로 비집고 들어 오면서
우리 모두에게 소망의 불빛으로 다가와 따스함을 전해 줍니다.
동네 어귀에 서있는 느티나무 한 그루...
그늘이 들어선다고, 늘 그곳에 앉아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를 잊고 오랜 시간을 보내다가
힐끗 돌아보아도 그는 여전히 그곳에 서 있기에
그 꿈들을 간직할 수 있었습니다.
"근심은 미래에 일어나지도 않을 일에 대한 걱정이고,
희망은 미래에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는 일에 대한 기대이다."
란 말이 있습니다.
모두들 꿈을 간직하고 계신지요?
혹시 언제 부터인가 그 꿈들을 잊고 살지는 않았는지요?
기축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한 걸음이 모든 여행의 시작이고, 한 마디의 말이 모든 기도의 시작이듯
작은 꿈이 희망이란 빛으로 인도하여 마음을 밝게 비추는 것 처럼
비록 나라 안팎으로 살림이 어렵고 힘들더라도
올 한 해는 모놀가족 모두가 간직하고 있는 소박한 그 꿈들이
꼭 이루어지면 좋겠습니다....
새해 건강하시고 복 많이 받으십시요!!!
2009. 01. 05 W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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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새님은 엉덩이 그 무엇이죠? 이동형 깔판...꼭 지니고 오십시요...^^
글씨가 많아서 읽기를 미루다가 ( 아주 궁금했었는데) ~~ 읽어보았네요.. 난 전원주택으로 이사한다는 줄거리인줄 알았지 뭐에요 ~~!! 그래서 언제 가신다는거에요? ㅎㅎ 나도 많이 꿈꾸는 전원생활^^
나이가 들면 단순한 것이 좋다고 하는데...휘리릭님도 이젠 지천명? 그 소망 꼭 이루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