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4일 죄의 법칙과 내적 인간 하느님은 생각보다 훨씬 더 내게 가까이 계신다. 가족보다 가깝다. 내가 문을 열어드리기를 기다리며 언제나 문밖을 서성거리신다. “보라, 내가 문 앞에 서서 문을 두드리고 있다. 누구든지 내 목소리를 듣고 문을 열면, 나는 그의 집에 들어가 그와 함께 먹고 그 사람도 나와 함께 먹을 것이다(묵시 3,20).”
하느님은 참으로 겸손하시다. 주인인데도 손님으로 내게 다가오신다. 내가 스스로 기꺼이 문을 열어 그분을 맞아들일 때까지 기다리신다. 그러면 안 되는 줄 알면서 문을 열지 못한다. 그분이 내 안으로 들어오시면 겉으로는 그런대로 괜찮지만 지저분하고 정돈되어 있지 않은 모습을 들킬까 봐 걱정돼서 그럴 거다. 하느님이 참으로 좋은 분이라는 걸 듣기는 했지만 믿지는 못한다.
그분은 내 안으로 들어오시면 당신 마음대로 내 모든 것을 바꾸어 놓으실 거 같다. 버리고 쓸고 닦고 재배치하실 거 같다. 그게 마땅하고 또 그래야 내게 더 좋은 줄 아는데도 반갑지 않다. 내게 익숙하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잃는 게 싫다. 그런데 지금까지 내가 좋아하는 것들은 대부분 죄가 되어 나를 괴롭혀 왔다. 무슨 큰 빚이라고 진 거처럼, 노예인 거처럼 그것이 하라는 대로 하고 마치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거처럼 자연스럽게 그것의 지시를 따랐다. 그리곤 그 즉시 후회하고 괴로워한다. 그다음에 또 똑같이 그런다. 참으로 불쌍하고 불쌍하다. 나는 확신한다, 내 힘으로는 이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 주님이 고리를 끊고, 여기서 빼내 주셔야 한다. 내 노예 문서를 없애주셔야 한다.
예수님은 세상에 불을 지르러 오셨고 그 불이 타오르기를 바라신다(루카 12,49). 불은 태우고, 정화하고, 분리한다. 그 불은 불의한 죽음까지 받아들이시는 예수님의 아버지 하느님 사랑이고, 죽음을 이긴 하느님의 인간 사랑이다. 나는 바로 그 세례를 받았다. 어릴 때는 몰랐지만 지금은 세례로 옛 인간은 죽고 새롭게 태어난다는 뜻을 이제 조금 알아듣는다. 그분은 성령과 불로 나를 죽이고 다시 태어나게 하신다(마태 3,11). 내 몸과 신경계 그리고 기억에 새겨진 죄의 법칙과 노예 문서는 내가 죽어 내 육체가 불에 타야 완전히 없어질 거다. 하지만 나의 내적 인간은 주님이 도와주셔서 더 굳건하고 깊고 순수해져서 예수님 바람대로 뜨거워질 수 있다. 인간의 지각을 뛰어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게 될 거다(에페 3,19). 그분은 “우리 안에서 활동하시는 힘으로, 우리가 청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보다 훨씬 더 풍성히 이루어 주실 수 있는 분(에페 3,20)”이시다. 매일 아침 문밖에서 기다리시는 주님을 내 안으로 모셔 들이고, 친구에게 하듯 숨겨 놓은 속내까지 그분과 대화한다.
예수님, 저보다 주님이 훨씬 더 저와 가까워지기를 바라십니다. 친구보다 형제나 부모보다 더 친해지기를 바라십니다. 저와 하나가 되기를 바라십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어머니의 사랑으로 제가 아드님의 그 바람을 더 깊이 깨닫게 도와주소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