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을 맛있게 아주 잘 먹었는데 먹고 나서 그 음식이 무엇인지 알려줍니다. 그런데 자기가 혐오하는 동물을 잡아서 만든 음식입니다. 이 사실을 알면 어떤 반응이 나옵니까? 얼마 전 비슷한 경우를 당한 연예인의 모습이 화면에 나타났습니다. 그 표정을 흉내 낼 수 있겠습니까? 이미 뱃속으로 들어간 것을 뱉어낸다고 나오겠습니까? 먹기는 잘 먹었는데 기분은 그야말로 짜증 급상승입니다. 뭐라고 표현해야 좋을지 정말 생각이 안 납니다. 배신감이라고 하기에는 불합리하기도 합니다. 누가 억지로 먹으라 한 것도 아닙니다. 먹어보라기에 먹어본 것뿐입니다. 그런데 맛이 꽤 괜찮았거든요. 그러니 좀 더 신나게 먹었습니다. 잘 먹고 나서 배신감이라니요?
혹 여자로 알고 사귀며 가끔 입맞춤도 했습니다. 나중에 여자가 아니라 남자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기분이 어떨까요? 구역질나요? 그럴 수도 있습니다. 한쪽은 알고 한 것이고 다른 한쪽은 전혀 모르고 한 것입니다. 속였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아무튼 알고 나면 기분은 된장 씹은 맛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 동안 입맞춤한 것 모두 뱉어내고 싶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고 기분이 돌아오는 것도 아닙니다. 상처로 그냥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알아서 해결해야 하지요. 그 기분, 그 마음은 아마도 오래도록 남아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 후로는 매우 조심스러워질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상대방을 일일이 확인할지도 모릅니다.
혼자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래서 해결해야만 합니다. 외딴 섬에 홀로 산다면 모르되 사회 속에서 사람들과 어울려 살려면 밝혀야 합니다. 아니면 스스로 외톨이 구실을 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뜻하지 않게 발생할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 필요합니다. 자기는 괜찮다 하더라도 상대방이 원치 않는 상처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지요. 남자라고? 여자라고? 평소 알고 있던 이성이 아니었다면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사귄 시간과 깊이만큼 상처는 깊고 오래 갈 것입니다. 양쪽 모두 불편한 일입니다. 그런 사고는 미리 피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미리 알려주어야 합니다. 웬만하면 이미 겉모습으로 드러나 있을 것입니다.
아마도 초등학교 고학년 정도 됩니다. 이사 와서 처음 만난 이웃 여학생입니다. 자기를 ‘미카엘’이라고 소개합니다. ‘리사’는 처음부터 마음에 들었던 모양입니다. 동네 아이들에게 새로 이사 온 미카엘이라고 소개해줍니다. 그 아이들과 어울려 축구도 하고 수영도 하며 잘 어울려 놉니다. 그리고 둘은 서로 좋아합니다. 특히 리사는 보다 적극적입니다. 입맞춤도 합니다. 미카엘에게는 어리고 귀여운 여동생 ‘잔’이 있습니다. 잔이 언니의 비밀을 알게 됩니다. 언니가 잔의 입을 막습니다. 비밀을 지켜줄 것을 다짐받습니다. 하기야 잔도 언니보다 오빠를 더 좋아합니다.
어느 날 문제가 일어납니다. 동생 잔이 동네 아이에게 매를 맞고 들어옵니다. 화가 난 언니가 쫓아나가서 그 아이와 맞장 뜹니다. 그리고 두들겨 패줍니다. 그 아이가 집에 돌아가니 그 엄마가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찾아옵니다. 당신 아들 미카엘이 우리 아이를 이렇게 만들었다고 항의합니다. 미카엘? 엄마는 집을 잘못 찾아왔다고 하지요. 그런데 집안에 있던 미카엘을 지적합니다. 엄마는 일단 사과하여 돌려보냅니다. 그리고 생각해봅니다. 이게 무슨 일이지? 그러잖아도 하고 다니는 짓이 예상치 않았습니다. 니가 왜 미카엘이야? 딸을 불러 호되게 꾸짖습니다.
우리가 자라면서 흔히 경험합니다. 남자는 여자를 꿈꾸기도 합니다. 엄마의 치마를 입어보며 예쁜 모습을 그려보기도 합니다. 반대로 여자 아이는 남자를 꿈꾸기도 합니다. 근육을 세워보기도 하고 격한 운동을 해보기도 합니다. 물론 요즘은 아무리 격한 운동도 여자라고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대체로 집안에서 여자 아이는 힘든 것을 피하거나 피하게 만듭니다. 얼마나 개선(?)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의식 자체가 변하려면 시간이 더 필요할지도 모릅니다. 아무튼 분명한 것은 신체적 차이는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을 극복하는 것은 개인의 문제입니다. 그리고 자랄 때 부모가 얼마나 받아주느냐에 달려있겠지요.
아이들이 축구를 하는데 리사는 껴주지 않습니다. 차별일까요? 사내아이들이 그렇게 규정짓고 있는 것이 어디에서 비롯되었을까요? 모두가 계속 노력하고 있듯이 남녀 불평등이나 차별은 있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구분은 해야 할 것입니다. 예컨대 화장실을 공동으로 사용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글쎄 미래 시대에 그런 일이 생길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남자가 아이를 낳을 수는 없습니다. 양육은 공동 책임이어야 하지만 남자에게 아기를 낳으라고 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남자와 여자를 이제는 자란 후에도 선택할 수 있을 만큼 과학과 의술이 발달하였지만 일단 하나의 성이 결정되고 나면 그에 따른 삶을 인정하고 살아야 합니다.
영화 ‘톰보이’를 보았습니다. 그만한 때 자기 정체성을 찾아가려는 혼란의 감정을 봅니다. 등장하는 아이들의 연기도 괜찮습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좋은 주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