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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들리 프린세스 (lordly princess)
lordly - 1. 귀족[군주]다운, 위엄있는, 당당한
2. 도도한, 오만한
3. 귀족의
“휴...”
은빈은 미예와 학교 복도를 걷다가 문득 한숨을 내쉬었다.
“갑자기 왠 한숨이야?”
미예가 의아한 듯 그렇게 묻자 은빈이 시무룩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이제 3일 후면 유부녀가 된다는 사실이 슬퍼서 그래.”
“나도 니가 유부녀가 된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하긴... 나뿐만이 아니라 우리 반 애들 전부 다 니 결혼 소식 듣고 충격 받았었잖아.”
“그럴 만도 하지. 이 어린 나이에 결혼이라니... 다른 애들은 결혼이라는 단어조차 먼 나라 이야기일 텐데... 고3이 결혼이라니 세상에 말이나 되는 이야기냐고!”
“그러게 말이다. 참. 근데 너 결혼하면 시댁 식구들이랑 같이 사는 거야?”
미예의 물음에 은빈이 인상을 찌푸리며 대꾸했다.
“미쳤냐? 내가 만약 그 녀석 집에서 시어른들까지 모시고 살아야했다면 울 엄마 아빠고 뭐고 다 버리고 집을 뛰쳐나왔을 거야. 그런 결혼은 못하지.”
“하긴... 송은빈 성격에 시어른 모시기는 어려울 거야.”
“맞는 말이긴 한데... 내 성격이 어때서?”
은빈이 퉁명스런 말투로 그렇게 묻자 미예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대꾸했다.
“누가 부잣집 외동딸 아니랄까봐 도도하고 공주병에 자존심도 세잖아. 안 그래?”
“음... 도도한 건 인정. 근데 공주병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공주병이 아니라고? 푸하하. 송은빈. 니 가슴에 손을 얹고 공주병이 아닌지 다시 한번 잘 생각해봐.”
미예의 말에 은빈은 조금 생각하는 듯 하더니 잠시 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맞는 것 같기도 해.”
“맞는 것 같은 게 아니라 아주 딱이라고. 도도공주님. 넌 공주병 말기야. 그리고 전부터 이야기하고 싶었는데 니가 그 권세혁 인가하는 사람의 성격을 가지고 욕할 상황은 아니라고 봐. 네 성격도 만만치 않잖아.”
미예의 말이 끝나자 은빈은 커다란 눈으로 그녀를 흘겨보았다.
“송은빈. 내가 틀린 말 했냐? 그렇게 좀 쳐다보지 마. 니 눈 정말 무서워. 넌 무슨 눈이 그렇게 크냐?”
“그래도 예쁘잖아?”
“야. 너 죽을래? 막 짜증날라 그런다.”
은빈과 미예는 그렇게 티격태격하며 교실로 향했다. 그런데 그때 은빈의 교복재킷 주머니에서 휴대폰 진동이 느껴졌고 그녀는 서둘러 휴대폰을 꺼내어 액정화면을 들여다보았다. 엄마였다.
“네. 엄마.”
- 수업 끝나는 대로 하늘 헤어샵으로 와.
“왜요?”
- 오늘 네 시어머니 되실 분이랑 저녁식사하기로 했는데 예쁘게 꾸미고 가야지.
“저녁식사요?”
- 그래. 무슨 이유에서인지 모르겠지만 오늘 너하고 단 둘이 저녁식사를 하고 싶다고 말씀하셨어. 아무튼 이따가 수업 끝나자마자 헤어샵으로 뛰어와. 알았지?
“엄마. 꼭 그 분이랑 둘만 만나야 되요? 엄마랑 같이 가면 안돼요?”
- 얘가 왜 어리광을 피우고 그래? 앞으로 계속 시어머니랑 둘이 만날 일이 얼마나 많은데... 그때마다 엄마 부를래?
“엄마. 너무해요. 나한테 말도 안하고 약속을 잡고...”
- 은빈이 너 자꾸 엄마한테 말대꾸할래? 너 이따 헤어샵에서 보자.
은빈은 전화를 끊고 멍한 표정으로 걸음을 멈추어 섰다. 그러자 미예가 의아한 표정으로 은빈에게 물었다.
“송은빈. 왜 그래?”
“미예야. 나 오늘 시어머니 되실 분이랑 단 둘이 저녁식사 할거야.”
“그래? 근데 표정이 왜 그래?”
“나... 시어머니 되실 분이 무서워.”
“무섭다고?”
미예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그렇게 묻자 은빈이 고개를 끄덕였다. 세혁의 어머니를 볼 때마다 은빈은 항상 주눅이 들고 기를 펴지 못했다. 외모만으로도 사람 기를 죽이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응. 카리스마가 장난이 아니거든.”
“정말? 우리 수학 샘 저리가라냐?”
“..... 야. 나 농담 아니란 말야.”
은빈이 큰 눈으로 흘겨보며 그렇게 말하자 미예가 머리를 긁적이며 대꾸했다.
“대체 카리스마가 어느 정도기에 그래?”
“글쎄...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야. 그 위압감은...”
“천하의 송은빈이 이렇게까지 겁을 먹다니... 너는 그 무서운 수학 샘 앞에서도 할말 다 하는 간이 배 밖으로 튀어나온 애잖아.”
미예가 눈을 크게 뜨고 그렇게 말하자 은빈이 인상을 찌푸렸다.
“야. 난 뭐 사람 아니냐? 나도 무서운 게 있는 인간이라고.”
“니가 무서워하는 게 뭔데?”
미예가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그렇게 묻자 은빈이 어두운 얼굴로 대꾸했다.
“우리 엄마랑 아빠.”
*
은빈은 시어머니 되실 분과 만나기로 한 레스토랑에 약속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했다. 미리 예약해놓은 창가 테이블에 앉아 초조하게 시어머니 되실 분을 기다리며 은빈은 이런저런 생각에 잠겼다.
‘왜 날 따로 보자고 하신 걸까? 궁금하네.’
은빈이 여러 생각에 잠겨 있는데 갑자기 고상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먼저 와 있었구나.”
은빈이 놀란 얼굴로 서둘러 고개를 돌리자 그녀의 시어머니가 될 여자, 민숙이 미소를 지으며 은빈을 내려다보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 오셨어요.”
은빈이 자리에서 일어나려하자 민숙은 그녀를 제지하며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일어날 필요 없어.”
은빈은 주눅 들고 싶지 않았지만 왠지 자꾸만 민숙 앞에서 자신이 작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주눅 들 필요 없어. 송은빈. 넌 언제나 도도하고 당당했잖아. 어깨 펴라고!’
은빈은 어깨를 펴고 억지로 미소를 지어 보였고 민숙도 미소를 지으며 은빈을 쳐다보았다. 은빈은 민숙의 눈빛에 압도되어 심장이 쿵쾅거렸지만 일부러 태연한 표정을 지으려 애썼다. 잠시 후 레스토랑 직원이 다가와 메뉴판을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음.. 혹시 여기 김효정 이라는 직원이 있나요?”
민숙이 직원에게 그렇게 묻자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
“네. 있습니다.”
“그럼 그 직원에게 주문을 하고 싶은데... 지금 있나요?”
“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직원이 떠나자 은빈이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민숙에게 말했다.
“여기에 아는 분이 근무하시나보군요.”
“그래. 너에게도 소개를 꼭 시켜주고 싶은 아이란다.”
민숙이 미소를 지으며 그렇게 말하자 은빈은 더욱 궁금증이 커져만 갔다. 잠시 후 매우 차분한 분위기의 아름다운 여자가 그들 곁으로 다가왔다. 그녀가 효정이라는 여자인 듯 했다. 효정은 민숙을 보더니 크게 놀란 표정을 지었고 민숙은 미소를 지으며 그녀에게 말을 건넸다.
“오랜만이구나.”
“네...”
“여기서 니가 근무한다는 게 떠올라서 널 불렀어. 참. 인사해. 여기 이 아이... 세혁이와 결혼할 아이다.”
민숙이 은빈을 가리키며 그렇게 말하자 효정은 눈을 크게 뜨고 은빈을 쳐다보았다. 은빈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어색하게 인사를 했지만 효정은 넋 나간 표정으로 은빈을 바라볼 뿐이었다.
“은빈이 넌 크게 신경 쓸 필요 없는 아이야. 세혁이를 좀 따라다녔던 애란다.”
민숙의 말에 은빈은 놀란 눈으로 효정을 쳐다보았고 효정은 온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는 듯 했다.
“효정아. 이제 알겠니? 세혁이는 이제 결혼하니까 우리 아들 그만 따라다니고 너도 얼른 다른 남자 찾아보도록 해. 설마 우리 세혁이 결혼하고 나서도 쫓아다닐 생각은 아니겠지? 그렇게 되면 우리도 널 스토커로 신고할 수밖에 없어. 내 말 무슨 뜻인지 알겠지?”
민숙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렇게 묻자 효정은 고개만 작게 끄덕이고 도망치듯이 테이블에서 벗어났다. 하지만 은빈은 이미 눈치 챘다. 효정이 세혁의 애인이라는 것을.
‘정말 무서운 분이군. 며느리 될 사람에게 아들의 애인을 소개시켜주다니... 게다가 아들의 애인을 한순간에 스토커로 만들어버리는군. 그런다고 내가 속아 넘어갈 줄 아는 모양이지? 흐음... 이렇게까지 해서라도 아들의 애인을 단념시키고 싶으셨나보군. 이런 모욕까지 주면서...’
은빈은 순간 소름이 끼쳤다. 그녀는 점점 더 민숙이 무서워졌다.
*
저녁식사를 마치고 레스토랑을 나와 민숙은 먼저 자신의 차를 타고 떠났고 은빈 또한 그녀의 전용 운전기사인 윤기사를 따라 검은 승용차에 오르려했다. 그런데 그때 뒤에서 누군가 부르는 소리에 은빈은 의아한 표정으로 뒤돌아보았고 효정이 은빈을 바라보며 서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절 부르셨나요?”
은빈이 그렇게 묻자 효정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
“네.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서요.”
은빈은 조금 생각한 뒤 곧 고개를 끄덕이며 윤기사에게 잠시 다녀오겠다고 말한 후 효정과 근처 커피숍으로 향하였다. 커피숍에 도착하여 마주보고 앉은 두 사람 사이에는 묘한 긴장감이 느껴졌다. 은빈은 여러 가지로 궁금했지만 도도함을 잃지 않으며 효정에게 물었다.
“저한테 할 이야기가 있으신가요?”
“항상 궁금했어요. 어떤 사람인지. 세혁이가 늘 이야기했거든요. 결혼 할 여자가 있다고.”
“그런데요?”
“혹시 나이랑 이름이 어떻게 되세요?”
효정의 물음에 은빈은 미소를 지으며 대꾸했다.
“19살이고 이름은 송은빈 이에요.”
“네? 그럼 고등학생? 그런데 어떻게 결혼을...”
효정이 놀란 얼굴로 그렇게 말하자 은빈은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으로 대꾸했다.
“우리나라는 만18세 이상부터 결혼 가능하다던데요. 권세혁이 그랬어요.”
“그래요?”
“네. 그나저나 저 빨리 가봐야 되서 그러는데요. 결론만 말해주세요.”
“아, 그럴게요. 난 은빈씨에게 굉장히 미안해요.”
“왜요?”
“은빈씨는 앞으로 평생 세혁이의 사랑을 못 받을 테니까요.”
효정이 슬픈 표정으로 그렇게 말하자 은빈은 인상을 찌푸렸다.
“뭐라고요?”
“결혼을 하더라도 은빈씨는 불행할거에요. 세혁이가 그랬요. 저 말고 아무도 사랑하지 못할 거라고.”
“그래서요?”
“그래서 난 은빈씨에게 미안해요. 나 때문에... 결혼을 하더라도 행복하지 못할 테니까요. 게다가 세혁이도 나 때문에 억지로 하는 결혼이니...”
효정이 여전히 슬픔에 가득 찬 눈빛으로 그렇게 말하자 은빈은 왠지 속이 울렁거렸다.
‘뭐야, 저 여자. 완전 내숭에 가식덩어리 아냐? 권세혁이 자기를 사랑하는 걸 자랑하고 싶어 미치겠나보지? 권세혁 정말... 여자 보는 눈 없네. 정말 내가 싫어하는 부류야. 착한 척 하는 저런 여자들 제일 짜증나.’
“정말 미안해요. 결혼을 하고 나서도 세혁이는 아마 날 잊지 못하고 나를 찾아올지도...”
“김효정씨. 뭔가 크게 착각하고 있나 본데요.”
은빈이 차가운 표정으로 그렇게 말하자 효정이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네?”
“영원한 사랑이라는 건 없어요. 나는 나이가 어리지만 우리 부모님을 봐도 그렇고... 영원한 사랑을 하는 사람은 없을 거라고 확신하거든요.”
“무슨...?”
“권세혁이 그 쪽을 평생 사랑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너무 확신에 차 있는 것 아니에요? 나는 그 쪽보다 나이도 어리고 얼굴도 더 예쁘고 집도 더 부자고 이제 권세혁과 결혼을 하게 될 사람인데... 내가 더 승산이 있는 것 아닐까요?”
“......”
“원래 권세혁에게 관심이 없었는데 효정씨를 만나고 생각이 바뀌어버렸어요. 그 녀석이 날 좋아하도록 만들거에요. 반드시! 그리고 그건... 분명히 가능한 일이겠죠?”
은빈은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그렇게 말한 뒤 멍한 표정의 효정을 뒤로 한 채 성큼성큼 커피숍을 빠져나왔다.
세혁이가 자신을 좋아하게 만들 거라는 말은 괜히 짜증이 나서 내뱉은 거짓말이었지만 은빈은 왠지 모르게 통쾌했다. 그녀의 얼굴이 미소로 가득했다.
첫댓글 와! 통쾌하다.. 눈팅하고 그냥 나오려다.. 우리 은빈이가 효정이한테 한방먹이는걸 보니..우와!! 완전 감탄.. 난 1편에 나온 연예인 나오는 줄 알았어요.. ㅋㅋ.나오나요??? 은빈이가 자꾸만 멋있어지기를!! 작가님 화이팅입니다^^
재밌어여~! 담편도 ㅎ 얼른올려주세요
재밌어요!
앞으로의 은빈이와 세혁이 무척 궁금합니다~~
담편기대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