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전문/ 이송희
네 얼굴은 수시로 표정을 바꿨어
내 말을 밀고 가면 너의 말이 따라오고
한동안 어지러워서 한 곳을 맴돌았지
깍지 낀 연인들이 눈 밖으로 사라지면
가끔씩 멀리서 봄냄새가 흘러왔지
아침을 지나오다가 납빛이 된 네 얼굴
별들이 떨어져도 컵 속 물은 고요해
싸늘한 눈빛이 어제를 돌아 나올 때
모른 척 낯선 얼굴로 너는 또 문을 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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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아웃/ 이송희
텅 빈 몸속엔 검게 핀 먼지뿐
흐릿해진 문장을 손끝으로 짚어가며
지하에 감긴 눈들을
흔들어 깨운다
난간 없는 계단은 하염없이 흘러내려
핏발 선 눈동자들 바닥에서 신음한다
꺾이고 접힌 몸마다
꿈틀대는 손가락들
야윈 목을 졸랐던 오월의 밤들이
머리채 휘어잡고 끌고 온 이곳에
얼룩진 비명 하나를
촘촘히 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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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아웃/ 이송희
누가 날 여기에 데려다 놓았을까?
안개를 건너가면 새 길이 열릴 거라던
귓속에 맴도는 말이
모래알로 흘러내린다
뭉크의 절규를 저벅저벅 걸었다
허방에 헛디디고 늪지에 빠진 발
경계가 지워진 곳에
덩그러니 몸만 남아
하얗게 물든 밤과 캄캄한 낮의 시간
그 속에 갇혀서 제자리만 맴돌던,
뭉개진 나를 꺼내어
기억을 두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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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게시글
새로운 교감
이송희 시집/ 내 말을 밀고 가면 너의 말이 따라오고/ 작가/ 2024
바보공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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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2.03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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