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자화상)
라파엘로
라파엘로는 이탈리아의 우르비노에서 태어났다. 그는 화가이자 지성인인 조반니 산티의 아들이었다. 라파엘로는 젊어서 부터 조형과, 감정, 빛, 공간표현 문제까지 두루 연마하였다. 그의 천재성은 16세에 그를 대가의 반열에 올려 놓았다.
1504년 그는 미켈란젤로와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있는 피렌체로 이주하였다. 이곳에서 그는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를 비롯한 수 많은 작품을 제작 하였다. 1508년에 교황 율리우스2세의 부름을 받아 로마로 간 그는 프레스코 연작을 제작하기 시작한다.
교황청의 건축과 회화, 장식 등 미술 분야에 관한 감독 책임을 맡고 있던 라파엘로는 37세의 생일에 갑자기 죽게 된다. 그의 위대함을 알아 보고 추기경 직위를 내리려 했던 교황 레오 10세는 라파엘로가 죽자 그를 애도하며 국가 장례를 치르게 한다. 라파엘로는 로마의 판테온에 묻혔다.
아테네 학당 (Scuola di Atene)
산치오 라파엘로 (Sanzio Raffaello)
프레스코 벽화
1509∼1510년
로마 바티칸의 스텐차 델라 세나투라
라파엘로는 <아테네 학당>에서 기독교적으로 순화된 고대 철학을 그렸다.
<아테네 학당>을 관찰하다 보면 둥근 아치 형태의 구조물로 테를 두른 거대한 르네상스 전성기의 건축물에 시선이 머물게 된다. 이 이상적인 건축물은 실제의 역사적 사건과는 무관한 그리스 철학자들의 이상적인 회합을 위한 틀을 이루고 있다.
가장 서열이 높은 사람으로 평가되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중앙에서 열심히 토론하며 서있다.
'신 플라톤주의'로서 보티첼리와 미켈란젤로의 예술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 자신의 이상 세계를 설명하기 위해서인 듯, 플라톤은 오른손으로 위쪽을 가리키고 있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오른손을 앞쪽에 보이는 사물을 향해 쭉 뻗은 상태다.
철학적인 기본 입장이 이렇게 설득력 있게 묘사될 수는 없을 것이다.
앞에 있는 네 개의 계단을 통해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전경에 있는 두 그룹의 철학자들에게로 연결된다. 계단에 비스듬히 누운 인물은 디오게네스로 알려져 있는데, 아리스토텔레스와 오른쪽에 있는 무리들 사이에 매우 분명한 연결고리를 만들고 있다.
이와 달리 플라톤과 왼쪽에 있는 무리들 사이의 연결은 조금 약해 보인다.
이는 작은 책상 앞에 앉아 있는 헤라클레이토스 때문인데, 이 인물은 미켈란젤로의 모습을 본뜬 인물상이다.
라파엘로는 왼쪽에 피타고라스와 에피쿠로스를, 오른쪽에 유클리드와 성 베드로 대성당의 건축가 브라만테, 프톨레마이오스, 페르시아의 짜라투스트라를 그려 놓았을 뿐 아니라 중세의 7학예 (문법,수사,논리,대수,기하,음악, 천문)도 묘사해 놓았다.
왼쪽의 무리들은 비실용적인 지식과 기둥 뒤에 보이는 스핑크스의 머리가 상징하는 비학 (자연의 신비로운 특성과 힘에 대한 이론)에 몰두하고 있다.
에피쿠로스의 위쪽에 있는 인물은 그가 들고 있는 책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소크라테스이다.
건물 밖으로는 광활한 하늘이 보이며 둥근 천장, 아폴로와 아테네의 상들을 안치한 벽감 등은 웅장한 분위기와 우아함을 지녔다.
바티칸 궁의 장식화뿐 아니라 라파엘로의 그림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그림이다.
라파엘로의 치밀한 계산 아래 그려진 상상화이지만 규모나 웅장한 느낌, 조화감 등은 초인간적인 느낌을 준다. 무대 같은 투시도의 공간 속에, 인물들은 놀라운 조화를 이루었고 서로 시각적인 연결을 이루었다.
1점 소실점에 의한 원근법을 따르고 있어, 등장 인물이 많아도 산만하지 않고 집중된 느낌을 준다.
고전 건축의 균형감각과 질서, 선명성, 부분과 전체의 조화가 뛰어난 르네상스 미술의 걸작이다.
이 그림을 완성하기 위해 라파엘로는 많은 스케치를 준비하고 시행착오를 거쳤다.
암브로지아나 미술관에 보관된 최종 밑그림을 보면 그가 피렌체파의 전통을 충실히 따랐음과,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심리 묘사와 미켈란젤로의 육체 표현에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Allegory (The Knight's Dream)
(기사의 꿈) 1503-1504년
이 작품의 주제는 '악덕과 미덕 사이에 있는 헤라클레스' 또 기타 몇 주제로 해석되고 있다. 우의적인 이 그림은 라파엘로가 성숙기에 다가서고 있는 시기의 것으로, 후기 그의 미술의 능숙한 표현력을 엿보게 하여 준다.
라파엘로 미술의 발전은 그의 성장과정이 도표로 볼 수 있는 우르비노, 페루지아, 피렌체 시 등으로 엮어진다. 따라서 이 작품은 라파엘로가 피렌체로 옮겨 갈 무렵의 것이라 할 수 있다.
화면은 중심에 나무 하나가 배치되어 좌우로 정확히 양분되어 있고 그 밑에 기사가 누워 있으며 또 좌우로 인물이 배치되어 삼각형의 구도를 나타내고 있다. 이 삼각형 구도를 통하여, 농촌의 풍경이 넓게 전개되고 원근법이 이에 적용되고 있다.
간결한 시정과 그리고 환상이 담겨져 있다.
<천사>
1500~1년 유채 / 브레샤 토지오 마르티넨고 미술관 소장
확실히 라파엘로의 작품이라고 인정되는 최초의 그림이다.
이 작품에서 그의 스승이었던 페루지노의
감미롭고 품위있는 표현의 영향을 볼 수 있으나,
라파엘로는 이 그림을 제작하기 이전에 레오나르도와 접촉이 있었고,
그의 작품을 열심히 연구한 바 있어, 작품의 고귀한 풍은 이러한 관계에서 생각해 볼 일이다.
이 작품은 1500년 12월 10일 카스텔로시의 성 아우고스티노 성당의
예배 제단화(祭壇畵)로 제작이 의뢰된 것이나,
1789년의 지진으로 제단화는 손상되고,
그 후 남아 있는 부분이 이 그림의 <천사>이다.
<책을 읽고 있는 聖母子 >
라파엘로는 수많은 성모자상을 제작하였다.
그러나 그 많은 작품 하나하나가 특성을 나타내고 있다.
이 그림은 라파엘로의 초기 성모자상 시리즈에 해당되는 것이다.
경건한 자세의 성모의 모습이 특징이며, 이와 대조적으로
예수 아기는 천진스럽고 장난기가 있는 상으로 그려졌다.
특히 성모는 모정과 종교적 경건함이 얽힌 표정을 보이고 있다.
이 그림의 배경은 평온한 자연 경관으로 전개되고 있으나,
이것은 상징적인 세속성을 나타내는 것이다.
평온하고 성스러운 분위기는
온화한 색채와 부드러운 색조로 더욱 강조되고 있다.
이 작품의 성격에 비하여 액자는 장식적이고 화려하여 돋보인다.
1871년에 이 작품은 러시아 황제에게 양도되어
오늘날 레닌그라드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