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름돌
文 熙 鳳
자신의 마음 하나 다스리지 못하는 사람은 불쌍한 사람입니다. 되는 일이나 안 되는 일이나 일단 저질러 놓고 보는 사람은 가엾은 사람입니다. 잘못한 일도 없는데, 부정을 저지른 일도 없는데 상대를 괴롭히는 사람은 악랄한 사람입니다. 일단 자기 마음에 안 들면 상급기관에 고소나 고발을 밥 먹듯 하는 사람은 신중치 못한 사람입니다.
산에 오르면서 바람만 마시고 돌아와도 이득이고, 구름만 보고 돌아와도 이득이라 생각하는 긍정적인 사람이 있습니다. 짐이라 짊어지면 어깨가 늘어지지만 낙이라 생각하면 몸이 가벼운 법입니다. 밥만 먹으면 소인 없는 포탄을 날리는 사람과 가까이 있다는 것 자체가 피곤한 일입니다. 꾸불꾸불한 절망은 하루 빨리 펴야 하는 데도 그걸 알지 못하고 행하지 않는 사람은 무지몽매한 사람입니다.
어릴 적 어머니는 냇가에서 누름돌을 한 개씩 주워 오셨습니다. 누름돌은 반들반들하게 잘 깎인 돌로 김치가 수북한 독 위에 올려놓으면 그 무게로 숨이 죽어 김치 맛을 한층 더 나게 해주는 단단한 돌입니다. 처음에는 그 용도를 잘 알지 못했지만 나중에는 어머니를 위해 종종 비슷한 모양의 돌을 주워다 드렸습니다. 생각해 보니 옛 어른들은 누름돌 하나씩은 가슴에 품고 사셨던 것 같습니다.
누가 가르쳐 주지도 않았을 텐데 자신을 누르면서, 희생과 사랑으로 그 아픈 시절을 견디어 냈으리라 생각해 봅니다. 일상에 시달리는 요즘 사람들, 자신만의 열정과 목표를 위해 무조건 앞만 보고 달립니다. 그러다가 현실적인 한계에 부딪히면 쉽게 우울해 하거나 좌절해 버립니다. 겉으로는 웃고 있지만 마음속으로는 부정적인 사고를 가지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노래 소리 들려주면 고갯길 넘어오는 나귀 걸음마도 흥에 겨운 법입니다. 힘들고 어려운 일을 감당하지 못하고 쉽게 화를 내는 경우는 인격이 무르익지 않은 때문입니다.
뒤돌아보면, 나이가 들만큼 들었는데도, 아직도 스쳐가는 말 한마디에 쉽게 상처를 받습니다. 내 가슴의 골목길에 누가 걷고 있는지 한 번 되돌아보고, 잠이 든 초록바다에 푸른 고등어 유영하고 있는 것 생각하면서 사는 삶은 행복한 삶이겠지요.
지나치게 욕심을 내다가 금방 실망을 해 버리는 사람을 봅니다. 학창시절에 과유불급이란 단어의 뜻을 익히지 못한 탓이겠지요. 우리 육신은 잠시 빌려 쓰다 두고 가는 것, 과욕은 힘든 인생을 살게 하니 서로 나누어 쓰고, 함께 보듬고, 그렇게 건들건들 흔들흔들 손 잡고 ‘산토끼’ 합창하면서 들로 산으로 바다로 그렁저렁 살다 가는 삶은 얼마나 가치로운 삶일까요?
어른스럽지 못하게 팔딱거리는 성깔이며, 여기저기 나설 때를 가리지 못하는 당돌함은 쉽게 다스려지지 않는 고질적인 병입니다. 어린 시절 풀 베기를 하는 어른 옆에서 낫이 스칠 때마다 진한 내음을 주던 풀을 생각합니다. 죽어서도 향기를 뿜어주던 풀을 생각합니다.
나도 그런 못된 성질을 꾹 눌러 줄 수 있는 누름돌 하나 가슴에 품어야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도덕적 가치를 저버린 양심을 가지고 살아가는 일은 힘든 일이지요. 양심을 새 것으로 교체해야 하겠습니다. 어떤 이가 그러대요. 살아보니 마음 편한 게 좋고, 마음이 편한 사람이 훨씬 좋고, 소박함 그대로가 제일 좋고, 반성할 줄 아는 사람은 금상첨화고… 맞는 말입니다. 그런 사람과 마주 앉아 식사를 하면 돌까지도 소화가 될 것 같아요.
살아오는 동안 사람을 귀하게 여길 줄 알고, 상대 탓이 아닌 내 탓으로 돌리고, 맑은 정신과 밝은 눈과 깊은 마음으로 뜨거운 시선을 보여주는 그런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큰 행복이라는 걸 알게 되었지요.
사랑하는 부부 간에도, 부모 자식 간이나 친구 간에도, 서로에게 그런 누름돌이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가정법원에서 재판과정을 방청하다 보면 내가 보기에는 정말 아무 것도 아닌 일 가지고 등 돌리고 살려 삿대질하는 모습을 보고 아쉬워 합니다.
오늘따라 정성껏 김장독을 어루만지시던 생전의 어머님 모습이 유난히 그리워집니다. 지나치게 욕심 내지 않고, 억지 부리지 않고, 더러는 적당히 포기도 하고, 못 본 척 눈도 감으면서 꼭 필요한 만큼만 욕심내면서 사는 삶은 좋은 삶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