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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느림보님들을 태운 리무진이 해발 1,000 고지인 운두령 고갯마루를 오르기 위해 돼지곱창 처럼 배배 꼬인 급경사 S자 길을
하염없이 오른다. 영차 영차.
골바람이 제법 세차게 불어 제키는 운두령엔 이미 도착한 여러대의 관광버스가 마치 오색으로 물 들인 누에떼 처럼 줄 지어
서 있었고 그 함지박 같은 뱃속에선 형형색색의 산꾼들이 저 마다의 행복감에 젖은 표정으로 꾸역 꾸역 밀려 나오고 있었다.
이룬 엄동설한에도 반바지에 반팔티를 입고 산행을 하시는 4060 청춘산악회의 철인 대장님 얼굴도 보인다. 반가이 인사를
나누고 보니 문득 백사가 생각 난다. 어쩌다 여름철에 산삼을 먹은 뱀은 돌연변이로 흰뱀이 되는데 그 산삼의 강렬한 기운
덕분에 변온 동물인 뱀이 한겨울에도 동면을 하지 않고 흰눈 위를 돌아 다닌다고 하여 일명 설상사라고 불리워 졌다고 한다.
4060 대장님은 산행을 오래 하셨으니 필경 산삼을 두어 뿌리 정도 캐서 드셨지나 않을런지 궁금.
천년 세월을 모진 비바람과 함께 굳굳히 버텨 온 주목 군락과 함께 멀리 가칠봉과 설악산이 건너 다 보인는 계방산 정상의
운치는 필설로 형언키 어렵다. 수박 껍띠기 백번 핥아 봐야 그 향긋한 속맛은 결코 알 수가 업따. 구래서 방향을 바꿔 잠시
제 철 없던 시절로 기억의 나래를 슬쩍 펼쳐 보면 짜장.
지지리도 못 살던 60년대, 고향땅에서 토담벽을 사이에 두고 함께 자라던 내 친구는 먹성이 워낙 좋아서 아니 걸신 들린 넘
처럼 식탐이 많다고 하여 먹쇠라고 불리었는데 별명이 연상 시키는 이미지와는 달리 똥지름 막대 처럼 키만 멀쑥하게 클 뿐
북어 대가리 처럼 살가죽만 겨우 붙어 있을 따름이다.
우선 집안에서 삼시 세때를 제대로 챙겨 먹질 못 하니 한창 나이에 배가 고풀 수 밖에 없고 영양이 부족하다 보니 얼굴엔 항시
허연 마른 버즘이 가실 날이 없다.
옛날 어른들은 텔레비가 없는 탓에 해만 떨어 지면 이불 밑에서 맹꽁이들 처럼 엉겨 붙어서 릴리리 맘보춤 추는 일 이외엔 달리
할 일이 없었던 가 보다 먹쇠네도 형제가 5남 1녀나 되었는데 이 여섯이란 숫자는 배 다른 이복 형제를 제외한 숫자이다.
꽤나 내력 있는 집안이라 물려 받은 재산만 해도 부자 소리는 너끈하게 들었던 먹쇠네 가문이 몰락하게 된 결정적인 사유는
군청 보건소에서 간부로 근무하던 먹쇠 아버님의 주체할 수 없는 가운데 토막 덕분이다. 여기 저기
어지럽게 씨앗을 뿌리고 다니던 먹쇠 아버님이 급기야는 인근 도시에 있는 어떤 니나노집 (자부동집,방석집,매미집,작부집,
유곽,기생집) 주모와 동거를 하다 군청 감사실에 축첩 문제가 불거지면서 공직생활을 접게 된다. 그래도 꼼수에는
밝아서 퇴직을 하면서 보건소에 근무하였다는 경력을 핑계 삼아 다방이나 술집 등등에 직업 여성을 알선하는 직업 소개소 면허를
취득하여선 그 즉시 개업을 하기는 했지만 몇 푼 벌어 들인 돈은 죄다 첩년 속고쟁이 밑으로 쑤셔 넣기 바쁘다.
먹쇠란 놈이 배가 고푸지 않으면 외래 이상할 노릇이다.
고학을 하여 갠신히 고딩핵교를 졸업한 먹쇠는 궁리 끝에 경기도 파주에 있는 모 2년제 전문대학엘 지원 한다.
2년간 기숙사에서 아주 저렴한 학비로 군대식으로 생활하곤 막상 졸업을 하면 그 학교와 연관이 있는 모 금융단체에 입사를
할 수 있어 머리가 괜찮고 집안에 쪈이 없는 집 아이들이 몹시 선호하는 학교 였었는데 내 친구 먹쇠는 당당히 합격을 한다.
핸펀이 없던 시절이라 어느 날 내가 다니던 학교로 우편 엽서가 한장 날아 든다.
2년제 학교이다 보니 벌써 졸업반이 되었고 성실하게 학업에 매진한 탓에 학교에서 중책을 맡는 간부도 되었으나 기숙사 생활로
인해 외출이 자유롭지 못하니 자신이 졸업하기 전에 꼬옥 한번 파주에 있는 자신의 학교로 놀러를 함 오라는 것이다.
광화문 인근에 파주로 가는 완행버스가 있다 하여 종로에 있는 Y.M.C.A. 지하 다방에서 기생놈과 만나기로 약속을 하곤
시간에 맞추어서 지하 다방으로 내려 가니 어두컴컴한 구석에서 일찍 온 기생놈이 반가이 손을 흔드는데 가까이 다가 가서 보니
기생놈 옆에 웬놈의 빠꾸샤가 한마리 터억 허니 버티고 앉아 있다. 돼지 개량종은 영국산이 대부분인 가 보다.
허연 요크셔에 거무튀튀한 빠크셔 그리고 햄프셔와 두룩져어지 등등이 있는데 기생놈이 새로 사귄 여친이라고 급거 소개를 하는
이 빠꾸샤는 비대한 몸집에 털이 투실 투실한 앙고라 털쉐터 꺼증 껴 입었다. 그리고
가슴팍엔 말이 세마리나 새겨진,작은 접시 크기 정도 되는 마패를 목걸이 삼아 걸고 있었고 마패 옆엔 배꽃 무늬가 있는 모 여대
뺏지를 보란듯이 처억 붙이고 있다. 마패를
목걸이로 걸고 다니는 미친년 널 뛰는 팻션은 보다 보다 처음 본다.
재수 밥맛이란 심사로 우선 다방에서 차도 마시지 않고 터덜거리는 완행버스를 타고는 가만히 자리에 앉아 있으니 빠꾸샤가
입이 근질거려서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던 가 보다. 빌어 먹을 자신이 다니는 학교 자랑이 늘어 진다.
경주에서 나오는 돌이라고 전부 옥돌이 아니다는 생각에 딱 한마디 물어 보았다. 학과는요?
다 뒤져가는 목소리로 체육과를 다닌다고 얼버무린다. 전공이 호옥시
유도나 역도를 하느냐고 넌지시 물었더니 그때 부턴 똥 씹은 얼굴로 파주에 도착할 때 까지 말 한마디 없다.
70년대 당시만 해도 예체능계는 개털이라 특히 체육과는 운동하곤 아무런 관련이 없는 보결생이 엄청 많던 시절이다.
터덜거리는 완행버스에서 한참이나 시달린 후에 먹쇠네 학교로 찾아 드니 기숙사 현관에 반가운 먹쇠 얼굴이 보인다.
그리 넓지 않은 캠퍼스를 잠시 돌아 본 후에 먹쇠놈이 철조망을 넘자고 한다.
월담을 하여 인근에 있는 농촌마을에 있는 구판장 비슷한 구멍가게에서 죄 없는 노가리 몇 마리 꾸버 놓곤 보리차 꼬뿌에
막소주를 댓빙으로 디리 부어서 정신 없이 퍼 마셨다.
스텐 젓가락을 두들기며 당시 유행하던 패티김의 이별 부터 시작 해서 내가 애창하는 인천의 성냥 공장 아가씨 꺼증 동네가
떠나 가라고 노래를 부르고 나서야 자리를 털고 일어 나니 먹쇠란 놈이
자신의 기숙사에서 꼬옥 저녁을 먹여서 보내야 한다며 팔을 끌었던 건 기억이 나는데 잠시 필름이 끊긴다. 눈을 떠 보니
기숙사 구내 식당에 내가 친구들과 이미 식판을 받아 놓고 앉아 있었는데 아마도 대화하는 목소리가 다소 컸었던 가 보다. 갑자기
식당 한 켠에서 어떤 건장한 사내가 너희들 뭐야 임마 이새끼들 여기가 어딘데 함부로 떠들고 지랄이야 라고 하더니 자기 쪽으로
오라고 손짓을 한다. 이너무 술이 웬쑤다.
이미 먹쇠넘 얼굴은 사색이 되었는데 영문도 모르는 난 비틀 거리며 그 사내 쪽으로 다가 가니 느닷없이 주먹이 날아 든다.
상대방의 주먹을 피하면서 맞받아 치는 걸 복싱에선 크로스 카운터라고 한다. 살짝
고개를 숙임과 동시에 반사 신경으로 내 오른손을 뻗었긴 하지만 다행히도 주먹으로 가격을 하진 않고 잽싸게 그 놈의 모가지를
움켜 쥐고 몇 번 흔들었던 기억은 나는데 이너무 술이 얼마나 떡이 되었는지 또 필름이 끊긴다.
잠시 후 정신이 돌아 와서 사방을 둘러 보니 참으로 가관이다.
나하고 시비가 붙었던 인물은 훈육을 담당하는 기숙사 사감이라고 하는데 어쩔줄을 모르고 배식구 앞에 서 있었고, 마침 저녁
식사를 하러 나왔던 그 학교 약 백여명의 학생들이 사감과 나를 중앙에 두고 직경 약 15미터 원을 그리며 삐잉 둘러 싸고 있다.
셰익스피어의 말 처럼 죽느냐 사느냐 이 문제만 남았다.
천하장사 삼손은 당나귀 턱뼈라도 갖고 있었지만 난 대항할 아무 것도 없다. 기생놈은 친구가 사지에 빠졌는데 콧배기도 보이질
않는다. 이판 사판 니그지리 개송판이란 심정으로 그때 까지도 배식구 앞에서 사태를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사감 선생을 향해 오른손 시지를 창날처럼 날리면서 횡설 수설 하기 시작한다.
야! 이 씁새끼야 내가 니 놈의 학교에 놀러 와서 밥 먹는 식당에서 다소 큰소리로 대화를 한 것 외에 달리 잘못한 것이 무어야?
목소리 좀 크다고 해서 니 놈이 생면부지의 사람에게 쌍욕을 할 권리가 어디 있으며 또 오라고 해서 순순히 제 발로 걸어 온
놈에게 주먹질을 해? 넌 평소
사감이라고 해서 이 학교에 다니는 돈 없고 불쌍한 촌놈들을 욕찌거리와 폭력으로 다스리니? 그래 좋아
삼국지엘 봐도 관우와 장비가 여포와 붙을 때 쫄개들을 대동하지는 않어 장수란 건 일대 일로 맞 붙는거야 임마.
니 놈이 주먹이 울매나 쎈지는 모르지만 주먹 자랑할 일이 있으면 나 한테 일대 일로 함 댐벼 봐 이 X새끼야. 그리곤
잠시의 틈도 주질 않고 주위를 에워 싸고 있는 그 학교 학생들을 향해서 일침을 가 한다.
난 니네 학교에서 간부로 활동하고 있는 먹쇠란 놈을 만날려고 먼 길을 달려 온 친구인데 오랫 만에 만나 함께 식사를 하며
정담을 나누다 보니 다소 목소리가 컷었던 건 사실이지만 이런 하찮은 일로 쌍욕을 하기 바쁘게 너희들의 사감이라고 하는
저 작자가 나에게 주먹을 날리기에 정당방위 차원에서 잠시 목을 움켜 쥐고 내 자신을 보호했던 것이 사태의 전말이야
니네들이 사감의 편을 들어 나에게 위해를 가 함은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해 그렇게 하면 아마도 난 들것에 실려서 이 학교를
벗어 나겠지 허지만
내 몸에 제일 처음으로 손을 댄 놈은 내가 몸을 추스리고 다시 이 학교로 오는 날엔 모르긴 해도 등짝에 사시미 칼 한자루는
틀림없이 박혀 있을꺼야. 이 말을 하는 그 순간
내 스스로가 느끼기에도 내 눈알에서 시퍼런 살기가 뿜어져 나옴을 느낄 정도였다.
잠시 학생들이 웅성 거리는 와중에 황급히 무리들 사이를 삐집고 들어 온 먹쇠가 내 팔을 잡아서 뒤로 끈다.
묘하게도 내 뒤를 감싸고 있던 일단의 무리들이 슬그머니 퇴로를 열어 주는 틈을 타서 식당 바깥으로 나오면서 마지막으로
또 한번 더 필름이 끈겼다가 눈을 떠 보니 학교 담장 너머 봄나물이 파릇 파릇 돋아 난 논두렁에 난 엎어져 있고 내 옆에는
먹쇠놈이 웅크리고 앉아서 이젠 학교 생활도 끝장 났다면서 대성 통곡을 한다. 나도 그제서야
맥이 쭈욱 빠진다. 그날 따라 휘엉청 밝은 달님이 어찌나 밝았던지 논두렁에 떨어 진 먹쇠놈과 내 눈물이 먹물을 뿌린 듯 하다.
저 사감이란 인간이 내가 다니는 학교에 어떤 조치를 아니 한다는 보장도 전혀 없다.
달빛 아래 부등켜 안은 두 촌놈은 하염 없이 울었다.
며칠 후 혹시나 하던 먹쇠놈의 연락이 마침내 왔다. 아마도
보따리 싸서 고향으로 가기 전에 내 얼굴이나 보고 갈 작정이려니 하고 풀이 푸욱 죽은 얼굴로 퇴계로 어느 튀김집으로 들어 가니
환한 얼굴로 먹쇠놈이 나를 맞는다.
사건 다음 날 모든 걸 체념하고 사감실로 불려 들어 가니 사감 선생님께서 딱 한마디를 하시더란 것이다.
식당에서 깽판 치던 네 친구 그놈 언제 한번 더 학교로 놀러 오라고 구래라 내가 제대로 술 한잔 사 주께.
내가 그날 아니 마쟈 뒤지고 살아서 나왔던 이유는 세가지로 추정 된다.
첫째는 시골에서 돈이 없어서 어렵게 기숙사 생활을 하며 욕설과 폭력으로 혹독하게 훈육을 받던 학생들이 어느 날 느닷없이
나타 난 고슴도치 머리의 어떤 인간이 자신들의 포식자인 사감을 쥐 잡듯 잡아 주니 아마도 대리배설의 쾌감을 느꼈던 것과
둘째론 내 친구가 그 학교에서 상급 간부로 활동하고 있었다는 점이고
마지막으론 술이 떡이 된 놈이 수 많은 무리 앞에서 조금도 기 죽지 않고 공갈을 쳐 대는 그 눈빛의 살기가 몹시도 거슬렸다는 것.
못 살던 시절엔 학교에서 마져 걸핏 하면 선생님들이 학생들 뺨따구니를 심심찮게 갈긴다. 군대에선
말할 것도 없는 일이다 물론 지금 세상에선 보기 드문 일이긴 하지만 그런 야만적인 행동이 횡횡하던 시절이 그리 오래 된 일은
아니다. 원래
사람의 뺨을 치는 일은 쬭빠리 왜놈들의 전매 특허 이다. 일제 때
이런 잘못된 교육 관행을 몸에 익혔던 사람들이 해방 이후 교직이나 군대로 스며 들어 가선 자신이 받았던 가혹 행위를 보복이나
하듯이 제자들에게 부하들에게 서슴치 않고 행 하게 된다. 연세 드신 분들의 말씀에 의하면
악독한 일본놈들은 자신이 신고 다니던 가죽 슬리퍼를 벗어 선 사람의 뺨을 후려 갈겼다고 하는데 사람이 사람을
특히나 회초리 같은 어떤 매개체가 없이 직접적으로 가격을 하는 행위는 절대로 삼가야 할 행동이다.
살이란 어떤 나쁜 기운이 얻어 맞는 상대에게 가감없이 전달되기 때문에 어떠한 불상사가 일어 날지 아무도 모를 일이다.
아무리 술이 떡이 되었다고는, 상대방이 사감 선생님인줄 미처 몰랐다고는 하지만 내가 그런 미친 놈 같은 행동을 했던 것 또한
사유가 분명 있다. 난 그 당시
군바리 교육 받으면서 난생 처음으로 무자비한 구타를 감내하던 중이였었고 어떤 새끼든 걸리기만 하면 죽여 버리겠다는 생각
뿐이였었다. 그리고
친구 학교의 사감에게 그런 무지막지한 언행을 하게 된 또 하나의 결정적인 원인이 내 마음 깊은 곳에 웅크리고 있다가
사건이 벌어진 그날 화산처럼 분출하였단 걸 난 늦게서야 깨 닫는다. 선생님에 대한 적개심에 가까운 분노를 갖게 된 건
중학교 2학년 때 당시로선 보기 드물게 머리를 뽂고 옷차림도 묘하게 한, 얼굴이나 몸은 폣병환자 처럼 오그라 붙은 어떤 젊은
미술 선생님 한 분이 우리 학교로 부임을 하셨는데 문제가 심각한 인간이다.
우선 이상 야릇한, 시중가 보다 월등히 비싼 미술교재를 밑도 끝도 없이 요구를 하는데 물론 학교 앞 문방구와 짜고선 정상 판매가
에서 자신에게 돌아 올 리베이트를 이미 가산한 고가의 미술교재인데 이것이 첫번째 문제였었고 이 돈으로
과연 무었을 했는지는 잘 모르지만 후일 학생들이나 후임 미술 선생님의 말씀에 의하면 이 개같은 인간이 우리 학교에서 서무를
담당하는 젊은 여직원과 이미 동거를 하고 있었다는 점이 두번째의 문제라면 마지막 문제는
참으로 황당하다. 당시 중학교 2학년이라면 몸의 발육 정도가 요즈음의 초등학생들 정도 밖에 되질 않는데 이 개놈이 수시로,
별 다른 이유도 없이 학생들을 상대로 주먹질을 해 대는데 그 폭력성이 심각하다. 나도 딱 한번 얻어 맞아 본 적이 있는데
친구 둘과 쉬는 시간이 끝나서 교실로 뛰어 가던 중에 이 개놈이 아무런 잘못도 없는 우리를 불러 세우더니 횡대로 벌려 세우곤
눈을 감으라고 한다. 언제 주먹이 날아 올지 몰라 거의 공황 상태에 이를 즈음에야 내 옆에 있는 친구를 우선 한방 갈긴다.
손바닥으로 뺨을 치는 것이 아니다. 주먹으로 속된 말로 아구창을 돌려 버리는데 체구가 작았던 우리들은 한방 맞으면
적어도 2~3 미터 뒤로 날아서 나자빠 진다. 물론 잠시 후에 내 관자놀이에도 그 개놈의 주먹이 날아 들었었는데 얼결에 뒤로
나자빠지고 나니 한동안 앞이 하나도 보이질 않아 정신이 하나도 없었는데 더 더욱이 기분 상했던 일은 이 개같은 선생놈이
희열에 찬 얼굴로 우리를 내려다 보고 있었단 것이다.
사람이 말하고 생각하는 걸 6식인 의식이라고 하고 그 의식의 내면에 7식인 잠재의식(말라야식) 그리고 더 깊은 내면에 8식인
무의식(아뢰야식)이 있는데 보통의 사람들은 잠재와 무의식에 내장된 것에 대해서는 전혀 인지를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잠재와 무의식에 사람들은 알게 모르게 많은 영향을 받는다고 한다. 정신분석학의 시조인
지그문트 프로이드나 칼 매닝거 같은 학자들과 대부분의 정신과 의사들이 환자를 치료할 적에 사용하는 방법이 바로 잠재와
무의식에 들어 있는 어떤 좋지 못한 기억을 자신의 입으로 스스로 토하게 하여 그 병을 치료하는 것인데 아마도 나도
그 개같은 미술선생에 대한 적개심이 마침 그날 주먹을 휘 두르는 사감을 만나면서 분출했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머 되먹지 못한 제 무용담 자랑할려고 장황한 글을 써 내려 온 건 결코 아닙니다.
군바리 제대하고 막바로 취업이 되어 대전지점으로 발령을 받은 난 충청남도 서쪽 지방을 담당하면서 그날도 천안 서산 당진을
거쳐 늦은 시간에 홍성엘 도착하여 여관방으로 들어 가기 전에 한 거래처라도 더 방문을 한답시고 아직 문이 열려 있는 거래처를
들어 가니 너무 늦은 시간이라 사장님은 보이질 않고 어랍쇼
아래 위로 새카만 쬴티와 사타구니가 꽈악 죠이는 면바지를 입은 어떤 젊은 여인네가 다리를 꼬고 앉아 있다가 어쩐 일로
오셨냐고 묻는다.
본사에서 온 담당 직원이라고 인사를 드리며 명함을 건네니 흔쾌히 테이블에 앉으라고 하더니만 따끈한 홍차를 한잔 건넨다.
전형적인 미인형 얼굴에 꼬고 앉은 몸매 또한 연예인 뺨 치게 환상적이다. 그렇지 않아도
여관방에 혼자 들어 갈 일이 참으로 난감하던 차에 이 무신 횡재란 말이냐 하면서 어떤 개수작을 별려서 저렇게 퍼덕 퍼덕 거리는
활어회를 한 입에 먹을 까 하는 궁리로 생침을 꼴까닥 이면서 여기 직원으로 새로 채용되었느냐고 넌지시 물어 보니 흐미
사장님 따님이란다. 이쯤 하면 사랑 받고 돈 받고 이 가게는 자동뻥으로 내꺼 흐 흐.
여자는 머리에 든게 별로 없기 때문에 일단 꼬실려고 마음을 먹으면 우선 추켜 세워 주어야 된다.
혹시 직업이 모델이라도 되십니껴? 우아한 자태가 시몬의 흰 목덜미 처럼 눈이 부시게 아릅답습니다.
제가요 배꽃 무늬가 뺏지에 새겨 있는 여대 체육과를 졸업해서 그래요. 아저씨도 저랑 비슷한 연배 같아 보이는데
학교는 어딜 나오셨냐고 묻길래 모모 학교를 아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을 했다고 하니 어마나
제가 학창 시절 아저씨가 나오신 그 학교 어떤 불량배 같은 학생을 잠깐 만난 일이 있는데 그 학교 원래 그래요? 성질 더럽더만요.
어떤 개 같은 새끼가 학교 망신을 시키고 다녔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 인간 덕분에 한참 잘 나가던 작업이 엉망이 되는 듯 하여
그 인간이 여간 원망 스러은 것도 잠시 잠깐 홍차를 훌쩍이면서
이 묘령의 여인네를 샅샅이 훑어 보노라니 함 중아가 부른 카스바의 여인 처럼 어데선가 본 듯한 한번쯤은 만난듯한 인상을
지울 수가 없는데 도무지 기억엔 없다. 허긴
내 주제비에 보리 꾹단지 가튼 여학생 몇 번 만난 일 외엔 로맨스라곤 없었으니 저룬 절세 미인을 만났으면 기억을 못할 리가
만무한 일이다. 먼가 캥기고 찜찜한 생각이 들어 내일 아침에 다시 한번 더 찾아 뵙겠다고 하면서 황급히 자리를 떠서
썰렁한 여관방으로 들어 오기 무섭게 거래처 카드를 꺼내 들고 보니 사장님 성함이 아니다 다를까 예상했던 대로 아주 희성인
가씨가 틀림 없다. 비싼 요금을 감내하면서 시외전화를 돌린다. 거두절미하고
야! 기생 나 돌삔데 너 말이야 모가지에 마패 걸고 다니던 돼지 같은 년 있잖어 내가 파주에 있는 먹쇠네 학교에서 깽판 치던 날
델꼬 나왔던 그 빠크셔 말이야 성씨가 가씨라서 네 놈이 까재(가재) 까재 하면서 불르던 그 여학생 고향이 홍성 맞니?
어떻게 알았니?
아버님께서 가씨 성을 갖고 이런 이런 사업을 하시는 분 마져?
네가 어떻게 알았냐구?
갑자기 등짝에서 식은 땀이 죽죽 흘른다.
살 조금 뺐을 뿐인데 그때 봤던 빠크셔가 뻔데기라면 오늘의 이 여인네는 우화 과정(탈피)을 거친 매미의 모습이 아니던가
여자들의 변신이란 손오공의 둔갑술을 무색케 한다던 말이 새삼 떠 오른다.
파주에서 수백명을 눈 앞에 두고 객기를 부리던 천하의 이 돌삐가 내일 아침이면 물론 내가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빠크셔네
아버님 가게를 찾아 가서 빠크셔 면전에서 굽신 굽신 거릴 일을 생각하니 눈앞이 아득하다.
빠크셔가 나의 정체를 알아 채는 날엔 내 인생 아작나는 날이란 생각만을 염두에 두면서 빠크셔네 가게문을 배시시 열고 들어
가는 내 뒷모습은 아마도 내 친구 백정놈이 도축장으로 끌고 들어 가는 소 꼬락서니가 아니였었겠나.
오직 먹고 살아야 겠다는 속물스런 생각만을 염두에 두면서 난 오늘도 그날 처럼 단지 숨쉬기 운동만을 할 따름이다.
68년도 울진 삼척지구에 침투했다 군경들의 추격을 피해 달아 나던 무장공비 다섯마리가 찾아 들어, 공산당이 싫어요를 외치는
이 승복 어린이를 칼로 입을 찢으며 무참히 살해 했던 그 비극의 현장에 생가가 복원되어 있었다. 벽체를 귀틀로 만든
자그만 방 두칸에 외양간을 겸한 초라한 부엌이 일자로 서 있는 말 그대로 초가 삼칸집 이다. 이 승복군이 다녔다는
분교가 어디에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려운 형편에도 불구하고 그 험한 길을 달려 자식들을 가르쳤던 승복군의 부모님과
승복군 그리고 오지의 분교에서 승복군을 비롯한 여러 산소년들을 지도했던 어느 이름 모를 선생님의 애뜻한 마음이 승복군의
생가 앞에 서니 참으로 묘한 감정으로 떠 오른다.
부엌에 소 여물을 쑤는 큰 가마솥과 여물통이 있는 걸로 보아 약간의 농사도 지었겠지만 아마도 승복군네 가족들은 화전을 일구어
농사를 지었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지금은
화전민을 찾아 볼 수 없는 세월이지만 화전민이 우리땅에서 사라 진지도 그리 오래 된 건 아니다. 한 때는 화전민 숫자가
몇 만명이 넘었다고 하는데 화전민이 산불을 일으키지 않고 적당한 수준에서 산림을 태우는 묘한 방법이 있더라구요. 우선
불이 과도하게 번지지 않게 하기 위해선 바람이 잠잠한 날 이른 아침에 아직 풀잎에 맺힌 이슬이 말라 버리기 전에 산 높은 곳에서
아래로 불을 지른다고 합니다. 이슬과 역방향의 순한 바람을 이용하는 참으로 슬기로운 지혜가 아닐까요?
으 으 음 아마도 2월 어느 날 또 다시 운이 좋아 느림보님들과 함께 산행을 하게 되면 산행기에 해병과 똥방위란 주제로
잼난 글 올려 드리겠습니다. 기대 만땅. 글구
이번 글이 넘 장황하고 지루하지나 않았는지 약간은 염려 스럽습니다.
다가 오는 구정 즐겁게 보내시고 우리 모두 건강들 하십시다.
분당 탄천변에서 리오데자네이로의 카이만 돌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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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우선 장문의 글에 경의를 표합니다.
이렇게 긴글을 쓰실수 있는 이야기꺼리가 축적되어 있는 돌삐님의 머릿속이 존경스럽고..
픽션과 넌픽션을 넘나드는 입담에 유 구 무 언...
독후감은 생략합니다..ㅎ
대단합니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잼나게 읽다가 걸리는 부분로 없기 때문에 일단 꼬실려고 마음을 먹으면 우선 추켜 세워 주어야 된다.
여자는 머리에 든게
돌삐님 다른 건 몰라도 요 부분에선 반성하세욧
여자들이 글케 새대가린 아니거덩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