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델이라면 누구나 꼭 한번 서보기를 꿈꾼다는 세계 최고의 패션쇼 파리 오뜨꾸뛰르. 세계적인 디자이너와 톱모델들만 참여할 수 있는 이 무대에 우리나라의 한 남자 무명 모델이 올랐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화제다. 더구나 오뜨꾸뛰르는 여성복 패션쇼여서 남자 모델이 무대에 서기란 그야말로 하늘의 별따기. 내로라하는 세계 최고의 남자모델을 제치고 무대에 올라 세계적으로 화제를 모은 주인공 김민철씨(27)를 만나보았다. 특히 그는 과거 체중이 125kg이나 나가던 헤비급 레슬러 출신. 그의 파격적인 변신이 궁금했다.
압구정동의 한 미용실에서 만난 그는 키 184cm, 몸무게 70kg의 잘빠진 몸매에 서글서글한 얼굴이 우선 상대방을 편하게 해주는 인상이다. 또한 세계적인 무대에서 세계 언론의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으면서도 자신을 숨기거나 치장하지 않고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것이 풋풋하게 느껴졌다.
“어려서부터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것이 좋았어요. 솔직히 씨름을 시작한 것도 그래서였어요.”
태어날 때 몸무게가 5kg의 우량아였다는 그는 초등학교에 들어갔을 때에도 또래 아이들보다 머리 하나는 더 컸고, 몸집도 훨씬 좋았다. 그래서였을까, 자연스럽게 몸으로 하는 운동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특히 당시 이준희, 이만기, 이봉걸로 인해 한창 인기가 높던 씨름에 흠뻑 빠져 학교 씨름부에 들어갈 정도였다.
전관왕을 차지한 전도유망한 레슬링 선수 출신
하지만 그의 목표는 금세 바뀌었다. 84년 LA올림픽에서 김원기 선수가 금메달을 따는 것을 보고 레슬링으로 진로를 바꾼 것. 씨름과는 비교도 안되게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레슬링은 위험한 고난도 기술과 체력을 요하는 운동이어서 초등학교에는 레슬링부가 없었다. 결국 중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레슬링을 시작했다.
“6학년 때 키가 170cm, 몸무게가 80kg이었어요. 학교에서 제일 크고 덩치도 좋았죠. 중학교에서도 마찬가지였어요. 그래서 헤비급으로 뛰었는데, 레슬링을 시작한지 두달 만에 3위에 입상하고, 2학년 때부터는 학교 에이스로 뛰었어요. 3학년 때는 전국대회 5관왕을 하기도 했죠.”
고등학교에 올라와서도 마찬가지였다. 1학년 때 다리를 크게 다쳐 혈관과 근육파열로 3차례에 걸친 대수술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1년 쉬고 2학년 때 다시 출전한 첫 대회에서부터 우승을 하기 시작, 그해 전관왕을 차지했다. 특히 고등학생은 물론 대학·실업·국가대표 선수들까지 모두 출전하는 최고 대회인 대통령배 대회에서 우승, 레슬링계의 기대주로 떠오르기도 했다. 당시 그의 체중은 110kg.
주니어 대표, 88꿈나무, 국가대표 상비군, 국가대표까지 레슬링 분야에서는 엘리트 코스를 걷던 그였지만 마음속 채워지지 않는 갈증이 있었다. 그건 아무리 열심히 해도 보통 사람들은 아무도 자신을 몰라준다는 사실이었다. 특히 국가대표 상비군 시절 태릉선수촌에서 같은 방을 사용하던 다른 종목 선수에게 매일같이 팬레터와 선물이 쇄도하는 것을 보면 자신이 더욱 초라해보였다.
“레슬링을 잘하면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줄 알았어요. 그래서 칭찬 한번 더 받으려고, 주목 한번 더 받으려고 남들 쉴 때 업어치기 연습이라도 한번 더 하는 등 피나는 연습을 했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레슬링이 정말 비인기종목이라는 걸 절감했어요. 그게 너무 힘들었죠. 운동선수는 누구나 관객들에게 박수갈채 받으며 경기하는 게 바람인데 레슬링은 입장료가 없어도 찾는 사람이 없어요. 텅 빈 관중석에서 우리끼리 시합을 하는 거예요. 그런 비인기의 설움이 싫었어요.”
그에게 인생의 변화가 온 것은 고등학교 3학년 때. 연이은 다리부상으로 운동을 쉬면서 숙소에서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텔레비전을 보고 있을 때였다.
“레슬링에 대한 애정이 사라졌지만 그렇다고 종목을 바꾸기엔 이미 늦었잖아요. 그래서 우울해하던 참이었는데, 텔레비전에서 패션쇼 하는 것이 나오더군요. 그 사람들이 마냥 부러웠어요. 그때 문득 ‘나도 살 빼고 멋있어지자. 그러면 나도 텔레비전에 나올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게 살을 빼게 된 계기였어요.”
부상으로 쉬는 동안 125kg까지 불어났던 몸무게를 그해 겨울 넉달 만에 90kg으로 감량했다. 그리고 무작정 서울의 모델학원을 찾아갔다. 제 딴에는 이 정도면 되었다 싶어 찾아간 학원이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텔레비전에서 보던 모델들보다 실물로 본 모델들은 훨씬 더 날씬하고 세련되었다. 그들에 비하면 90kg의 그의 몸매는 모델로 나서기에는 여전히 뚱뚱한 슈퍼헤비급이었다.
“모델을 하겠다니까 관계자들이 절 심란하다는 듯 바라보더군요. 저에게 열심히 하라는 격려보다는 모델 일은 힘들다는 말을 더 많이 하더라고요. 솔직하게 모델보다는 성격파 배우나 코미디언이 되는 길을 알아보라고 충고하는 사람이 많았어요.”
가족과 친구, 주위 사람들의 반대도 만만치 않았다. “네가 무슨 모델이냐”는 핀잔만 돌아왔고, 새로 진학한 영남대 레슬링부 감독은 “정신 차리고 운동이나 열심히 하라”고 충고했다. 그나마 그를 이해해준 사람은 단 한사람, 동네 형으로 평소 알고지내던 남자 모델 구필우씨뿐이었다. 구씨는 그에게 용기를 북돋워주며 모델의 기본인 워킹을 가르쳐주기도 했다.
대학에 들어가서도 레슬링을 계속하기는 했지만 그의 마음은 이미 떠난 상태였다. 대학 2학년 때 미들급으로 출전, 또다시 전관왕을 차지하는 등 전성기를 누리기도 했지만 흥이 나지 않았다. 대신 그는 방학 때나 부상으로 운동을 쉴 때면 무작정 서울로 올라왔다. 그리고 모델학원이나 연기학원의 문을 두드렸다. 학교에서 알면 큰일날 일이었지만 이미 그의 마음은 모델로 가 있었다.
“대학에 들어와서도 계속 체중을 줄여나갔어요. 밥굶기를 밥먹듯이 했죠. 그러면서 격한 운동을 한다는 게 무척 위험한 일이었지만, 이미 운동에서 마음이 떠난 상태라 목숨을 걸고 감량을 한 거죠. 나중엔 75kg까지 줄었어요.”
말이 쉽지 비만인 사람이 10kg 정도를 줄이는 데에도 피나는 싸움을 벌여야 한다. 더구나 운동선수는 운동으로 단련된 몸이기에 쉽게 빠질 군살이 있을 리 없다. 따라서 체중을 줄이기가 더 힘들었을 것이다. 그 역시 체중과의 힘겨운 싸움을 벌여야 했다. 특히 부상으로 운동을 조금만 쉬면 금세 살이 다시 찌곤해 피눈물나는 노력을 해야 했다.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가짐이었어요. 아무리 좋은 의사에게 진료받고, 운동교습을 받고, 시설 좋은 곳에 다녀도 목표를 이루겠다는 마음자세가 없으면 실패하더라고요.”
사진 몇장과 출연한 뮤직비디오 한 개 들고 떠난 프랑스
처음엔 그도 급하게 살을 빼고 싶은 마음에 무조건 굶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렇게 해서 뺀 살은 금방 다시 처음으로 돌아왔다. 결국 살을 빼는 방법은 운동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운동도 살이 찌는 운동이 있고, 살이 빠지는 운동이 있다고 한다. 살을 빼기 위해서는 역기 등 무거운 기구를 들면 안되고 유산소운동을 해야 한다는 것. 이를 위해 그는 자전거를 사서 가까운 거리는 타고 다니고, 멀리 갈 일이 있어 대중교통을 이용하더라도 절대 자리에 앉지 않았다. 물론 가까운 층은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지 않고 걸어서 오르내렸다. 또한 앉아 있을 때에도 배에 힘을 줘 칼로리를 소비하려고 노력했다.
아무래도 다시 살이 찌는 최대의 요인은 음식. 그 역시 술자리가 다이어트의 가장 큰 적이었다고 한다. 또한 편하게 쉬고 있어도 살이 찐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주말이면 산에 올랐다. 술자리도 피하고 긴장이 풀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살을 빼기 위해 사우나를 많이 이용하면서 그 나름의 노하우를 터득했다고 한다.
“뜨거운 욕탕에 들어가 10분 정도 있으면 몸에 열이 나면서 땀이 나기 시작해요. 모공이 많이 열리는 거죠. 그렇게 하고 나서 사우나실로 들어가야지, 그러지 않고 처음부터 곧장 들어가면 힘만 들고 살이 잘 안 빠져요. 사우나실에서도 가만히 있는 게 아니라 30분 정도 계속 스트레칭이나 체조를 해요. 그럼 더 효과가 있어요. 나와서는 다시 뜨거운 물에서 반신욕을 합니다. 그러면 땀이 쫙 흘러요. 그리고 욕탕을 나와서 천천히 걸으면서 땀을 말려요. 흔히 사우나실에서 나오자마자 찬물에 들어가는데 그러면 모공이 수축돼 나오던 땀도 안나오고, 더구나 모공이 수축되면서 물이 흡수돼 체중감량에 손해예요.”
이제 그에게 살을 빼는 것은 전혀 고통스러운 일이 아니라고 한다. 지금도 75kg 정도를 유지하다가 방송출연을 할 때나 무대에 설 때면 5kg 정도는 쉽게 감량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