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광으로 짠 병실/박영희
밤은 깊이도 모르는 어둠 속으로
끊임없이 구르고 또 빠져서 갈 때
어둠 속에 낯을 가린 미풍의 한숨은
갈 바를 몰라서 애꿎은 사람의 마음만
부질없이도 미치게 흔들어 놓도다.
가장 아름답던 달님의 마음이
이때이면은 남몰래 앓고 서 있다.
근심스럽게도 한발 한발 걸어 오르는 달님의
정맥혈로 짠 면사 속으로 나오는
병든 얼굴에 말 못하는
근심의 빛이 흐를 때,
갈 바를 모르는 나의 헤매는 마음은
부질없이도 그를 사모하도다.
가장 아름답던 나의 쓸쓸한 마음은
이 때로 부터 병들기 비롯한 때이다.
달빛이 가장 거리낌 없이 흐르는
넓은 바닷가 모래 위에다
나는 내 아픈 마음을 쉬게 하려고
조그만 병실을 만들려 하여
달빛으로 쉬지 않고 쌓고 있도다.
가장 어린애같이 빈 나의 마음은
이 때에 처음으로 무서움을 알았다.
한숨과 눈물과 후회와 분노로
앓는 내 마음의 임종(臨終)이 끝나려 할 때
내 병실로는 어여쁜 세 처녀가 들어오면서
---당신의 앓는 가슴 위에 우리의 손을 대라고 달님이
우리를 보냈나이다 ---
이 때로부터 나의 마음에 감추어 두었던
희고 흰 사랑에 피가 묻음을 알았도다.
나는 고마워서 그 처녀들의 이름을 물을 때
---나는 '슬픔'이라 하나이다.
나는 '두려움'이라 하나이다.
나는 '안일(安逸)'이라고 부르나이다 .
그들의 손은 아픈 내 가슴 위에 고요히 닿도다.
이 때로부터 내 마음이 미치게 된 것이
끝없이 고치지 못하는 병이 되었도다.
===[한국 대표 명시 2, 빛샘]===
박영희 (1901~?) 시인, 소설가, 평론가. 호는 회월. 서울 출생. 김기진과 배재 고보에 다녔으며, 1920년 도쿄 세이소코 영어학교正則英語學校에서 수학하다 귀국하여 1921년 시 전문지 『장미촌』,『신청년』의 동인으로 활동하였다. 1922년 '백조'동인이 되었고, 1925년 조선프롤레타리아 예술동맹 조직을 조도하였으며, 1927년 신간회의 간부를 역임하였다. 1934년 전향하여 1938년 전향자 대회에 참가하였으며, 1939년 조선문인협회 간사를 지냈다. 1950년 납북되었고, 이후의 행벅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 없다. 시집으로 『회월시초』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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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을 잃은 상실감.
1920년대의 많은 문학 청년들은 나라를 잃고 큰 슬픔에 잠기게 되었습니다.
힘이 있어야 나라도 지킬 수 있다는 것을 역사를 통해 배웠습니다.
우리의 후손에게는 강한 국가를 물려 주어야겠다는 결심을 다시 한번 해 봅니다.
또 금요일이 왔습니다.
내일은 주말이구요.
기분 좋습니다.
쉬니까요.
여유롭고 편한 날 되시길 바랍니다.
=적토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