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 그레코, 〈수태고지〉, 1609, 294×204cm, 개인소장, 마드리드
검은 파도에 아기들이 휩쓸려 간다. 이들을 보며 파도 위를 걷는 이가 그림 상단 중앙을 지배한다. 비둘기 모양의 황금빛 성령이 검은 바다 속으로 날아들 태세다. 결국엔 십자가 홀을 든 사람들이 하늘 보좌를 차지할 것이다. 영화를 보여 주듯,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장차 일어날 일을 전해 준다. 그림 상단 중앙을 지배하는 이가 바로 마리아가 잉태하여 낳을 예수일 터다.
마리아는 직각으로 오른 손바닥을 세워 가브리엘의 제안을 막아서 듯 거절한다. 이것은 아니지 않은가. 처녀가 아들을 낳을 것인데 그 때문에 다른 아기들이 검은 파도에 휩쓸려 가야 한다면, 받아들일 수 없다. 거절하는 마리아에게 가브리엘이 이렇게 말했다. “주께서 너와 함께하시도다”(눅 1:28). 하나님이 함께하시다니, 그렇다면 더욱 받아들일 수 없다.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인사는 용사들에게나 해당되던 말씀이었기 때문이다. “여호와의 사자가 기드온에게 나타나 이르되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삿 6:12). “여호와 그가 네 앞에서 가시며 ‘너와 함께하사’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시리니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놀라지 말라”(신 31:8). 기드온이나 여호수아 같은 용사가 들어야 했던 말씀을 여자 마리아가 선뜻 받아들일 순 없다. 붉은 옷을 입고 앉아 기도하다가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 손바닥을 수직으로 들어 막아서 듯 거절하는 이유다.
하나님이 함께하시겠다는 말씀을 들은 기드온과 여호수아는 전사(戰士)였다. 전장의 선봉에 서야 하는 전사였기에 그 말씀의 수탁자가 될 만한데, 처녀 마리아가 듣게 되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인사가 어찌함인가”(눅 1:29). 전사가 된다는 것은 마리아의 인생 계획 속에 없었다.
그러나 이제, 마리아는 영적 전쟁에 참전해야 하고, 선한 싸움을 감당해야만 한다(엡 6:12; 딤후 6:12). 하나님의 아들을 출산할 마리아는 당시 헤롯 대왕과 싸워야 한다. 잔다르크처럼 전투 부대의 선봉에 서는 게 아니다. 논개처럼 적장을 껴안고 낭떠러지로 떨어져 죽는 것도 아니다. 마리아가 헤롯 대왕과 치러야 하는 전쟁은 기드온이나 여호수아처럼 무력으로 대치하는 것이 아니라, 도망과 희생을 견디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마리아의 가장 어려운 싸움은 자식보다 오래 살아야 하는 일이었다. 이는 마지막 숨 쉬는 순간까지 끝나지 않을 전쟁이다. 누가 이 싸움에 기꺼이 참전하겠는가. 수직으로 세워진 손바닥을 아랑곳 않으시고 기어이 마리아를 세우신다. 비폭력으로 세워질 “그 나라”, 도리어 폭력에 희생된 자가 왕이 되는 “그 나라”를 건국하는 영적 전쟁의 선봉에 야속하게도 마리아가 징집된다. 어깨는 얇고 목이 긴 마리아를, 전사로 부르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