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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전화 수명은 왜 이렇게 짧을까 |
[Trend] 프랑스, 가전제품 ‘조기 단종’ 규제 움직임 |
기업의 의도적 제품 수명 줄이기인가, 유행 좇는 소비자의 구매 행태 때문인가
휴대전화, 세탁기 등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쓰는 가전제품이 조기에 사라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제조사의 의도적 정책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더 많은 제품을 팔기 위해 제조사가 제품 수명을 단축시키는 것이다. 물론 제품이 빠르게 사라지는 게 반드시 기업의 의도 때문만은 아니다. 허술한 제품을 내놓는다는 것은 기업에도 위험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유행 상품을 좇는 소비자의 구매 행태도 제품 수명 단축에 상당한 역할을 했다. 최근 프랑스 사회에선 가전제품의 ‘조기 단종’이 사회문제로 떠오르면서 정부가 최소 보증기간 확대와 수리 업계 지원 등 관련 법규 강화에 나섰다.
네리 나아페티앙 Naïri Nahapétian
<알테르나티브 에코노미크> 기자
현대인 가운데 휴대전화나 세탁기, 프린터, 혹은 컴퓨터가 고장 났을 때 단지 부품을 교체하지 못해 어쩔 수 없이 새 제품을 구매했던 경험이 없는 이가 있을까? ‘조기 단종’은 기업이 더 많은 제품을 팔려고 일부러 제품 수명을 줄이는 걸 말하는데 이는 더 이상 소비자에게 낯선 용어가 아니다. 조기 단종 반대 시민단체 HOP의 설립자 래티티아 바쇠르는 부품 단종 같은 ‘물리적 단종’뿐만 아니라, 나온 지 오래되지 않은 컴퓨터나 휴대전화에 설치할 수 없는 애플리케이션이나 운영체제를 판매하는 등의 ‘디지털 단종’, 광고를 통해 새 제품을 사게 만드는 ‘심리적 단종’까지 포괄하는 개념이라고 설명한다.
1924년 전등 가격이 급락하자, 세계 주요 전등 제조업체들이 전구 수명을 제한하기로 비밀리에 합의한 적이 있었다. 이 합의가 바로 ‘페뷔스 카르텔’(Phoebus라는 스위스 회사 이름을 딴 다국적 카르텔 -편집자)이다. 이런 식의 담합은 매우 예외적인 경우로 제조사들이 이렇게 조직적으로 대응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무엇보다 시장을 아주 소수의 기업이 장악하고 있어야 하고, 소비자는 상황을 전혀 몰라야 하며, 독과점 규제 당국의 봐주기가 필요하다. 제품 수명이 짧아진 건 대부분 이보다 덜 사악한 논리로 설명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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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뉴욕의 애플스토어에서 점원이 아이폰을 수리하고 있다. 휴대전화 일체형으로 제작된 아이폰 배터리는 고장 났을 때 수리가 까다롭다. REUTERS |
여전히 많은 제품들이 비교적 오랫동안 사용되고 있다. 가전제품제조업협회(GIFAM) 조사에 따르면 프랑스에서 냉장고의 평균수명은 11년, 냉동고는 13년, 세탁기는 10년이다. 이 제품군의 평균수명은 지난 30년 동안 약간 감소했다. 이에 대해 프랑스 환경·에너지관리청(ADEME) 연구원 에르완 팡주아는 “제품 고장이 발생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자동차를 비롯한 많은 장치가 과거보다 더 과하게 사용되는 것도 문제”라며 “소비자 잘못으로 고장 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고 말했다.
최근 수십 년에 걸쳐 등장한 하이테크 제품은 단종이 이른 편인데, 이는 어느 정도 제조사의 의도적 정책의 결과이기도 하다. 대표적 예가 사용자가 바꿀 수 없도록 휴대전화 일체형으로 만든 아이폰 배터리다. 아이폰 배터리는 지금도 제조사 애플만 쓰는 별 모양 나사로 조립하기 때문에 교체가 어렵다. 그러나 소비자도 제품 조기 단종에 상당한 역할을 했다. 예로 프랑스에서 휴대전화 수명은 2년을 넘지 못한다. 기기 자체만 놓고 보면 4~6년간 문제없이 작동한다. 다만 많은 소비자가 휴대전화 광고에 나오는 최신 기종을 원한다.
수리보다 새 제품 구입이 더 저렴
이런 상황을 따지면 지나치게 음모론적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다. 경쟁사보다 덜 견고한 제품을 만드는 것은 기업에도 위험 부담이 크다. 그럼에도 새 제품을 빠르게 선보이는 게 경제성장의 동력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더구나 생산성 향상과 낮은 원자재 가격, 저임금 국가에서 수입한 제품이 늘어나 가격이 하락하면서 제품이 고장 나면 수리하기보다 아예 새 제품을 사는 것이 더 저렴한 경우가 자주 발생한다.
환경·에너지관리청에 따르면, 프랑스에서 고장 신고된 전기·전자 제품 중 43%만 수리됐다. 이처럼 사람들이 수리 대신 새 제품을 구매하다보니 프랑스의 수리 업계는 지난 15년간 거의 망해가고 있다. 대형마트 카르푸와 라파예트 백화점도 최근 매장 내 수리센터를 폐쇄했다.
유럽사회경제위원회(CESE) 위원이자 환경문제 싱크탱크 ‘라 파브리크 에콜로지크’ 연구원 티에리 리바에르는 가전제품 수리가 어렵고 심지어 불가능한 이유는 부품 조달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부품 조달 문제는 세계화와도 관련 있다. 사실 많은 부품이 아시아 하청업체에서 생산되는데 카르푸 같은 대형마트가 하청업체와 지속적 관계를 맺는 경우는 드물다.
상황이 이렇다면 입법기관이 할 일은 무엇일까? 시민운동가 바쇠르는 상공소비부 장관이던 브누아 아몽의 이름을 따 ‘아몽법’이라 불리는 소비자법이 2014년 3월 제정돼 법정 품질 보증기간이 늘었다는 점을 들어 어느 정도 법적 진일보가 이뤄졌다고 강조한다. 그때까지 유통업체가 소비자에게 제공하는 품질 보증기간은 2년이지만, 실제로는 6개월에 불과했다. 6개월이 넘으면 소비자가 제품이 불량이라는 사실을 증명해야 했다. 그런데 아몽법이 채택되면서 실제 품질 보증기간이 2년으로 연장된 것이다. 유통업체는 제품 구매 고객에게 해당 제품의 부품 조달이 가능한지 사전에 고지해야 한다.
그러나 소비자운동단체 ‘크 슈와지르’(Que Choisir·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편집자) 발표가 보여주듯 유통업체의 60%가 사전 고지 조항을 지키지 않는다. 아몽법 시행령에 따르면 해당 부품을 제작한 기업만 사전 고지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리바에르 연구원은 “사전 고지 여부가 전적으로 기업의 선의에 달렸다”고 비판한다.
2015년 8월 에너지이행법 도입을 계기로 기업이 조기 단종할 경우 벌금 30만유로(약 3억8천만원)와 2년 이하 징역에 처해진다. 조기 단종 금지는 수입 업체뿐 아니라 제조사에도 적용된다. 과연 이 조항이 미국에서처럼 법정 다툼이 일어나는 계기가 될지 두고 봐야 한다. 참고로 2016년 6월 아이폰 사용자 100여 명이 애플을 상대로 미국 뉴욕주 법원에 500만달러의 집단 손해배상 소송을 걸었다. 원고 쪽은 “애플이 새 아이폰 운영체제 iOS9를 내놓으면서 기존 아이폰 4S에도 사용할 수 있다고 광고했지만, 실제 iOS9를 아이폰 4S에 적용하면 거의 사용이 불가능할 정도로 느려진다”고 주장했다. 물론 애플이 아이폰 4S 사용자의 기기 교체를 유도하기 위해 일부러 아이폰 4S의 속도를 느리게 만들었음을 입증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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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에선 가전제품 ‘조기 단종’이 사회문제로 떠오르면서 정부가 수리 업계 지원 등 관련법 강화에 나섰다. 2016년 10월 파리의 한 가전제품 매장 앞을 지나가는 남성. REUTERS |
수리 업계 종사자 지원 절실
시민단체 HOP는 모든 가전제품의 최소 보증기간을 5년으로 확대하자는 내용의 청원을 받고 있다. 대형 가전제품에는 이미 5년의 보증기간이 적용된다. 그러나 리바에르 연구원은 이 조처가 실행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한다. 이 조처가 실행되려면 우선 프랑스뿐만 아니라 유럽연합(EU) 차원에서 최소 보증기간 규정을 받아들여야 한다. 설령 이 단계를 잘 넘어간다 해도 제조사들이 최소 보증기간 규정 때문에 발생하는 비용을 제품 가격에 포함해 소비자에게 전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영국이나 아일랜드 같은 몇몇 국가가 이와 유사한 규정을 도입했지만, 프랑스 정부에 제출된 한 보고서는 현 상태의 유지를 추천한다. 그렇지만 굳이 법을 바꾸지 않더라도 최소한 제품 수명을 발표하도록 유도할 수는 있다.
‘라 파브리크 에콜로지크’는 제품 제조 과정에서 발생한 폐기물 처리 및 재활용을 위해 기업이 내는 환경부담금을 계산할 때 지속성 기준을 도입하자고 제안한다. 지속성 기준은 정부 조달 정책에도 포함될 수 있다. 또한 내부고발자 보호법이 회사의 조기 단종 정책을 폭로하는 직원들에게도 적용돼야 한다.
이처럼 법적 규정을 강화하는 것은 이미 여러 기업이 자발적으로 관련 기준을 도입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기 때문에 더욱 바람직하다. 예로 압력밥솥으로 유명한 세브(SEB)는 환경문제에도 관심 많은 기업으로, 10년 동안 세브 제품의 수리와 부품 조달을 보장한다. 또한 말롱고(Malongo)의 에스프레소 머신은 5년 동안 품질이 보장되며 모든 부품은 쉽게 교체할 수 있다. 네덜란드의 페어폰(Fairphone)은 부품을 교체해 더 오래 사용할 수 있는 친환경 조립식 휴대전화를 제공한다.
단지 공급 측면만 변화시킨다고 조기 단종이 해결되지는 않는다. 제품 수명을 연장하고 조기 단종을 막으려면 수리 업계 종사자 지원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프랑스 환경·에너지관리청은 부가가치세 면제 혜택을 부여하는 수리 업계 육성 방안을 제안했다. 물론 여전히 부품 수급이 문제가 되겠지만, 이는 에르완 팡주아 연구원이 설명한 것처럼 3차원(3D) 프린터를 활용해 몇몇 플라스틱 부품이나 금속 부품을 필요할 때마다 저렴하게 제작하는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다. 또한 환경·에너지관리청은 가전제품을 수리해 저렴한 가격에 재판매하는 일을 주로 하는 사회연대경제 기업네트워크 ‘앙비’(Envie)처럼 부품 회수와 재활용을 통해 중고 부품 부문이 구축되도록 힘을 기울여야 한다.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기존 작동 시스템을 바꾸는 것이다. 현재 유럽의 연간 전기·전자제품 폐기물량은 1천만t에 이른다. 더구나 조기 단종은 티에리 리바에르의 설명처럼 사회적 비용이 높다. 왜냐하면 조기 단종의 가장 큰 피해자는 일반적으로 견고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저가 제품을 구매하는 사회적 취약계층이기 때문이다.
ⓒ Alternatives Economiques 2017년 1월호(제36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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