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만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주신 청지기의 벗어나서 자신이 주인 되는 삶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에덴동산을 맡기셨을 때, 에덴의 관리자 청지지로 맡기신 것입니다. 그런데 아담이 하나님처럼 되려고 했을 때, 그곳에 주인이 되려고 했을 때, 아담은 범죄하고 하나님으로부터 떠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를 낮추시는 분이십니다. 어쩌면 절대 권력자가 망하게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교만한 자를 낮추시기 때문입니다.
북이스라엘과 아람 사이에 전쟁이 임박했습니다. 벤하닷은 32명의 왕을 이끌고 올라와 사마리아를 포위했습니다. 그는 아합에게 항복하고 조공을 바치라고 위협했습니다. 아합은 납작 엎드리며, 요구에 응하겠다고 답합니다. 그러나 벤하닷의 속내는 사마리아를 완전히 집어삼키는 것이었습니다. 벤하닷의 과해진 요구에 아합은 장로들과 대책 회의를 엽니다. 장로들은 요구를 거절하라고 단호히 조언합니다. 벤하닷은 아합이 요구에 불응하자, 사마리아에 대한 공격 준비를 명합니다.
이스라엘과 아람의 첫 번째 전쟁(1-12)
그 누구도 자신의 뜻대로 인생을 살아갈 수 없기에 자신의 소유와 능력을 믿고 교만한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우리의 생명과 소유는 모두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진 것입니다. 소유를 자랑하고 앞으로의 일을 장담하는 것은 모든 것의 주인이자 주관자이신 하나님께 도전하는 것입니다. 성도는 자신의 소유와 능력으로 인해 교만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모든 것의 주인이심을 인정합니다.
1아람의 벤하닷 왕이 그의 군대를 다 모으니 왕 삼십이 명이 그와 함께 있고 또 말과 병거들이 있더라 이에 올라가서 사마리아를 에워싸고 그 곳을 치며 2사자들을 성 안에 있는 이스라엘의 아합 왕에게 보내 이르기를 벤하닷이 그에게 이르되 3네 은금은 내 것이요 네 아내들과 네 자녀들의 아름다운 자도 내 것이니라 하매 4이스라엘의 왕이 대답하여 말하기를 내 주 왕이여 왕의 말씀 같이 나와 내 것은 다 왕의 것이니이다 하였더니
5사신들이 다시 와서 이르되 벤하닷이 이르노라 내가 이미 네게 사람을 보내어 말하기를 너는 네 은금과 아내들과 자녀들을 내게 넘기라 하였거니와 6내일 이맘때에 내가 내 신하들을 네게 보내리니 그들이 네 집과 네 신하들의 집을 수색하여 네 눈이 기뻐하는 것을 그들의 손으로 잡아 가져가리라 한지라
7이에 이스라엘 왕이 나라의 장로를 다 불러 이르되 너희는 이 사람이 악을 도모하고 있는 줄을 자세히 알라 그가 내 아내들과 내 자녀들과 내 은금을 빼앗으려고 사람을 내게 보냈으나 내가 거절하지 못하였노라 8모든 장로와 백성들이 다 왕께 아뢰되 왕은 듣지도 말고 허락하지도 마옵소서 한지라 9그러므로 왕이 벤하닷의 사신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내 주 왕께 말하기를 왕이 처음에 보내 종에게 구하신 것은 내가 다 그대로 하려니와 이것은 내가 할 수 없나이다 하라 하니 사자들이 돌아가서 보고하니라
10그 때에 벤하닷이 다시 그에게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사마리아의 부스러진 것이 나를 따르는 백성의 무리의 손에 채우기에 족할 것 같으면 신들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림이 마땅하니라 하매 11이스라엘 왕이 대답하여 이르되 갑옷 입는 자가 갑옷 벗는 자 같이 자랑하지 못할 것이라 하라 하니라 12그 때에 벤하닷이 왕들과 장막에서 마시다가 이 말을 듣고 그의 신하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진영을 치라 하매 곧 성읍을 향하여 진영을 치니라(1-12)
왕들 중 가장 악하다고 평가받은 아합의 기록(16:29-22:40)은 아합과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긍휼과 공의의 심판을 함께 묘사합니다. 아합의 통치 개요(16:29-34)와 석 장에 걸친 가뭄과 엘리야와 관련된 사건들(17:1-19:21) 이후, 다시 세 장(20:1-22:40)에 걸쳐 아합 중심의 사건들이 서술됩니다. 이 단락은 아람과의 세 차례 전쟁(20장, 22:1-40)을 기술하며, 그 중간에 나봇의 포도원 사건(21장)을 두고 있습니다. 본문은 제1차 전쟁인 사마리아 전투(1-21절)의 전반부입니다. 앞서 17-19장에서는 가뭄과 비를 통해 하나님께서 바알에 비견할 수 없는 전능자임을 증명했습니다.
이제 20-22장에 묘사된 하나님께서는 첫째, 아람과의 전쟁을 통해 그가 인간 역사의 주관자임을 증명하십니다. 둘째, 전쟁에 개입하고 이스라엘에게 승리를 주심으로써 악한 세대 속에서도 자기 백성에 대한 언약적 사랑을 드러내십니다. 셋째, 계속 선지자들에게 말씀을 보내어 왕과 백성을 인도하고 순종을 요구하십니다. 넷째, 선포된 말씀을 이루심으로써 그의 전능함을 나타내십니다. 다섯째, 죄의 경고와 심판을 통해 공의를 행사하고, 순종하고 회개하는 자에게는 긍휼과 은혜를 베푸십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통치자임을 입증하십니다.
한편 아합에 관해서 20-22장 단락은 그의 죄악을 고발하고 마땅한 심판을 받았음을 알립니다. 아합의 죄목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는 신앙적인 죄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이 자신의 이득과 판단에 부합되지 않으면 거리낌 없이 버렸습니다. 자신이 스스로 악을 행했을 뿐 아니라 이세벨을 통해서도 범했습니다. 둘째, 사회적인 죄입니다. 아합은 죄 없는 나봇을 죽이고 포도원을 갈취했습니다. 이로써 백성의 권리가 담긴 율법과 사법 질서를 짓밟았습니다.
셋째, 정치적으로 그는 아람 왕 벤하닷을 살려두고 동맹을 맺음으로써 하나님과의 언약을 버렸고, 백성과 후손에게 전쟁의 고통을 지속시켰습니다. 이는 16장의 개요에 서술된 아합의 악행을 증명하고, 그가 왕들 중에 가장 큰 악을 행한 왕임을 재확인해줍니다.
(1) 사마리아를 포위한 아람군대(1)
아람의 벤하닷 2세(주전 약 860-841년)와 그의 군대가 사마리아를 포위하고 공격했습니다. 말과 병거를 끌고 올라온 무리 중에는 32명의 동맹국 왕들도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다메섹 왕 벤하닷처럼 아람과 인근 지역에 있는 도시국가의 우두머리들입니다. 벤하닷이 ‘아람 왕’이라는 대표성을 가진 칭호로 소개된 것과 32명의 왕이 그의 전투에 동참했다는 것(1)은 벤하닷이 실권을 장악한 주체이며, 각 왕들의 나라가 그에게 예속되었음을 암시합니다.
아람도 다윗 대에 이스라엘에 종속되었으나(삼하 8:6), 솔로몬 대에 르손이 그의 대적자로 일어나 다메섹의 왕이 되면서 독립했습니다(11:24). 이스라엘의 분열 이후 이스라엘과 아람의 전세는 뒤바뀌었습니다. 아람은 북이스라엘과 남유다가 동맹을 맺기 원하는 나라로 부상했습니다. 이스라엘의 바아사와 유다의 아비얌은 다메섹의 벤하닷 1세(주전 약 896-874년)와 각각 동맹을 맺었습니다. 아비얌의 왕위를 이은 아사도 벤하닷에게 화친을 맺고 자신을 지원해달라고 간청하는 입장이었습니다(15:18-24). 그때 벤하닷은 바아사와의 조약을 깨고 아사의 요청에 응하여 이스라엘의 북부 지역을 공격했습니다(15:20).
(2) 벤하닷의 요구와 아합의 대응 1(2-4)
아합은 순순히 항복하고 조공을 바치라는 벤하닷의 요구에 군말 없이 응합니다. ‘벤하닷이 이렇게 말한다’(“벤하닷이 그에게 이르되”, 2)로 시작하는 서찰은 아합의 기를 꺾으려는 기고만장한 벤하닷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그는 아합의 은과 금, 아내들, 자녀들이 다 자기 것이라고 주장하며 모두 자기에게 바치라고 명합니다. 아내들을 바치라는 것은 왕권을 갖겠다는 뜻이며(2:21-22; 삼하 16:21-22), 자녀들을 바치라는 것은 인질로 삼아 활용하겠다는 뜻입니다.
아합은 벤하닷을 “내 주(주인) 왕”으로 부르며(4), 자신과 자신의 소유가 다 벤하닷의 것이라 답합니다. 이전에 유다의 르호보암과 아사가 예루살렘을 사수하기 위해 각각 애굽과 다메섹 왕에게 성전의 보물과 왕궁의 보물을 내주었듯이(14:26; 15:18), 벤하닷의 도발에 대한 아합의 굴복은 강대국 왕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는 소극적이고 굴욕적인 대응입니다. 이는 또한 현재 이스라엘이 아람 군대를 당해낼 수 없는 형편임을 암시합니다.
(3) 벤하닷의 요구와 아합의 대응 2(5-9)
벤하닷이 조공을 빌미로 아합을 옥죄어 오자 아합은 급기야 그 요구를 거절하기에 이릅니다. 벤하닷은 사신들을 다시 보내 앞서 요구한 것을 재확인시킵니다. 그뿐 아니라 다음 날 아합과 그의 신하들의 집까지 다 수색하여 그의 소중히 여기는 재물과 사람들을 취해갈 것이라고 통보합니다. 아합은 지난번에는 저자세를 취하고 소극적으로 대응했으나 벤하닷의 요구 조건이 과도해지자 안색을 바꿉니다.
그는 장로들을 다 불러 회의를 열고 사태를 해결할 방안을 찾습니다. 그러면서 벤하닷을 ‘이 자(사람)’로 낮춰 부르며, 그가 악을 도모하고 있다고 설명합니다(7). 이 설명은 벤하닷이 화평을 위해 조공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을 완전히 멸하려고 시비를 건다는 뜻입니다. 아합은 벤하닷이 재산과 자기 가족을 바치라 명했고, 자신이 이를 거절하지 못했음을 덧붙여 실토합니다. 상황이 어쩔 수 없어 자신이 당한 모욕을 알렸을 수도 있고 이를 통해 장로들의 거부 의견을 모으려 했을 수도 있습니다.
현 상황을 들은 장로들은 모두 벤하닷의 요구를 거부해야 한다고 단호히 입을 모았습니다. 이에 아합은 벤하닷이 처음 요구한 것은 들어주겠으나 그 이상의 요구는 들어줄 수 없음을 사신들에게 전달합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벤하닷을 “내 주 왕”으로, 자신은 “(당신의) 종”으로 부르며 아람의 눈치를 살핍니다.
(4) 벤하닷의 요구와 아합의 대응 3(10-12)
아합과 벤하닷 사이에 마지막 신경전이 오가고, 끝내 아람은 사마리아를 공격할 태세를 갖춥니다. 아합이 태도를 바꿔 자신의 명을 기억하자 벤하닷은 분개했습니다. 이에 벤하닷은 만약 자기 발치에 있는(“나를 따르는”, 10) 백성들이 사마리아의 흙먼지 한 숨을 줘 수 있게 된다면, 신들의 어떤 별도 받겠다고 으름장을 놓습니다. ‘흙먼지 한 줌’의 의미는 군사들의 손으로 먼지나 재의 부스러기를 주워 담지도 못할 만큼 사마리아를 초토화하겠다는 뜻입니다.
“신들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림이 마땅하니라”(10)는 엘리야의 생명을 위협한 이세벨의 말에서도 언급된(19:2)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이는 말하는 자의 분노와 확고한 결단을 함축합니다. 아합은 벤하닷의 큰소리에 지지 않고 “갑옷 입는 자가 갑옷 벗는 자 같이 자랑하지 못할 것이라”(11)고 받아칩니다. 한마디로, ‘호언장담하지 말라’는 훈계입니다. 전쟁하러 나서는 병사(“갑옷 입은 자”)가 승전한 병사(“갑옷 벗는 자”)인 양 나대고 있음을 비꼬는 표현입니다.
이번 아합의 회신에는 “내 주왕”이나 “(당신의) 종”이라는 표현(4,9) 없이, ‘(그에게) 전하라’는 명령만 나와 그의 돌변한 태도를 보여줍니다. 왕들과 술을 마시고 있었던 벤하닷은 아합의 도발을 전해 듣고 바로 공격 준비를 명합니다(12). 군대는 즉각 공격 태세를 갖춥니다. 그런데 실상 벤하닷은 공격 명령만 내렸을 뿐 연회 자리는 뜨지 않았습니다. 이후 정오가 되어 이스라엘이 선제 공격을 해올 때, 그와 왕들은 술에 취해 있었습니다(16). 이런 상황은 벤하닷이 사마리아를 쉽게 함락할 수 있다는 오만에 빠져 방심했음을 보여줍니다.
성도는 보이지 않지만 모든 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살아가는 자입니다. 세상의 것으로 자랑하는 것은 성도의 모습이 아닙니다. 우리 스스로를 자랑해서도 안 됩니다. 우리의 자랑은 십자가로 이미 승리하셨고 마침내 완전한 승리를 이 세상에 선포하실 주님 예수님 그리스도밖에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참된 안정을 주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