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 빗속에서 안개 속에서 - 백곡산 외

[56이세진]

빗속에서 철쭉 숲 사이로 

馬度春山水漲溪              물 불어난 봄산 시내 말 타고 건너오니

溪流濕盡錦障泥              시냇물에 말다래 온통 젖어 흥건하네 

崎嶇入峽無多路              험한 골짝 들어서니 여러 길이 없더니

窈窕穿雲是別蹊              깊은 구름 뚫고 오자 딴 세계의 오솔길

ⓒ 한국고전번역원 | 송기채 (역) | 2002

―― 농암 김창협(農巖 金昌協, 1651~1708), 「제천(堤川)의 수령 홍사응(洪士膺) 중모

(重模) 형제와 함께 대암(臺巖)을 유람하면서 각기 ‘계(溪)’ 자 운으로 시를 짓다(與堤川宰

洪士膺 重模 兄弟。同游臺巖。各賦溪字)」에서

▶ 산행일시 : 2020년 5월 9일(토), 비, 안개

▶ 산행인원 : 12명

▶ 산행시간 : 7시간 52분

▶ 산행거리 : 도상 14.9km(1부 5.6km, 2부 9.3km) 

▶ 교 통  편 : 김선곤 기사님 25인승 버스

▶ 구간별 시간

06 : 32 - 동서울터미널 출발

07 : 50 - 중앙고속도로 치악휴게소

08 : 26 - 제천시 봉양읍 구학리 배론 성지, 산행시작

09 : 05 - 550m봉, 첫 휴식

09 : 25 - △690.5m봉

09 : 55 - 581.6m봉

11 : 02 - △556.8m봉

11 : 32 - 살레시오의 집, 살림터, 1부 산행종료, 점심, 이동 

12 : 36 - 제천시 봉양읍 명도리 매곡저수지 아래, 2부 산행시작

13 : 12 - 500m봉, 휴식

13 : 33 - 605.5m봉, 헬기장

14 : 23 - 백곡산(百谷山, △763.3m)

15 : 32 - 603.1m봉

15 : 48 - 518.0m봉

16 : 18 - 제천시 봉양읍 명도리 매화동, 산행종료

16 : 51 ~ 19 : 15 - 제천, 목욕, 저녁

19 : 36 - 중앙고속도로 치악휴게소

21 : 04 - 동서울 강변역, 해산

1-1. 산행지도(1부, 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 1/25,000)

1-2. 산행지도(2부 백곡산, 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 1/25,000)

▶ 배론 성지

“이 몸은 백번 생각하여도 이 천주교는 

구세(救世)의 양약(良藥)이라 생각되어 

성심껏 믿어왔습니다.”

               순교자 황사영(알렉시오)

배론 성지의 구내 중앙도로 바로 옆에 오가는 사람들의 눈에 잘 띄게 세운 표지판이다. 이곳

은 황사영이 신유박해 때 숨어든 산골이다. 황사영(黃嗣永, 1775∼1801)은 스승이자 처숙

인 정약종(丁若鍾, 1760~1801)에게 교리를 배우고 천주교에 입교하여  1795년(정조19)

부터 주문모(1752~1801) 신부의 측근으로 활동하다가 1798년 서울로 이사하여 서울 지역

을 지도하는 활동가로 활약하였다. 

1801년(순조1) 신유박해가 일어나자 제천의 배론으로 피신하여 신유박해로 타격을 입은 조

선 교회의 참상과 교회의 재건책을 북경 주교 구베아(Gouvea, 탕사선 湯士選, ? ~1808)에

게 호소하는 장문의 편지인 이른바 ‘황사영 백서(黃嗣永 帛書)’를 썼다. 이 편지를 황심(黃

沁, 1756~1801)과 옥천희(玉千禧, ? ~ 1801)를 시켜 1801년 10월에 떠나는 동지사 일행 

편에 끼워 보내려다 발각되어 같은 해 9월 29일 체포되었고, 서울로 압송된 뒤 대역부도죄

(大逆不道罪)로 11월 5일 서소문 밖에서 능지처참되었다. 이때의 순교자는 약 140명에 이

른다고 한다. 

백서(白書)는 어떠한 일에 대하여 현상을 분석하고 미래를 전망하여 그 내용을 여러 사람에

게 알리기 위하여 만든 보고서를 말하는데, 황사영의 백서는 두 자 가량 되는 명주 천에 썼기

때문에 ‘백서(帛書)’라고 한다. 깨알같이 작은 1만 3,311자나 되는 방대한 내용의 한문으로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이때 신유박해로 장기(長鬐)에 유배 중이던 다산 정약용(茶山 丁若鏞, 1762~1836)은 강진

으로 이배되었다. 그는 강진에서의 18년 유배 중에 무려 500여권에 달하는 방대한 저술을 

남겼다. 도올 김용옥은 이때의 다산을 두고, 조선 500년 선비의 체면을 살렸다고 했다. 다산

은 책을 집필하느라 하도 오랫동안 방바닥에 앉아 있어서 엉덩이가 짓물렀다고 한다. 이 일

은 정수일(鄭守一, 1946~  ) 교수에 의해 들먹여지기도 했다.  

아랍어와 문명교류학의 세계적 권위자인 정수일 교수가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5년간 복역

했는데, 그는 이 복역기간 중에 중세의 대여행가이며 탐험가인 이븐 바투타(1304~1368)가

30년에 걸친 여행 중에 직접 보고 들은 것을 기록한 현지 견문록을 『이븐 바투타의 여행

기』(2001년, 창작과 비평사)로 완역하고 주석하였다. 이 완역은 프랑스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라고 한다. 

이 여행기를 완역하는 동안 정수일 교수도 교도소 방바닥에 오랫동안 앉아 엉덩이가 짓무르

자 다산의 강진 유배생활을 생각나고 그의 고초와 끈기를 본 받아, 서서 창틀에 기대어 작업

을 했다고 한다.

배론은 한자어로는 ‘주론(舟論)’이라고 하는데, 이 마을이 있는 지역의 계곡이 배 밑바닥을 

닮았다고 하여 그렇게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이 근처에 주론산(舟論山, △903.2m)도 있

다. 배는 한자로 ‘주(舟)’이지만 ‘론(論)’이 어떻게 ‘밑바닥’을 의미하는지 모르겠다. 

‘론(論)’에 혹시 내가 모르는 뜻이 있는지 다시 살펴보았다. 말할 론(논), 말하다, 진술하다, 

사리를 밝히다, 고하다, 여쭈다, 왈가왈부하다, 토론하다, 헤아리다, 사물의 이치를 헤아리다

등등. 밑바닥 근처에도 가지 않는다. 

2. 배론 성지 구내, 앞의 산을 오를 예정이다.

3. 차가운 봄비 내리고 안개는 자욱하다.

4. 비는 세차게 내리다가 오는 둥 마는 둥 하고

5. 안개 속이라 길 찾기가 쉽지 않았다.

6. 안개 속 풍경이 볼만했다.

7. 사면을 누비며 내리지만 푸른 사막이다. 

▶ △690.5m봉

비가 오니 한편 좋은 점이 있다. 산불감시원의 순찰을 걱정하지 않아서 보무도 당당하다. 부

슬비 내리는 조용한 배론 성지를 안내판 지시대로 ‘경건하게’ 지나서 산속에 든다. 얕은 골짜

기를 누비다 잡목 숲이 우거진 생사면을 치고 오른다. 지난주의 산색과는 몰라보게 더욱 짙

어졌다. 엄나무 새잎은 나무마다 무성한데 이미 쇠어버렸다.  

불과 한 피치 올랐을까. 비에 젖기보다는 땀에 젖는다. 그예 비옷 벗고 반팔차림 한다. 살갗

에 맞는 빗물이 차디차지만 아주 상쾌하다. 가파름이 멈칫한 550m봉에서 첫 휴식한다. 입산

주 냉탁주가 식도 타고 짜르르하다. 그러다 곧 얼근해지겠지. 

고도 높여 안개 속이다. 숲속에서는 호우가 내리는데 숲속 벗어나면 부슬비다. 앞사람이 풀

숲의 빗물을 털고 가는 그 덕을 보려고 바짝 뒤쫓는다. 

오늘 산행은 지도상에는 배론 성지를 중심으로 무명봉(삼각점이나 표고점이 있는 봉우리) 

9좌이다. 백곡산은 거기 올라 정상 표지석을 보고서야 백곡산인 줄을 알았다. △690.5m봉

이 그 첫 봉우리이자 1부 산행의 최고봉이다. 부토 쓸어 판독한 삼각점은 ‘제천 446, 2004 

재설’이다. 정상에 올랐으니 아무 조망 없으나 잠시 서성이다 물러난다. 

안개 끼고 비가 오면 성가신 게 뭐니 뭐니 해도 지도 꺼내보는 일이다. 종이 지도는 한참을 

들여다보아야 주변을 파악할 수 있고, 스마트폰 오룩스 맵은 빗물에 젖은 손가락이라 잘 작

동되지 않는다. 인적이 분명해도 우리 길이 아니기 일쑤다. 그래서 자주 우왕좌왕한다. 

△690.7m봉은 온 능선 말고 다섯 개의 능선이 뻗어 내린다. 동진하다가 약간 트래버스 하여

남동진하는 능선을 붙든다. 

골로 갈 듯이 뚝뚝 떨어졌다가 반등하여 한 피치 바짝 오르면 581.6m봉이다. 여기서도 방향

착오한다. 남진하다 뒤돌아 북진하여 크게 돌고 남동진한다. 인적 벗어난 잡목 숲을 헤쳐 개

활지에 내린다. 옛날 화전민 터였을까? 지리산 촛대봉 아래 청학연못을 닮은 이 못 또한 춘

수만사택(春水滿四澤)의 하나이다. 너른 공터는 온통 머위 풀밭이다. 

오른쪽 사면을 가로질러 통통한 능선을 붙들고 쭉쭉 내리다 바닥 친 안부 지나 △556.8m봉

을 오른다. 정상 부근이 안개에 푹 가려 심산유곡의 준봉으로 보인다. 일기도 알아본다. 여

태 벼렸다는 듯이 소낙비가 내린다. 천지에 가득한 빗소리도 빗줄기도 소낙비의 그것이다. 

산상 샤워한다. 얼굴 들어 비 맞는다. 고도 170m를 박차고 올라 △556.8m봉이다. 삼각점은 

제천 311, 2004 재설이다. 

여러 사람이 지도 읽어 어렴풋한 길 찾는다. 그래도 오고가는 데미지가 적은 맨 후미를 자처

한다. 가시덤불 뚫고 산자락 밭두렁에 내리고 다리 건너 마을에 다다른다. ‘살레시오의 집, 

살림터’이다. 배론 성지 아랫녘 도로 주변의 비닐하우스를 기웃거리며 가다 더는 못 참고 들

어간다. 잠시의 사용허가를 받고자 해도 통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비 오는 날 점심자리로는 

더 좋을 수 없는 명당이다. 

우리 점심도시락 실은 김기사 님 버스가 곧바로 달려오고 널찍한 비닐하우스 안에 빙 둘러앉

아 버너 불 피운다. 금방 훈훈해진다. 이런 날은 라면이다. 후드득 비닐 때리는 빗소리 듣는 

것도 봄날 드문 정취다. 

8. 소나무 숲을 자주 지난다.

9. 백곡산 오르는 중

10. 백곡산 정상에서

11. 백곡산 정상에서

12. 백곡산 정상에서, 무불 님이 우산을 받쳐 들고 있다.

13. 앞의 사진에서 찍은 사진, 할미꽃

14. 등로

▶ 백곡산(百谷山, △763.3m)

2부 산행. 명도리 매곡(梅谷)저수지 쪽으로 이동한다. 명도2교로 팔송천(八松川)을 건너 버

스에 내리고, 우장 갖춰 농로를 간다. ‘감악산 약천사’라는 방향 표지판 앞에서 개울 건너고 

잣나무 숲속 생사면에 붙는다. 되게 가파르다. 앞사람이 내는 발자국계단을 가면서도 돌부리

와 나무뿌리 움켜쥔다. 갑자기 힘을 쓰니 방금 전의 점심으로 부른 배 옆구리가 결린다. 

능선에 올라서자 잘난 등로가 앞서간다. 성묫길이다. 무덤 두 곳 지나고 그 뒤로는 한적하다.

사방 둘러 아무 볼 것이 없는 안개 속에 들리는 건 내 거친 숨소리뿐이다. 오르막이 한결 느

슨해진 500m봉이리라. 멀리서 해피 님의 휴식! 하는 구호가 반갑다. 잠깐의 휴식으로 다시 

살아난다. 마당벌에 올라오는 능선과 만나고 등로는 튼튼해졌다. 

능선에는 전선 울타리를 쳤다. 감전위험이라는 경고판을 곳곳에 달아놓았다. 못 볼 것을 본

다. 상당히 큰 고라리 한 마리가 전선 울타리에 왼쪽 뒷다리가 걸려 죽어 있다. 아직 썩지 않

은 것으로 보아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가느다란 전선 울타리를 뛰어넘으려다 뒷다리가 전선

에 엉켜버렸다. 빠져나오려고 얼마나 발버둥을 쳤는지 그 근처의 땅이 다 파였다. 

전선 울타리가 끝나고 안개 헤치고 오른 605.5m봉은 너른 헬기장이다. 날이 맑으면 조망이 

좋을 봉우리다. 봉봉을 넘는다. 610m봉, 691.1m봉. 그저 소나무 숲의 실루엣이나 감상하며 

간다. 지능선이 합쳐질 때마다 등로도 더 보태고 △763.3m봉은 신작로로 오른다. △763.3m

봉. 넓게 자리 잡은 무덤 뒤로 커다란 자연석의 백곡산 정상 표지석이 있다. 

백곡산이 낯이 익는다 했더니 우리 오지산행에서 8년 전 가을에 왔었다. 그때도 비가 오고 

안개가 자욱했다. 그때는 명도교에서 백곡산, 감악산, 천삼산으로 진행했다. 백곡산이라는 

이름은 이 산 남동쪽 아래 수많은 골짜기가 모여드는 백곡저수지가 있는 것으로 보아 그 근

처를 백곡이라고 하는 데서 유래하지 않았을까 추측한다. 백곡은 여러 골짜기를 뜻하지 않을

까?

백곡산을 넘고부터는 등로가 신작로다. 아마 지금은 철거하여 그 흔적만 남았지만 송전탑을

세우고 철거하느라 낸 운재로다. 그렇다 해도 사방 여기저기 뚫린 것으로 보아서는 이상하

다. 줄달음한다. 봉봉을 가볍게 오르내린다. 694.0m봉을 넘고 길게 내리다 갈림길이 나오면

더 먼 길을 잡는다. 너무 일찍 하산하게 될 것을 염려하여서다. 

운재로 마다하고 603.1m봉을 가파르게 내리는 길은 보기 드문 꽃길이다. 사면 덮은 키 큰 철

쭉이 무리지어 피고지고 낙화까지 합세하여 주변이 환하다. 철쭉꽃 터널을 지난다. 518.0m

봉은 오른쪽 산허리를 길게 돌아 넘는다. 막바지 내리는 길은 흙 드러난 진창이다. 중앙고속

도로 높은 교각 아래 매화동 수로에서 등산화 닦고 나서 오늘도 무사산행을 자축하는 하이파

이브를 나눈다.

15. 603.1m봉 내리는 길

16. 낙화가 밟기 아깝다.

17. 철쭉이 끝물이다. 

18. 주변이 환한 꽃길

19. 둥굴레

20. 낚시터인 매곡저수지 뒷산

[53차대현]

덕분에 산행이야기 열심히 보고 있습니다.
댓글은 생략하고 눈팅으로 즐기고 있으니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56이세진]

그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