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는 제가 2018년부터 작성해 온 글로써, 매년 조금씩 교정하여 다시 올리고 있습니다.]
말에 실수가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약 3:2). 또한 부정적인 말을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거짓말을 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이 진리는 영혼몸을 모르고 들을 때 매우 헷갈립니다.
돈이 없는데도 '나는 부요하다'라고 말하는 것은 진리를 말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거짓말을 하는 것일까요?
제가 미국 유학시절, 학교에서 선생님들과 외부 강사 목사님들이 종종 하시던 말씀이 있습니다. 말에 대해 가르치실 때 마다 우리는 '그러나(but)'를 어디다 놓느냐, 그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but은 '그러나'라의 뜻인데, 이 말을 할 때 마다 사람들이 크게 웃었습니다. 처음에는 저도 왜 웃는지 몰랐는데 '그러나'의 뜻을 가진 영어 but은 엉덩이 butt 과 발음이 같고 '자신의 엉덩이를 어디다 놓느냐'는 말은 곧 '어디에 앉느냐', 즉 '어떤 위치에 서느냐, 어떤 스탠스를 취하느냐'의 뜻이기 때문에 절묘하게 뜻이 서로 통해서였던 것입니다.
저도 말에 대해 전할 때 마다 질문을 받습니다. '하나님 말씀은 제가 부요하다고 하십니다. "그러나" 제 통장은 마이너스고 빚은 산더미 같은데, 거짓말을 하라는 것입니까?' 아니요, 거짓말을 하라는 것이 아니라 그러나(but)의 위치를 잘 선정하라는 것입니다. "내 통장은 마이너스이고 빚은 산더미 같다. (=현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내가 부요하다고 하신다. (=영적 진리)" 이것이 바로 but의 바른 위치입니다.
부정적인 말을 하지 말라는 것은 무조건 긍정적인 말을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정말 거짓말일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한 번도 현실을 부정하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현실을 부정하면서 긍정적인 말만 하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합당한 것을 말하라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모두 '구원' 안에 들어있습니다. 그렇죠? 건강, 부요, 인간관계의 호의가 다 구원 안에 있습니다. 여기에서 건강은 예수님께서 채찍을 맞으심으로 우리에게 온전히 주어졌습니다.
원래 인간의 몸 안에는 놀라운 치유의 능력이 들어 있습니다. 손을 칼에 베어 보셨지요? 시간은 걸릴 지언 정, 얼마 지나면 기적이 일어난 듯 감쪽같이 치유됩니다. 이러한 치유의 능력이 '원죄'로 인해 제대로 기능하지 않던 것을 예수님께서 채찍을 대신 맞아 주심으로 다시 찾아 오셨습니다. 질병에 대한 치유도 이루어 놓으셨습니다. 이것은 믿음만 있으면 취할 수 있습니다. 물론, 자연적인 원인도 있습니다. 건강한 식습관과 운동, 등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부분은 우리의 건강에 20-30% 정도로 본다고 워맥 목사님은 말씀하셨는데, 저도 상당히 동의하는 부분입니다. (하바드 마인드 연구소에서는 의사들의 통계를 근거로 질병의 자연적인 원인을 2~25%로 봅니다.)
이러한 것을 종합적으로 생각해서 성경적으로 바른 말을 한다면 다음과 같습니다.
"내 몸에는 이러한 증상이 있는 것은 맞아. 그러나 내 영안에는 치유가 이미 들어있고, 나는 그것을 믿음으로 이 치유를 내 몸으로 가져 올 거야."
두 번째는 부요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은 '돈'이 아니라 '부요할 수 있는 능력(신 8:18)'입니다. 이것을 잘못 깨닫고서 말만하면 된다고 생각하여 일은 하지 않고 '돈은 내게 올지어다. 돈은 내게 올지어다.'한다고 해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말씀에 합당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말씀은 일하기 싫어하는 자는 먹지도 못하게 하라(살후 3:10)고 했으니까요. 구원 안에 들어있는 것은 돈이 라니라 부요할 수 있는 능력이라는 것이 확실입니다. 부자들은 망해도 곧 일어납니다. 왜냐, 그들 안에는 돈이 아니라 부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돈이 아니라 부요가 있단 말은 부할 능력을 알고 사용한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말을 할 것인가?
'지금은 내게 돈이 없고 직업이 없습니다. 하지만(그러나, But) 나에게 부할 능력이 있기 때문에 나는 이 능력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배워서 부요를 내 삶에 풀어 놓을 것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성경적입니다.
요약하면 영혼몸으로 나누어서 몸(현실)의 상태를 부인하면서 거짓말을 하라는 것이 아니라, 몸(현실)의 상태를 인정하되, 그 다음에 '그러나'를 붙여서 영의 상태를 말하는 것이 우리의 혼(생각)을 새롭게 하는 한 가지 방법이라는 뜻입니다.
다른 이를 위해 기도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가족이나 친지에게 전도하지 않으면서, '저 사람을 구원해 주시옵소서.'하는 기도도 틀렸고, '저 사람은 하나님을 알지어다, 알지어다!'하는 것도 틀렸습니다. 성경적으로는 '저 사람에게 복음을 전할 일꾼을 보내주소서(마 9:38).'라고 하거나 '저에게 용기와 지혜로운 말을 주셔서 저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고 저 사람이 복음을 들을 때 마음이 열려서 복음을 받아들이게 하소서.'라고 기도하는 것이 맞습니다. 우리가 할 일은 하지도 않으면서 '택한 백성은 어차피 돌아와'라고 하는 것은 믿음이 아니라 근거 없는 자신감, 근자감입니다.
나라가 어렵습니다. '이러다 망하겠네.‘ 또는 '우리나라는 무조건 부흥할 거야.' 둘 다 틀렸습니다. 성경적인 다음과 같습니다.
'이렇게 가다가는 이 나라는 망하겠다. 하지만(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먼저 악한 길에서 떠나 겸손하게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로 한다면 이 땅에 고쳐질 것이며(대하 7:14), 물이 바다를 덮은 것처럼, 여호와의 영광을 모든 사람들이 인정할 날이 올 것이다(합 2:14).'
이렇듯 우리의 but을 제자리에 놓아, 성경적이면서 동시에 긍정적인 말을 하려면 말씀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말씀으로 풍성해 질 때까는 책의 도움을 받으십시오.)
우리 모두 현실을 인정하되 영의 진리를 말하는 영적이고 지혜로운 사람들이 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