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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두이 문화국장(연극배우)
러시아와 藝術.
필자가 인정하는 세계 예술계의 독보적인 최상(最上)의 자리에 있는 나라.
음악의 챠이코프스키, 스트라빈스키, 쇼스타코비치, 미술의 일리야 래핀, 류보비 포포바, 쉬시킨, 칸딘스키, 무용계의 바슬라브 니진스키, 유리 그리고로비치, 루돌프 누레예프, 작가 톨스토이, 푸쉬킨, 안톤 체홉, 도스토예프스키, 막심 고르키, 솔제니친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하늘이 점지한 천재적인 예술가들을 수없이 배출한 나라.
예술 가운데, ‘종합예술’ 연극도 현재 세계 5대 강국에서 1위의 자리를 고수한다고 필자가 믿는 러시아! 19세기부터 연극의 核인 극작가와 연출가등이 현재에 이르기까지 세계 연극계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며 군림해온다.
사진: 모스코바 예술극장 공연 1
劇作家 ‘안톤 체홉, 알렉산드르 오스트롭스키, 고골, 막심 고리키, 레오니트 안드레예프, 샤무일 마르샤크, 아나토리 루나차프스키, 피렘스키, 수호보코빌린, 미카일 불가코프’ 등등....
그리고 연출이 무엇이고 어떤 것이고 사실적 연기를 어떻게 접근하고 만들어야 하는지를 연극 현장에 제시해준, ‘콘스탄틴 스타니스랍스키를 비롯해, 메이어홀드, 니콜라이 예브레이노프, 박탄 코프, 타이로프, 올렉 예프레모프, 게오르기 톱스타노고프, 세지샤트니키, 아나톨리 애프로스, 유리 부투소프, 예프게니아 베르코비치, 레프 도진’ 등등.....
사진: 모스코바 예술극장 공연 2
러시아 연극은 지금도 세계 최강의 나라. 단 새로운 트랜드에 의한 새로운 지평을 넓히는 실험성 짙은 연극이 폴란드, 루마니아 등 동구권 나라들에 비해, 아직도 전통 사실주의 바탕의 연극 작업으로, 다소 조심스러이 진행되고 있는 나라. 그러나 이들의 사실적 바탕의 연기를 중심한 탄탄한 연극적 기본은, 언제든 다양한 연극의 門을 개방할 수 있는 가능성과 잠재력을 충분히 갖고 있다.이러한 공력(功力)을 지니게 만든 극장이 '모스크바 예술극장(Московский Художественный академический театр)'이다.
사진: 모스코바 예술극장 공연 3
1986년도에 필자가 초청되어 모노드라마 一人劇 ‘놀부자 타령’을 공연했을 때, 지금도 온 몸으로 스며든 오랜 역사의 무대와 객석의 엄숙 엄정함은 전율을 느끼게 했다. 역시 연극이나 무용, 음악 등 공연예술은 극장의 역사를 움켜쥔 건축미와 구조 그리고 객석에서 바라보는 알맞으면서 집요하게 보여지는 VIEW에 의한 압도성과 편안함이다. 수 백 년을 지켜온 극장은 저마다 극장의 기운과 스토리를 함께 하는 ‘디어터 유령(Theater Ghost)’이 직시(直視)하며 함께 하고 있는 것. 지금은 거의 사라졌지만, 우리 연극도 과거엔 고사(告祀)를 지내며, 연극혼(演劇魂)을 관장하는 神에게 무사히 성공적인 공연을 기원했던 것.(이런 전통은 단지 전통으로서 간직해야 한다는 필자의 생각이다).
사진: 모스크바 예술극장 공연 햄릿
‘모스크바 예술극장’은 단순히 러시아 연극의 형형(熒熒)한 발자취만이 아니다. 그것은 근대 세계 연극의 주춧돌이었다. 1898년 배우이며 연출가 ‘스타니스랍스키’와 극작가이며, 연출가였던 ‘블라디미르 네미로비치 단첸코’가 함께 세운 극단이자 그 터전의 극장이다. 리얼리즘과 자연주의 연극에 결정적 역할로 세계 연극과 연기법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위대한 만남이었던 것이다.
사진: 모스코바 예술극장 공연 6
두 사람은 1897년 6월 22일 오후 2시에 러시아 연극을 멜로드라마 차원이 아닌, 보다 수준 높은 예술로 개혁하고자 하는 바람으로 만나, 다음 날 아침 8시까지 격론을 펼쳐가며 의기투합, 마침내 역사적인 ‘모스크바 예술극단’이 탄생을 이룬 것이다.
두 사람의 집중적이며 집요한 연극예술에 대한 이념은 좋은 재목의 배우들을 모집하고, 단원들의 돈독한 신뢰를 쌓기 위해 함께 생활하며 작업을 진행, 공연의 質을 높이는데 성심성의를 다했다. 이것을 토대로 극장 내에 산하 기관으로 ‘모스크바 예술극장 연기스튜디오’를 만들어 배우 훈련(소위 말하는 스타니스랍스키 연기 시스템)을 실행하고 공연을 제작한다. 이것이 후에 ‘메소드 액팅(Method Acting)’의 출발점으로 이어졌다.
극장과 극단이 설립되고, 첫 번째 시즌에 러시아 작가 ‘포도르 요안노비치’와 ‘헨릭 입센’, ‘셰익스피어’ 작품들을 무대에 올렸지만 큰 반향을 얻지 못하다가 1898년 ‘스타니스랍스키’가 ‘트리고린’ 역할을 맡은 ‘갈매기’ 공연을 시작으로 체홉의 불후의 명작 <벚꽃동산>, <세 자매>, <바냐 아저씨> 등을 연달아 올리며 비로소 성공의 문을 활짝 열어 제친다.
사진: 모스크바 예술극장 공연7(서푼짜리 오페라)
극장이 존재하는 건, 결국 명품연극의 탄생에 견주어 그 생명 줄이 가늠될 수 있는 것. 결국 연출가이자 배우 ‘스타니스랍스키’와 현대 사실주의와 자연주의 연극의 명작을 완성한 극작가 ‘안톤 체홉’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개인도 가족도 기업도 나라도 흥망성쇠(興亡盛衰)는 있는 법! 특출한 작가 체홉이 세상을 떠난 후. 체홉의 후계자로 명성을 얻었던 ‘막심 고리키’의 작품 <여름 사람들> 흥행 실패로 모스크바 예술극장은 타격을 입는다. 곤경에 처한 모스크바 예술극장은 1906년 베를린을 필두로 드레스덴, 프랑크푸르트, 프라하, 비엔나 등에 순회공연을 시작, 당시 처음 접한 러시아 사실주의 연극에 대한 새로운 연극에 매진과 더불어 평단까지 찬사로 이어져, 큰 반응을 얻고 대성공을 거둔다.
사진: 모스코바 예술극장 공연 8
1917년 러시아 ‘10월 혁명’ 등 정치의 어수선한 상황에서도 극장은 깊이 있는 연극예술로 새로운 미래를 꿈꾸자하는 메시지를 러시아 국민들에게 인지시키며, 성공가도를 달린다. 더불어 러시아에 비로소 배우들을 ‘인민 예술가’란 존칭을 붙여 생활하게 했으니, 이로부터 공산주의 정권들이 연극이야말로 가장 좋은 이념과 정책의 선전도구로 삼아 연극육성의 정책을 펼치는 계기가 된 것이다.
그러나 진정한 예술정신은 늘 민중 속에서 매서운 칼날의 용트림으로 준동하는 것! ‘미카일 불가코프’의 <연극소설>, ‘아이작 바벨’의 <일몰> 등의 출현은 자칫 쇠퇴할뻔 한 연극의 인간성, 사회성, 예술성을 복원하는 길잡이가 되었다.(필자가 본 불가코프의 ‘마스타&마가리타’는 지금도 최고의 연극작품으로 기억된다)
사진: 모스코바 예술극장 공연 9
예술이 그렇지만 정부의 예술지원책이 없으면 자생(自生)의 길은 힘든 법. 레닌은 소위 ‘신경제정책’이란 정치적 목표로 연극단체에 대한 지원금을 끊고, 극장은 막대한 빚을 떠안게 된다. 이러한 어려움 속에 스타니스랍스키 마저 1928년 체홉의 <세 자매> 공연 중, 심장마비로 무대에서 쓰러져 극장을 떠나게 됐고, 스탈린 통치하에선 더욱 옥죄기를 시작해, 연극 뿐 아니라 모든 예술계는 통제 상황하에 놓이게 된다.
사진: 모스코바 예술극장 공연 11
모스크바 예술극장도 공연 때마다 검열을 받아야 했고, 극장 안엔 항시 ‘적색 감독관’이 배석해, 공연 검열의 창을 들이댔다. 자연히 연극은 스탈린의 구미에 맞추려는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구현’ 홍보슬로건으로 쇠퇴의 길로 들어선다. 연극의 질은 나빠졌고, 좋은 예술가들은 외국으로의 망명이나 활동 중단 상태에 빠지게 된다.
1970년 가을.
모스크바 예술극장은 배우 출신의 ‘올렉 예프레모프(Oleg Yefremov)가 등장, 옛날의 명성을 찾기 위해 대대적인 개혁(改革)을 단행했으니, 스튜디오 시스템을 재도입, 스타니스랍스키 연기법에 의한 배우훈련과 극장운영에 새로운 제도를 만들어 러시아 특유의 연극흥행을 다시 불러일으킨다. 1987년 모스크바 예술극장은 ‘체홉 모스크바 예술극장’과 ‘고리키 모스크바 예술극장’ 두 개의 극단으로 나뉘어 운영을 시작했고, 1943년 단첸코에 의해 세워진 배우 양성학교 ‘모스크바 예술극장 스쿨(Moscow Art Theater School)’도 새로이 2024년에 재건, 다시 이어지는 명문 연기학교로서 좋은 연기자를 배출하는 데 전력을 기울인다.
사진: 모스크바 예술극장에서 일인극 놀부자
1897년에 창설되어 지금까지 러시아 최고의 연극을 이끌어오고 있는 ‘모스크바 예술극장’은 기라성 같은 연출가와 극작가, 예술감독, 무대디자이너, 조명디자이너, 의상, 소품 등의 공훈(功勳)으로 세계 최고의 연극을 만들어내는데 앞장서왔다. ‘연극은 배우의 예술’이라는 말대로, 최고의 배우에게 주워지는 ‘러시아 인민배우’라는 타이틀은 탁월한 배우들의 출연과 활동으로 {사실주의~자연주의~신사실주의}에 이르는 연극에 정점을 찍어, 세계 연극계에 지대한 영향과 반향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사진: 모스크바 예술극장 전설의 연출가 스타니스
127년 ‘모스크바 예술극장’ 역사에 기억할 만한 배우들로 ‘알렉세이 바탈로프, 세라피마 버만, 유리 보가티료프, 미하엘 체홉, 알렉사이 디키, 소피아 지아친토바, 바실리 카찰로프, 콘스탄틴 카벤스키, 올가 니퍼, 알리사 쿠넨, 아나톨리 크로로프, 자티아나 라브로바, 안드레이 먀그코프, 마크 프루드킨, 이야 사비나, 빅토르 스타니친, 안젤리나 스테파노바, 알라 타라소바, 나탈리아 테냐코바, 미하일 얀신.....’ 등등. 연기 세계 최고봉들이 연이어 지금까지 전통을 잇고 있는 것이다.
사진: 모스크바 예술극장 공연5(햄릿)
‘모스크바 예술극장’에서 공연된 작품들 면면(面面)만 봐도 기념비적이다. <스테판치코보 마을/도스토옙스키>, <여관 여주인/골도니>, <파수킨의 죽음/미하일 살티코프>, <강제결혼/몰리에르>, <갈매기/알톤 체홉>, <눈의 처녀/알렉산더 오스트로프스키>, <우리가 깨어날 때/헨릭 입센>, <블레셋 사람들/막심 고리키>, <어둠의 힘/톨스토이>, <쥴이어스 시저/셰익스피어>, <재치로부터의 비애/알렉산드르 그리보예도프>, <검찰관/고골>, <시골에서의 한 달/투르게네프> 등등.... 가히 명작, 명배우, 명품연극 최고최대의 산실(産室)이었다.
사진: 모스코바 예술극장 공연 7(1)
‘모스크바 예술극장’ 박물관은 단순히 러시아 연극의 자료관을 넘어, 가히 근,현대 연극의 아카이빙 격이다. 이념이 어떠하든 예술은 자유를 향한 목소리요 표현이다. 공산치하 사회주의 등 격변(激變)과 격랑(激浪)의 역사와 ‘챠르 독재정권’ 치하에서도 굳건히 자유와 민족을 위한 메시지를 담은 연극예술을 꾸준히 실행해 온 ‘모스크바 예술극장’!(부럽지 않을 수 없다)
사진: 모스크바 예술극장 단원들과 스탭들
역시 ‘연극을 사랑하고 연극의 예술성을 인정하고 있는 연극의 나라 러시아’다.
필자가 뉴욕에서 출연했던 'The Strangers' 연출가 샬리코(Shaliko)가 러시아 연극을 보고 와서 들려준 말이다. “정치 경제 사회는 자유가 없는 비틀린 체제인데, 연극은 아직도 세계 최고다!”
사진: 모스크바 예술극장 무대 디자인
사진: 모스크바 예술극장 무대
사진: 모스크바 예술극장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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